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10
기다려 보기로 했다.
* * *
목요일 아침.
학교 복도를 지나는데 미스터 에멋이 저쪽에서 나에게 손짓을 한다.
음악 선생님보다는 체육 선생님이 더 어울릴 것 같은 풍채를 지닌 중년의 남자다.
“제이든.”
“네.”
“점심시간에 밴드부에 들르거라.”
“네.”
점심을 먹자마자 잽싸게 찾아갔다.
여러 악기들이 밴드부 벽면으로 주르륵 진열되어 있었다.
성격 깔끔하시네.
이래서 사람은 편견을 가지면 안 된다.
불곰 같이 생겨서 왠지 정리하곤 거리가 멀어 보였는데.
미스터 에멋이 파란색 종이를 2장 건네준다.
“이건 네가 빌릴 수 있는 악기 리스트이고, 이건 학교에서 악기를 빌린다는 부모님 동의서다. 내일까지 결정해서 가져와.”
“네.”
앗싸!
학교에서 빌릴 수 있는 악기는 딱 2개.
내가 원하는 악기가 그중에 있었다.
눈물이 날 정도다.
레슨 안 받아도 된다.
전생엔 돈 때문에 힘들어 본 적이 없어 돈이 없다는 것이 이런 것인 줄 몰랐다.
무엇을 하든 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마음은 지금이 더 평안한 걸 보면 역시 사람은 사랑을 먹고 사는… 쿨럭.
암튼 난 지금 상황도 나쁘진 않다.
좀 불편할 뿐.
* * *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한 후 요리를 시작했다.
냉장고에 있는 닭 가슴살을 꺼내 에어프라이기에 180도로 20분 돌리고, 야채는 대충 3번 정도 씻고.
이제 냉장고에 있는 시장표 소스만 뿌리면 오늘 저녁은 끝이다.
요리라는 게 생각보다 귀찮더라.
미식가 어쩌고 하면서 어깨에 힘 좀 주고 살았을 때는 남이 해 준 요리를 먹을 때였다.
하긴, 닭 가슴살도 고긴데 어떻게 먹든 무슨 상관이랴.
시리얼이나 에너지 바 아닌 게 다행이지.
때마침 엄마가 들어온다.
식탁에 차려진 2개의 그릇을 보고는 반색을 한다.
“우와. 제이든. 오늘도 요리한 거야? 진짜 고마워. 오늘 좀 힘들었거든.”
“무슨 일 있었어요?”
“어. 완전 진상진상 상진상을 만났지 뭐니. 일단 씻고 옷 갈아입고 올게. 잠깐만 기다려~”
“네.”
식사를 하면서 엄마는 오늘 만난 상진상 고객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나는 대충 들었다.
킨더나 1학년 때는 그러지 않더니 3학년이 되자 부쩍 내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는 엄마.
외로운 것이겠지.
식사가 끝난 후 엄마에게 밴드부 서류를 내밀었다.
“아. 맞다. 이거 할 때 됐지? 뭐 하고 싶은 악기 있어?”
“네. 바순(Bassoon) 하려고요.”
“바순? 그거… 음….”
쉽게 말을 못 하고 늘어뜨리는 엄마.
엄마는 학교 다닐 때 일반 음악을 했다고 한다.
친구들이 오케스트라나 밴드 콘서트로 바쁠 때 많이 부러웠다고.
“엄마. 악기는 밴드부 선생님이 학교에서 빌려줄 수 있대요. 그리고 처음 6개월은 레슨도 해 주시겠다고 했고요.”
“어머! 진짜?”
“네. 그런데 리드(reed)는 사야 해요. 한 달에 하나 정도면 될 것 같은데….”
“그. 그럼.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지. 근데… 그 리드는 얼마나 하는지 아니? 바순이란 악기가 워낙 비싼 거라….”
“하나에 15불이래요. 아껴서 쓸게요.”
“15불? 진짜? 그것밖에 안 해?”
“네. 소모품이잖아요.”
“그 정도면 당연히 해 줄 수 있지. 와. 너무 멋있다. 우리 아들이 바수너라니.”
“하하. 아직 아니고요. 여기 사인해 주세요, 엄마.”
“그래그래.”
엄마의 사인이 들어간 서류.
속으론 걱정이 되겠지.
학교 밴드 선생님의 주 전공은 프렌치 혼(French Horn).
밴드 선생이라 대부분의 악기들을 조금씩은 다룰 줄 알겠지만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따로 개인 레슨을 받아야 할 것이니.
4학년의 첫 레슨이 시작되면 엄마의 근심도 덜겠지.
그때까지 입 다물고 있기가 참 어려울 것 같다.
이사 1
이곳의 여름 방학은 길다.
학년의 시작이 8월 말에 시작을 해서 6월 초에 끝이 난다.
보통 6월 첫 주 그러니까 6월 2일이나 3일이 금요일이면 그때가 학년이 끝나는 날인 것이다.
그러면 8월 말까지 3달간의 긴 여름 방학이 시작된다.
누구는 손 하나가 아쉬운 여름의 농경기 때는 작은 고사리 손이라도 필요한 법, 여름 동안엔 아이들을 학교를 보내지 않는 집이 많아지면서 아예 방학을 했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라 했다.
