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7
엄마가 어디 좀 가자며 손을 잡아 끈다.
뭐든 엄마한테 맞춰 주기로 결정했기에 군소리 없이 따라갔다.
집에서 차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지역 커뮤니티 센터.
“제이든. 인사드려. 미스터 드와슨이야. 체스 클럽 선생님인데, 오늘은 간단하게 레벨 테스트만 할 거야.”
“어… 어머니?”
“응?”
“전 체스에 별로 관심이 없는데요?”
“제이든. 괜찮아. 엄마가 일하는 시간 조금 더 늘리면 너 가르쳐 줄 수 있어. 이 선생님은 특별히 미세스 켄달이 추천해 주신 선생님이야. 예전에 전국 체스 챔피언십에서 우승도 하셨다고.”
아니. 진짜로요.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냐고.
“미스터 패터슨. 네가 진짜 체스에 천재성이 있는지 아닌지는 내가 보고 판단할게. 나도 아무 제자나 받지는 않아.”
얼굴에 표정이 별로 없는 미스터 드와슨.
그래.
한번 둬 보는 거야 뭐.
“네. 한번 해 보죠, 뭐.”
“이쪽으로.”
미스터 드와슨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거기엔 이미 열명 정도의 아이들이 있었다.
딱 봐도 중학생 정도의 아이들.
방안에는 ‘ㄷ’자 모양으로 테이블이 구성되어 있었고, 바깥쪽으로 아이들이 각자의 앞에 체스판을 놓고 앉아 있었다.
미스터 드와슨이 나를 데리고 ‘ㄷ’의 안쪽으로 들어섰다.
“시작.”
가타부타 말도 없다.
바로 시작이다.
그러자 아이들이 아주 익숙하게 각자의 앞에 놓인 체스판의 말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미스터 드와슨이 내게 눈짓을 한다.
해보라는 뜻.
한 명씩 옆으로 옮겨가며 말을 움직였다.
말을 한번 움직일 때마다 한 칸씩 옆으로 이동해서, 혼자 10명을 모두 상대하는 것이다.
폰(Pawn)은 폰으로,
나이트(Knight)는 비숍(Bishop)으로 잡고,
또 룩(Rook)은 룩과 퀸(Queen)을 적절히 움직여서 잡고.
퀸은 어디든 갈 수 있으니 어떻게든 빨리 잡아 죽여야 한다.
‘근데 이거 왜 이렇게 쉽냐?’
킹(King)이 하나씩 넘어진다.
갑자기 너무 어린애가 들어와 자기들과 대련을 하는 것도 기가 막힌데, 실수 한 번에 퀸을 뺏기고, 당황하니 다음 번엔 킹이 넘어간다.
방문이 열려 있었기에 지나가던 이들이 들어와 구경하기 시작했다.
결국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한 고등학생의 킹 마저 넘어가자 곳곳에서 탄식이 쏟아졌다.
머리를 쥐어뜯는 고딩을 뒤로하고 미스터 드와슨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박수를 친다.
그러자 앉아있던 아이들도, 고개를 빼꼼 내밀며 구경하던 이들도 박수를 쳐 주었다.
감탄과 함께 어이없음이 함께 묻어나는 박수 소리들.
― 짝짝짝짝.
“미스터 패터슨. 천재가 맞았어. 조금만 더 다듬으면 전국대회에도 합류할 수 있을 것 같군. 다음 주부터 최상급반에 합류하도록.”
“헤헤. 감사합니다. 근데 저 안 할래요.”
“이유는?”
‘뭘 물어. 당연히 돈 때문이지.’
레슨비부터 대회 참가비까지, 잘하면 잘할수록 다른 주(State)로 원정경기까지 가야 한다.
물론 아주 탁월하게 잘 하면 돈 많은 누군가의 눈에 들어 장학금 혜택이나 생활비 보조를 받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사이 드는 비용은 충당할 방법이 없다.
이런 사실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낼 필요는 없지.
최대한 어린이다운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헤헤. 체스도 재밌긴 한데요. 아직은 레고랑 장난감 차 가지고 노는 게 더 좋아요.”
