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19)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19화(19/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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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다 1
시간은 쏜살같이 흐른다.
4학년을 마치고, 어느새 5학년이 되었다 싶으니 벌써 졸업이다.
부모님을 동반한 졸업식 같은 건 없다.
물론 그 전에 일가친척들을 모두 불러 모아 재롱잔치를 선보여야 하긴 했지만 그런 것쯤이야 얼굴에 철판 깔면 금방 지나간다.
교실에서 선생님과 작별하고,
체육관에 모여 교장샘의 축하 인사를 들었다.
같은 학군이기에 플라스틱 바순은 그대로 가져간다.
전학을 가지 않는 이상 방학이라고, 상급학교로 진학을 한다고 해서 학교에 돌려줘야 하는 일은 없다.
그냥 이대로 중학교 때도 내 것처럼 쓰는 거다.
덕분에 중학교에 가면 좀더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방학동안 열심히 연습했다고 하면 될 테니까.
삼촌과 엄마가 휴가 날짜를 맞췄다.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여행이란 걸 가기로 했기 때문에.
그것도 캐나다로.
엄마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국경을 넘어보는 거란다.
가는 김에 나이아가라 폭포를 건너, 토론토 와이너리까지 주욱 둘러보고 오기로 했다.
3박 4일의 짧은 일정일 뿐인데 엄마의 준비는 3개월 전부터 시작되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미국인들 중에는 본인이 태어난 곳에서 자라 직장잡고 결혼해서 아이 낳고 그렇게 쭈욱- 살다가 그대로 늙어 죽어버리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젊을 때는 돈이 없어서, 나이가 들어서는 다른 지역을 가는 것이 겁이 나서 등등.
그러다 병이 들어 해당 지역을 벗어나면 안 되는 경우도 생긴다.
정말 갖가지 이유로 이 넓은 땅덩이에서 우물 안 개구리로 살다 죽는 거다.
우리 엄마 리사 여사도 마찬가지다.
성인이 되어 딱 한번, 나를 픽업하기 위해 뉴욕 공항까지 가 본적이 있는데, 그때는 전 남편이 같이 있었기도 하지만 나를 만난다는 생각에 들떠 뉴욕은 보이지도 않았다고.
어쨌든 여행을 계획한 후 제일 처음 한 일이 여권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때까지 우리 셋은 여권조차 없었다.
부랴부랴 우체국에 가서 사진을 찍고, 여권을 신청했다.
표지에 독수리 그림이 그려진 여권이 도착하는 데는 2달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엄마가 부산을 떨며 서둘렀던 이유다.
뭐든지 느린 미국.
빨리 하려면 보통보다 비용이 배는 넘게 드니 뭔가 하려면 미리미리 해야 한다.
일찍 시작하길 잘했지.
그리고 드디어 내일.
우리는 새벽 5시에 집을 나서기로 합의를 본 상태다.
엄마가 지금 이렇게 오두방정을 떠는 이유이기도 하고.
“여권이랑 소셜 카드(미국의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전화기, 충전기. 그리고 또…리암. 호텔 예약 번호는 가지고 있지?”
“예스 맴.”
“아. 대충대충 대답하지 말고. 갔다가 하나라도 빠지면 되돌아와야 한다고. 읽어보니까 거기에선 육지로 가는 경우 2가지 경로가 있는데 다리를 건너는 방법이랑 고속도로를 지나는 경우가 있대. 근데 이게 까딱 잘못하면 아무 생각 없이 지나기도 한 대.”
“리사. 누나는 가서 뭘 먹을까? 뭘 입을까만 고민하라니까.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
“어떻게 그래. 우리 셋이 가는데. 후우. 잠깐만. 여권 날짜가…”
“여권 새거 거든? 자그마치 10년짜리라고.”
“제이든은 5년인데?”
“그거야 제이든은 미성년자니까. 미성년자는 얼굴이 계속 바뀌니까 5년 단위라고. 뭐. 나도 이번에 안 거긴 하지만.”
“아. 그랬지? 내일 아침에 칫솔 잊으면 안될텐데. 냉장고에 붙여놓고 잘까?”
“엄마. 좀 주무세요. 이러다 5시 출발 못하겠어요. 신분증이랑 지갑, 전화기만 있으면 나머지는 가서 사도 돼요.”
“진짜 우리 조카. 넌 정말 모르는 게 없구나.”
‘소시 적에 여행도 자주 다녔지요. 여긴 너무 멀어 잘 안 왔지만 가까운 동남아나 일본 같은 덴 눈감고도 간답니다.’
라는 말은 목 안으로 넘기고,
“블로그들 좀 뒤져봤어요.”
“휘유. 역시 멋져.”
오랜만의 여행이라 그런지 나도 조금 들뜨기는 했다.
