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114)
114화 재회 (2)
“비요른! 생각났다! 그때 그 사람이당!”
“굳이 설명할 필요 없다. 나도 떠올랐으니.”
나는 묘한 기분을 느끼며 기억을 되짚었다.
시간은 어느덧 세 달을 거슬러 올라, 계층군주 리아키스의 즉사기 [악의 틈새]에 갇혔을 때였다.
[당장 죽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겨라. 쓰레기들.]드자르위 클랜이 폭동을 일으킨 탐험가들을 배척하자, 탐험가들은 집단 패닉에 빠졌다.
그때 나타났던 게 이 남자였다.
[나, 나는 이 현상에 대해서 알고 있소.]그는 어쩔 줄 모르는 탐험가들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물론, 순진하게 믿기 어려운 얘기였지만…….
[저는 이분과 1년 넘게 팀을 이뤘어요. 이분은 신비한 분이에요. 정말 모르는 게 없으시죠. 저는 이분의 말이 우리를 살릴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요.]달리 방도가 없던 탐험가들은 그의 동료라던 한 요정의 보증만 믿고서 그 길을 따랐다.
그리고…….
‘믿어 의심치 않기는 지랄.’
전부 다 뒈졌다.
나중에 궁금해서 알아봤을 때 그런 소식만이 들렸기에, 나도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다.
오늘 저놈을 만나기 전까지는.
‘사지로 백 명도 넘게 데려간 주제에 자기들만 살아남은 모양이군.’
그리 생각하자 흥미로운 놈이 아닐 수 없었다.
단순히 재수가 좋아서 살아 돌아올 수 있던 건 아닐 테니까.
재주가 좋았다고 여기는 게 합당하겠지.
그땐 그냥 병신인 줄만 알았는데…….
‘설마, 사지인 걸 알면서도 데려간 거였을 줄이야.’
“지, 지금이오! 피하시오!”
데스나이트의 패턴을 예측해 지시를 내리는 사내를 보며 나는 눈을 좁혔다.
녀석의 소환수는 총 네 마리.
소환수 간 시너지는 좋은 편이지만, 정수의 등급 자체는 높지 않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 하나.
‘평균 7등급 정도 되겠군.’
놈은 뭣도 없는 하위 탐험가다.
금수저였다면 장비라도 때깔이 고왔을 테니.
그렇기에 더욱더 의문점이 커진다.
리아키스의 패턴과 데스나이트의 출현 조건.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경력도 짧은 탐험가가 이런 정보를 알고 있다?
‘……플레이어라고 보는 게 타당하겠지.’
합리적 추론을 통해 최종 판단을 내렸다.
저 이름 모를 소환술사는 플레이어다.
왜 그런 놈이 인간으로 소환술사 같은 직업을 고르는 우를 범했는진 알 수 없지만.
‘쩝, 이것 때문에 조금 헷갈린단 말이지.’
수인, 용인족, 드워프라면 모를까.
인간은 소환계통과 종족 시너지가 전무하다.
물론 이는 초반엔 미세한 차이에 불과하지만, 후반부로 향할수록 어마어마한 격차로 이어지게 된다.
한마디로 효율이 무척이나 떨어지는 셈.
‘어쩌면 그런 건 얘한테 중요하지 않았을 수도…….’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캐릭터의 완성도야 어쨌든, 그냥 날먹 직업을 택하고 싶은 게 보통 사람의 심리일 테니까.
하긴 누가 맨앞에서 직접 싸우고 싶겠어?
바바리안으로 스타트했단 걸 알자마자 방패를 택한 내가 할 말은 아니겠지만.
「데스나이트를 처치했습니다. EXP +4」
몸에 깃드는 충족감 속에서 나는 눈을 떴다.
마법사가 내핵에 박아넣은 화염구를 끝으로, 데스나이트가 빛무리로 변해 흩날리고 있었다.
참고로 정수는 나오지 않았다.
“아쉽군. 혹시 몰라 시험관까지 비싸게 주고 사 왔는데.”
“파, 파르테이안 님, 마, 말조심…….”
“아, 그랬지.”
마법사가 입을 꾹 다물며 이쪽을 바라본다.
‘그럼 이제 우리 차례겠군.’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을 지켜보기도 잠시, 나는 다시금 순박한 바바리안의 탈을 뒤집어썼다.
