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25)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25화(25/280)
────────────────────────────────────
────────────────────────────────────
뜻밖의 조우 2
특별한 질문은 없었다.
그저 대단하다, 훌륭하다, 침착하다, 카리스마 있다 등등 나에 대한 찬양이 1분 가량 이어졌을 뿐.
그리고 이어진 마지막 질문.
– 그런데 생활 계획표는 뭔가요?
“그건 그냥 방학 동안엔 생활이 흐트러지기 쉬우니까요. 시간을 잘 활용하는 연습을 하는 거 뿐이에요.”
– 와우. 누군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들 한다는 거죠? 일명 ‘캡틴 제이든의 스터디클럽’이라고 부른다던데요.
“네? 어. 그…런 말은 처음…”
– 호호. 친구 분께 들었어요. 어릴 때부터 범상치 않더니 정말 바르게 잘 크고 있군요. 여전히 겸손하고. 아직도 장래 희망이 ‘약자들을 돕는 것’인가요?
“아. 네. 뭐. 그렇죠.”
– 그 꿈 변치 않고 쭉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이상 다니엘라 가버였습니다.
– …
순간 연결이 끊어졌다.
“뭐야? 이러고 끊은 거? 레알?”
– 띠리리릴.
곧바로 울리는 전화벨 소리.
다니엘라다.
“뭐예요? 깜짝 놀랐잖아요. 어떻게 바로 생방으로 내보낼 수가 있어요?”
– 미안미안.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어쩔 수 없었어. 그래도 정말 잘하더구나. 이걸로 6시, 7시 뉴스까지 그대로 쓰기로 결정했어. 괜찮지?
“뭐. 네.”
– 오늘 인터뷰 한 건 집으로 체크(Check)가 갈 거야. 크리스틴은 따로 사례를 할 거고. 고마워. 안 그래도 요즘 뉴스거리 없어서 좀 그랬는데. 호호. 또 이렇게 인연이 되네.
“체크가 와요?”
– 어. 이번엔 우리가 인터뷰 요청을 한 거니까. 동영상 사용 비용도 줄 거고. 암튼 다음에도 좋은 일로 다시 연락하면 좋겠네. 잘 지내.
“네.”
체크가 온다.
내 힘이라기엔 다소 어폐가 있지만 어쨌든 내 이름으로 들어오는 이번 생 최초의 벌이.
본격적으로 이쪽 길로 나가보는 것도.
체크는 한마디로 예전의 가계수표 같은 거다.
신용카드의 시대를 넘어서서 이제는 웬만한 건 휴대폰 앱으로 돈을 주고받는 사회에서 미국은 아직도 체크를 쓰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시골은 신분도용 등의 이유로 카드조차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 드르르르.
– 드르르르.
탁자가 휴대폰의 진동 때문에 계속 떨어 제낀다.
인터뷰로 인해 잠시 흥분됐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휴대폰을 열었다.
역시 이놈들이다.
– 캡틴! 난리났음.
– 뉴스 화면 고대로 인스타로 고고.
– 애들이 우리 클럽 가입하고 싶대. 어떡해?
– 연락 엄청 온다. 오늘 우리 클럽 모이는 거?
.
.
.
크리스틴은 입도 뻥긋 안하고 있다.
– 크리스틴. 체크 간단다. 덕분에 나도 사례비 받는다니까 고맙다.
– 우하하하하. 그럼 나 이제 말해도 되는 거임?
– 언제는 안했냐?
– 괜히 쫄았잖음. 아동들아. 이 누나가 사례비 받으면 피자 쏘마!
– 피자 노노. 트라우마 생겼음. 호기 롤(Hoagie Roll) 샌드위치.
– 알렉스는 그럼 안사줌.
– 노오오오!!!
.
.
.
이후로는 시덥잖은 대화들이 오갈 것이다.
채팅창을 무음으로 바꿨다.
***
8월 24일 월요일.
방학이 끝났다.
한낮의 기온이 26-7도를 오가는 아직은 더운 날씨다.
반팔에 반바지, 엄마가 새로 사 준 운동화에 가방을 멨다.
오늘부터 나 중학생이다.
6학년부터 8학년까지가 중학생으로 우리 학군엔 4개의 초등학교, 하나의 중학교, 하나의 고등학교가 있다.
스쿨버스 시간은 오전 7시 23분.
7시 19분에 집에서 나섰다.
스쿨버스가 도착하는 곳까지는 천천히 걸어서 3분.
1분 정도의 기다림의 미학을 발휘할 요량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 탁. 타탁.
