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9)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9화(9/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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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의 날갯짓은 4
그날 저녁.
방송이 나갔다.
그리고 다음날은 토요일이었다.
안 그래도 작은 덩치다.
쉬는 날엔 무조건 나와서 뛴다.
아파트 산책길은 우리집 3층에서 내려다보면 다 보이기에 엄마가 특별히 허락을 해 준 것이다.
그리고 우리 아파트에는 노인들이 많이 산다.
은퇴 후 정원이나 집 관리가 힘들 지경에 이르면 살던 집을 팔고, 그 돈으로 죽을 때까지 이 아파트에 살려고 들어오는 것이다.
거동만 가능하면 요양시설보다는 훨씬 싸고, 방문객들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니까.
그래서인지 아파트 1층엔 항상 병원 냄새가 난다.
늙고 병든 이들이 주로 1층에 살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한번씩 산소공급차가 들어오고, 휠체어를 탄 사람들도 많으며, 비가 오는 날엔 아파트 복도를 지팡이 짚고 왔다갔다하며 재활운동을 하는 이들도 있다.
아파트 복도는 언제나 적당한 높이의 카펫이 깔려있다.
아파트는 제법 오래되었지만 엘리베이터를 제외하곤 있을 건 다 있고, 값은 주변시세보다 약간 저렴한 편이다.
젊은 사람들도 몇 있지만 그들 역시 주로 저소득층 가족이나 싱글맘들이 많다.
내가 사는 동네가 인구 구성 변동이 워낙 적은 곳인 까닭이다.
그리고 이곳 주민들은 페이스북을 많이 한다.
노안(老眼) 때문에 책은 읽고 싶어도 오래 읽지 못하고, 텔레비전을 종일 틀어놓긴 하지만 집중해서 보는 시간은 1-2시간 정도밖에 안 된다.
나머지 시간동안엔 북클럽부터 뜨개질 모임, 성경공부 모임 등등이 있다.
아파트 1층 게시판에 자주 붙어있는 공고사항이기에 잘 안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으면 창밖을 쳐다보며 누가 주차장으로 지나가는지, 오늘 수영장엔 누가 나가 있는지 등등을 관찰하고, 그것마저 지겨워지면 페이스북을 한다.
주로 성경구절이나 예쁜 사진들, 재미있는 동영상 등을 올리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오늘 이 아파트의 주인공은 나인 것 같다.
아파트에 내 나이또래의 아이는 몇 명 없다.
그리고 아시안은 나 혼자다.
즉, 이 아파트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안다는 뜻이다.
한참 뛰고 있는데 1층 창문이 열린다.
“하이. 제이든. 뉴스 봤단다. 머리에 젤을 바르지 그랬니.”
“아. 안녕하세요. 해나. 젤은 좀 불편해서요.”
“불편해도 뉴스에 나오는 건데 참았어야지. 그래도 말은 정말 잘 하더구나. 리사가 그렇게 말하라고 했니?”
“아. 그건 아니고요. 제가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한 거예요.”
그렇게 한 칸을 지나치면 또 누가 인사를 한다.
“제이든! 201호 타일러 알지? 타일러 아들의 친구의 동생이 다니엘라야. 다니엘라가 하는 방송은 전부 페이스북에 올리거든. 어제 이 아파트 노인들 다 모여서 봤어. 네가 이 아파트 사는 게 자랑스럽구나.”
“감사합니다.”
또 한칸을 지나쳤다.
2층 창문이 열린다.
“링컨 교장이 신났겠어. 걔가 공명심이 있어서 어릴 때부터 그런 거 아주 좋아하거든. 너한테도 좋다하지?”
“아. 그러시구나.”
힘들다.
저쪽으로 돌아가면 할머니들이 토요일 아침 성경공부 모임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발걸음을 돌리는데, 딱 걸렸다.
이 아파트 오피스 레이디이자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안내를 맡고 있는 미세스 베서스.
한마디로 이 동네 할머니계의 홍반장이라 할 수 있겠다.
“제이든! 이리로 와 보렴.”
“네.”
“이거 가져가렴. 너네 엄마가 오늘 우리 모임에 초코파이를 가져다줬잖니. 그게 한국 전통 과자라면서? 멕시코 초코파이와 정말 똑같더구나. 어쩜 그렇게 먼 나라들끼리 전통 음식이 같을 수가 있니? 아무튼 이거…”
“아. 그건 엄마가 잘못 아신 거예요. 한국엔 카카오나무가 없기 때문에 옛날엔 초코파이를 만들 순 없었어요. 떡이나 유과 같은 게 진짜 전통과자인데…다음에 아시안 마켓 가면 하나 사다 드릴게요.”
“오. 그래줄래? 넌 어쩜 어릴 때 왔다면서 그런 것도 아니? 정말 총명해. 암튼 이건 내가 답례로 만든 브라우니야. 이거 가져가서 엄마랑 먹으렴.”
“감사합니다.”
“그래. 내일 꼭 교회 나오고.”