“오오, 대단하군! 마지막에 그건 대체 무슨 마법이었나?”
“……우리가 그런 대화나 나눌 사이는 아닐 텐데요?”
친근하게 마법사 쪽으로 다가서려 하자, 차갑게 말을 자르며 제지를 해오는 요정 궁수.
“아까 그건 대체 무슨 짓이었죠? 제대로 해명하지 못한다면, 적으로 간주하겠습니다.”
쩝, 그때 사람들 앞에서는 되게 나긋나긋했던 거 같은데…….
전부 연기였나?
아, 요정이랑 바바리안은 사이가 좋지 않지.
“아까 말했듯 도와주려 했을 뿐이다!”
“이상하군요. 우리는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
“데스나이트는 세다! 그래서 너희가 위험하다 생각했다!”
요정 궁수가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쏘아봤다.
아기 바바리안 모드를 보고도 저런 눈빛을 하다니, 요정들 사이에선 바바리안 이미지가 얼마나 나쁜 거야?
“정말 이유가 그것뿐인가요?”
“그럼 뭐가 더 있겠나?”
“일단 정수가 있겠죠. 당신은 몰라도, 옆에 계신 수인분께는 욕심나는 정수였을 듯한데요.”
요정의 날선 중얼거림에 미샤가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 쳤다.
“오, 오해당! 검을 쓰기는 하지만, 어차피 나는 이미 정수 자리가 다 차서 먹지도 못한단 말이당!”
“그게 사실인가요……?”
“확인해 봐도 좋당!”
뭘 확인이야 확인은.
여기서 하면 어떻게 할 건데.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답변이었으나, 요정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거로 넘어갔다.
“그렇다면야, 믿겠습니다.”
보아하니 이 요정 궁수가 까칠하게 구는 건 바바리안 한정인 모양.
“하지만 그래도 도와주려고 끼어들었다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군요.”
“거, 귀쟁이들이란…….”
“당신! 지금 뭐라 그랬죠?”
날카로운 고성에 나는 짜증을 담아 되물었다.
“평소에 얼마나 음흉하기에 일단 의심부터 하는 거냐?”
정말로 화가 났거나 한 것은 아니다.
전투 중에 멋대로 난입한 것이 잘못이란 것도 안다.
하지만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내가 바바리안이라고 무시하는 건가?”
내 잘못이 명백한 상황에서도 적반하장으로 세게 나갈 수 있는 것.
그것이 참된 바바리안의 모습일 터.
“더 이상 나를 모욕한다면 나도 참지 않겠다! 귀쟁이!”
4:2 상황이고 뭐고, 전투를 불사하겠다는 듯 방패를 치켜드는 날 보며 요정이 당황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으니 밝혀달란 거잖아요!”
“석연치 않은 점이라니?”
“정수가 목적이 아니란 건 알겠어요. 하지만 우리에게 업혀서 공적을 공짜로 채워 가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음, 얘 진짜 예리하네.
사실상 진실에 도달한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이 역시 문제될 건 없었다.
“왜 내가 그런 귀찮은 짓을 하지? 이미 한 번 잡은 놈인데?”
“……예?”
내 말에 요정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납득이 안 되겠지.
6층까지 가기 전에는 마주치는 것부터가 힘든 몬스터니까.
나는 짧게 부연 설명을 이었다.
“예전에 핏빛성채에 다녀왔었다. 이거면 설명이 되나?”
변종 균열이어서 데스나이트 대신 뱀파이어가 튀어나오기는 했지만, 알 게 뭔가.
여기서 진상 규명이나 할 것도 아닌데.
반쯤은 사실이기도 하고.
“하, 하지만! 그걸 우리가 어떻게 믿죠?”
“그렇게 따지면 뭘 말해도 믿지 못하는 거 아닌가? 싸우고 싶은 거라면 덤벼라, 귀쟁이.”
“참아 주니까, 하라면 못할 줄 알고……!”
이내 분노를 터트리는 요정의 모습에 사내가 화들짝 놀라며 나섰다.
“메이린 님. 그, 그만하세요! 저분 말은 아마 사, 사실일 테니!”
“네? 그게 무슨…….”
“이, 이제 기억이 났습니다! 저 바바리안… 그때 거기서 봤던 사, 사람이에요! 얀델의 아들 비요른. 작은 발칸이란 이명을 얻은 그 탐험가!”
