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26)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26화(26/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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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조우 3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는 알렉스.
화가 나서 붉게 달아올랐던 얼굴이 천천히 식으면서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다.
빅뉴스가 있다며 호들갑을 떨어제낄 때 나타나는 알렉스 특유의 버릇이다.
말려야 한다.
“애들아. 나는 알렉스라고 해. 내가 아까 걔에 대해 좀 알거든. 이름은 마커슨 힐이라고…”
“우리도 알아. 아까 선생님이 크게 불렀잖아.”
“알렉스. 잠깐 나 좀 봐.”
“왜에. 지금 실체를 까발려야한다고.”
“뭔데? 걔 실체가 따로 있어?”
“넌 걔를 어떻게 아는데?”
“그게 말이지. 내가 아니고 여기 이 제이든이 지난 여름에…”
“알렉스!”
“알았다고. 알았어.”
알렉스가 시무룩해져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까는 서로 너무 놀라서 저도 모르게 말이 헛 나온 것이겠지만 사실 나도 뱉은 말이 있기에 속이 시원하지만은 않았다.
‘이 일을 어쩐다.’
마커슨은 11살 어린 애일 뿐이다.
선생님한테 싸지른 욕이 아니다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는 나와의 관계를 설명해야 할 테고, 그러자면 여름방학 때 있었던 일을 실토해야 할 것이다.
그 전에 소문이 퍼진다면 당연히 나만 주목받는다.
그런 일은 피해야지.
‘그나저나 조금 있음 나도 불려가겠네.’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교실 문이 열린다.
모르는 사람이 들어왔다.
뭐.
중학교 첫날이니 아는 사람이 들어올 확률은 거의 없지만.
“하이. 나는 오늘 서브티처를 맡게 된 미스 엘다야. (간혹 주교사가 일이 있을 때 보조교사가 수업을 진행한다.) 미세스 노리스 선생님은 갑자기 급한 사정이 생겨서 집에 가셨어. 오늘이 개학 첫날이긴 하지만 이해해 줘.”
“…”
급한 사정은 무슨.
너무너무 열 받은 거다.
개학 첫날이라 해도 도저히 수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이 자리의 모두가 알았지만 또 모두가 모른 척 했다.
“제이든 패터슨이 누구지?”
“전데요.”
“교장실로 가 볼래? 오피스 어딨는지 알아?”
“네. 알아요. 전에 견학 왔을 때 봤어요.”
“잘됐구나. 그럼 지금 바로 가봐. 미스터 존슨이 기다리고 있어.”
“네.”
알렉스와 오디의 눈빛이 전투적으로 변했다.
마크의 아버지 때문에 우리 동네 사람들은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있었던 일들을 모두 안다.
호텔 주차장에서 떠나기 전 누군가 USB에 담아 삼촌에게 직접 건네줬었다.
삼촌은 그걸 동네 어른들에게 보여줬고.
– 똑똑.
– 들어와요.
굵직한 목소리가 들린다.
안으로 들어가니 풀이 죽어 있는 마커슨이 앉아있다.
눈알이 빨간 것이 한바탕 혼이 난 모양이다.
그리고 교장은…
4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흑인 남자다.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고, 미국에서 흑인들은 아주 유대가 강한 편이다.
내 잘못이 없더라도 내 편은 아닐 수도 있겠다.
‘뭐가 됐든 일단 부딪혀 보자. 여기서 3년을 버텨야 한다.’
속마음을 숨긴 채 최대한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교장이 손짓하는 자리에 앉았다.
“미스터 패터슨. 내가 자네를 왜 불렀는지 아나?”
“글쎄요. 저는 잘못한 것이 없어서요.”
“…”
“…”
“내가 공정하지 못할 거라 지레짐작하는구나.”
“…”
어쩔 수 있나.
어린 몸으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기방어기제다.
말이라도 불퉁하게 나가야지.
‘나 그렇게 만만한 놈 아니다.’
뭐 그런 의미로다가.
휴대폰의 음성녹음 앱을 눌러야 하나도 잠시 고민했지만 그건 포기했다.
그러기엔 지금 이방의 분위기가 너무 무겁다.
웬만한 말에는 침묵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런 나를 지긋이 보던 교장의 시선이 마커슨을 향했다.
“미스터 힐.”
“…네.”
“내가 한말 기억하지?”
“네.”
“그럼 지금 내 앞에서 해 보겠나?”
‘뭘? ㅅㅂ. 뭐든 불공정하게만 해봐. 가만 안 있는다고.’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20대 후반의 정신연령이라도 육체적으로는 밀린다.