― 으하하하.
― 옳소!
주변에서 박장대소를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암. 킨더는 놀아야지.
어차피 아이비든, 아이비 할아버지든 대입 원서에 기입할 수 있는 활동은 9학년 때부터다.
8학년 때까지 각종 대회를 휩쓸며 날고 기어도, 본격적으로 대입 원서를 작성하는 프로그램인 커먼앱(Common app)에 넣을 수 있는 건 9학년부터의 활동들이다.
벌써부터 진 뺄 필요는 없다.
물론 중학교 때부터 서서히 시동을 걸긴 해야 하지만 굳이 킨더 때부터 그럴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게다가 세상 지루하기 짝이 없는 체스.
됐다고 본다.
그냥 이렇게 한 번씩 나보다 머리 큰 놈들 놀려먹는 재미만 느낄 수 있으면 족하다.
엄마가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고개를 흔들었다.
완강한 거절.
엄마가 표정으로 아쉬움을 토로하지만, 더 강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원래 말 잘 듣는 아이들이 한 번씩 부리는 똥고집은 부모도 못 꺾는 법이다.
엄마의 치맛바람이 일단은 사그라든 것 같았다.
* * *
어느덧 시간이 흘러. 나는 3학년이 되었다.
삶은 특별히 변한 게 없었다.
학교에선 아직 단 한 번도 ‘A―’조차 받아본 적 없는 우등생으로 모든 관계자들의 예쁨을 받고 있었다.
원래 조금 잘나면 질투하지만, 너무 잘나 버리면 질투도 하지 않는다.
그저 추앙할 뿐.
해맑기만 하던 친구들도 이제는 대충 ‘눈치’란 걸 탑재하기 시작했다.
딱히 변한 건 없었다.
나를 추앙하는 인간들이 더 늘어났을 뿐.
그리고 오늘은 한달 후 있을 인터내셔널 데이(International Day) 행사를 위한 준비 첫날이다.
3학년이 되면 하는 첫 번째 ‘뿌리찾기’ 행사라고 할 수 있겠다.
백인들도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은 어딘가에서 흘러왔으니 후손들이 고고조 할아버지 할머니의 나라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다국적 나라인 만큼 백인들만 모여 있다고 해도 선조들의 나라는 아주 다양했다.
독일에서 온 고고조할아버지에 이탈리아에서 온 고조할머니, 레바논에서 온 증조할아버지에 영국 할머니 등.
한 식구 사이에서도 족보가 꼬이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 경우 담임 샘은 선조들 중 좀 더 희귀한 나라에서 온 선조를 선택하도록 유도했다.
어쨌든 미국 역사도 잘 모르는 이곳 태생 3학년 아이들이 선조들 나라에 대해 발표를 하려면 자료 조사가 필수.
깐깐한 할머니 담임인 미스 브루셀라는 우리에게 총 10장의 파워포인트 자료를 만들라고 했다.
그러면서 던져 준 여러 참고 서적들.
‘이런 썅!’
난 한국에 대한 조사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담임 샘이 던져준 책자에선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되어 있는 건 애교 수준이었다.
안 그래도 자료도 별로 없는 데다, 얼마나 오랫동안 신간을 들이지 않았는지 완전 엉터리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 한국은 5천년 역사 동안 중국의 속국이었다가 1900년대 초반 잠깐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미국 덕분에 잠깐 해방되었다가 지금은 반으로 갈라진 나라. 50년 만에 급속도로 성장을 했지만, 성장 속도에 비해 시민 의식은 따라가지 못하는 나라. 아직도 개를 먹는 나라. 세계 최대 입양파견국. 등등.
봐 줄 수가 없을 정도다.
“미스 브루셀라. 이 책은 완전 잘못되었어요.”
“어떤 내용이 잘못되었다는 거지?”
“한국은 5천년 동안 독립된 나라였어요. 잠깐씩 중국과 일본에 침략당한 적은 있어도 늘 이겨냈다고요. 그리고 이 일본해도 동해라고 부르는 게 맞고요. 개를 먹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고 보면 되고요.”
