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8)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8화(8/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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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의 날갯짓은 3
내 표정 때문인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크게 웃었다.
미스 브루셀라마저도.
마이클 하워가 말을 이었다.
“무서워할 것 없단다. 가끔 지역의 특별한 어린이를 소개하기도 하거든. 집에서 해도 되고, 학교에서 해도 되고. 어디든 편한 장소로 하면 된단다.”
“뭐. 좋아요. 학교에서 하는 게 좋겠어요.”
안할 필요 있나.
범죄자도 아니고, 뉴스에서 1분이면 정말 별것도 아닌 것이다.
전생엔 가족들의 소식을 뉴스를 통해 아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단지 내가 뉴스에 나와 본 적은 없었기에 잠깐 얼빵했던 것 뿐이다.
“하하. 그래. 시원하니 좋구나. 학교에서라…그럼 인터내셔널 데이에 네가 발표하는 걸 찍는 건 어떠니? 그 후 간단한 인터뷰도 곁들이고.”
“네. 좋아요.”
내 허락이 떨어지자 마이클 하워는 곧바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교장샘이 자랑스럽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재임하는 동안 우리 학교 학생이 이렇게 좋은 일로 뉴스를 다 타다니. 정말 자랑스럽구나. 제이든.”
“고맙습니다.”
“이 책자들은 우리 학교만이 아니라 학군 전체 학교 도서관에 나눠질 거야. 그리고 동네 도서관에도 비치될 거고. 괜찮겠니?”
“네. 그럼요. 대신 저도 한권씩만 주세요. 기념으로 가지고 있게요.”
“물론. 당연하지. 2권씩도 된단다.”
그 말에 교장실은 다시 한번 웃음바다가 되었다.
별로 웃기진 않지만 같이 웃어줬다.
작은 책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반크에서 만든 독도에 대한 책자.
뒤쪽에 내용을 다운받을 수 있는 인터넷 주소도 적혀있네.
일정이 촉박해서 빨리 답변을 달라고 이메일을 적긴 했지만 이렇게 진짜 보내올 줄은 몰랐다.
역시 한국사람 인정많고, 성질 급한 건 알아줘야한다.
오늘 저녁엔 땡큐 이메일을 적어야겠다.
***
인터내셔널 데이.
학교 주차장에 학부모들의 차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몇 명은 할머니 나라의 전통복장을 입고 오기도 했다.
나도 한복을 입었으면 좋았겠지만 우리 집엔 그럴 여유까진 없다.
“와. 저거 방송국차야?”
“방송국에서 왜 와?”
“3학년들 오늘 인터내셔널데이 하잖아. 미스 브루셀라 반에서 하는 거 찍어간대. 제이든이 K-댄스를 춘다던가 그렇다던데?”
“진짜?”
“아니거든. 멍충아. 한국에서 제이든한테 보내준 책 못 봤냐? 동네 도서관에도 있더라.”
“나 봤어. 진짜 재미없더라.”
“맞아. 재미없었어. 근데 제이든이 한국에서 유명해? 그런 걸 왜 보내줘?”
“내 동생이 그러는데, 직접 연락해서 받았더라고.”
“대단하네. 제이든은 정말 특별해.”
“그건 그래.”
방송국 차량이 들어오자 아이들이 창가에 다닥다닥 붙어 구경하기 바쁘다.
뉴스에서 다른 학교 학생들이 나와서 인터뷰하는 건 본 적 있지만 이 지역에서도 변두리에 속하는 자신의 학교에 방송국 차량이 들어오는 건 처음이니까.
행사와 상관없는 4-5학년 학생들마저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행사가 시작되었다.
총 70여명에 해당하는 3학년들은 각자의 반에 들어가 학부모들 앞에서 발표를 시작했다.
나는 마지막 순서다.
원래는 라스트네임(성) 알파벳 순서대로 발표를 하는데, 방송을 위해 나는 뒤로 빠졌다.
방송국에서 내 차례만 찍고 빠지면 다른 학생들의 사기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걸 고려한 것이다.
멕시코, 아르헨티나, 영국, 러시아, 모로코, 프랑스, 예멘, 독일, 중국(할머니의 할머니가 중국인) 등등등.
백인들만 사는 시골 동네임에도 불구하고 역시 이민자의 나라답다.
뿌리를 파고드니 다양한 나라가 튀어나온다.
‘흠. 저건 좀 아닌데…’
서양의 다른 나라들의 역사와 문화는 사실 잘 모른다.
하지만 가까운 중국에 대한 건 좀 아는데, 역시나 틀린 것이 많다.