한번 맞아봐서 그런지 몸이 절로 반응하는 느낌이다.
설마 교장인데 여기서 싸움붙이는 짓거리는 안하겠지?
그런데 백인 인구 97% 동네에서 흑인이 교장인 게 살짝 놀랍기는 하다.
그러고보니 흑인 특유의 악센트도 없고.
교장의 책상 앞에 나란히 앉은 우리 둘.
마커슨이 앉은 채로 몸을 돌려 나를 보았다.
약간 긴장한 채 언제든 주먹을 뻗을 수 있게 자세를 잡았다.
“저기 제이든. 내가 잘못했어.”
“…뭐?”
“그게 사실 형이 맨날 그랬거든. 우리 형제들 피와 땀으로 겨우 만들어낸 평등한 세상인데…아시안들은 아무런 노력도 없이 같이 누린다고. 거기다 아시안들은 다들 잘살아서 여기저기 여행도 많이 다니고, 집도 좋은데 살고. 불공평하다고.”
“…”
“그날은…사실 그 전날 아시안 베이비가 나한테 ‘깜둥이’라면서 손가락질했거든. 걔 부모는 못들은 척 했고. 나 말고는 그 말을 들은 사람이 없었어. 너무너무 열 받아서 잠도 못 잤는데 아침에 네가 딱. 미안해. 다른 사람한테 그렇게 화풀이하면 안 되는 건데.”
“…그런 일이 있었구나.”
“흑흑. 나도 그 일은 마음에 안 좋게 남아있었는데. 아까는 보고 너무 깜짝 놀라서 나도 모르게…나 이제 학교생활 어떻게 하지. 엉엉엉. 너무 무서워.”
아이고.
사연 없는 무덤 없고, 세상사 돌고 도는 게 이치라곤 하지만 이유 없이 가격 당했던 내 턱주가리는 어쩔 거냐고.
두려움에 떨며 울고 있는 11살 난 놈을 보고 있으니 만감이 교차한다.
무서워서 하는 사과라도 저 정도면 받아줘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런 마음은 나만 느끼는 건 아닌 모양이다.
교장의 눈도 착 가라앉아있다.
본인이 살아오면서 겪었던 많은 일들이 스쳐지나가는 모양이다.
“근데 저를 왜 부르신 겁니까? 마커슨과의 일은 이미 끝난 일인데요.”
“나는 이 일이 오늘 터져 다행이라 생각한다. 아니었으면 곯고 곯다가 다른 방식으로 터졌겠지. 마커슨과 친구가 될 수 있겠나?”
“…”
“나. 나는 진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정말이야.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
‘쫄짜로 부리면…’
그 부모가 왜 팔짱을 끼고 방관만 했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
하지만 그 부모는 그러면 안됐다.
따끔하게 혼을 냈어야 했다.
물론 전날 밤 아이가 낮에 있었던 일을 말하며 분개를 했을 거고, 백인은 무서워하지만 그 외의 인종은 개무시하는 흑인이 아시안에게 무시당했다 싶으니 제법 열이 받았겠지.
그런데 보통 흑인들은 한 곳에 모여 사는 경우가 많다.
차이나타운이나 한인 타운처럼 아시안들도 모여 사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건 한정된 지역에 불과하다.
동부의 경우엔 학군 좋은 곳에 타인종들과 섞여 사는 경우가 대다수다.
물론 흑인들도 섞여 사는 경우도 많지만 인구 대비 모여 사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아마도 오랜 기간 핍박 받으며 서로를 지키기 위해선 뭉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그 말을 가장 잘 실천하는 인종이라고 할 수 있다.
누누이 말하지만 머릿수는 곧 힘이다.
문제는 뭉치기는 잘 하지만 교육에 힘을 쏟지는 않는다.
그래서 흑인 밀집 지역은 대부분 가난하다.
가난하니 싸움이 잦고, 그러다보니 총기사고로 가장 많이 죽는 인종이 흑인이라는 말도 있다.
그래서 깨어있는 이들은 어떻게든 그런 지역을 벗어나려고 애를 쓴다.
마커슨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얘는 지금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있다.
교장한테 무슨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진심인거다.
그게 무서워서인지, 진짜 미안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여기서 내가 ‘싫다’며 강짜를 놓는다면?
내 3년이 고달파질 거다.
현실과 타협하기로 했다.
“그래. 잘 지내보자. 근데 미세스 노리스께는 사과했니?”