잠시 한숨 붙였다가도 엄마가 벌떡벌떡 일어나 뭔가 빠진 게 없는지 여행 가방을 체크할 때마다 나도 덩달아 깨곤 했으니.
그리고 정확히 새벽 5시.
우리는 삼촌의 차를 탔다.
엄마의 부산함 때문에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샌 나는 그만 차를 타자마자 뻗어버렸다.
눈을 떴을 땐 어떤 도시를 막 지나는 참이었는데, 무려 버스가 우리 옆을 지나쳐가고 있었다.
“헐. 버스다…”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
엄마가 곧장 반응한다.
“맞다. 우리 제이든. 버스 처음보지?”
‘그건 또 뭔 소리… 그렇군. 환생해선 처음이네. 헐.’
내가 사는 지역도 시내로 가면 버스가 있겠지만 일단 우리 동네에선 버스를 본 적이 없다.
스쿨버스는 몰라도.
“와. 그렇네. 우리 제이든. 버스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겠네. 사실 우리 동네도 시내에 가면 버스 있어. 남쪽에선 나오는 터널이 하나뿐이라 시내까지 운영되는 서브웨이도 있는데. 진짜 너무 학교랑 집만 다녔나봐. 돌아가면 삼촌이 한번 태워줄게.”
“하하. 아니에요. 괜찮아요. 별로 궁금하지 않아요.”
“누나. 애 데리고 동물원이나 박물관 같은 데도 안 가본 거야?”
“…”
“학교에서 체험학습(필드트립, Field Trip)으로 한번씩 갔었어요. 교회에서도 간 적 있고요.”
‘궁금하지 않다고요!’
제이든 기억 속엔 몇 번 있지만 내 기억엔 없다.
내가 제이든의 몸으로 깨어난 후 엄마는 그야말로 돈 모으는데 사력을 다하는 것 같았다.
위기감을 느낀 것 같달까?
나도 딱히 그런데 가자는 말을 한 적도 없고.
엄마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엄숙해졌다.
가슴 속에 숨기고 있던 각자의 열등감이 튀어나오는 순간이었다.
“아. 그. 누나를 탓하는 게 아니고…그냥. 그. 요즘 애들은 그런데 자주 간다고 하니까…나도 뭐. 나 살기 바빠서…방치했으니…한 건 하나도 없으니까…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그 뜻이 아니고…”
삼촌이 횡설수설한다.
위기다.
벗어나야 한다.
“삼촌. 나 화장실 가고 싶어요.”
“어? 어. 이 근처에…보자. 여기는 차 세우기 애매하고. 여기 고속도로 타면 얼마 안가서 휴게소 나오는데. 한 20분 정도만 참을 수 있을까?”
“네.”
20분 정도야 껌이지.
근데 말을 하고 나니 갑자기 화장실이 진짜로 가고 싶어졌다.
다행이 삼촌 말대로 고속도로 타자마자 휴게소가 나왔다.
한국처럼 음식점들이 즐비한 곳이 아니라 그냥 딱 화장실과 자판기만 있는 휴게소.
그럼에도 휴게소 크기는 작지 않다.
큰 트럭들을 위한 공간도 따로 있고, 작은 차에서 갑갑했을 애완동물들의 산책로와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터까지 있다.
그리고 잔디밭에는 식사용 작은 벤치들도 여러 개 있다.
고작 화장실 휴게소가 이럴 거냐고.
미국 땅덩이의 크기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식당 몇 개가 들어서고도 남았을 만한데.
“벌써 8시네. 여기서 아침 먹고 출발하자.”
“그래. 화장실 갔다 와서 아이스박스 꺼내 놔.”
“어.”
엄마가 의외로 아직도 새침하다.
살아생전 누군가의 기분을 풀어주는 일을 해 본적이 없다.
무뚝뚝한 건 삼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저 묵묵히 움직였다.
삼촌이 아이스박스에서 물과 음료수를 꺼내는 동안 나는 식빵이랑 치즈, 슬라이스 된 햄, 밤에 씻어 말려 둔 양상추, 마요네즈, 딸기 잼 등을 꺼냈다.
식사자리가 마련되었고, 각자 자신의 샌드위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돌아가는 꼴을 보니 이대로는 여행 내내 꿀꿀할 것 같다.
에효.
한 살이라도 어린 내가 풀어줘야지.
대충 식빵을 만들어 하트 모양으로 만들었다.
누가 봐도 하트 모양이다.
심하게 한쪽이 찌그러지고, 양상추는 툭 튀어나오는 등의 실수가 좀 있었지만.
엄마에게 건넸다.
“사랑해요. 엄마.”
“…하. 내가 진짜. 으이구.”
