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28
ED의 합격 발표는 보통 12월 중순.
RD(정시) 원서를 넣는 건 12월 말까지.
ED 결과를 확인한 후 결과가 좋지 못할 경우 RD를 준비한다.
어느 학교든 원서를 쓸 때는 학교 카운슬러의 사인이 들어간다.
우리 고등학교엔 7명의 카운슬러가 있다.
학생들 성의 첫 글자 알파벳순으로 나뉘는데 보통 ‘A―D’, ‘E―G’… 뭐 이런 식으로 나뉜다.
나는 제이든 패터슨(Jaden Patterson)이니 나중에 ‘P’ 담당 카운슬러가 내 카운슬러다.
형제자매가 있을 경우 모두 같은 카운슬러에게 상담을 받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학생이 ED를 썼고, 합격했다면 카운슬러는 아주 특별한 사유가 있지 않는 한 해당 학생의 정시 원서에 사인을 해 주면 안 된다.
그럼에도 학생이 정시에서 다른 톱 스쿨에 합격했다면 카운슬러의 암묵적 동의가 있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아니면 학생이 ED에 붙었다는 걸 말하지 않고, 카운슬러의 사인을 받았던지.
어쨌든 졸지에 ‘합격하고도 오지 않은 학생’ 덕분에 시간 낭비, 인력 낭비, 또 다른 학생의 선발 기회를 박탈당한 해당 대학은 괘씸죄를 적용, 대략 5년 정도 그 학교 학생은 뽑지 않는다는 설이 도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그런 말이 종종 나오는 걸 보면 완전 없는 말은 아닌 것도 같고.
나야 아직은 먼 이야기니 상관없지만 당장 11학년들은 짜증 지대로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알렉스 본인의 설레발은 좀 지나치지만.
“근데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브라운이 그렇게 좋은 학교면 니가 갈 수 있어?”
마커슨의 일침.
내가 꼭 참고 위장 아래로 꾹꾹 눌러둔 말인데 굳이 입 밖으로 꺼내는 마커슨.
“뭐! 당연하지. 그러는 너는 대학이나 갈 수 있고? 너 공부에 관심 없잖아.”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그리고 나 공부에 관심 많아! 당연히 대학도 갈 수 있어! 난 흑인이니까!”
“와. 미친 거야? 그런 거야? 이럴 때만 흑인 드립이야. 아주 지랄 났네.”
팝콘 각이다.
킨더 때부터 나의 추종자였던 알렉스.
요즘 들어 나만 졸졸 따라다니고 있는 마커슨.
청소년기엔 친구 욕심이 많은 법이다.
“워워. 갈 수도 있지.”
“그. 그래. 사람 일 모르는 거야.”
일단은 입으로만 지저귀는 두 사람.
누구라도 먼저 선빵을 날리는 놈이 무조건 불리하다.
게다가 마커슨은 자중해야 할 때.
한 번만 더 말썽 일으키면 사립으로 쫓겨날지도 모른다.
미국 애들이 입만 살은 이유가 다 있는 거다.
두 사람 사이에 불꽃이 튀는 중에.
― 드르륵.
오늘의 서브 티처가 교실로 들어왔다.
손에 빳빳한 종이들이 들렸다.
“하루 잘 보냈고?”
“네.”
“이건 아너 롤(Honor Roll)이야. 이름 부르면 손 들어.”
“아너 롤이 뭔데요?”
“1학기인 지난 9주 동안 공부 잘했다고 주는 거야. 학점이 올 A인 4.0은 하이스트 아너(Highest Honor), 3.5는 하이 아너(High Honor), 3.0은 아너(Honor)야. 사는데 성적이 중요한 건 아니니까 못 받았다고 해서 우울해하지 말고. 그래도 열심히 했다는 증거니까 받으면 좋겠지?”
― 알렉스, 캐서린, 오디…
자신의 이름이 호명된 아이들이 자리에서 손을 들자, 선생님이 하나씩 나눠 준다.
총 13명의 학급 친구들 중 6명이 상장을 받았다.
그 중 나와 오디는 Highest Honor.
알렉스는 High Honor.
나머지는 일반 Honor다.
6학년이 되고 첫 번째로 받는 아너롤이지만 받은 애들도 받지 못한 애들도 별 생각이 없다.
하지만 방금까지 싸운 마커슨과 알렉스는 다른 모양이다.
“하! 마커슨! 일반 아너롤도 못 받는 주제에 하이 아너인 나한테 그 따위 망발을 지껄인 거야?”
“…겨우 하이 아너롤 받은 주제에 브라운을 간다고? 내가 대학 간다는 것보다 니가 브라운 간다는 게 더 웃기는 말인 거 몰라?”
“알렉스! 마커슨! 다른 사람의 성적을 비난하는 건 옳지 않아!”
