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87)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87화(87/280)
킹스 아일랜드 3
오후 5시.
점심을 핫도그 쪼가리 몇 개 먹고 말아서 그런지 배는 또 일찍 고파 온다.
우리는 이른 저녁을 먹었다.
나와 오디는 돈을 합해서 샌드위치 하나를 샀다.
조나단이 보더니 불쌍하다며 물 하나 던져 주고 간다.
입을 대지 않고 조심스럽게 나눠 마셨다.
대충 배를 채우고, 다시 신나게 놀다 보니 벌써 폐장 시간이다.
빨리빨리 꺼지라는 노랫가락이 울려 퍼지면서 방송이 계속 나온다.
아쉽지만 실컷 놀았다.
호텔 리조트로 돌아왔다.
씻고 나왔더니 갑자기 허기가 진다.
“아! 피자!”
“으흐흐. 채팅방에 올려보자.”
― 선생님. 올해도 12시의 피자는 운영되나요?
― 으이그. 또 어디서 그런 소리를 주워듣고는. 자는 놈들은 놔두고 배고픈 놈들만 와. 막 배달 왔다.
“아싸!”
이 방, 저 방에서 환호성이 울린다.
50명 중에 20명이 모였다.
피자는 중간 사이즈로 3판.
한 조각도 나눠 먹는 미덕을 발휘했다.
알고 보니 나처럼 흥청망청 돈을 쓴 나머지 저녁을 굶은 놈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게 어디냐.
모두의 얼굴에 만족감이 떠오른다.
조심스럽게 ‘Foosball 미니테이블’을 내밀었다.
접이식으로 된 장난감으로 완벽히 펼치면 사이즈가 작지 않다.
“우와. 푸즈볼. 뭐지? 어디서 갑자기 이게 튀어나왔을까?”
“낮에 아케이드 게임했는데요. 게임 티켓들 전부 모아서 산 거예요. 교실에 두고 쓰면 좋을 거 같아서요.”
“와. 너무 좋아. 제이든. 넌 어쩜 이렇게 훌륭한 생각을 할 수 있어? 이제까지 학생이 내 교실에 이런 거 선물한 거 처음이야. 흑. 감동.”
― 하하하.
진짜 감동한 듯 두 손을 모으는 제스처를 취하는 미세스 알링턴.
그 모습에 우리 모두 한바탕 웃었다.
“미세스 알링턴, 거기 제 지분도 있어요.”
“저도요!”
“전… 몇 장 안 되지만 암튼 제 지분도 있어요.”
“이런 사랑스러운 녀석들을 봤나. 그래서 피자가 얼마나 더 필요하다고?”
― 우와와와!
호텔에 때 아닌 환호성이 울려 퍼진다.
미세스 알링턴은 호텔 측에 부탁해 피자와 치킨까지 배달시켰다.
보통은 킹스 아일랜드가 문을 닫는 11시면 모든 가게들도 문을 닫는다고.
미세스 알링턴의 피자는 미리 시켜 받아둔 거였다.
퇴근하는 쉐프에게 사정을 하며 팁을 피자 값만큼 드리는 걸로 해결을 보는 미세스 알링턴.
전화하는 손가락부터 부티가 줄줄 흐르는 것 같다.
선생님은 취미로 한다더니.
알고 보면 엄청난 거부가 아닐까?
덕분에 우리는 새벽 1시에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호텔 조식을 챙겨 먹고, 방으로 올라왔다.
당연히 자는 놈들도 다 깨워서 먹였다.
오늘은 아침을 못 먹는 놈들이 많다.
전날 너무 신나게 논 탓이다.
그동안의 앵벌이 짓이 전혀 억울하지 않는 2박 3일의 일정이었다.
디베이트 클럽이나 모델 UN의 트립도 이런 분위기일까?
그렇다면 따라가 볼까 진지하게 고민이 된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
이제야 잠에서 깬 놈들이 엉뚱한 놀이들을 해댄다.
일명 ‘젤리빈 챌린지(Jellybean Challenge)’ 놀이다.
젤리빈 중 Beanboozled라는 젤리빈이 있다.
겉모습은 일반 젤리빈과 똑같으나 어떤 건 끔찍한 맛이다.
맛있는 것과 맛없는 걸 나란히 놓고 선택해서 먹는 게임이다.
마치 예전 우리나라 어떤 예능 프로그램에서 커피와 까나리 액젓을 담아 두고 멀리서 선택하게 하던 것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오디! 오디!”
“후아. 오케이. 이거!”
“그럼 나는 이거.”
오디와 헤나가 붙었다.
잠시 후 헤나가 토악질을 해 대고, 오디는 여유롭게 젤리빈을 씹어 먹는다.
오디의 승이다.
옆에서 다른 놈들은 죽어라고 웃는다.
게임을 주도하는 놈과 눈이 마주쳤다.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절대 참가 안 하겠다는 의사 표시.
먹는 게임인 만큼 강제로 시키지 못한다.
― 칫!
작게 아쉬워하는 소리가 들린다.
― 띠링. 띠링.
시끄러운 버스 속에서도 휴대폰 알림 소리가 계속 울린다.