중국을 발표한 학생의 외모는 완전 백인이다.
저어기 윗대에 중국인의 피가 섞였을지라도 그 후엔 계속 백인들과 결혼한 것일 테다.
발표자 역시 중국에 대한 애정은 1도 없다.
선생님이 준 자료를 보고 대충 발표한 것일 뿐.
그나마 그의 할머니의 할머니가 LA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좀 특별했달까?
저걸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리고 마지막 나.
한국.
이번에 받은 자료들을 토대로 나는 멋들어지게 파워포인트를 꾸몄다.
내가 전생에 한량으로 놀기 바빴다해도 그래봤자 3학년들이다.
누구보다 멋진 자료가 나올 수밖에.
물론 기본적으로 선생님이 정해준 템플릿을 써야 해서 디자인 적으로는 눈에 띄지 않지만 내용 구성은 확실히 두드러진다는 말이다.
그리고 회사를 다니는 어른들은 그런 차이점을 한눈에 알아본다.
– 와아. 저게 3학년이 만든 자료라고?
– 우리 회사 인턴보다 나은 것 같은데?
– 내용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 전할 말이 무엇인지 확실히 인지시키는군.
.
.
.
어른들의 감탄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흠.
기분이 좋구나.
광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간다.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기분 좋게 발표를 시작했다.
– 한국은 5천년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현재는 전세계 12번째 경제대국으로….(중략)…남북한으로 나눠진 건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일본으로부터 해방되면서…(중략)…누군가는 알파벳 K를 한국에 뺏겼다는 말을 하며 K-Food, K-Pop, K-Game, K-Drama 등이라며 K everything이라는 말까지 하는데, 나는 이 말이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며…(하략). 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 –
– 와우! 브라보!
– 짝짝짝짝!
– 제이든. 멋지다!
.
.
.
진심어린 박수가 쏟아진다.
사실 ‘인터내셔널 데이’를 개최하는 이유는 ‘세상엔 이런 나라들도 있으니 간략하게라도 알아둬라’라는…일종의 계몽 차원의 뜻이다.
하지만 사실 그리 재미있는 건 아니다.
가끔 흥미로운 내용들이 있긴 하지만 각 나라의 역사 부분은 좀 지루하다.
그래서 가정사를 넣는다.
– 우리 할머니의 할아버지가 아일랜드에서 언제 미국에 왔고, 제일 처음 어디에서 정착했으며, 처음 왔을 땐 무슨 일을 했다. 그리고 아일랜드는 이런 나라 풍습과 언어를 쓰는 나라이며, 현재 세상에 떠돌고 있는 많은 우화나 전설들은 아일랜드에서 온 것이다. 등등
아일랜드라는 나라보다는 우리 반 학생의 뿌리가 어디인지가 더 흥미로운 상황.
부모니까 의무적으로 참석해 박수 한번 쳐 주고, 아이의 노고에 칭찬해 주는 것뿐 부모들도 사실 자신의 뿌리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관심도 없고.
하지만 나는 경우가 좀 다르다.
첫 번째로 내가 한국에서 입양되어 온 상태로 우리 가족 중에선 한국인 1세대니까.
엄마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이탈리아는 나 말고도 2가정이나 더 있었기에 나는 한국으로 한 것이다.
나에 대한 이야기는 할 것이 없다.
그러니 나는 한국에 대한 내용을 더 넣어야 했다.
그리고 그게 주효했다.
태권도 시범에 대한 20초 정도의 짧은 영상도 보여주고, 1950년대 한국의 사진과 현재의 사진, 조선시대의 궁중 의상과 한복 등을 보여주니 사람들의 눈이 초롱초롱해진다.
발표시간은 학생당 최대 7분.
어떤 학생은 3분만에도 끝나고, 어떤 학생은 7분을 넘겨 사람들이 하품을 하기도 한다.
나는 딱 7분 만에 끝낸 것이다.
사람들의 박수갈채에 인사를 하고는 자리로 돌아왔다.
– 딸깍.
교실의 불이 켜졌다.
중간에 휴식시간이 있긴 했지만 오랜시간 컴컴한 어둠 속에서 슬라이드만 바라보았던 사람들이 기지개를 켠다.
“카페테리아에 각 나라 음식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가셔서 맛 보시고 담소 나누시기 바랍니다.”
미스 브루셀라의 말에 우리는 모두 카페테리아로 이동했다.
나는 잠깐 교실에 남았다.
인터뷰를 위해서다.
리포터로 초록색 눈동자를 가진 예쁜 누나가 다가왔다.
