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66)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66화(66/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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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보험이여 2
자주 다니던 길이라서 그런가?
산길이라고 해 봤자 동네 공원 속이다.
평소 걸음으론 10분 정도만 걸으면 곧바로 평탄한 아스팔트길을 만난다.
하지만 산만한 놈을 들고 가려니 그것보단 시간이 좀 더 걸리는 것 같다.
혼자였으면 힘들었겠지만 멀쩡한 놈들이 다섯이나 있다.
큰 힘이 된다.
“다들 발 조심해.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고. 무거우면 바로 말해. 좀 쉬었다가도 되니까.”
“오케이.”
“악. 저거 뱀 아냐?”
“…맞네.”
“얘들아. 저거 그냥 가든 스네이크야. 저게 왜 여깄지? 뭐 먹을 거 있다고. 덩치만 크지 독 없어. 괜찮아. 괜찮아.”
“그. 그래. 계속 가자.”
“어.”
“어.”
– Yeah, I’m gonna take my horse to the old town road
I’m gonna ride ’til I can’t no more ~
갑자기 마커슨이 흑인 래퍼 Lil Nas X의 ‘Old Town Road’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벌써 몇 년 된 노래이긴 한데 깡촌 답게 우리 학교에선 요즘 이 노래가 유행되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피식거리면서도 마커슨을 따라 노래를 불렀다.
– 흔들흔들.
“알렉스! 확 버리고 간다. 어디서 어깨춤을 춰대? 이거 응급용으로 만든 거 몰라? 떨어지면 크게 다친다고!”
“아. 미안미안. 흥이 나서 그만. 으헤헤.”
“와. 알렉스. 제이든 말 잘 들어라. 지금 완전 꼰대력 갑이다.”
“오디이?”
“어우. 이거 좀 무겁지…”
– 알렉스으!
그 순간 알렉스를 부르는 날카로운 목소리.
치마 정장에 하이힐을 신은 중년의 여성이 험한 숲길을 따라 엄청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얼마나 급하게 뛰는지 넘어질 듯 아슬아슬하다.
우리 노랫소리를 듣고 방향을 잡은 듯 하다.
“어. 엄마?”
“알렉스. 괜찮니?”
“…좀 아파.”
– ?
순간 알렉스를 살펴보는 알렉스 엄마의 표정에 안도함이 스친다.
뒤이어 어른들 몇이 뛰어왔다.
리암 삼촌도 있다.
다들 표정이 아주 심각하다.
그 모든 모습들을 한눈에 담으며 흐뭇하게 웃고 있는 헤나.
아주 큰 미션을 완수한 것처럼 의기양양하다.
“헤나. 도대체 뭐라고 말했기에 다들 저렇게 난리야?”
“왜에? 나는 보이는 대로 말 했을 뿐이야. 알렉스 피가 철철 나잖아. 자전거는 다 망가졌고, 몸은 여기저기 다 파였고, 다리는 곧 뼈가 튀어나올 것처럼 하얗잖아. 그거 그대로 말 했어.”
“…”
“잘못한 거야?”
“아니. 아주 잘 했어.”
“헤헤. 그럴 줄 알았어. 나 헤나잖아.”
반면 어른들은 알렉스를 확인하고는 표정이 풀어진다.
생각보다 멀쩡한 거지.
알렉스를 다 살핀 후 우리들을 돌아본다.
알렉스를 볼 때보다 더 안타까운 표정들.
“아이고. 애들 꼬라지가…”
현재 우리는 헤나를 제외한 모두가 웃옷을 벗은 채 땀을 한 바가지씩 흘리고 있는 상태.
산의 먼지들이 온 몸에 달라붙어있는데다 오는 동안 나뭇가지에 긁힌 자잘한 상처들이 많다.
몰골들이 좀 그렇긴 할 거다.
어른들이 우리가 들고 있던 들것을 자연스럽게 이어받았다.
“정말 다들 고생 많았다. 이 들것은 정말 잘 만들었구나.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했니?”
“제이든이 만들었어요. 우리는 제이든이 하라는 대로 한 것 뿐이고요.”
“그래그래. 제이든이 같이 있다고 해서 걱정이 덜하긴 했었지. 그래도 잘 했어. 구급차 부르려다가 일단 상태보고 부르려고 안 불렀는데. 잘한 거 같네.”
“얘들아. 다들 정말 고맙다. 아줌마가 담에 진짜 맛있는 걸로 한턱 쏠게”
“네에!”
계속 듣고 있기 민망하다.
빠져나갈 궁리를 해야 한다.
“아. 그럼 저희는 자전거 가지고 올게요.”
“그럴래?”
“네.”
“제이든. 자전거는 우리가 가져올게. 넌 알렉스랑 같이 있어 줘.”
“어? 왜? 나 괜찮은데.”
“아냐. 너 너무 고생했어. 자전거는 우리가 알아서 가져올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이것들이 굳이…사지로 나를 밀어 넣네.
지치긴 한다.