1등을 한 것에 대한 학부모들의 축하 메시지들이다.
미세스 알링턴이 수상 결과를 알린 것이다.
사진까지 첨부해서.
가족 채팅방에도 난리가 났다.
― 난 당연히 멜버른이 1등할 줄 알았음. 제이든이 있잖아.
― 누나. 아들한테 너무 스포일러 되는 거 아님? 제이든 있다고 당연히 1등이 어딨어?
― 하하. 그래도 우리 제이든은 무조건 1등이야.
― 엄마. 나 크로스컨트리에서 2등 했어. 그것도 마커슨에게 졌다고.
― …그건 다리가 짧으니 어쩔 수 없었던 거지. 간발의 차였다며.
― 2등은 2등이지.
― 망할 세상.
― 트로피 받는 거는 투표로 뽑는 거 아냐?
― 맞아요. 메디슨. 밴드부에서 자체 투표해서 뽑은 거예요.
― 꺄아아악.
.
.
.
엄마는 우리 학교가 1등을 한 것보다 이게 더 기쁘단다.
그런 투표는 인기투표나 마찬가지인데 백인이 대다수인 밴드부에서 내가 대표로 뽑힌 거니까.
나도 기쁘긴 했다.
요즘 들어 납작한 막대사탕 같은 것들이 내 사물함 문짝에 붙어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 만큼 알 나이다.
이놈의 인기는 새로운 생을 살아도 여전하다.
기쁜 날이다.
* * *
공부방 놈들이 내 얼굴만 쳐다보고 있다.
“안 한다니까.”
“나가면 바로 당선된다고.”
“말했잖아. 난 디베이트 쪽 할 거라고.”
“2개는 다 못하는 거 확실해?”
“어. 라즈닉이 말하는 거 못 들었냐? QRT 때문에라도 이 두 개 클럽은 같이 못 한다잖아.”
“아까비….”
“내가 나갈까?”
“마커슨. 음. 이런 말 좀 미안한데 경쟁상대가 좀 쎄다. 제이든 정도는 돼야 가능성이 있다고. 저쪽에서도 제이든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만 주시하는 상황이야. 다른 애들은 아웃오브 안중.”
“아프다. 그렇게 콕 찔러야 되냐?”
“현실을 말해 주는 거지. 괜히 나갔다가 망신당하지 말라고. 근데 너도 TSA 들어갈 거라며. 임원까지 생각하는 거 아냐?”
“…맞아.”
“다 가고 싶은 데가 확실한데 뭘 그런 걸 아까워해. 그냥 넘겨.”
8학년의 막바지다.
그리고 우리는 9학년의 학생회 임원 선출을 앞두고 있다.
많은 클럽들 중 유일하게 8학년 때 미리 투표를 하는 종목이기도 하다.
학생회는 각 학년마다 타운쉽을 대표하는 의원이 있다.
우리 학군은 총 5개의 타운쉽이 모여 ‘센트럴 팍스’ 학군을 이루고 있다.
5개의 타운쉽에서, 학년마다 한 명씩 학생회 후보자가 나와 자신을 뽑아달라며 선거 유세를 한다.
예를 들면 각 지역구를 대표하는 국회의원 같은 거다.
투표 역시 각 지역구에서 자신들을 대표할 국회의원을 뽑는 것처럼 우리 학교에서도 해당 타운쉽에 사는 학생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의원을 선출하는 거다.
선거 유세 기간은 2주.
학생회 회장 – 부회장 – 학년마다 5명씩 총 20명의 타운쉽 대표 의원들 – 그 외 회계, 서기 등등의 임원들.
이들이 모두 학생회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학생회는 규모가 상당히 크다.
우리 타운쉽에서 학생회 임원이 되겠다고 나선 학생은 총 4명.
경쟁 상대 중 한 명은 풋볼 주전 선수다.
금발의 푸른 눈을 가진 정석적인 미남으로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하지만 바람둥이에 거만한 성격이라 싫어하는 애들도 그만큼 많다.
이에 우리 타운쉽 애들이 공부방 놈들을 충동질해 나를 후보로 올리려고 하는 것이다.
사실 처음엔 고민이 되긴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 끌리지가 않는다.
학생회 임원의 단점은 권한은 적고, 할 일은 많다는 거다.
장점은 대학 입시에 조금은 유리하다는 것이고.
일개 클럽 회장보다는 학생회 회장이 입학사정관들의 눈에는 더 들겠지.
물론 그보다는 완벽한 GPA(성적표)와 SAT(수능시험) 점수가 더 중요하겠지만.
2개 클럽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나는 디베이트가 더 끌린다.
디베이트와 작은 클럽들 예를 들면 모의재판장 같은 클럽 몇 개 회장직을 맡는 것이 학생회 회장보다 나을 것 같다.
그래서 버티는 중이다.
내가 싫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나.
공부방 놈들도 내 뜻을 알기에 더는 강요하지 않지만 아쉬워는 한다.
“알렉스. 니가 나가.”
“난 안 돼.”
“왜?”
“난 뉴스페이퍼 클럽 회장 할 거야. 그리고 너보다 인기가 없어.”
“나도….”