두 집 건너 제이콥이 튀어나왔다.
그 뒤로 마크가 또 튀어나왔다.
제이콥은 이제 8학년이 되었고, 마크는 7학년이 되었다.
우리는 향후 1년 동안 스쿨버스를 같이 타게 될 것이다.
내가 4학년이 되는 여름방학 때 이사를 왔기에 당시 6학년이 되는 제이콥과는 같이 스쿨버스를 탈 일이 없었다.
마크는 1년 같이 탔었지만.
“헤이. 제이든.”
“헤이. 제이콥. 마크.”
언제나 새학기 첫날은 기대가 된다.
맨날 꼬맹이들만 우글우글 대던 버스가 아닌 쾌적한 중학생들의 공간이…
아니었다.
제이콥과 마크가 타고, 몇 정거장 지나 매튜와 알렉스가 탔다.
다음엔 크리스틴이 탄다.
맨날 똑같은 얼굴들이다.
– 헤이. 제이든.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하이’라고 인사를 했었는데.
중학생의 인사는 ‘헤이’인 모양이다.
이게 쿨하다 여기는 건가.
아무튼 나도 혼자 ‘하이’라고 할 수는 없지.
똑같이 ‘헤이’로 마무리.
5학년이 끝나기 전 학교내부 지리를 익히기 위해 들른 멜버른 중학교.
중학교 때부터 학생들은 제각각 다른 스케줄을 갖게 된다.
나는 6C – 122 교실이다.
초등 4개 학교가 하나의 중학교에 모인다.
6학년의 학생 수는 총 320여명.
어떤 기준인지는 모르겠으나 한 학년은 총 4개의 팀으로 나뉜다.
A팀, B팀, C팀, D팀.
하나의 팀은 또 3개의 홈베이스로 나뉜다.
홈베이스는 담임을 맡은 선생님의 교실을 말한다.
그래서 122라는 숫자는 크게 의미가 없다.
학생들이 자기 반을 지키고, 과목 선생님이 왔다갔다하는 것이 아니라 교실 주인이 선생님이다.
영어 교과 선생인 미세스 노리스의 방은 122번이고, 이곳에서 그녀는 16년을 지냈다.
아침 스쿨버스에서 내리면 일단 홈베이스에 들러 ‘제이든 학교 왔어요.’를 알리고, 각자의 수업으로 흩어진 다음 끝날 때 다시 ‘나 아직까지 학교에 있었어요. 이제 하교합니다.’를 신고하는 시스템이다.
아침 조례와 종례만 홈베이스에서 하는 셈이다.
홈베이스를 나누는 기준 역시 도저히 알 길이 없지만 어떤 반은 한반에 28명도 있고, 어떤 반은 7명만 있기도 한다.
우리 반은 13명이다.
– 드르륵.
교실 문을 열었다.
한껏 치장한 선생님이 자기의 자리에 앉아있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직 오지 않은 학생들도 다수 보인다.
알렉스와 오디가 같은 교실이다.
저놈들하고 인연은 인연인 모양이다.
잠시 후.
8시 30분이 되자 모두가 모였다.
선생님이 반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고, 종이쪼가리를 건네주고.
‘잉?’
뭔가 익숙하고도 기묘한 느낌이 지나갔는데?
출처를 알기 위해 고개를 휘-젓는데…
나도 모르게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선생님은 자기 소개 중이다.
“안녕 애들아. 나는 영어담당과목으로 이름은 미세스 앤 노리스이고…”
– Fuck! Damn it!
– 씨.바.알.
“왓!!!!”
나 평소 욕 안하고 산다.
근데 진짜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건 저놈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고.
인생은 타이밍이다.
운이 좋다는 말도 타이밍이 딱 맞아떨어질 때를 말하는 거다.
그러니까 하필이면 선생님이 개학 첫날,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새내기들을 데리고 상큼한 어조로 자기소개를 하는 그 순간.
선생님과 나, 그놈의 입에 동시에 열린 것이다.
문제는 내 입에서 나간 건 나직한 한국말이었고, 저놈은 귀에 쏙쏙 박히는 찰진 영어에 거의 비명 섞인 울림이었다.
너무도 당연하게도 선생님의 귀에 내 말은 들리지 않았고, 저놈의 목소리는 아주 쏘옥 박혔다.
“미스터 마커슨 힐! 너 지금 뭐라고 그랬지?!”
“아. 미세스…뭐였죠?”
“마커슨 힐! 지금 당장 스쿨 오피스로! 나머지 학생들은 꼼짝 말고 기다려요.”
“미세스…어…그러니까 선생님한테 한 말이 아니에요.”
