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n Obsessive Servant RAW novel - Chapter (33)
33
“로벨, 괜찮은 거야?…….”
내게 업힌 도련님은 내내 안절부절못했다.
내가 자기를 업고 있어서 힘들까 봐 염려하는 모양이다.
“아…… 잠깐……. 좀 이상한데요.”
심각한 어조로 말하자 도련님이 왜, 무슨 일인데, 하고 물었다.
“도련님 지금 업혀있는 거 맞아요? 너무 가벼운데.”
능청스럽게 말하며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러자 내게 업힌 도련님과 눈이 딱 마주쳤다.
어머니를 제외하고 이렇게 누군가에게 몸을 맡긴 것이 처음일 그는 부끄러운 건지 귀까지 붉히고 있었다.
나도 그처럼 붉어졌을 것이다.
이렇게 팔과 다리, 상체가 동시에 맞닿는 건 처음인데 여태껏 함께한 이래 가장 기분이 좋았다.
이건 뭐, 작은 혈관 하나하나까지 다 맑아지는 것 같네.
이런 상황만 아니라면 무슨 핑계를 대고서라도 더 즐겼을 텐데……. 잠깐. 그럼 꼭 뺨 맞을 필요는 없었잖아?
왜 굳이 뺨만 고집했을까.
앞으론 다른 방식도 써야지, 다짐하면서 능청스럽게 말했다.
“맞네. 잘 업혀 계셨네요? 너무 가벼워서 몰랐는데.”
눈을 흘기는 그에게 방긋방긋 웃었다.
하지만 사실, 내 속은 부글부글 끓어 넘친 지 오래다. 몸의 회복과 별개로 기분은 몹시 상했다.
‘후…… 공작님. 이렇게 치사하게 나오시겠다, 이거죠.’
꾸짖음이나 비아냥거림 정도는 예상했어도 이렇게까지 할 줄이야.
아들과 간단한 인사치레도 하기 전에 그 쓰임새부터 파악한다는 것 아닌가.
정말 도련님이 실력 검증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당장 쫓아낼 기세였다.
‘그래도 자식인데 정말 이렇게 물건 취급할 줄이야.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네.’
아니, 애초에 아픈 자식을 그렇게 방치해두었다는 것 자체가 어이없다.
도련님이 살았던 그 낡고 초라한 환경을 떠올리면 속에서 욕이 절로 나왔다.
“로벨. 이제 어떻게 해?”
그런 분노를 잠재운 것은 도련님의 맑은 미성이었다.
굳이 고개를 뒤로 돌리지 않아도 그의 반짝이는 눈이 훤히 보였다.
나보다도 적극적으로 마차를 살피고 있을 것이다.
그게 기특하면서도, 안타까웠다.
‘이런 상황에 화조차 내지 않다니…….’
아무리 그동안 기대가 없었다 해도 아버지와의 첫 만남. 아무렇지도 않을 리가 없는데.
그래도 지금 가장 힘들 사람은 도련님이다.
씁쓸함을 참고서 밝게 말했다.
“아까 보좌관님이 알려준 것처럼, 석판이 있는 마차부터 구분해야겠죠.”
“응.”
목 뒤로 가라앉은 숨소리가 들렸다.
아마, 저 마차를 하나하나 다 살펴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도 도련님은 저걸 다 어떻게 하느냐고 묻거나 화내지 않았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물었다.
“그럼 나는 뭘 하면 될까.”
기특해라.
나는 조금 더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여기 있는 마차들 천천히 다 둘러볼 건데요. 그 석판이 있는 마차 근처를 지날 때마다 도련님께서 저한테 알려주시면 돼요. 그럼 제가 바닥에 따로 표기해둘게요.”
“나보고…… 알려달라고??”
“예.”
“잠깐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낸다는 거야? 어떻게 꺼내지도 않고 확인을…….”
