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202
202화 마지막 전장으로
***
“후······.”
도로시는 천천히 호흡을 골랐다.
검은 용들과의 전투를 시작한지도 어언 이틀 째.
이제까지 처리한 검은 용은 총 여덟 마리.
그러는 동안 단 1분도 쉬지 않고 대형 마법을 갈겨댔기에, 몸에 쌓인 피로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마나가 무한히 샘솟는 것과는 별개로 몸엔 휴식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아직 용체(龍體)를 완성시킨 것이 아니었기에, 언제든 몸의 균형이 깨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도로시는 통증이 올라오는 곳을 체크했다.
팔, 다리, 어깨, 가슴······.
“······안 아픈 데가 없네.”
이미 전처럼 온몸이 욱신거리고 있는 상태였다. 잠시라도 안정을 취하며 몸을 관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쿠오-.
저 빌어먹을 검은 도마뱀들은 자신을 쉬게 해줄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귀를 때리는 포효에, 도로시는 가만 하늘을 올려다봤다.
북쪽 방면에서 날아오고 있는 세 마리의 검은 용에 이어, 남쪽에서도 하나의 검은 점이 포효를 내지르며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혹여나 다른 볼 일이 있진 않을까, 슬쩍 보곤 그냥 지나쳐가지 않을까······ 잠시간 상상해봤으나 헛일이었다.
저 노란 눈동자들이 쳐다보고 있는 건, 누가 봐도 자신이었으니.
“무슨······ 여기서 모임 약속이라도 잡았니?”
희한한 일이었다.
어째서 이리로 다 모여드는 걸까.
검은 용들이 수호자에게 오랜 증오를 품고 있다는 것 정돈 알고 있었다. 그토록 오랜 세월을 통제되어 왔으니.
다만, 그렇다한들 그들의 본 목적과 역할은 혼란이다. 모험왕 후보자들의 자격을 심사하기 위해 이 땅에 거대한 혼란을 일으키는 것.
즉, 나름대로의 목적성과 규칙을 가진 채 혼란스런 국면을 주도하는 게 이들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종족의 오랜 숙원을 달성하기 이전에 말이다.
이렇게 대거 몰려들어 수호자만을 노리는 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즈음,
쿵-.
쿵쿵-.
북쪽에서 날아온 검은 용들이 그 육중한 발을 땅에 디뎠다.
“······수호자.”
“여기 있었군, 용의 심장을 지닌 수호자.”
“어디 있지? 용의 몸을 가진 수호자 쪽은?”
응?
“아, 키리코? 걔 찾는 거였어?”
다행이다.
자신이 목적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빡빡이는 여기서 서쪽으로 조금만 날아가면 있을 거야. 저어기, 저쪽으로.”
도로시는 직접 손가락으로 방향까지 가리키며 친절히 안내해줬다.
그러나,
“고맙다. 네 뼈를 씹으며 녀석을 찾아가도록 하지.”
“용의 심장부터 회수하겠다.”
“곧 만나게 해주마.”
개뿔.
어림도 없었다.
“······묻긴 왜 물어.”
그다지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용들은 도착과 동시에 공격태세에 들어갔다. 자기들끼리 거리를 벌리고, 퇴로를 차단했으며, 주위 마나를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브레스를 날리려 입을 벌리는 녀석도 있었다.
이에,
‘약간이라도 쉬었으면 좋겠는데······.’
도로시 또한 질세라 마나를 끌어올렸다.
가슴 부근의 통증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가만 타죽을 순 없는 노릇이니.
바로 그때였다.
쿠오-.
남쪽에서 날아오던 검은 용 한 마리가 어느새 상공에 그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꽤나 멀리 있는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비행속도가 엄청난 녀석이었다.
곧이어,
쿵-.
지축을 울리는 굉음과 함께 녀석이 땅에 안착했다.
다른 용들에 비해 두 배는 더 큰 괴물 같은 몸집을 지닌 용으로, 아는 녀석이었다.
“킬킬, 수호자. 드디어 만났구나.”
“······치잇.”
운이 좋지 않았다. 하필 저 광폭한 녀석이 찾아오다니.
녀석은 성질이 더럽기로 유명한 금의 일족 중에서도 대장 격인 용으로, 지난 선별전 때 이미 한 차례 격돌한 적이 있는 녀석이었다.
당시 자신에게 약간의 창피를 당했었기에, 분명 앙심을 품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즈음,
“금의 일족이여, 수호자를 노리는 건가?”
“그래, 저건 내 먹잇감이다. 끼어드는 건 용납하지 않겠다.”