“…네.”
이 와중에 전도도 꼭 하는 미세스 베서스.
안 그래도 그만 뛰려고 했는데 잘 됐다.
지퍼백 하나 가득 넘겨주는 브라우니가 제법 무겁다.
집으로 가니 엄마가 외출 준비를 한다.
일하러 가는 것이다.
“오늘은 일찍 들어왔네? 그건 뭐니?”
“미세스 베서스가 주신 브라우니예요. 엄마. 다음에 시간되면 아시안 마켓에 저랑 같이 가요. 한국 전통 과자를 선물하고 싶어서요.”
“그래그래. 초코파이가 한국 전통 과자가 아니라니. 그 중국인 아줌마가 한국 대표 과자라고 했는데 말야.”
“하하. 대표 과자이기는 해요. 군대가면 다 먹거든요. 암튼 담엔 꼭 같이 가요.”
“그래. 엄마 일 갔다 올게. 누가 벨 눌러도 절대…”
“열어주지 말고! 안에 사람이 있는 척도 하지 말고! 누가 문을 따려고 하면 화장실 클로짓에 들어가서 꼭 숨어있기. 됐죠?”
“호호. 그래. 오늘은 6시간은 일 해야 해서 좀 늦을 거야. 밥 잘 챙겨먹을 수 있지?”
“그럼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저 컴퓨터 좀 쓸게요.”
“그래. 이상한 거 뜨면 바로 꺼버리고. 보호 프로그램을 깔아두긴 했지만 요즘 워낙…”
“아이고. 어서 가세요. 늦겠어요.”
엄마는 원래 내가 학교에 가 있는 시간에만 일을 했었다.
12살 아래는 혼자두면 경찰에 리포트 된다는 말이 속설처럼 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베이비시터를 구하면 되지만 시터의 시간당 금액이 엄마가 일하는 시간당 금액과 차이가 없다.
그래서 엄마는 항상 일하는 시간을 조절하느라 애를 먹었다.
내가 살고 있는 주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정확한 정보를 뒤졌다.
찾아보니 사실과 달랐다.
‘아이가 혼자 있을 수 있고, 혼자 있다는 걸 충분히 인지하는 상황에서는 나이에 상관없다. 다만 12세 이하는 보호자가 함께 있기를 권고한다.’는 사항이 있었을 뿐.
그걸 근거로 엄마를 설득했다.
시간에 구애받지 말고 일하고 싶을 때는 하라고.
특히 주말이나 빨간 날에는 수당이 평소의 2배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엄마는 요즘 주말 알바를 더 선호하는 중이다.
같이 있어주지 못해 미안해하면서도 내가 점점 커가면서 앞으로 들어갈 돈을 미리 준비하는 듯 하다.
사실 초등학교 때는 공교육을 받기 때문에 어릴 때보다 들어가는 비용이 더 적은데도 부모 마음은 또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나대로 엄마의 젊은 시절이 저렇게 지나가는 것이 안타깝다.
평생 동안 갚아야 할 큰 빚이다.
***
며칠 전 학교에서 받은 서류를 꺼내들었다.
아직 엄마에게 보여주진 못했다.
4학년부터 시작되는 음악프로그램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 결정하는 서류들이다.
우리 학교는 4학년 때부터 음악 수업이 총 4개로 나눠진다.
스트링 오케스트라,
심포니 밴드,
코러스,
일반 뮤직.
스트링 오케스트라는 오직 스트링으로 된 현악기를 말하는 것으로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가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 심포니 밴드는 나머지 악기들로 구성된 것으로 입으로 부는 관악기들이 주를 이룬다.
플롯, 오보, 트럼펫, 색소폰, 트럼본, 바순, 프렌치혼 등등.
퍼커션(percussion)이라고 두드리는 악기들도 여기에 들어간다.
실로폰부터 드럼, 탬버린, 벨 등등.
밴드의 주는 관악기들이고, 퍼커션은 그들을 받쳐주는 역할을 하는데 여러 가지를 모두 다룰 줄 알아야 한다.
코러스는 합창.
그리고 일반 뮤직은 악기를 하지 않는 아이들이 선택하는 종목이다.
돈과 시간.
퍼커션을 제외한 악기는 악기점에서 빌리거나 사야하고, 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려면 레슨은 필수이며, 합창은 옷이라도 맞춰야 한다.
일반음악은 하고 싶지 않다.
현악기는 보통 3-4살이면 시작한다.
무엇보다 나는 줄을 이용해 연주하는 악기들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서류를 한참 뚫어지게 쳐다보다 결정을 내렸다.
밴드를 해야겠다.
담당 선생님인 미스터 에멋에게 이메일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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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미스터 다니엘 에멋.
나는 3학년에 재학 중인 제이든 패터슨입니다.
4학년 음악프로그램으로 밴드부에 들어가고 싶은데, 혹시 학교에서 빌릴 수 있는 악기가 있을까요?