“아. 왜 아침부터 울고 그래. 미안해. 잘못했어. 누나.”
“흑흑. 내가 진짜…그래. 먹자. 먹어. 처음가는 해외여행인데 이러면 안되지. 먹어.”
“헤헤. 엄마. 그거 하트인 거 알아요?”
“이게? 난 또 방패인줄 알았잖니.”
“우와. 이게 어떻게 방패예요? 여기 이것봐요. 여기 푹 들어갔잖아. 하트 가운데.”
“제이든. 이건 진짜 하트라고 하기에 양심없는 거 아니냐?”
.
.
.
웃었다.
각자의 가슴에 쌓은 미안함, 열등감, 고마움, 안쓰러움 따위는 그렇게 묻혔다.
***
– 우와와와와와!
엄마가 난리가 났다.
저럴 때 보면 딱 10대 소녀 감성인데.
난 사진을 찍었다.
초등학교 졸업과 중학교 입학 선물로 받은 휴대폰.
– 쏴아아아아!
몸집이 작아져서 그런가?
예전에 왔을 때는 명성에 비해 폭포가 생각보다 작다는 느낌이 들어 좀 실망했었는데, 지금은 엄청 크게 느껴진다.
특히 미국 쪽에서 들어가는 동굴을 가로질러 직접 폭포를 맞는 곳에 도착했을 땐 나도 제법 신이 나 있었다.
삼촌도 마찬가지고.
신발은 이미 나눠준 샌들로 갈아 신은 후다.
“하하하. 제이든. 여기 와봐. 엄청 시원하다.”
“뭐라고요? 안 들려요!”
“여.기. 올라오라고! 엄청 시원해에!”
“네네. 이것까지만 찍고요!”
남는 건 사진인데 이 사람들이 사진 찍을 생각을 안한다.
어디 놀러를 가봤어야 알지.
별 수 있나.
나라도 찍어야지.
새 휴대폰이 좋아서 그런 건 아니다.
– 찰칵. 찰칵. 찰칵.
최대한 많은 사진을 찍었다.
지나가는 한국인에게 부탁해 우리 가족사진도 부탁했다.
사진은 꼭 아시안, 그 중에서도 한국인에게 부탁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사진이 나오니까.
이때까지만 해도 그저 신이 났을 뿐이었다.
한 텀의 사람들이 왔다가 돌아갔지만 우리 셋은 한참을 그렇게 폭포를 맞기도 하고, 손으로 만지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결국 우비를 입고도 오돌오돌 떨 상태가 되어서야 우리는 발길을 돌렸다.
더운 여름인데도 춥다.
엄마와 삼촌은 따뜻한 커피를 사마시고, 나는 핫코코를 시켜먹었다.
적당히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제야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리를 흘끔거리고 있는 게 느껴진다.
특히 아시안들의 눈길이 노골적이다.
누가 봐도 나는 우리 가족 구성원에서 입양아라는 것이 티가 날 정도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하고 살았는데, 다양한 인종이 어우러진 곳을 오니 티가 확연히 난다.
게다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한국말들이 뭔가 가슴속 깊이 울컥하는 느낌을 부추겼다.
열등감이라기엔 담담하고, 불쾌감이라기엔 그다지 기분 나쁘지 않다.
전생이었다면 입양이 친숙하지 않았던 나도 우리 가족들의 구성을 보면서 같은 눈빛을 보냈을 테니.
그저 좀 낯선 느낌?
아니다.
이건…그리움인가?
같은 피부색을 가지고, 같은 말과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 속에서 아무 생각없이 숨 쉬며 살던 그 느낌말이다.
그 자연스러움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엄마와 삼촌이 내 눈치를 본다.
이 사람들이 왜 내 눈치를 보는지.
눈치를 보려면 내가 봐야하는데.
전생에 비하면 넘칠 정도로 귀한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다.
흔들리지 말자.
조금 다르면 어떤가?
나를 보며 힐끗거리는 저들 중 우리처럼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며 사는 가족들이 얼마나 된다고.
살짜기 흔들리려던 마음을 다잡았다.
“저기. 제이든. 우리 이제 다른 데 갈까?”
“에이. 왜요. 아직 제 코코아 남았어요. 햇빛 좀만 더 쐬다가 가요. 여기 너무 좋다아.”
“하.하. 그치? 나도 여기 좋다.”
“이 신발은 기념으로 가져갈까요?”
“어. 이거 생각보다 편한데 왜 다들 버리지?”
“들고 다니기 귀찮으니까 그렇겠죠. 사람들이 물건 귀한 걸 몰라.”
“그러게. 아. 좋타아!”
내 넉살에 엄마와 삼촌의 표정이 풀어진다.
그래.
이제 이 사람들이 내 가족이지.
마음이 풍성해졌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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