녀석의 등장을 의식했는지, 먼저 도착해 있던 용들이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일족들의 복수심은 동일하다. 알지 않는가.”
“어쩌란 말이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네 것 내 것을 가리는 게 의미가 있을까?”
“그럼 내 말을 따라라. 수호자의 뼈를 씹는 건 나부터다.”
“······.”
오?
도로시는 의외의 상황에 희망을 품었다.
그래, 일족들 간에 기싸움이 없을 리가 없지.
녀석이 아무리 강한 개체라 하더라도, 저쪽은 셋이었다. 밀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잘하면······ 녀석들의 다툼에 시간을 벌 수 있을지도?
그러고 흥미진진한 눈으로 추이를 지켜보던 중이었다.
갑작스레,
“좋다, 네게 협력하지.”
“따르겠다.”
“행하는 이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법. 우리의 공통된 목적은 혼란이 종식되기 전, 수호자의 제거이니.”
“좋다, 진작 그럴 것이지.”
의견수렴이 이뤄졌다.
“······허.”
어이가 없었다.
혼란을 주도한다는 놈들이, 저렇게나 질서정연하고 배려심이 많을 줄이야.
‘쉽지는 않겠네······.’
도로시는 오늘 하루가 그리 짧지 않겠다는 걸 직감했다.
이어 곧바로 마나 보호막을 형성한 후, 잠시 후 닥칠 마법세례를 대비하고 있을 때였다.
바로 그때,
쿠오-!
쿠오오-!
쿠오-!
어디에선가 어마어마한 포효가 들려왔다.
한둘이 울부짖는 게 아니었다.
적게 잡아도 열······ 혹은 그 이상.
때마침,
“저기!”
용들 중 하나가 서쪽 하늘을 보며 소리쳤다.
이어 돌아본 그곳엔,
“허······.”
노을을 등진 채, 열 댓 마리의 용들이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선두에 선 건,
“······키리코?”
다름 아닌 새빨간 적색의 용이었다.
이를 본 도로시는 적잖이 당황했다.
‘뭐야, 아직도 검은 용들을 이끌고 있다고?’
자신 또한 처음엔 스무 마리를 이끌고 있었으나 루덴코프가 편 가르기를 시작한 이후,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녀석들이 죄다 그쪽으로 붙어버렸던 것이다. 수호자들의 반대편에 서는 게 ‘균형 있는 혼란’을 주도하는 길이라느니, 어쨌느니 하면서.
그리고 자신이 주걱턱을 도우려 한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기에, 딱히 이를 제지할 수도 없었다.
분명 키리코 또한 마찬가지라고 들었는데.
도로시는 잠시간 생각에 잠긴 후, 이내 결론을 내렸다.
‘그래, 말이 안 돼.’
검은 용들이 여태 키리코를 따르고 있을 리가 없다. 이는 그들의 역할과 목적에도 위배될뿐더러······ 수호자야말로 그들이 가장 증오하는 대상이었으니.
그렇다는 건, 지금 저 상황이 자신에게 썩 그리 이로운 게 아니라는 걸 뜻했다.
‘망했네.’
곧이어,
쿵-.
거대한, 그리고 실로 아름다운 빛깔의 용이 도로시 앞에 우아하게 내려섰다.
적색의 용, 키리코였다.
이어,
“검은 용 네 마리라······ 곤란을 겪고 있는 듯하군. 도와주도록 하지.”
녀석이 근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순간,
“하······.”
도로시는 황당함에 말문을 잃고야 말았다.
이거 미친놈인가?
“네 마리······ 였었지.”
“음?”
“근데 이제 곧 스무 마리가 될 것 같고.”
“음······.”
“도와준다고? 살려달라는 게 아니라?”
키리코가 이리로 온 이유야 간단했다.
그냥 쫓겨 도망쳐 온 것이었다. 저 열댓 마리의 검은 용들에게.
그런 주제에 뭐?
그러고 도로시가 쏘아보자,
“흠흠······ 어쨌거나 힘을 합쳐야할 듯하다. 검은 용들이 죄다 우릴 노리기 시작했으니.”
녀석이 그 뻔뻔스러운 얼굴로 연합을 논했다.
“참나······ 너 노리는 거 아냐? 우리가 아니라?”
“어허, 그런 걸 따질 시간이 어디 있다고.”
때마침,
쿵-.
쿵쿵-.
쿵-.
키리코를 쫓아 온 열댓 마리의 검은 용들이 지상 위로 내려섰다.
얼굴만 봐도 피곤한 녀석들이 한 가득이었다.
“휴······.”