가정형편상 악기점에서 악기를 대여할 수는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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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점에서 빌리기가 어렵고, 비싸고, 관리가 어려운 악기들은 학교에서 빌려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중 하나를 다룰 줄 안다.
악기만 있으면 중학생 악기 대회를 나가라고 해도 나갈 수 있을 정도로 잘 한다.
다만 그 악기를 사려면 중고라도 6천불(대략 800만원)은 있어야 한다.
기다려보기로 했다.
***
목요일 아침.
학교 복도를 지나는데 미스터 에멋이 저쪽에서 나에게 손짓을 한다.
음악 선생님보다는 체육선생님이 더 어울릴 것 같은 풍채를 지닌 중년의 남자다.
“제이든.”
“네.”
“점심시간에 밴드부에 들르거라.”
“네.”
점심을 먹자마자 잽싸게 찾아갔다.
여러 악기들이 밴드부 벽면으로 주르륵 진열되어 있었다.
성격 깔끔하시네.
이래서 사람은 편견을 가지면 안 된다.
불곰 같이 생겨서 왠지 정리하곤 거리가 멀어 보였는데.
미스터 에멋이 파란색 종이를 2장 건네준다.
“이건 네가 빌릴 수 있는 악기 리스트이고, 이건 학교에서 악기를 빌린다는 부모님 동의서다. 내일까지 결정해서 가져와.”
“네.”
앗싸!
학교에서 빌릴 수 있는 악기는 딱 2개.
내가 원하는 악기가 그 중에 있었다.
눈물이 날 정도다.
레슨 안 받아도 된다.
전생엔 돈 때문에 힘들어 본 적이 없어 돈이 없다는 것이 이런 것인 줄 몰랐다.
무엇을 하든 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마음은 지금이 더 평안한 걸 보면 역시 사람은 사랑을 먹고 사는…쿨럭.
암튼 난 지금 상황도 나쁘진 않다.
좀 불편할 뿐.
***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한 후 요리를 시작했다.
냉동실에 있는 닭 가슴살을 꺼내 에어프라이기에 화씨 400도로 1시간 돌리고, 야채 모듬은 대충 3번 정도 씻고.
이제 냉장고에 있는 시장표 소스만 뿌리면 오늘 저녁은 끝이다.
요리라는 게 생각보다 귀찮더라.
미식가 어쩌고 하면서 어깨에 힘 좀 주고 살았을 때는 남이 해 준 요리를 먹을 때였다.
고긴데 어떻게 먹든 무슨 상관이랴.
시리얼이나 에너지 바 아닌 게 다행이지.
때마침 엄마가 들어온다.
식탁에 차려진 두 개의 그릇을 보고는 반색을 한다.
“우와. 제이든. 오늘도 요리한거야. 진짜 고마워. 오늘 좀 힘들었거든.”
“무슨 일 있었어요?”
“어. 완전 진상진상 상진상을 만났지 뭐니. 일단 씻고 옷 갈아 입고 올게. 잠깐만 기다려~”
“네.”
식사를 하면서 엄마는 오늘 만난 상진상 고객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나는 대충 들었다.
킨더나 1학년 때는 그러지 않더니 3학년이 되자 부쩍 내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는 엄마.
외로운 것이겠지.
식사가 끝난 후 엄마에게 밴드부 서류를 내밀었다.
“아. 맞다. 이거 할 때 됐지? 뭐 하고 싶은 악기 있어?”
“네. 바순(Bassoon) 하려고요.”
“바순? 그거…음…”
쉽게 말을 못하고 늘어뜨리는 엄마.
엄마는 학교 다닐 때 일반음악을 했다고 한다.
친구들이 오케스트라나 밴드 콘서트로 바쁠 때 많이 부러웠다고.
“엄마. 악기는 밴드부 선생님이 학교에서 빌려줄 수 있대요. 그리고 처음 6개월은 레슨도 해 주시겠다고 했고요.”
“어머! 진짜?”
“네. 그런데 리드(reed)는 사야해요. 한 달에 하나 정도면 될 것 같은데…”
“그. 그럼.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지. 근데…그 리드는 얼마나 하는지 아니? 바순이란 악기가 워낙 비싼 거라…”
“하나에 15불이래요. 아껴서 쓸게요.”
“15불? 진짜? 그것밖에 안 해?”
“네. 소모품이잖아요.”
“그 정도면 당연히 해 줄 수 있지. 와. 너무 멋있다. 우리 아들이 바수너라니.”
“하하. 아직 아니고요. 여기 사인해 주세요. 엄마.”
“그래그래.”
엄마의 사인이 들어간 서류.
속으론 걱정이 되겠지.
학교 밴드 선생님의 주 전공은 프렌치 혼(French Horn).
밴드 선생이라 대부분의 악기들을 조금씩은 다룰 줄 알겠지만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따로 개인 레슨을 받아야 할 것이니.
4학년의 첫 레슨이 시작되면 엄마의 근심도 덜겠지.
그때까지 입 다물고 있기가 참 어려울 것 같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