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127)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127화(127/280)
사나이로 태어나서 2
12월 14일 목요일.
저녁 내내 짐을 싸느라 분주했다.
내일 오전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겨울 캠프에 참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겨울 방학의 시작은 다음 주 목요일이지만 ‘차세대 리더 양성 캠프 (군인 양성 캠프)’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빠진다.
주(State) 소속 군인들인 내셔널가드에서 직접 주관하는 일이다.
군인들을 존중하는 학교에서 지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리고 솔직히 겨울 방학 전이라 크게 공부도 안 한다.
3일간에 해당하는 숙제는 미리 모두 제출해야 하지만 그마저도 별로 없다.
“아고, 많다.”
짐을 싸다 보니 한도 끝도 없다.
먹을 것은 다 나오지만 식기는 가져가야 한다.
캐빈 안에서 편하게 신을 수 있는 슬리퍼부터 눈이 쌓인 산길을 마음껏 걸을 수 있는 워커, 매트리스 위에 깔 슬리핑 백, 갈아입을 옷들, 잭나이프와 장갑, 목도리와 털모자, 컵과 수저, 밥통은 필수다.
양말도 털이 복슬복슬한 산악용 양말이어야 한다.
14개를 다 들고 갈 수는 없다.
대충 3일에 한 번 갈아 신을 요량을 하고 5개만 챙겼다.
세면도구는 비누 하나.
샤워는 매일 할 수 있지만 3분이라고.
면도는 사치다.
자그마치 2주 캠프다.
워크캠프는 1주일이었지만 여름이었다.
짐의 크기에서 차이가 확 난다.
그럼에도 가져갈 수 있는 물품은 군장 하나가 전부다.
더 가져오면 그대로 압수했다가 집에 가져갈 때 준다고.
어떻게든 꽉꽉 밀어 넣었다.
“어우. 우리 아들, 이거 다 들 수 있겠어?”
“뭘 이 정도 가지고요. 괜찮아요. 그나저나 저도 없이 혼자 계셔서 어떡해요? 크리스마스도 있는데.”
“내 걱정은 하지 마. 리암도 있고, 메디슨도 있고, 하다못해 샘도 있잖아.”
“그러게요. 샘 아저씨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엄마. 전 엄마가 좋아하는 사람이면 무조건 찬성이에요. 위험한 사람만 아니면 돼요.”
“…그래. 잘 볼게. 고마워, 아들. 가서 재밌게 좋은 추억 쌓고 와. 생각보다 재미있을 거야. 근데 곰은 안 나오겠지?”
“어우. 엄마, 걔들 다 겨울잠 자러 들어갔죠. 걱정 마세요.”
“하하, 그러게. 곰이나 뱀은 없겠네, 휴우.”
우리 학교에서 가는 학생들은 나를 포함해 총 15명.
그중 8명이 공부방 놈들이다.
엄마는 내심 걱정을 하는 것 같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 * *
오전 수업을 끝낸 후 우리는 각자의 군장을 지고 스쿨버스 앞으로 모였다.
공식적으로 오전 수업만 있는 날이라 다른 학생들은 대부분 집에 가고 없다.
필드 하키팀과 트랙, 테니스, 풋볼, 원반던지기 등등의 운동부들만 남아 있다가 우리가 군장을 지고 스쿨버스에 오르는 걸 보고는 손을 흔든다.
카페테리아에서 매일같이 보던 군인 1과 2가 제복을 멋지게 차려입고는 우리 앞에 서서 폼을 잡는다.
저렇게 각 잡힌 모습은 처음 본다.
“제군들, 우리 주(State) 군과 보이스카웃에서 함께 진행하는 ‘차세대 리더 양성 캠프’에 참가하게 된 것을 영광스럽게 여기길 바란다. 앞으로 2주 동안의 훈련이 평생 동안 그대들의 자산이 될 것이다.”
“…….”