도로시는 나직이 한숨을 내쉰 뒤, 키리코에게 물었다.
“근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혹시 알아?”
“할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라더군.”
“뭐······?”
“마녀들도 거인들도 모두 물러났다고. 상대할 이가 없어졌으니 시간이 났고, 그래서 나를 쫓아왔다고.”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마녀나 거인이 물러나지 않을 리 없다는 게 아니라, 그들이 물러난다고 해서 저들이 옳다구나 전투를 중단했다는 게 말이다.
그러나 곧바로 이어진 키리코의 말에, 도로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본인들이 창출할 혼란의 규모를 넘어선 사건이 발생했다고 하더군. 마녀와 거인은 부수적인 이유이고······ 더는 활동할 명분이 없어진 모양이야. 그래서 돌아가기 전, 우리라도 잡으려는 거고.”
“······그래서 시간이 없다고 한 거구나.”
“그렇지. 검은 용들의 활동이 이 이상 길어진다면, 그땐 스승님이 나오실 테니까.”
그제야 아리송하던 현 상황이 대충 이해가 됐다.
물론, 수십 마리의 검은 용들의 활동을 일제히 중단시킬 만한 사건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알 수 없었지만.
그즈음 도로시는 전방을 슬쩍 훑었다.
검은 용들이 긴장된 기색으로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럼······ 이것들만 처리하면 된다는 거지?”
“그래.”
저들이 저토록 긴장의 끈을 팽팽히 유지하고 있는 이유.
그리고 자신이 이렇듯 한가로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유.
이는 간단했다. 이 녀석과 힘을 합쳤을 때, 전력이 수십 배 상승하기 때문이다.
일명 ‘수호자의 고리’라 칭해지는 것.
둘이서 힘을 교류할 때 생성되는 이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부담을 지우고, 서로의 힘을 더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으로, 스승님이 내려준 수호자의 권능 중 하나였다.
-수호자로선 둘이 합쳐 하나다.
선별전 때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었다.
그때는 검은 용 사십 마리가 동시에 덤벼들었으나,
“전과 동일하게 가면 되지?”
그럼에도 이겼다.
“마나 공급만 해. 상대는 내가 한다.”
“······허세는.”
“어쨌거나 스승님이 귀찮은 걸음을 할 필요는 없게 해야지.”
“그건 동의.”
“그리고 알지?”
“뭘.”
“이 싸움만 끝나면, 그땐 서로 적이다.”
“······킥.”
그 말을 듣자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거······ 전에도 들었었던 것 같은데.”
그러곤 도로시는 키리코의 목 뒤에 올라탄 뒤, 키리코의 몸에다 천천히 마나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이어,
“좋아, 몸은?”
“괜찮아. 한결 편해졌어.”
여섯 개의 동그란 원이 허공에 생성되었다.
[작열하는 여섯 탄환]키리코의 고유능력이었다.
이윽고,
“그럼 시작해볼까.”
허공에 구현된 키리코의 리볼버에서 검은 혼란을 잠재울 여섯 탄환이 발사되었다.
타앙-.
*
“저 녀석······ 저렇게도 되는구나.”
나는 조금쯤 놀란 눈으로 전장을 지켜봤다.
엄청나게 커진 ‘거인 루덴코프’가 다른 거인 셋을 동시에 집어 들곤, 이리저리 패대기치고 있었다.
사실 그리 놀랄 것 없는 일이긴 했다. 애당초 녀석의 능력 자체가 ‘대상의 상태 그대로’를 빌려 쓴다는 설정이었으니.
실제로 루덴코프가 대마녀의 힘을 빌려줬을 당시, 내 몸에도 서클이 생기지 않았던가.
이에 녀석이 루카스의 힘을 가져갔을 때도, 별 위화감 없이 마왕의 모습을 갖출 거라 생각했었고.
하지만 저렇듯 거인이 된 모습은 원작에선 본 적이 없는 것이라 약간 신기하긴 했다.
“나쁘지 않네.”
진심이었다.
녀석의 거인화된 모습은 나쁘지 않았다. 당연지사 잘생겼다는 의미는 아니고, 연출적인 면에서 괜찮았다. 쓰러뜨리는 맛도 있을 것 같고.
그러나,
“자움달! 복수! 가만두지! 않아!”
그런 모습을 결코 좋게 볼 수 없는 이도 있었다.
성난 바하롬이 루덴코프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쿵-.
쿵쿵-.
“저놈 저거······ 괜찮을까나.”
내가 루덴코프를 상대하는데 거인들을 투입한 이유야 별 게 없었다.