반면 추수가 끝나 할 일이 없는 추운 겨울엔 방학이 짧다.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새해까지 길어야 2주가 전부다.
아무튼 오늘은 3학년이 끝나는 날이다.
긴 여름 방학이 시작되는 첫날.
오전 수업만 하고 집으로 왔다.
킨더 때도, 1학년 때도, 2학년 때도…
차라리 한국의 학원이 그리워질 정도.
혼자서 어딜 나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차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곳이니.
바쁘고 힘든 엄마를 졸라 여행을 가자고 할 수도 없었다.
결국 엄마 시간이 날 때마다 도서관으로 가 엄청난 양의 책을 빌려다 읽었을 뿐.
우리 동네 도서관은 한 번에 50권까지 책을 빌려 준다.
미디어에 괜히 연령 제한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엄마의 단호한 결정에 책의 선택 역시 청소년 수준을 넘어갈 순 없었다.
판타지는 물론이고 웬만한 다큐멘터리 책까지 섭렵을 했을 정도.
논픽션(Non―fiction)은 내 분야가 아니라고요.
컴퓨터나 텔레비전 시청은 하루에 3시간이 맥시멈이다.
살짝 반항도 해 봤지만 역시 엄마는 핵꼰대였다.
눈도 나빠지고, 머리도 굳고, 자세도 나빠지고… 블라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일하러 간 사이엔 마음껏 사용하긴 했지만, 확실히 어린 육체로는 오래 앉아 있는 게 힘들긴 했다.
‘올 여름엔 또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나.’
오만 생각에 잠겨 터덜터덜 집으로 들어왔더니 어떤 키 크고 잘생긴 아저씨가 어색하게 손을 흔든다.
‘오호. 남자?’
“안녕. 제이든.”
“안녕하세요.”
“나 기억하겠니?”
“어…엄마 남자친구? 뵌 적이 없는 것 같은데.”
“하하하. 리사, 나더러 너 남자친구냐고 묻는데?”
“뭐? 하하하, 제이든!”
엄마가 생전 안 입던 드레스에, 목걸이, 귀걸이 등의 장신구까지 장착하고는 방에서 나왔다.
“와. 엄마, 예뻐요.”
“그래? 진짜 예뻐?”
“네. 저야 늘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죠. 저 오늘 방학했거든요. 컴퓨터만 쓰게 해 주면 혼자서도 잘 노니까 두 분은 데이트 잘하고 오세요.”
“으하하하하. 리사, 도대체 애를 어떻게 키운 거야?”
남자가 숨이 넘어간다.
얼굴까지 빨개지는 걸 보니 진짜 남친이 아닌 모양이네.
남사친인가?
어무이. 실망입니다.
난 진심으로 두 사람 응원해 줄 수 있는데.
“그럼 누구신데요?”
“제이든. 냉장고에 붙은 사진 못 봤어?”
“냉장고? 어… 리암 삼촌?”
“그래. 리암이잖아.”
“아. 사진이랑 좀…달라서 못 알아봤어요. 죄송해요. 삼촌.”
“하긴. 너 입양됐을 때 딱 한번 보고 그 뒤론 본 적이 없으니 애가 모를 수밖에. 아니다. 전남편이랑 이혼할 때도 한번 보긴 했는데? 3살 때였나? 와. 리암. 이제 알겠냐? 니가 얼마나 무심했는지?”
“미안. 미안. 그래서 이렇게 찾아왔잖아.”
엄마가 설명을 해 주는 듯하더니 결국 삼촌에게 타박이 간다.
어쩐지 좀 닮은 것도 같더라니.
며칠 있음 나의 9살 생일이다.
새로 태어났는데도 시간은 정말 잘도 간다.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지.
아무튼 리암 삼촌은 내 기억엔 없다.
그래도 엄마가 가족 중 나 이외에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는 사람이니 반갑기는 하네.
“정식으로 인사할게. 반갑다. 제이든. 나 리암 패터슨이야. 네 삼촌이지.”
“반가워요. 삼촌. 그런데 엄마랑 어디 가요?”
“어. 리암이 저녁으로 멋진 레스토랑을 예약했대. 가자.”
“저도요?”
“당연한 걸 묻는구나. 아무렴 우리가 너만 떼 놓고 둘이서 밥을 먹겠니?”
“아. 근데 저녁이라면서요. 지금 점심시간인데?”
“리암이 그 전에 갈 곳이 있대. 거기 간 후에 조금 이른 저녁 먹자고 하네?”
“어디요? 할머니 집이요?”
‘앗! 실수!’
무심결에 나온 말이었다.
아들과 딸이니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갈 수도 있는 거잖아.
순식간에 리암의 표정이 딱딱해졌다.
동시에 나와 엄마는 삼촌의 눈치를 살폈다.
* * *
내가 아직 킨더였을 때.
엄마는 무슨 일엔가 엄청 열이 받았고, 본인의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 혼자서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했는데도, 엄마는 나를 할머니 집에 맡겼다.
할머니는 떨떠름해 하면서도 나를 맡았다.