나는 내가 아는 지식을 총동원해서 담임샘을 설득했다.
미스 브루셀라가 입꼬리에 비릿한 웃음을 말았다.
나비의 날갯짓은 2
학생들의 말이 틀렸다고 미리 가정하고 들을 때의 특유의 미소.
등골이 싸해진다.
이번 행사는 망한 것인가?
전생, 현생 한국인으로서의 의무감이 치솟는다.
“제이든. 이건 교육부에서 내려온 자료야. 네가 한국에서 온 것은 맞지만 한국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잖니? 그리고 우리는 해마다 이 책들로 행사를 치러 왔어. 이제껏 문제를 제기한 학생은 아무도 없었단다.”
“그거야 이제까지 한국인은 없었으니까요.”
“넌 한국계 미국인이지. 그 점을 잊지 마렴.”
“네. 미국 시민권자죠. 하지만 지금도 마켓에 가면 사람들은 저에게 ‘어디서 왔냐?’ 고 물어요. 아마 평생 그렇겠죠.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말이에요.”
“…….”
본인조차 내가 진정한 미국인이라 생각하지는 않으면서 입가에 은은한 가식적인 미소를 내내 띠운 채다.
“미스 브루셀라, 이 책의 출간 날짜 확인해 보셨어요?”
“출간 날짜?”
“이거 30년 전 자료예요. 한국은 지금 선진국이고요. K팝이니 K푸드니 하는 말들 들어보신 적 없으세요? 다른 나라를 조사하는 친구들 참고 서적들은 1―2년밖에 안 된 신간이에요. 근데 왜 한국 건 이렇게 오래된 걸 주시는 거죠?”
“제이든. ‘나라’라는 건 그리 빨리 변하는 것이 아니란다. 그 책이 30년 전 것이라 해도 문제될 건 없어. 네가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데는 충분하다는 소리야.”
“그럼 인터넷이라도 사용할 수 있게 허락해 주세요. 거기엔 제대로 된 내용들이 많이 있을 거예요.”
“그렇지 않아. 인터넷에 틀린 자료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니? 네가 알고 있는 게 잘못된 것일 가능성도 많단다. 네 말대로 한국이 그렇게 잘 살면 너는 왜 입양을 왔겠니. 선진국들은 아이들을 타국으로 입양 보내지 않아.”
어우. 답답해.
미국 깡통 시골엔 그 지역에서 나고, 그 지역에서 자라, 그 지역에서 죽는 사람들이 많다.
교회 할머니 중 한 명은 본인이 태어난 집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고 했다.
이사조차 한번 가 본 적이 없다고.
지은 지 100년 된 집은 발에 챌 정도로 많고, 200년 이상 된 것들 중엔 아예 ‘Landmark’를 찍어 함부로 수리조차 못 한다.
역사가 짧은 나라라 그런지 조금만 오래되고 묵으면 역사적 가치가 어쩌고 그러면서 좋아한다.
그만큼 편협된 사고를 지닌 사람들이 많다는 소리다.
미스 브루셀라는 내년에 은퇴를 한다.
결혼을 한 적도 없고, 자식을 낳은 적도 없다.
평생을 개를 키우며 가족처럼 지냈고, 현재도 집에 개 2마리와 함께 산다고 했다.
이 완고한 고집쟁이 할머니를 말로 설득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미국 사회는 개방적인 듯 보이나 의외로 보수적이다.
특히 사회 예절이나 매너에 대한 교육이 엄격한 편인데, 나이가 어릴수록 그 강도가 높다.
초등학생 저학년일수록 학교 규율이 빡세고, 중학교, 고등학교로 진학할수록 조금씩 풀어 주는 형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 때는 이유 없이 친구를 터치한다든지, 도시락을 나눠 먹는다든지 등이 허락되지 않지만, 고등학교쯤 되면 친구들끼리 음식을 나눠 먹기도 하고, 가볍게 툭툭 치기도 하는 것들 말이다.