녀석이 거인들의 힘을 탐내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이미 자움달의 힘을 빌렸던 녀석이지 않는가. 이미 힘 자체는 충분한 녀석이니, 딱히 ‘피라미’들의 힘까진 탐낼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경우, 거인들이 어느 정도는 녀석의 힘을 빼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 힘을 뺀다기보다는, 숨겨놓은 전력을 조금이라도 빨리 개방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그러나,
“크아악!”
“크어!”
“피해!”
크게 효과는 없는 듯했다.
확실히 편차가 너무 컸다. 제아무리 피라미라 할지라도 거인인데······ 저렇듯 어린애 다루듯 던져버리다니.
물론 바하롬 쪽은 어느 정도 상대가 되긴 할 것이다.
하지만······ 녀석에게도 큰 기대는 할 수 없지 않을까.
힘이야 엇비슷할 수 있다 치더라도, 왕과 왕이 아닌 자는 다르다. 자움달조차도 당해내지 못했는데, 바하롬이 당해낼 수 있을 리가.
더욱이 그때의 루덴코프완 비교도 할 수 없는 힘을 갖춘 지금이 아닌가.
그리고 이와 같은 생각은 대마녀 또한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출전해야겠다.”
“벌써?”
“저 거인과 함께 해야 그나마 해볼 만한 싸움이 되지 않겠느냐.”
“음······.”
“늘 저 건방진 채무불이행자를 교육해야겠단 생각을 했었지.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자움달과의 협공이면 좀 더 편했겠지만······ 뭐, 저 거인도 그리 힘으론 모자라 보이진 않으니.”
대마녀는 그러곤 망설임 없이 전장을 향해 날아갔다.
나는 그런 그녀를 조금은 묘한 눈길로 쳐다봤다.
가장 속내를 알 수 없다 생각했던 이에게 가장 큰 도움을 받게 될 줄이야.
물론 그녀에게 코코로코가 붙었던 것을 보면, 그녀의 행보에도 작가의 개입이 있긴 했을 것이다. 다만······ 그렇다하더라도 신선한 경험이긴 했다.
적이라 생각했던 자와 등을 맞대는 것.
“보여주라고! 모험의 탑에서 가장 광대한 영역을 차지했던 게 누구인지!”
이어, 나는 전장에 선 그녀의 전투를 묵묵히 지켜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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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지났을까.
바하롬은 옛적에 떨어져 나갔고, 대마녀 또한 한계를 보이고 있었다.
마녀는 전투에 있어 상성을 타지 않고, 개인전이든 단체전이든 상관하지 않으며, 병력의 규모와 종족조차도 가리지 않는, 굉장히 다재다능하고 전투밸런스가 고른 종족이다.
마나만 충분하다면, 그 누구와도 대적할 수 있는 게 바로 마녀라는 것.
다만 이와 같은 이유로, 마녀들은 힘의 크기가 차이나는 또 다른 마녀에겐 전혀 힘을 쓰지 못한다. 완전한 하위호환이 되기 때문에.
마녀들 사이에 서열이 확고한 것도 다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대마녀의 마법은 루덴코프에게 일절 통하지 않았다. 공격마법으론 최상위권인 ‘메테오’로도 간단한 보호마법인 ‘실드’를 뚫지 못했고, ‘헬 파이어’조차 루덴코프의 간단한 ‘파이어볼’을 잡아먹지 못했다.
지닌 힘의 크기가 그토록 현격했던 것이다.
대마녀는 아쉽게도 ‘마왕 루덴코프’조차 이끌어내지 못했다.
물론 뭐, 예상했던 바이긴 하지만.
“······슬슬 내 차례인가.”
그러고 내가 막 채비를 갖출 때였다.
갑작스레,
“나! 나도!”
옆에서 나를 유심히 관찰하던 레오가 대뜸 그러고 소리쳤다.
“나도 나갈 거야!”
“뭔 소리야. 말했잖아, 넌 마지막이라고. 동의했던 거 아닌가?”
“지금 저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뭐?”
“다 함께 덤비지 않으면 승산이 없다고! 네가 가만히 있길래 일단은 잠자코 기다렸지만······ 너 바보냐!? 힘의 차이가 안 느껴져?”
“······.”
웃기는 녀석이었다.
그게 주인공으로서 할 소리냐.
나는 한 차례 피식 웃어주곤,
“너는 나 다음이야.”
녀석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일러주었다.
“잘 들어. 모름지기 주인공이라면, 일생일대의 전투를 앞두고서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뭐? 갑자기 무슨 소리야?”
“먼저 어떤 승부에서건 일대일로 임할 것.”