“뭐, 도착하면 또 들어야 할 테니까 이쯤하고. 다들 짐들은 제대로 싸 왔지? 다른 건 몰라도 방한용품은 확실해야 된다.”
“네!”
“오케이, 가즈아!”
가자.
겨울 캠프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른다.
대충 한국 군대의 혹한기 훈련 같은 거 아닐까 싶은 정도.
예전엔 너무 추워서 캠프가 취소된 적도 있고, 날씨는 덜 추웠지만 갑작스럽게 폭풍이 몰아쳐 캐빈 안에서만 생활하다가 돌아온 적도 있다고.
하지만 요즘엔 날씨가 너무 좋다.
보통은 평균기온 화씨 25―30도로, 매일같이 눈이 쏟아져야 맞는데 요즘엔 드문드문 내릴 뿐이다.
이런 북쪽까지 눈이 귀한 걸 보면 자연환경이 확실히 바뀌고 있는 거 같긴 하다.
물론 인적이 드물고, 산이 높은 공원엔 눈이 쌓여 있겠지만.
1시간 10분가량 차를 타고 이동했다.
평소 다니던 길이 아니라서 그런지 시간은 얼마 되지 않지만 생경한 느낌이 들 정도로 낯설다.
가히 능선이라 부를 만한 거대한 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스쿨버스는 경사진 고속도로를 따라 계속 계속 올라갔다.
주변 온도가 급격하게 내려가고, 귀가 먹먹해지길 몇 번.
갑자기 탁 트인 커다란 산장이 눈에 보이고, 구름이 도로 아래에 깔리는 시점에 버스가 섰다.
커다란 주차장엔 스쿨버스가 줄줄이 서 있다.
“우와, 스쿨버스가 몇 대야?”
“눈 쌓인 거 봐라. 산은 산이다.”
“와, 근데 진심 멋지네. 미국 땅 참 넓긴 하다. 곳곳이 숨은 보석이야.”
“하하. 제이든, 넌 미국인 아니냐? 가끔 찐 한국인 같을 때가 있다니까?”
“근데 이런데도 사람이 사나?”
.
.
.
저마다의 소감을 중얼거리며 스쿨버스 창문에 다닥다닥 붙어 경치를 감상하자 군인 1과 2가 재촉을 한다.
“그만 넋 놓고, 다들 짐 챙겨서 내리도록.”
“추우니까 챙겨 온 모자는 꼭 써라. 너희들 차 탈 때랑 기온이 다르다. 말 안 듣다가 머리 터지지 말고.”
“어우, 무서워라. 무슨 말을 그렇게 험악하게 하세요.”
“니들이 몰라서 그래. 더럽게 말 안 듣는 것들이 있어요. 나중에 사고가 나 봐야 본인만 손해니까 꼭 써.”
“네네.”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털모자를 꺼내 둘러쓰고, 워커 끈도 다시 한번 점검한 후 군장을 짊어지고 밖으로 나왔다.
우리와 비슷한 몰골의 학생들이 속속들이 들어서고 있는 커다란 강당 같은 산장.
산장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군인 1과 2가 우리에게 색색의 끈을 나눠 준다.
나와 크리스틴, 마크는 초록색, 알렉스와 마커슨은 갈색, 라이언과 오디, 미아는 노란색, 다른 학생들도 2―3명씩 각자 다른 색의 끈을 나눠 받았다.
다행인 건 한 명만 똑 떨어진 경우는 없다는 것.
“히익, 이거 뭐예요? 우리 다 같은 팀인 거 아니었어요?”
“캠프에서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래도 이번에는 아는 애들 몇 명씩 묶였잖아. 원래는 7명 모두 처음 보는 애들로 구성했다고.”
“아하, 한 그룹당 7명이군요?”