“아, 그거, 도련님이라면 굳이 안 꺼내 봐도 확인 가능해요.”
내 확답에 반신반의하던 도련님이 조용해졌다.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 봐선 무슨 이유라도 있겠거니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 짐작대로, 나는 확신이 있었다.
디프의 능력 중 하나가 고대 기운 감지였다.
그리고 어제 석판을 만진 일로 도련님의 디프 핏줄의 능력 일부가 처음 발현되었을 테다.
‘도련님은 원한다면 그 능력을 오감보다 더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을 거야.’
공작이 도련님의 혈통에 대해 몰라서 다행이었다.
알았다면 위험한 용도로 썼을지도…….
나는 우울한 상상을 털고서 밝게 물었다.
“도련님, 어제 봤던 석판들은 다 기억하시죠?”
혹시 기억하지 못하면 보좌관에게 작은 파편이라도 가져와 달라 말하려는데, 도련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주인에 그 시종이라니까. 역시 우리 도련님은 똑똑하단 말이지.
“좋아요. 그것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찾아본다고 생각해보세요.”
“해볼…… 어?”
도련님이 말을 제대로 마무리하기도 전에 흠칫 놀랐다.
고개를 치켜올린 그가 주변을 급히 두리번거렸다. 반응만 봐도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겠다.
나에겐 그냥 마차로만 보이겠지만, 그에겐 속에 있는 형태까지 보일 테니까.
……근데 그거 어떤 식으로 보이지? 궁금하네.
“어떻게 보여요?”
“속에 반짝이고…… 회오리? 불처럼 보이는 거…….”
순수한 호기심이 들어서 묻자 도련님이 하나둘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들어보니 한 마차에 석판 종류가 세 개씩도 섞여 있는 것 같다.
공작 진짜 악취미네.
아니, 우리 같은 애들이 저걸 어떻게 다 꺼내서 일일이 확인하냐고.
게다가 아까 보좌관 아저씨 표정만 봐도 모두 엄청 중요한 것 같아 보이는데, 깨트렸다간 바로 문제 삼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불평할 시간이 아까웠다. 일단 코앞에 닥친 문제부터 해결하자.
나는 도련님의 지시에 따라서 마차들 사이를 거닐었다.
그리고 그는 내가 멈출 때마다 내 목 뒤에 석판이 가진 속성의 문양을 직접 그려주었다.
또한, 짐마차 속에 정렬된 석판 중 우리가 찾는 것의 행과 열은 숫자로 정확히 기록하기도 했다.
과정은 아주 일사천리였다.
그렇게 하다 보니 자연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우린 천생연분 아니에요? 이렇게 합이 잘 맞고.”
“…….”
도련님은 긍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딱히 부정도 하지 않았다.
도련님에게 몇 가지 장난을 더 하면서 마차들을 빙 둘러 걸었다.
얼추 됐겠거니 생각하는데, 도련님이 한 번 더 두리번거리고는 우쭐한 목소리로 말했다.
“끝이야. 네가 하라던 건 모두 제대로 했어.”
내 목을 감은 두 팔에도 힘이 들어갔다.
아무래도 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에 기쁜 모양이었다.
이에 더 씁쓸해졌지만, 지금은 그런 감상에 한가히 사로잡힐 때가 아니다.
“너도 다 했지?”
“당연하죠.”
“그럼 어서 내려줘.”
“전 지금이 좋은데. 조금만 더 이러고 있으면 안 돼요?…… 아야.”
도련님은 내 어깨를 턱 끝으로 꾹꾹 누르며 불만을 표시했다.
하긴 이런 자세가 어색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할 것이다. 내 생각만 할 수는 없지.
나는 아픈 척 징징거리면서도 그를 휠체어에 내려주었다. 그 바람에 어제 깨진 두 무릎이 바닥에 쓸렸다.
“으으…….”
엉거주춤 일어서자 도련님의 시선이 내 무릎에 닿았다. 검은 바지에는 이미 흙먼지가 잔뜩 묻어났고.