“안녕. 제이든. 난 다니엘라야. 만나서 반가워.”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제부터 내가 몇 가지 물어볼 거야. 편하게 대답하면 돼. 괜찮겠니?”
“네. 괜찮아요.”
한쪽에서 엄마가 엄지를 치켜든다.
“오늘 한국에 대해 발표했지? 정말 멋진 프리젠테이션이었단다. 누가 도와준 거니?”
“미스 브루셀라 선생님께서 파워포인트 만드는 법을 알려주셨어요.”
“하지만 그건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인데?”
“전 다른 친구들도 다 잘했다고 생각해요. 전 조금 더 내용을 디테일하게 만든 것 뿐이죠.”
“어쩜. 겸손하기까지. 학교에 있는 한국에 대한 서적이 오래되어 자료를 직접 공수 받았다고 하던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물어봐도 될까?”
“말씀하신대로 서적이 30년 전이더라고요. 제가 2살 때 한국에서 왔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그 서적에선 제가 떠나기 전 기억하던 모습과 많이 달랐거든요. 그리고 요즘엔 인터넷만 봐도 한국에 대한 것들이 많이 나오는데, 책에 있는 것들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불과 2살 때의 일을 기억하는 것도 놀랍고, 책에 있는 내용이 부족해 한국 정부에 직접 연락해 자료를 받은 건 정말 놀라워. 정말 훌륭하구나.”
“고맙습니다.”
“제이든. 이건 마지막 질문인데. 너의 장차 꿈이 뭐니?”
“글쎄요. 아직 정확히 어떤 직업을 갖고 싶다 생각한 건 아니지만 약한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어요. 꼭 미국과 한국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의 약자들을 돕는 일이요. 그러려면…유엔이나 NGO, 유니세프 같은 국제구호기구에 들어가야겠죠. 돕는 일들도 의료, 교육, 생활 등의 분야가 있을 테지만 전 생활 쪽에 좀 더 중점을 두고 싶고요. 뭐. 그 전에 전 학생이니까 공부를 잘 해야겠죠. 헤헤.”
“와우. 내가 지금 초등학교 3학년이랑 인터뷰 하고 있는 게 맞니? 국제구호기관들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그 중에서도 하고 싶은 일이 아주 구체적이구나. 내가 3학년 땐 아무 생각 없이 놀기 바빴는데 말이지. 정말 네 꿈이 꼭 이루어지길 바란다.”
“감사합니다.”
인터뷰가 끝났다.
배고프다.
카페테리아엔 각국에서 온 나라들의 특산품들이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3학년 전체 학부모들이 자신의 아이가 맡은 나라의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다.
엄마는 뭘 준비했을까?
어제 물어보았을 때 ‘비밀’이라며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인터뷰가 끝나자 엄마가 어깨동무를 해 왔다.
“우리 아들. 정말 멋지다.”
“헤헤. 저 잘했어요?”
“어어. 오늘 저녁 뉴스에 난대. 나 오랜만에 네 할아버지 할머니 모두한테 전화했잖니. 심지어 리암한테도 연락했어.”
“하하. 잘하셨어요. 리암 삼촌 보고 싶네요.”
“그러게. 나도.”
“근데. 엄마.”
“어?”
“한국 음식은 뭐 준비했어요? 엄마 한국 음식 할 줄 아는 거 없잖아요.”
“호호. 가 보자고. 기대해도 좋아. 마트 아줌마한테 추천받은 거거든.”
뭘까?
진짜 기대된다.
그렇게 우리는 카페테리아에 들어섰고, 다행히 교장샘의 담화가 막 끝난 순간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교장 샘은 언제나 말이 많다.
카페테리아 전체의 세 개 면을 죽 둘러 길게 늘어져 있는 테이블들.
음식들 앞에는 해당 나라의 국기가 그려진 레터(A4) 사이즈 종이들이 아래로 늘어뜨려져 있었다.
저쪽 멀리 거꾸로 세워져 있는 한국 국기가 보인다.
어차피 큰 기대는 없었다.
세로로 된 걸 뽑지 않은 게 어디냐.
그리고 그 태극기의 위의 테이블에는 빨간색 박스가 여러 개 자랑스럽게 놓여있다.
‘오리온 초코파이’
또르르르…
우리 엄마는 무려 1시간 거리의 아시안 마켓에 가서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초코파이 10통을 사온 거다.
도대체 누가 추천을 한 거야?
엄마부터 교육을 시켰어야 했나?
어처구니가 없어 엄마를 쳐다보는데 엄마의 표정이 너무 당당하다.
웃음보가 터져버렸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