“너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정신을 못 차린 건 네놈이야, 이 멍청이 같으니라고.”
“뭐? 이 자식이!”
나는 레오의 표정이 어떻든 간에 신경 쓰지 않았다.
“두 번째, 도망치지 말 것.”
“나도 그딴 생각은 절대 하지 않······.”
“마지막으로, 네 모든 것을 걸 것.”
“······.”
이제 출전할 시간이었다.
나를 죽음으로 인도할, 이 세계에서의 마지막 전장으로.
“내 전투를 끝까지 지켜봐라. 절대로 중간에 끼어들지 말고.”
이어 나는 크게 심호흡한 뒤, 발걸음을 내딛었다.
“······가볼까.”
*
“여, 돼지. 이쪽이다.”
루덴코프는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이어,
“아니 이게 누구야.”
씩 웃었다.
거기 기다리던 녀석이 와 있었다. 약간 희한한 모습이긴 했지만.
“약한 애들 괴롭히면서 신 내지 말라고. 여기 진짜가 왔으니까.”
“진짜? 하, 진짜란 놈이 뭘 그리 꽁꽁 싸매고 있냐? 엉? 기계로봇? 그 따위 게 널 보호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 하냐? 엉? 엉!?”
웃기는 녀석이었다. 기껏 준비해온 게 움직이는 장난감이라니.
“됐고, 나중에 치사하다고 울지나 말라고. 실제로 내가 이거 썼다고, 분하다면서 엄청나게 꽁해 있는 녀석도 있으니까.”
“크하하핫, 그럴 리가. 어쨌거나 기다렸다, 주걱턱! 거인이니 마녀니······ 시시해서 죽을 뻔 했다고. 모험왕이 되는 게 이렇게나 쉬우면 안 되는 거잖아, 안 그래?”
루덴코프는 즐거워 견딜 수가 없었다.
눈앞의 녀석이 이 모든 걸 제공해줬다 생각하니, 녀석의 산만한 턱조차 사랑스러울 지경이었다.
“흐흐흐, 너는 특별히 안구를 뽑아다 내 개인 창고에다 보관해주마. 직접 눈으로 보게 해주겠단 소리야, 네놈이 만든 모험왕의 모습을. 영광인 줄 알라고.”
“웃기고 있네. 너야말로 지난 약속 기억하고 있지? 내가 너 죽여주겠다고 한 거. 지금 내가 그 약속 지키러 나온 거거든.”
“크하하핫! 칠왕들도 감당하지 못하는 내 힘이다. 저 대마녀조차 내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거늘, 네가 무슨 수로?”
그때였다.
“무슨 소리야, 대마녀라니.”
“엉?”
녀석이 갑작스레 희한한 소리를 꺼냈다.
“네가 언제 대마녀를 상대했다고.”
“언제냐니? 방금······”
“누구, 설마 저 좁쌀만 한 마나를 지닌 마녀를 말하는 거냐?”
“······.”
그러곤 녀석이 대뜸 팔 한쪽을 들어 올렸다.
거기 손바닥 중앙엔 웬 원형의 구 하나가 박혀 있었는데, 녀석이 팔을 든 순간 갑작스레 구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용돌이가 만들어내고 있던 건,
“아니, 뭐, 뭐냐 그건······.”
가히 믿기지 않을 정도의 거대한 힘이었다.
그 무렵,
“대마녀라는 게 혹 가장 강한 마녀를 지칭하는 말이라면······ 그건 아마 나일 걸?”
“······뭐?”
녀석이 또 한 번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였다.
“너 여태 몇 명한테 힘 빌렸냐?”
“뭐?”
“몇 명에게서 능력과 힘을 훔쳤냐고. 실은 나도 꽤나 강탈해 왔거든, 마녀들뿐이긴 하지만. 아마 인원수로만 따지면······ 비슷하지 않을까?”
“힘을······ 모아?”
저 녀석도 설마 힘을 빼앗을 수 있다는 건가?
루덴코프는 만면에 가득했던 웃음기를 싹 지웠다.
녀석의 말 중 태반은 알아듣지 못했다. 매번 그래왔긴 하지만.
다만 분명한 한 가지는, 지금 녀석에게서 느껴지는 힘이 이제껏 상대해왔던 그 모든 녀석들보다도 크다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전대의 모험왕들보다도.
그즈음 루덴코프는 다시는 느끼지 못할 줄 알았던 감정이 다시금 내면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걸 느꼈다.
긴장과 불안, 그리고······ 위화감이라는 것.
이것들을 없앨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일 것이다.
“······끝장을 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