“어. 당연히. 너무 놀라셔서 심장이 벌렁거리신다고는 했지만 나를 이해한다고는 했어.”
“이해한다고?”
“아니. 그러니까 놀라서 욕했던 거 말야. 내가 너한테 한 짓을 이해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건 뭐 나도 했으니까.
“교장선생님. 저희 이제 가도 되나요? 부모님께는 연락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제가 집에 가면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괜한 걱정을 하실 것 같아서요.”
“…고맙구나. 제이든. 나는 진심으로 너희들이 좋은 친구가 되길 바란다.”
“…네.”
“네!”
더 이상 혼나지 않아도 된다 생각했는지 마커슨이 어느새 씩씩해져 있다.
– 풋.
기가 막혀 나온 웃음이다.
그런데 나의 그 모습에 마커슨이 환하게 웃는다.
욕하고 성질부리던 모습만 봤다가 웃으니 예쁘네.
교장실을 나와 교실로 향했다.
이미 2교시가 시작되었다.
우연찮게 마커슨과 같은 수업이다.
그리고 알렉스와 오디도.
오디는 이제 아예 선행학습을 내려놓았다.
‘제이든도 킨더 때 고등학생들을 체스로 이겼다. 그런데도 학년 스킵 하나도 안하고 6학년 수업 그대로 듣는다. 나도 그러고 싶다.’며 지난 방학동안 제 부모님과 담판을 지었단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이미 연락을 받은 라틴 선생님이 턱짓으로 우리가 앉을 자리를 가리킨다.
알렉스가 인상을 팍 쓰며 손가락 두 개를 제 눈에 갖다 댔다가 마커슨에게 되돌려준다.
딴에는 ‘내가 너를 지켜보고 있다.’며 경고를 하는 것 같지만 하나도 안 무섭다.
문제는 그날 이후 마커슨이 아예 내 껌딱지가 되었다는 거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자꾸만 추종자들이 생긴다.
백인 하나, 인도 하나, 한국 하나, 흑인 하나.
그렇게 우리는 백인 밀집 지역에서 구성이 좀 묘한 평생 친구들이 되었다.
***
아무튼 그날 저녁 식사 자리.
메뉴는 스테이크다.
삼촌이 내가 중학생이 된 걸 기념하는 차원에서 제법 괜찮은 스테이크를 사왔다.
엄마는 마트에서 5.99에 파는 꽃다발도 한 묶음 사 왔다.
모처럼의 스테이크인데 맛을 음미하기 어렵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 엄마가 무심한 척 툭- 말을 뱉는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눈치를 봐? 왜?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아니. 뭐. 좀 뜻밖의 일이 있긴 했어요.”
“뜻밖의 일?”
“네.”
“뭔데?”
“…마커슨을 만났어요.”
“마커슨? 그게 누군데?”
“…”
“…!”
잠깐의 침묵이 있은 후 두 사람이 동시에 튕겨지듯 일어섰다.
“뭐?!”
“진짜야?!”
“어우. 앉으세요들.”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이 동네 애였다고?”
“그래서. 어떻게 됐어? 설마 같은 홈베이스야?”
“네. 같은 홈베이스.”
“헐.”
“설마 걔가 또 이상한 소리 했니?”
“그게요. 처음엔 둘 다 너무 놀라서…”
천천히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물론 나도 한국어로 욕을 했다는 사실은 쏘옥 뺐다.
그 누구도 들은 사람 없으니 완전범죄인 거지.
“…”
“교장이 흑인이라고? 누구지? 누나. 그 사람 백 그라운드 알아?”
“아니. 몰라. 제이든이 알아서 학교생활 잘 하니까 굳이 찾아볼 생각은 안했지. 4학년 때부턴 컨퍼런스도 안 갔는데.”
“…하긴. 누가 교장까지 찾아봐. 좀 알아봐야겠네.”
1년에 한번.
우리 학교는 선생님과 학부모가 만나는 컨퍼런스가 있다.
학교 성적부터 교우들 관계 등등에 대한 교사와 학부모의 일대일 면담시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명 당 보통 15분 정도 한다.
담임을 만나봤자 늘 좋은 소리만 하니까 4학년 때부턴 엄마는 아예 학교에 오질 않았다.
우리 동네에 그런 집 몇 된다.
먹고 살기 바빠서, 관심이 없어서, 혹은 나처럼 혼자서도 잘 하니 굳이 필요가 없어서 등등의 이유다.
– 딩동딩동.
“이 시간에 누구지?”
“제가 나가볼게요.”
현관문을 열자 마크가 아이스크림 콘을 들어보인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