“…큼. 이것도 다 훈련 중 하나야. 사회성 기르기 훈련 같은 거지. 군대에 처음 가면 말이다. 아는 사람들이 한 명도 없어. 거기다 어찌나 다들 인상도 험상궂은지 겁이 나서 말도 못 붙일 것 같은 인간들도 있지. 사회에 나가서도… 아, 말이 많았군. 어쨌든 다들 저기 색 깃발들 보이지? 각자 손목 색이랑 매치되는 곳으로 가서 서 있으면 돼.”
“군인 아저씨들은 우리랑 같이 안 가요?”
“우리는 니들이 교육받는 동안 다른 모임이 있어. 거기서 각자 팀을 맡게 되는데…. 너희가 우리와 같은 팀이 될 확률은 제로라고 보면 돼. 얼굴이 익은 사람들과는 안 붙여 주거든.”
“그럼 언제 또 볼 수 있어요?”
“아마도…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쯤?”
“오호, 그때 뭐 있는 거죠? 특별 이벤트?”
“…너희들은 말야. 눈치가 빨라도 너무 빨라. 큼, 그럼 우린 간다. 다치지 말고. You can do it!”
인사를 마친 군인 1과 2가 저쪽으로 바쁘게 뛰어간다.
우리도 각자 손목에 묶인 끈 색을 따라 움직였다.
한 그룹당 총 7명.
초록색 깃발이 있는 곳으로 가 보니 여학생 2명과 남학생 2명이 이미 줄을 서 있다.
우리가 셋에, 다른 쪽에선 두 명씩 짝을 지어 온 것 같다.
이로써 우리 팀은 남자 4명에 여자 3명.
남학생 한 명이 덩치 큰 흑인이고, 나머지는 다 백인이다.
그들 뒤에 조용히 줄을 섰다.
휙― 둘러보니 다른 그룹들 역시 인종이나 성별 구성이 비슷비슷하다.
세어보니 28개 그룹.
총 196명?
생각보다 규모가 제법 된다.
― 뿌우우우―
그 순간 갑자기 울리는 색소폰 소리.
어수선하던 장내가 조용해짐과 동시에 모두들 자세를 바로잡았다.
미국 국가의 연주 소리였기 때문이다.
곧이어 한쪽에서 군인들의 합창이 들리고, 우리도 모두 따라 불렀다.
― O say can you see, by the dawn’s early light, what so proudly we hailed at the twilight’s last gleaming….
국가 제창이 끝나자 위아래 검은 특전사 옷을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절도 있게 튀어나와 각 그룹의 선두에 자리를 잡았다.
완벽히 각 잡힌 열중쉬어 자세로 단상을 향해 바라보는 사람들.
팽팽한 긴장감이 강당을 지배한다.
― 저벅저벅.
잠시 후.
역시 검은 특전사 복장에 베레모 모자까지 완벽하게 각 잡아 쓴 두 사람이 절도 있는 걸음걸이로 강당 위로 올라갔다.
“반갑다, 제군들. 나는 윌슨 밀러라고 하고, 내셔널가드 중위로 이번 캠프의 책임자다.”
“나는 테드 윌킨스, 보이스카웃 단장으로 이번 캠프의 부책임자다. 만나서 반갑다.”
“그럼 지금부터 ‘2023 차세대 리더 양성 겨울 캠프’가 시작되었음을 선포한다.”
― 와와와와! 짝짝짝짝!
환호와 함께 이어지는 박수 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긴 설명.
“이 2주간의 캠프는 우리 미국을 이끌어갈 차세대 리더를 양성하는 것이 그 첫 번째 목표로 우리는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이 자리에 섰으며… (중략) …모든 행사는 그룹별로 이어질 것이며 최후 단 하나의 그룹에 영광의 뱃지가 수여될 것이며… (하략).”
.
.
.
“그럼 각 그룹의 교관들 지시에 따라 각자의 숙소에 짐을 풀도록. 이상. 해산!”
해산 명령이 떨어졌다.
바닥에 내려놓고 있던 군장을 다시 짊어지고, 교관을 따라나섰다.