“선생님. 그게 아니고. 저 새끼가 아까…”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알렉스?”
“…죄송합니다.”
서브 티처의 서슬 퍼런 목소리에 금방 꼬리를 떨어뜨리는 알렉스.
저럴 거 뭐 하러 시비를 거는지.
방금의 일은 뭐니뭐니 해도 알렉스의 시비가 맞다.
그럼에도 억울한 건 마커슨인 모양이다.
어쨌든 알렉스는 하이 아너이고 본인은 아무것도 받은 게 없으니까.
평소 숙제만 겨우겨우 해 오던 녀석.
눈에 불을 뿜으며 나를 쳐다본다.
“제이든!”
“왜?”
“나도 너네 집에 갈래?”
“뭐? 누가 우리 집에 와?”
“그 스터드 그룹 말이야. 나도 거기 끼워줘.”
“그… 우리 부모님과 너네 부모님이 만나서 좋을 건 없지 않을까?”
“…미안해. 미안하다고. 너네 엄마랑 삼촌한테도 또 사과할게. 그러니까 받아 줘. 그리고 우리 아빠는 이미 널 좋아한다고.”
“뭐?”
“인종 차별에 그렇게 당당하게 맞서는 아시안은 처음 봤대. 말도 어른스럽고. 같은 반인 거 알고 엄청 좋아했다고. 나 공부할 거야. 그래서 저 새끼 꼭 이길 거야.”
“…생각해 볼게.”
마커슨.
곧 각성할 거 같은데?
남자의 변신은 무죄지.
“난 반대! 무조건 반대! 제이든 절대 허락해주지 마아! 어?”
당연하게도 알렉스가 끼어든다.
“…….”
“나는 괜찮은 거 같은데? 공부하겠다는 애를 못 하게 할 수도 없잖아.”
오디의 말.
맞는 말이다.
알렉스의 고개가 오디에게 휙 돌아가고, 오디는 어깨를 으쓱하고 만다.
이거 잘못하면 삼파전이 되겠다.
골치 아프네.
이럴 때는 회피가 답.
“너네 오늘 아너스(Honors) 밴드 있는 거 알지?”
“어.”
“당연.”
“…….”
우리 넷은 모두 밴드부다.
문제는 마커슨은 밴드에 있어서도 일반 밴드라는 것.
아너스 밴드는 6학년부터 8학년까지 오디션을 통해서 뽑는다.
매주 수요일 방과 후 남아서 1시간 정도 따로 연습 시간을 갖는다.
매해 9월 둘째 주 밴드부 선생님께 따로 테스트를 받은 후 입단하는 것으로 나름 자부심이 대단하다.
우리 공부방 아이들이 모두 이 반에 속하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8학년의 제이콥과 매튜, 7학년의 마크와 크리스틴, 6학년의 나와 알렉스, 오디.
내가 4학년때 미스터 에멋에게 바순을 받은 이후로 부지런히 애들을 굴린 결과다.
마커슨의 얼굴이 붉어졌다.
여기서도 졌다고 여긴 것이다.
분위기가 요상해졌지만 어쩔 수 없다.
“나. 나는 프렌치 혼이야. 내년엔 나도 꼭 아너스 밴드 들어갈 거야. 딱 기다려.”
그리고는 가방을 메고 그대로 교실 문을 나가버리는 마커슨.
짠하네.
아무래도 공부방에는 받아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공부하겠다는 놈 말릴 이유는 없지.
공부 잘하는 놈들이 많아져야 학교 점수도 올라갈 거다.
물론 전체 학생에 비하면 한 줌도 안 되는 모래알이지만 모래알이 모이다 보면 백사장이 되는 거니까.
그럼 ‘브라운’ 대학도 노여움을 일찍 거둬주지 않을까?
나도 가야 한다고.
아이비.
입구에서 컷 당하는 원서를 넣을 수는 없잖아.
* * *
밴드 연습까지 마치고 우리 7명은 다 같이 방과 후 액티비티를 하는 학생들을 위한 스쿨버스에 올라탔다.
오디의 집은 고등학교 근처로 이 동네 유지들이 사는 동네임에도 매번 우리 버스를 탄다.
학교 끝나고 집으로 바로 가는 날보다 우리 집으로 오는 날이 더 많으니.
우리 집에서 1시간 30분 정도 후 그 엄마가 데리러 와서 각종 액티비티를 위해 떠난다.
선행 학습들을 모두 내려놓았음에도 매일매일 다른 활동들이 있다고.
태권도부터 테니스, 수영, 색소폰 등등의 과외들.
우리 중 제일 바쁘게 산다고 할 수 있다.
같이 앉으면 삼촌과 조카 같은 비주얼을 뽐내는 제이콥이 오늘도 내 옆자리를 차지했다.