사실 조금 뿌듯하기도 하고.
마크의 아버지가 거든다.
“그래 제이든. 너는 알렉스 옆에 있어 줘. 친구들이 한꺼번에 빠지면 당황스러울 거야. 내가 애들이랑 같이 가서 상태 살필게.”
그렇게 친구 놈들과 어른 몇이 뒤로 빠지고, 남은 사람은 들것을 들은 어른들과 나, 알렉스, 알렉스의 엄마 뿐이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된 것일까?
알렉스 엄마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알렉스. 왜 엄마한테 바로 전화 안했니? 죽을 거 같으면 연락하라고 했잖아!”
“중요한 미팅 있다면서?”
“그거야 니가 심심하다고 열두 번도 더 연락을 해대니까 일을 못하겠어서 그런 거지. 이런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을 했어야지. 911에 전화는 왜 안했어?”
“앰뷸런스 타고 가면 비싸잖아.”
“그런 걸 니가 왜 걱정해! 이럴 때 부르라고 있는 게 앰뷸런스라고. 친구들 없었으면 어쩔 뻔 했어?”
“에이. 진정해. 엄마. 우리 캡틴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으이그. 말이라도 못하면. 너 진짜 응급실가서 확인해보고, 큰일이면 가만 안 둘 줄 알아. 그리고 담엔 무조건 911에 구조 요청 해. 알았어?”
“허억. 담에 또 다치라고?”
– 찰싹!
– 으아악. 아파. 엄마!
“암튼 주둥이로 매를 벌어요.”
모자간의 대화가 참 정겹다.
우리 엄마는 뭐든 좋은 말만 해 주는데.
저런 게 친엄마와 친자식간의 대화인가?
모르겠다.
비교하지 말자.
지금도 분에 넘치게 행복하다.
“엄마. 다쳐서 미안해. 근데 진짜로. 병원비 많이 나오면 어떡해. 아빠도 없는데…”
“걱정하지 마. 나 혼자서도 너 얼마든지 잘 키울 수 있어. 그러니까 넌 그냥 잘 자라기만 하면 돼.”
갑자기 대화가 진지하게 흐른다.
이거 내가 듣고 있어도 되는 건가?
공부방 놈들은 다들 별반 다르지 않는 환경이다.
오디가 제일 잘 살고, 다음으로 알렉스와 크리스틴, 매튜가 비슷비슷한 환경이다.
우리 골목 놈들이 그 중에서도 좀 쳐지는 편이고.
오디를 빼고는 다들 고만고만한 환경인 거다.
알렉스의 아버지가 작년 말에 실직했다는 소리를 듣긴 했다.
회사 규모를 축소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행하는 레이오프 (Layoff)가 아닌 진짜 해고(Fired)를 당했다고 했다.
레이오프는 회사가 어려워서 팀 자체를 없애는 거다.
하지만 해고는 본인이 뭔가 큰 실수를 저질러서 말 그대로 잘리는 거다.
전자는 다른 회사에 인터뷰를 하러 가서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지만 후자는 왜 그런 일이 있었는지를 소상하게 밝혀야 한다.
재취업도 잘 안 된다.
그 후의 소식을 묻지는 못했다.
알렉스가 지나가듯이 아빠가 직장을 다시 잡았는데 불평이 많다고는 했었다.
뭔가 원하는 대로 풀리진 않은 모양이다.
어느 새 숲길을 벗어나 아스팔트길로 나왔다.
주차장까지 가려면 좀 더 가야한다.
– 어머. 무슨 일이에요?
– 911 불러줄까?
– 아이디어가 정말 좋네. 누가 그렇게 옷으로…
– 쟤 옷인 모양이네.
.
.
.
운동이든, 산책이든 공원을 걷던 사람들이 한마디씩 보탠다.
알렉스가 손가락으로 V 자를 그린다.
부끄러움이라고는 모르는 놈.
어른들이 조심스럽게 알렉스를 안아 알렉스 엄마의 차에 옮겨 실었다.
“연락해.”
“어. 고맙습니다.”
“그래. 별일 없었으면 좋겠구나.”
“고마워요.”
“네네. 들어가세요.”
알렉스 엄마의 차가 공원을 떠났다.
아프리카 속담에 ‘아이 하나 키우려면 온 마을이 힘을 합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더니.
그 말이 절절하게 와 닿는 날이다.
삭신이 쑤신다.
***
며칠 후.
12학년들의 졸업파티가 있는 날이다.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더 이상 진학을 안 하는 경우도 많고, 대학을 가더라도 집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는 경우가 많기에 이곳의 고등학교 졸업파티는 제법 성대하게 치러진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성인으로서의 첫 걸음을 축하하는 거다.
나와 마커슨, 오디는 제이콥의 차를 얻어 타고 가는 중이었다.