마크가 넌지시 어깨를 부딪히며 속삭인다.
― 근데 남녀가 캐빈 하나를 같이 쓰는 거야?
―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 일단 따라가 보자.
경사진 흙길을 한 20분쯤 걸었을까?
군장을 멘 등에서 땀이 삐질삐질 새어 나올 무렵 교관이 멈춰 섰다.
그사이 우리는 작은 통나무집들 5―6개가 한꺼번에 붙어 있는 곳들을 지나쳤고, 커다란 통나무집 한 채씩이 띄엄띄엄 자리한 곳도 지나왔다.
그리고 마침내 3층짜리 작은 빌딩에 도착했다.
가장 신축 건물로 보인다.
입가에 호선이 그려진다.
“2A―B방이 우리 그룹 캐빈이다. 남자는 A, 여자는 B 방에 짐을 풀고, 5분 후 A 방에 모인다, 실시.”
“네!”
2A면 2층.
후다닥 튀어 올라갔다.
방마다 문이 다 열려 있다.
방 안에는 양쪽으로 3개, 총 6개의 침대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침대 위에는 매트리스 하나 달랑 있다.
매트리스 커버 같은 건 없다.
각자의 슬리핑 백을 그 위에 놓고 자는 거다.
일단은 무조건 가운데 침대.
마크가 곧바로 내 옆자리를 차지했다.
나머지 두 남학생이 눈치를 보더니 우리 맞은편에 자리를 잡는다.
보아하니 두 사람은 서로 모르는 사이다.
각기 남녀로 짝이 지어져 온 것 같다.
워커를 신은 발이 무겁다.
군장 바깥에 대롱대롱 매달아 온 운동화를 먼저 꺼내 신발을 바꿔 신었다.
처음부터 그냥 운동화 신고 올 것을.
괜히 워커를 먼저 신고 와서 다리만 무거웠다.
내 행동에 나머지 놈들도 똑같이 따라 한다.
앞으로 2주를 같이 살 건데 통성명이 우선이지.
“안녕, 나는 제이든 패터슨이야. 센트럴 팍스 하이 9학년.”
“나는 마크 앤더슨, 센트럴 팍스 하이 10학년.”
“아. 나는 이안 휘머, 드윗 하이 11학년.”
“나는 매튜 래식, 레드 래빈 하이 10학년. 만나서 반갑다.”
― 똑똑.
각자 소개를 하고 있는 중에 크리스틴이 열려 있는 문을 노크한다.
뒤에 여자애들도 둘이 서 있다.
짐만 던져 놓고 왔나 보다.
“들어가도 돼?”
“어, 들어와. 인사하는 중이었어.”
“잘됐네. 안녕, 나는 크리스틴이야. 센트럴 팍스 하이 10학년.”
“나는 에밀리 척, 드윗 하이 11학년.”
“나는 올리비아 그레이, 레드 레빈 하이 11학년.”
“나는 제이든 패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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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길.
나 혼자 9학년이다.
미국에선 나이가 중요하지 않지만 그래도 학년으로 꿀리는 건 좀 그렇다.
12학년은 지금이 피크로 바쁜 시기여서 그런지 전멸이다.
대부분의 대학들이 1월 2일에 대입 원서 마감일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리 그린 팀의 학생들은,
제이든, 마크, 이안, 매튜, 크리스틴, 에밀리, 올리비아.
그리고 그 순간
― 똑똑.
교관이 들어섰다.
“다들 인사가 끝났나?”
“네.”
“좋다. 나는 내셔널가드 중사 테일러 드윈이다. 그럼 지금부터 우리가 할 일을 알려준다.”
“…….”
“모두 지하의 카페테리아로, 밥 먹자!”
― 와아!
그러고 보니 학교에서 대충 샌드위치로 배를 채운 후 아직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뭘 하든 배부터 채우고 봐야지.
카페테리아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