그런 제이콥에게 몸을 반쯤이나 기울여 오늘 있었던 일을 열심히 설명하는 알렉스.
그리고 뒤쪽에서 그 모습을 보며 ‘유치한 놈들’이라며 고개를 흔드는 크리스틴.
결국 모두 내 입만 쳐다본다.
마커슨의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하라는 거다.
“받을 거야.”
“왜에! 나는 걔 싫다고오!”
“알렉스, 같이 지내다 보니까 마커슨이 그렇게 나쁜 애는 아닌 거 같아.”
“그걸 말이라고… 걔 인종차별주의자야.”
“말했잖아. 이유가 있었다고. 충분히 혼도 났고, 나한테 사과도 했어. 그냥 실수한 거야.”
입이 삐죽 튀어나오는 알렉스.
크리스틴이 묻는다.
“오케이. 그럼 이번 주부터 합류하는 거야?”
“어. 근데 슬슬 장소를 옮길까 해. 집도 좁고, 책상도 부족하고. 이미 헤나랑 조나단이 쫓겨날 때도 많잖아. 그래서 동네 도서관으로 옮길까 하는데 어때?”
“난 좁아도 너네 집이 좋아.”
“나도. 공부도 하던 데서 계속해야 잘 된다고.”
“우리 아빠가 이번에 테이블 하나 더 얻었대. 너네 집에 갖다 준댔어. 헤나가 자꾸 쫓겨나니까 안 되겠다고 하더라고.”
“마크. 너네 아빠는 도대체 어디서 그런 걸 자꾸 얻는 거야?”
“나야 모르지.”
야외용 테이블 2개면 10명의 아이들을 수용하기엔 충분해 보인다.
우리 집 지하실은 테이블 2개로 꽉 차 버리겠지만.
“땡큐. 미스터 찰스.”
“땡큐.”
“땡큐.”
.
.
.
버스 드라이버에게 모두 인사를 하고 내렸다.
처음엔 그런 기본적인 인사도 안 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습관처럼 한다.
자랑하고 싶진 않지만, 이것 역시 다 내 덕이다.
그래서인지 버스 드라이버들 사이에서도 나는 제법 인기가 있다.
“어서 오렴.”
웬일인지 오늘은 엄마가 집에 있다.
그리고 마크의 아버지와 다른 어른들도.
무슨 일이래?
대충 인사를 하고 지하로 내려가는데 먼저 내려간 놈들의 함성 소리가 들려온다.
― 우와!
― 와아아!
― 이게 뭔 일이야?!
.
.
.
가장 늦게 내려간 나 역시 입이 쩍 벌어졌다.
냄새나던 퀴퀴한 공부방이 깔끔하게 탈바꿈되어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우리의 함성 소리에 어른들이 따라 내려왔다.
얼굴 가득 흐뭇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
“미세스 베서스. 기억하지?”
“그럼요. 요즘 교회에서도 잘 안 보이시던데.”
미세스 베서스.
내가 살던 아파트의 오피스 레이디이고, 일요일엔 교회에도 목사보다 일찍 와서 문을 열며, 토요일 성경 공부를 주도하는 이 동네 할머니계의 홍반장.
나만 보면 브라우니를 안겨 주던 백발의 할머니.
“미세스 베서스가 공부방 이야기를 전해 듣고 선물해 주셨어. 한 달 전에 한번 들르셔서 여길 보시고는 이것저것 주문해 주셨지. 조금 부족한 건 여기 어른들이 각출했어.”
“우와. 정말 감사하네요. 감사합니다.”
“맞아요. 감사합니다. 미세스 베서스에게 우리 다 같이 인사하러 가요.”
“저도 갈래요.”
.
.
.
“…….”
어른들의 표정이 굳어지며 서로 눈치를 본다.
결국 엄마가 입을 열었다.
“그게… 미세스 베서스께서 어제 돌아가셨대. 한 달 전에 오셨을 때도 투병 중이셨어.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줄은 몰랐는데.”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다.
평생을 알뜰하게 살면서 모은 자산을 생판 남에게 모두 넘겨 버리는 사람들.
이래서 ‘버는 사람 따로 있고, 쓰는 사람 따로 있다’는 말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본 미세스 베서스는 성실하면서 검소한 사람이었다.
“어제 돌아가셨으면 장례는 언제 치르나요?”
“다음 주 토요일 오전에 교회에서 뷰잉 예배드리고, 오후에 장지에서 하관 예배드릴 거야.”
“저도 가도 될까요?”
“너희들이 참석하기에는 조금 무서울 수도 있는데.”
“괜찮아요. 제가 애들 대표로 갔다 올게요. 이렇게 큰 선물도 받았는데 인사는 하고 와야죠.”
“…그래. 그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