저놈.
선생님 이름조차 모른다.
방학 때 우편으로 선생님의 간단한 인사말과 학급 정보가 집으로 날아오는데.
물론 학생 이름까지는 없기에 저 녀석과 같은 학급이란 건 몰랐지만 홈베이스 담임 이름 정도는 외웠어야 하는데.
“지.금.당.장!”
이를 바득바득 가는 미세스 앤 노리스.
평소 백인이 백인이라는 말보다 홍인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고 살긴 했지만 지금 확실히 깨달았다.
저들은 홍인이다.
화려한 짧은 원피스를 입은 미세스 노리스는 분노로 온 몸을 떨어댔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보이는 피부 모든 곳이 빨갛게 달아있었다.
저러다 타 버리는 거 아냐?
요즘 한국 교권은 바닥이라고 하던데.
미국은 생각보다 보수적이다.
물론 그렇다고 ‘선생의 그림자도 밟아선 안된다.’는 정도는 아니지만 선생의 권위는 어느정도 인정된다고나 할까?
선생님 면전에 대고 학생이 저런 욕을 했다?
최소 부모님 면담이고, 자칫하면 정학까지 간다.
‘아이고. 마커슨아. 그러니까 항상 입조심을 해야 된다니까. 카르마는 있다니까.’
이 동네 흑인 비율은 1.2%.
아시안 비율은 1%.
나이아가라에서의 그 개싸움의 악연이 여기까지 이어졌다.
‘세상 참 좁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지.
– 드르륵. 탕!
미세스 노리스가 콧김을 뿜으며 교실 밖으로 나갔고, 그 뒤를 마커슨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따라 나섰다.
알렉스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나를 돌아본다.
“뭐야? 쟤 누구야?”
“쟤. 걔지?”
똑똑한 오디가 말을 보탠다.
가만히 고개만 끄덕여줬다.
“와우. 이런 씨펄!”
알렉스의 찰진 목소리가 교실을 강타했다.
아무리 K 문화가 어쩌고 해도 아시안이 거의 없는 이 동네에선 한국 욕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내가 킨더 때 K-댄스와 K 문화를 알던 헤일리와 클로이 같은 이는 이 동네에서 드물다는 말씀.
그 둘은 지금 고등학생으로 그 때의 내 예상대로 현재는 고등학교 풋볼 치어리더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아무튼.
학교 오피스로 간 미세스 노리스와 마커슨은 20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미세스 노리스가 각자의 시간표를 먼저 나눠준 것이 신의 한수다.
“제이든. 너는 다음 수업 뭐야?”
“라틴어.”
“오. 라틴! 나돈데. 우리 수업 같은 거 뭐있는지 보자.”
“어? 나도 라틴인데.”
“6학년 때는 독일어, 라틴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이거 4개 다 듣는다더라고. 7학년 때 어떤 거 할지 정한다고 했어. 제이든. 넌 뭐할 거야?”
“수업 듣고 결정해야지.”
이건 이 아이들이나 나나 똑같은 출발선이다.
난 고등학교 때 제 2 외국어로 일본어를 선택했었다.
우리말과 어순이 같아서 다른 언어보다 배우기 쉽다는 이유일 뿐이었다.
영어는 아주 어릴 때부터 해외를 자주 다녔기에 놀기 위해 배운 거였고.
그러다보니 다른 언어들은 좀 생소하다.
“근데 아까 걔는 왜 그랬대?”
“그니까. 깜짝 놀랐어. 선생님이 자기 소개하는 중이었는데 다짜고짜 욕이라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맞아. 나 너무 놀라서 숨도 못 쉬었잖아.”
“마커슨, 원래 그런 애 아냐. 함부로 말하지 마!”
“뭐가 아냐. 아까 미세스 노리스 진짜 불쌍했어. 완전 얼굴 빨개지고.”
“맞아. 어떻게 첫 시간에 그럴 수가 있지?”
“근데 아까 제이든이라는 쟤도 뭐라고 하지 않았어?”
“그래? 난 못 들었는데?”
처음 만나 서먹서먹한 것도 20분 정도가 지나자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13명의 학급 친구들 중 7명이 여자다.
여자들이 입을 털기 시작하자 너도나도 한마디씩 말을 보탠다.
하나의 공통된 주제가 있으니 서로 친해지는 건 금방.
누군가 마커슨의 편을 들긴 했지만 다들 같은 걸 목격했다.
말이 통할 리 없다.
그리고 이런 시간을 절대 놓치지 않는 이가 있으니 바로 우리의 알렉스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