“애들아. 운전을 한다는 건 말이다. 진짜 다리가 생기는 것과 같아. 너네 다리는 다리도 아냐. 이. 차가 진짜 다리야. 이 땅에서 운전을 못한다? 그건 그냥 다리를 포기한 거랑 같다니까? 15살하고도 6개월이 되면 필기시험 꼭 쳐. 그리고 면허 연습 해. 가뿐하게 60시간만 채우면 실기시험 칠 수 있어. 우하하하.”
“근데 제이콥. 이런 차는 얼마나 해?”
“왜? 좋은 걸로 하나 뽑아주게?”
“뭐래. 내가 돈이 어딨다고. 근데 그 딜러도 참 양심없다. 어떻게 이런 차를 돈을 받고 팔지?”
“오디야. 내릴까?”
“아니요. 형님. 쭈욱- 가시죠.”
– 초대합니다. 헤일리와 클로이의 고등학교 졸업파티 –
파티는 평소 자주 가던 하트우드 공원이 아닌 다른 동네 공원이다.
공원 한쪽에 본인들이 직접 만든 큼지막한 나무 팻말이 꽂혀있다.
진짜 개발새발 만들었나 보다.
‘내가 발로 그려도 저건 보단 잘 그리겠다.’란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마커슨이 입으로 뱉어버린다.
“헤일리랑 클로이가 글씨는 진짜 못 쓴다. 내가 스프레이 페인트로 대충 그려도 저거보단 예쁘게 만들 거 같아.”
‘너. 내 머릿속에 들어갔다 왔니?’
“…”
“사람 생각은 다 비슷한 거야. 그치? 나도 방금 그 생각했거든.”
“오디. 너도?”
“오오. 제이든. 너도?”
“…알렉스는 왔을까? 그 상태로 오기 힘들 텐데.”
“말 돌리기는. 왔을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참석해서 꼭 자리를 빛 내야겠다 했거든.”
헤일리와 클로이.
수많은 남학생들의 첫 짝사랑 상대였던 두 사람.
내가 킨더일 때 5학년 큰 누나들이었는데.
벌써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사회인이 된다고 하니 마음이 짠-하다.
학생 신분을 벗는 순간부터 어엿한 사회인으로서 온갖 세금고지서를 받게 될 것이다.
특히 클로이는 아버지 식당을 물려받는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세금을 내야 할 것이냐고.
이제부턴 매달 세금과의 전쟁을 하게 되겠지.
짠하다.
곳곳에 걸려있는 핑크색 풍선을 주욱- 따라 들어갔다.
날씨 좋은 6월 중순이다.
공원의 모든 쉘터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부유하든 중산층이든 많은 한국 이민가정들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계절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동네 사람들은?
갈 데가 없다.
그래서 작은 이벤트라도 있으면 무조건 모습을 드러낸다.
물론 우리 포함이다.
알렉스가 한쪽 다리를 쭉 뻗은 상태로 고정시킨 휠체어에 앉아 우리를 반겼다.
“헤이. 왔냐들?”
“언제 왔냐?”
“암튼 노는 건 안 빠지지.”
“니들이 할 말이냐?”
“다리는?”
“보시다시피. 이쪽에 예쁘게 사인하셔라.”
– 제이든.
– 마커슨.
– 오디.
“야! 너무 성의들이 없는 거 아니냐? 좀 정성들여 좋은 글귀도 써주고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아. 기다려 봐.”
–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미생.
“미생? 오호. 한국인인가 봐?”
“그…렇지?”
“오호. 이거 마르쿠스 툴…뭐시기라는 사람이 말한 건데. 역시 사람 생각은 다 거기서 거기야. 한국과…마르쿠스가 어디 출신이지? 뭐. 서양이겠지. 암튼 동쪽과 서쪽으로 한참 떨어진 곳에서 미생과 마르쿠스가 같은 생각을 했다는 거 아니겠어. 정말 멋져. 이런 걸 동서양의 화합이라고 하지.”
“…”
“…뭐래?”
“몰라.”
“무시해. 무시.”
“하. 이런 무식한 것들. 그게 무슨 뜻이냐면 말이지…”
“나 아직 안 썼어. 비켜 봐.”
“어? 어.”
– 다음 빅뉴스는 언제쯤? 제이콥.
“으아하하하. 빅뉴스! 내가 뉴스를 수집하고 있지. 조금만 기다려. 곧 갑니다요.”
그렇게 우리는 알렉스의 휠체어를 빙 둘러싸고, 그의 주접을 견뎌내고 있었다.
잠시 후, 구세주가 나타났다.
“헤이 가이즈(Hey, Guys). 다들 와 줘서 고마워.”
“음식들 많으니까 많이 먹고 가. 다 우리 아빠 식당에서 만든 거야. 내가 만든 것도 있다고.”
“우와. 멋지다. 클로이.”
“헤헤.”
“아. 이거. 그냥 우리 다 같이 산거야. 졸업 축하해. 둘 다.”
“으하하. 고마워.”
우리 모두 5불씩 모아 한 다발에 13불씩 주고 산 꽃다발 2개.
13불짜리지만 제법 괜찮다.
헤일리와 클로이가 꽃처럼 환하게 웃는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