그래도 어제 피까지 묻어났던 것에 비해선 양호한 편이다.
두어 걸음 물러서서 먼지 묻은 무릎을 손으로 털었다.
하지만 휠체어에 편히 앉은 도련님의 굳은 표정이 풀리지 않았다.
‘또 미안해서 그런가?’
내가 다가서도 변함이 없었다.
나는 가라앉은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고민하다가, 마차 대열 곳곳의 바닥을 가리켰다.
“도련님. 저것들 보이세요?”
우리의 합작이었다.
불규칙적으로 여러 군데에 네 개의 문양과 높이가 표시되어 있었다.
그 크기가 크진 않아도 육안으로 확인하기엔 무리가 없었다.
어떤 것은 둥글고, 회오리 모양, 가시처럼 뾰족한 모양, 타오르는 불꽃처럼 위로 번진 모양 등이 있었다.
“다 구두 뒤꿈치로만 그린 건데도 잘 그리지 않았어요?”
“……그러네.”
내 질문에 도련님은 낮게 긍정했다.
다시 도련님의 표정을 살피려 했다. 하지만 그가 갑자기 고개를 치켜들었다.
도련님과 근처에서 대기 중인 보좌관의 시선이 맞닿았다.
강하게 재촉하는 듯한 눈빛에 보좌관은 빠르게 다가왔다.
“다 찾았으니 마차 앞 바닥에 표시해둔 것들로만 살피도록 해.”
“……!”
“다른 것과 섞인 것은 모양으로 구분했고. 행과 열은 숫자로 표기해두었어. 그걸 토대로 확인해.”
……뭐지. 내가 도련님을 지나치게 잘 가르쳤나?
또박또박 설명하는 도련님의 모습에 당황스러우면서도 뿌듯해졌다.
‘원래 이런 성격이 아니었는데…….’
보좌관도 말문을 잃고 마차 바닥 아래와 도련님을 번갈아 봤다.
그새를 못 참고 도련님의 깊고 섬세한 눈매가 치켜 올라갔다.
“뭐 하고 있는 거야? 어서 꺼내서 확인하라니까.”
그 얼굴은 정말 성격이 나쁜 미인 같았는데…… 그게 참 공작과 흡사했다.
보좌관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움찔하는데…… 왠지 모를 연민이 느껴졌다. 짠하군.
먹고 사는 게 다 힘들죠…….
속으로 보좌관을 심심찮게 위로했다.
* * *
그렇게 도련님 덕분에 다시 저택에 들어왔다. 한 세 시간쯤 걸리기나 했나.
나간 것처럼 들어온 것도 신속했다.
‘지금쯤 공작 귀에도 분명히 들어갔겠지.’
마지막으로 봤던 보좌관의 얼굴을 떠올렸다.
표기된 짐마차에서 고대 석판을 꺼낸 보좌관은 도련님의 말이 진실임을 깨달았다.
그는 경악하면서도 경이로운 눈으로 우리 도련님을 봤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라고 표정으로 말한 것이다.
그때 내 어깨도 절로 힘이 들어갔다. ‘봤죠, 우리 도련님 최고죠?’라고 잔뜩 우쭐해졌다.
그런데 전부 다 속 시원히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공작은 저 석판들을 어째서 저택까지 끌고 온 거지?’
왜, 굳이, 라는 의문이 계속 들었다.
공작에겐 유능한 수하들이 있으니, 급히 처리해야 하는 것이라면 어디서든 쉽게 시킬 수 있었으리라.
그리고 이상한 점 또 하나.
아까 하인들이 마차에서 꺼낸 석판들은 어제 것과 종류는 같아도, 표면에 하얀 가루들의 잔재가 있었다.
‘그건 상단에서 판매 전 정리해야 하는 건데…….’
적어도 일반적인 방식으로 구입한 석판은 아니라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