이런 분위기상 초등학생 3학년이 선생에게 더 이상 무례하게 굴 수는 없었다.
아시안이 많은 서부나 동부 쪽은 촌지도 있고, 치맛바람도 존재한다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다.
물론 백인들의 치맛바람도 무시할 수준은 아니지만, 아시안들과는 종류가 좀 다르다.
이쪽의 치맛바람은 주로 운동 쪽에서 두각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나는 현 상황을 타개할 방안을 찾아야 했다.
일단은 자리로 돌아와 최대한 전생의 지식을 활용해서 파워포인트를 작성해 나갔다.
뼛속까지 한국인임에도 생각보다 한국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가장 기본적인 한글 창제 세종대왕, 왜적을 무찌른 이순신 장군, 태권도, 삼성이나 현대, 엘지 같은 제법 큰 기업들, 유명 영화와 드라마 몇 개, BTS나 블핑 같은 가수들 몇…
그러고 나니 쓸 게 없네.
이럴 줄 알았으면 국뽕 비디오라도 자주 볼걸 그랬다.
밑천이 금방 드러난다.
아무래도 한국인의 저력을 발휘할 때가 된 것 같다.
* * *
그날 저녁.
식사 시간에 일부러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역시 곧바로 반응이 온다.
엄마가 식사를 하다 숟가락을 놓는다.
“제이든,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아니에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얼굴에 다 써 있는데. 또 누가 괴롭히니?”
“…….”
“무슨 일인데? 엄마가 할 수 있는 거 다 해 줄 테니, 말 해봐.”
“그게요. 엄마…”
나는 낮에 있었던 일을 엄마에게 최대한 자세하게 꼰질렀고, 엄마는 금방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제이든. 엄마가 말했지? 엄마도 그 선생님한테 배웠다고. 그래도 그땐 젊어서 그런가 지금처럼 이상하진 않았는데. 세상이 얼마나 빨리 변하는데. 이래서 사람은 계속 배워야 해. 안 그럼 내가 아는 세상이 전부인 줄 안다니까. 결국 그런 꼰대 같은 할머니가 되는 거라고.”
음…
반응이 좀 세게 나오시네.
뭔가 본인이 맺힌 게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번에 안 사실은 백인들 사이에서도 차별이란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미국 이민 초창기땐 아이리쉬(Irish)나 이탈리아계통이 제일 서러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아이리쉬들은 떠돌이 생활을 하는 집시들이 많았던 까닭이고, 이탈리아 계통은 저소득 노동자 계층의 이민자들이 많아서였다고.
다음으로 독일계나 러시아에서 떨어져 나온 동유럽 계통이 차별을 좀 받고, 가장 싫어하면서도 함부로 못 하는 백인 계통은 이스라엘 후손인 쥬이쉬(Jewish) 들이라 할 수 있다.
영국 귀족 출신들이 가장 대우를 받는 편이고.
엄마는 이탈리아 계통이다.
그리고 이 동네는 백인이 97%다.
그들끼리의 차별이 아직도 아주 조금은 잔존한다고 볼 수 있다.
“엄마. 그래서 말인데요. 제가 좀 해결을 해 볼까 하는데. 나중에 수습 좀 해 주시겠어요?”
“어떻게 하려고?”
“대사관에 연락해 보려고요.”
“대사관? 무슨 대사관? 한국 대사관? 어떻게?”
“컴퓨터만 쓰게 해 주세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당연히 학교 일인데 써도 되지. 근데… 그 사람들이 도와 줄까?”
“도와 줄 거예요. 그리고 일이 잘되면 나중에 미스 브루셀라가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여론만 좀 조성해 주세요.”
“…그래. 해 봐. 네가 하는 일인데 나도 도와야지. 대신 컴퓨터는 2시간 이상은 안 된다. 눈 나빠져. 애들은 나가서 놀아야 해. 그래야 키도 크고, 잠도 잘 자는 거야.”
“네. 엄마. 걱정 마세요.”
엄마도… 꼰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