짧은 만남이었을 텐데 소환술사는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내 마법사와 전사가 동시에 탄성을 뱉었다.
“어쩐지, 말하면서도 데스나이트의 검을 쉽게 받아 내더라니.”
“호오, 놀랍군. 메이린 양, 아무래도 우리가 잘못 생각한 듯하네. 저렇게 유명한 자가 고작 공적치나 얻겠다고 그런 짓을 할 리 없지 않은가.”
슬슬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감을 감지했는지, 요정 궁수가 입술을 짓눌렀다.
“메이린 양의 심정은 이해하네. 인정하는 게 가장 어려울 때도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말일세, 때로는 고집을 버리고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하네.”
“후우, 알겠어요…….”
동료들 전부가 내게 불순한 의도가 없었다고 판단을 하자, 요정 궁수도 더 억지를 부리지 않았다.
‘후, 이래서 명성작을 해 둬야 하는 건가?’
새삼 명성의 중요성을 한 번 더 깨달으며 나는 내게 다가오는 소환술사를 응시했다.
“바, 반갑습니다. 얀델의 아들 비요른 님.”
말을 더듬는 버릇 때문에 우습게 보이기도 하지만, 이놈도 보통 놈은 아니다.
그도 그럴 게, 자기 살자고 수백 명을 사지로 몰아 버린 전적이 있지 않은가.
“이렇게 만난 것도 이, 인연인데 통성명이나 하지 않겠습니까?”
녀석이 내게 조심스레 청했다.
내 이름이 궁금한 건 아닐 테니, 이건 단지 나와 친분을 쌓고 싶다는 의미로 보는 게 맞겠지.
“좋다.”
나는 고민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애초에 이놈의 이름이 궁금해서 아직까지 여기에 남아 있던 거였으니까.
“알겠지만, 나는 얀델의 아들 비요른이다. 너는 이름이 뭐지?”
플레이어인 건 확실하니, 이름을 들어 두고 나중에 조사해 볼 생각이었다.
큰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조금 궁금했다.
행적을 살피다 보면,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참고용 표본 정도는 될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한스 크리센입니다.”
씨발, 이건 나도 예상 못 했는데.
한스의 몸에 빙의한 플레이어라니.
무슨 이런 개막장 속성이 다 있단 말인가?
“괜찮으시다면, 앞으로 치, 친하게 지—”
사람 좋게 웃으며 악수를 청해 오는 놈을 보며 나는 뒤로 물러섰다.
“동작 그만. 나는 바쁜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다!”
“…네? 그게 무슨—”
“미샤! 뭐 하냐! 얼른 오지 않고!”
“으응! 알았… 기다렷! 가, 같이 좀 가……!”
제기랄, 소금이라도 좀 챙겨올걸.
앞으로 무슨 일이 터질까, 벌써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
한스G의 정체를 알자마자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다.
그로부터 얼마나 흘렀을까.
“이게 무슨 짓이냥! 뛰는 건 괜찮은데 제발 이유라도 좀 설명—”
“…놈도 한스였다.”
“으응? 그게 무슨 뜻—”
“난 한스와 만나고 일이 잘 풀렸던 적이 없다.”
진심으로 걱정하며 한 말이었으나, 미샤는 도리어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으이구, 나는 또 뭐라고. 큰일이라도 난 줄 알았잖냥!”
아니, 이건 진짜 큰일인 건데?
한스라니까?
그것도 미궁에서 만난 플레이어 출신의?
“가만 보면 너도 참 별난 구석이 있당. 이런 미신은 하나도 믿지 않을 거 같더닝.”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미샤를 보고 있자니 왠지 서운한 감정이 밀려왔다.
“푸훗! 비요른 너어… 오늘따라 좀 귀여운 거 같기도 하당?”
뭐래 얘가 진짜.
나는 내친김에 한스와 얽힌 사건을 하나하나 말해 주었다.
스타트를 끊은 한스A부터 시작해, 엘리사의 종속이었던 한스C, 그리고 마녀의 숲에서 만난 약탈자 무리의 리더였던 한스D.
“그, 그러고 보면 그때도 한스란 이름을 싫어한다고 그랬지……?”
“그래. 하지만 그땐 그냥 불길하다 여기는 정도였다.”
이내 드왈키가 모즐란에게 끌려가기 직전에 근처에 있었던 한스B에 대해서도 얘기해 주자 미샤도 안색을 달리했다.