지켜보던 고딩들이 나선다.
“얘들아. 내가 누누이 말했잖아. 학생회 의원, 그거 진짜 별거 아니라니까. 올해 봐라. 라즈닉은 콜롬비아 갔어요. 올해 우리 학교 유일의 아이비 진학자시다. 근데 학생회 회장은? 갭이어(Gap year)한다니까.”
“아. 맞다. 걔가 에세이를 엄청 부풀려서 적었다고 했지?”
“어. 작문 시간에 자기 대학 메인 에세이로 쓸 거라고 읽어 줬다가 선생님한테 한소리 들었다던데. 그거 수정 안 하고 그대로 쓴 걸까?”
“어. 그대로 냈대. 분명 그렇게 쓰면 안 된다고 했을 텐데 말야. 암튼 원하는 데는 다 떨어지고 세이프티(safety, 안전빵)로 적은 곳들 중 몇 개 됐다는데, 성에 안 차나 봐. 갭이어 한다고 하더라고.”
12학년 입시를 치른 후 하는 갭이어는 어떻게 보면 한국의 재수와 같은 개념이지만 어떻게 보면 또 완전히 다르다.
이미 내신은 끝났기에 1년 동안 봉사나 무언가 다른 활동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
그걸 입시 에세이에 잘 버무려 적어내야 하고.
거의 두 달에 한 번씩 있는 SAT는 몇 번을 치든 상관없다.
시험 비용이 좀 비싸고, 시험을 치르는 횟수가 3번 이상이 되면 좋아하지 않는 학교도 있다지만 점수가 높으면 크게 상관없다고.
요즘엔 SAT 점수 자체를 내지 않는 학교도 많다.
“갭이어 하면 1년 후엔 원하는 데 갈 수 있나?”
“그거야 모르지. 1년 동안 봉사활동 다니면서 마음 추스른다고 하니까. 그러면서 느끼는 바가 좀 있겠지.”
“근데 그럴 바엔 일단 작은 데라도 들어갔다가 편입하는 게 낫지 않나? 다들 그렇게 하던데? 어차피 사회 나오면 입학한 학교보다 졸업한 학교 이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잖아.”
“그건 그렇지. 근데 편입도 보통 일 아냐. 학교생활 다시 적응해야 하는 건 둘째 치고, 아파트부터 보험 같은 거 새로 세팅하는 것도 엄청나다고 하더라고.”
“가끔 그러는 애들 있어. 실컷 잘해 오다가 막판에 망가지는 애들 말야. 심지어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어떤 애는 ED로 Top 20 붙었다가 마지막에 C가 2개나 떴다잖아. 학교에서 교장샘까지 나서서 사유서 작성하고, 도와줬는데, 결국 합격 취소됐다더라고.”
“허얼. 그럼 걔는 어디 가? ED로 붙었으면 뒤에 정시 원서는 안 넣었을 거 아냐?”
“커뮤니티칼리지 갔대. 그 집 난리 났었어.”
“…끝이, 끝이 아니구나.”
“그니까. 학교 기숙사에 짐 풀어야 진짜 합격이라고 하잖아.”
“…….”
“…….”
갑자기 분위기가 급 어두워진다.
“얘들아. 니들 아직 8학년이거든?”
“그렇지. 우린 아직 중딩이지.”
“그래 봤자 9학년 되는 거 몇 달 안 남았거든? 난 요즘 겁나서 잠도 안 와.”
“오디. 그런 걱정은 넣어 둬.”
“야!”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크리스틴.
한쪽 다리를 꼰 채로 우리 쪽을 향해 몸을 틀고 앉아 검지손가락을 곧추세운다.
조금… 거만해 보인다.
“잘 들어. 중딩꼬맹이들아. 고등학교는 말야.”
“…….”
“중학교보다 100배는 재밌어. 알간?”
“오. 그래?”
“당연. 물론 아무도 그 재미를 너네 입에 직접 떠먹여 주진 않아. 하지만 니들이 하려고 하면 오만 걸 할 수 있다고. 학생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해 도와주는 게 고등학교라고. 알간? 학교생활을 어떻게 하냐는 니들 선택이야. 캡틴 봐라. 딱 본인이 원하는 게 뭔지 알아서 옆에서 아무리 찔러도 절대 안 흔들리잖아.”
“…….”
“…꼰대 같아.”
“그러게. 쟤 언제 저렇게 꼰대가 됐지? 제이든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짝퉁 오디 같기도 하고.”
“야!”
“야!”
오디와 크리스틴이 동시에 발작한다.
“마커슨! 이 누나가 이렇게 좋은 말씀을 해 주고 있는데, 그 따위 소리가 나와!”
“어우. 뉘에뉘에.”
“저게 그냥 확!”
마크나 알렉스가 아니라서 그런가?
아님, 나이가 좀 들었다는 건가?
예전 같으면 분명 목조르기와 발차기가 콤보로 들어왔을 텐데 의외로 말만 사납고, 행동은 조심한다.
아닌 게 아니라 난 고등학교 생활이 사실 많이 기대된다.
한국과 또 어떻게 많이 다를지 비교하는 재미도 있을 것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