물론 그 후론 방치됐지만.
5시간 쯤 후.
새벽 1시쯤 되었을까?
어린 육체는 잠을 자야 했던 시간이었고, 나는 잠결에 누군가가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 내용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엄마는 왜 나한테 미안하다고 안 해?”
“내가 왜 너한테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데? 네가 나한테 미안해해야지. 내 핏줄도 아닌 애를 5시간이나 봐 주고 있는데.”
“아직도 제이든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그걸 말이라고 해? 난 입양하는 사람들 하나도 좋게 보이지 않아. 그거 다 나라에서 돈 빼먹으려고 그러는 거지. 안 그래? 입양하면 나라에서 돈 주잖니?”
“누가 그딴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해! 나 공돈 받는 거 없어. 내 힘으로 떳떳하게 내 새끼 키우는 거라고. 엄마는 아직도 엄마 잘못을 몰라. 엄마 때문에 리암까지 떠났잖아!”
“그게 왜 나 때문이야! 네가 처신을 잘못해서란 걸 진짜 몰라서 그래?”
“으아아아악! 엄마는 어떻게 아직까지 그렇게 말할 수 있어? 그 새끼가. 아빠가 데려온 그 새끼가 나를 만졌다고. 나를 덮칠려고 했다고! 리암이 아니었으면 그때 내가 어떻게 됐을 거 같아? 진짜 몰라서 그래?”
“니가 옷 꼬라지를 그렇게 입고 있었으니까 그렇지. 아무리 집이라도 남자 형제가 있으면 단정하게 입고 있어야 했었어!”
“내가. 내가 엄마 친자식이라고! 그 자식은. 엄마 말대로 엄마랑 피 한 방울 안 섞였어. 혹시 새아버지가 엄마를 떠날까 봐 무서워서 그런 거야?”
“…그래. 그랬다. 먹고 살기 막막해서. 나 혼자 니들 둘을 어떻게 키워? 그리고 막말로 나한테 니들 둘만 있어? 니들이 똘똘 뭉쳐 못살게 구는 헤이든도 있어.”
“우리가 언제 헤이든을 못살게 굴었어? 엄마가 새아버지랑 낳은 자식이니 두 사람이 책임지라는 게 잘못이야? 그리고 걔한테 형제가 우리만 있어? 새아버지 자식들도 있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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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말싸움은 1시간이 넘도록 이어졌다.
미국 사람들 총 맞을까 봐 큰 소리 내지 않고 조곤조곤 싸우는 걸로 유명하지만, 집구석으로 들어오면 또 다르다.
열 받으면 소리도 지르고, 물건도 던지고…
더 하면 손찌검도 한다.
그 와중에 경찰도 오지만.
사람 사는 거 어디나 비슷하다.
엄마와 삼촌은 어린시절 2주씩 할머니와 할아버지 집을 번갈아 가며 지냈다고 한다.
친할머니는 부자인 새할아버지의 눈치를 많이 봤고, 친할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아예 관심이 없었으며, 새 할머니는 두 사람을 모질게 대했다.
누구 하나 용돈을 주지 않는 건 당연했다.
덕분에 엄마와 삼촌은 15살 때부터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일을 했고, 엄마는 18세 생일 다음 날 작은 아파트를 얻어 삼촌과 독립했다고.
그래도 새할아버지가 보증을 서 주었기에 아직까지 서로 연락은 하고 사는 거다.
엄마와 4살 차이가 나는 삼촌 리암은 4년 동안 누나의 보살핌 속에 자라며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졸업하자마자 이 도시를 떠나 버렸다.
그 후엔 엄마의 결혼식과 나의 입양, 그리고 엄마의 이혼 때만 찾아왔었다고.
리암 삼촌이 이 집을 떠난 진짜 이유를 알고는 두 사람이 너무 안쓰러워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던 기억이 난다.
전생의 나도 참 안쓰러웠는데, 이 둘은 그 와중에 수중에 쥔 것도 없으니 그 삶이 얼마나 비참했을까 싶어서.
엄마는 내가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걸 모른다.
* * *
내가 나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자 이번엔 엄마와 삼촌이 나를 쳐다본다.
“너. 왜 우리 눈치를 봐? 뭐 아는 거라도 있는 거야?”
“알기는 무슨. 그냥 삼촌이 외갓집 가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엄마도 자주 안 가잖아요. 크리스마스 같은 때 가도 금방 돌아오고. 그래서 그냥 눈치로 아는 거죠. 애라고 뭐 눈치도 없는 줄 아세요? 아님 뭐. 말 못 할 다른 사정이라도 있는 거예요?”
“…아니. 없어. 암튼 오늘도 외갓집은 안 가. 다른 곳에 갈 거야.”
“어디 가는지 물어봐도 돼요? 제가 어려도 놀이동산 같은 덴 취미 없는데.”
“하하. 네 취향은 이미 들어 잘 알지. 애늙은이라며? 암튼 그런덴 아니고. 일단 나가자.”
애써 텐션을 끌어올리는 삼촌.
학교 가방을 던져두곤 그대로 따라나섰다.
* * *
20분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