“뭐, 뭐냐! 대체 한스라는 놈은!!”
미신에 취약한 습성을 지닌 탐험가답게, 이쯤 되자 미샤도 뭔가 불안해진 모양.
“그럼 어쩌냥? 이미 만나 버렸는데… 설마 또 큰일이 생기거나 하는 거냥?!”
글쎄, 그건 나도 모른다.
단지 앞으로 최대한 조심해야겠다 생각할 뿐.
“일단 최대한 빨리 3층으로 가자.”
“…1층이 아니라?”
이제는 오히려 나보다 더 심각해진 미샤가 의문을 표했지만, 그나마 이게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일단 이게 미신인지, 아닌지도 확실하지 않을뿐더러…….
정말 존재한다고 한들 변하는 건 없다.
한스의 저주가 사실인 거라면, 도망치는 건 의미가 없을 테니까. 좆같은 일은 도시에서도 얼마든지 터질 수 있지 않은가.
그냥 할 일이나 마저 하는 게 손해를 줄이는 길이다.
“으으, 그런 거면 그냥 말하지 말지 그랬냥. 괜히 나까지 찝찝해지게…….”
음, 그건 그렇네.
아무래도 플레이어 출신 한스를 만난 탓에 이성적 사고가 어려워진 모양이었다.
아니면 어느샌가 얘를 의지하게 됐던가.
기쁜 일은 잘 모르겠는데, 일단 힘든 일은 둘이서 나누면 확실히 반으로 줄잖아?
“그게 할 소리냐! 이 미친 바바리안놈아!!!”
“…농담이다.”
“거짓말 마라! 네 눈빛은 진심이었당!”
사실대로 말하자 미샤가 크게 격분했다.
뭐, 그래도 나도 모르게 의지했다는 말 자체는 제법 흡족해한 것처럼 보였지만.
“후! 아무튼 숨기지 않고 말해 준 건 잘했당. 앞으로도 그런 일이 있으면 혼자 끙끙 앓지 말고 털어놔랑. 일단 내가 연상 아니냥?”
“아, 그랬지.”
미샤는 나보다 다섯 살이 더 많다.
물론, 비요른 기준으로의 얘기지만.
“뭐냐 그 반응은?”
“더 의지된다는 거였다.”
“……그게 아니었던 거 같은데?”
아무튼 잡담은 이쯤에서 끝내고 이동을 재개했다. 그리고 또 얼마나 흘렀을까?
피로감이 몸에 쌓인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슬슬 야영할 때가 됐다는 뜻.
‘그 이후로 거의 하루 정도 됐으니, 내일이나 모레에는 3층에 도착하겠군.’
나 역시 제법 피곤했지만, 자리를 잡고서 일단 미샤부터 재웠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 불침번을 서며 이런저런 상념을 이어갔다.
그로부터 얼마나 흘렀을까?
[00 : 37]시간을 확인해 보니 어느새 12시가 넘었다.
오늘로 7일 차였으니, 1층 수정동굴은 이미 폐쇄되어 탐험가들을 도시로 뱉어냈다는 뜻.
뭐, 일찍 나가든 늦게 나가든 도시로 돌아갔을 땐 전부 동일한 시간대에 있겠지만…….
‘그 녀석은 잘 돌아갔겠지?’
불현듯 1층에 데려다줬던 카론이 떠올랐다.
[일부러 밤친구를 인간으로 구한 다음에 자는 척하는 것도 괜찮을 거 같다. 꿍꿍이가 있는 놈이라면 분명 속내를 드러낼 테니까!]녀석이 마지막에 했던 말 때문일까?
혹시 사고는 치지 않았을지, 괜스레 걱정됐다.
‘에이, 별일이야 있겠어?’
어느덧 교대 시간이었기에, 미샤를 깨우고 나도 잠시 눈을 붙였다.
***
눈부신 빛.
군중의 소음.
그리고 폐부를 휘감는 도시 특유의 눅눅한 공기.
카론은 저도 모르게 외치고 말았다.
그냥 그러고 싶은 기분이었다.
상쾌하다고 해야 할까?
야만인을 바라보는 듯한 주변인의 시선은 아무래도 좋았다. 한때는 저런 시선에 주눅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베헬—라아아아아아아!!”
카론은 변했다.
아니, 한꺼풀을 벗어냈다.
큰뿔조각벌레가 성충이 되기 위해 껍질을 부숴 내듯이.
이번 탐사에서 그는 진정한 전사로 성장했다.
그렇기에…….
“쯧, 꼭 저렇게 티를 내고 다닌다니까. 야만인들은?”
“이봐, 듣겠네. 무작정 들이받는 놈들인데 조심해야지.”
저 깔보는 듯한 시선이 기분 좋은 자극으로만 느껴졌다.
그만큼 방심하고 있다는 뜻 아니겠는가.
지난 며칠간 그가 죽인 두 명의 밤친구처럼.
‘쉬웠지.’
얀델의 아들 비요른.
모든 건 그가 말한 대로였다.
1층에는 본심을 감춘 쓰레기 같은 자들이 바글바글했고, 빈틈을 보여 주자마자 옳다구니 달려들었다.
그게 오히려 함정인 줄도 모른 채.
먹잇감이라고 업신여기던 놈들이, 역으로 당할 때 짓던 표정은 생전 처음 겪어 보는 희열을 선사할 정도였다.
절그렁, 절그렁.
등에 하나, 오른팔에 하나, 왼팔에 하나.
총 세 개의 가방을 멘 그는 위풍당당하게 검문소로 향했다. 9등급 탐험가 전용 게이트답게 줄은 길었다.
도착하자 곳곳에서 친분 있던 동족들이 그를 발견하고는 다가왔다.
“타르손의 아들 카론! 대체 뭔가, 그 가방은?”
“자, 장비가 가득 들어 있다! 설마 약탈이라도 한 건가?”
카론은 고개를 단호하게 내저었다.
“푸훗, 약탈? 그럴 리가 있겠나.”
이는 약탈처럼 역겨운 행위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동족을 지키는 숭고한 행위.
우려에 대해 딱 잘라 선을 긋자, 바바리안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약탈을 안 하고도 그런 게 가능하다니!”
“부, 부럽다! 그걸 다 팔면 돌빵이 대체 몇 개냔 말이냐?”
그와 함께 성인식을 마친 동기들이었지만, 오늘따라 그들이 어리게만 보였다.
그렇기에 그는 동족을 최대한 불러모았다.
한때 그들에게 경쟁 의식을 느낀 적도 있지만, 진정한 적은 따로 있었으니까.
“후후, 부러워하지 마라. 방법만 알면 너도 이만큼 벌 수 있으니. 앞으로 평생 돌빵 같은 건 먹지 않아도 된다.”
“뭣!! 그런 게 있다면 어서 알려 줘라!”
“알려 주겠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할 얘기가 있다.”
카론은 우선 이번에 미궁에서 겪은 일들을 순차적으로 말해 주었다.
함께하던 동료들에게 배신당했던 것.
그 이유가 자신의 심장이었던 것.
그들이 우리를 쉽고 보상이 큰 몬스터로 여겼다는 것까지.
“우리는 몬스터 같은 게 아니다!!”
“우리는 전사다!!”
예상대로 동족들은 크게 분개했다.
그리고 그를 구해 준 게 ‘작은 발칸’이란 걸 듣고는 목소리 높여 칭송했다.
“작은 발칸, 얀델의 아들 비요른!”
“악랄한 약탈자의 생각을 읽어 내다니, 역시 그는 위대하고도 현명한 전사다!”
순식간에 달아오른 분위기.
그 속에서 카론은 자랑스레 외쳤다.
“그는 나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내가 이렇게 많은 전리품을 얻고 돌아온 것도 전부 그 가르침 덕분이다!”
“오오! 그게 정말인가!!”
“정말이다! 지금부터 너희에게도 그 가르침을 전해 주겠다!”
이윽고 카론은 비요른에게 배운 모든 것.
아니, 본인이 직접 고안해 낸 ‘그 방법’까지도 숨김없이 공유했다.
물론, 공은 전부 비요른에게 돌렸다.
“밤친구를 인간으로 구하고 자는 척만 하면 된다니!!”
“얀델의 아들 비요른! 그는 천재인 것인가?”
“처음에는 조금 이상하게 들렸지만, 그런 위대한 전사가 한 말이라니? 나는 따르겠다!”
흥분으로 달아오른 동족을 보며, 카론은 확신했다.
“쯧, 저놈들은 또 시작이군.”
“맨날 저렇게 시끄럽게 구는데 왜 가만 내버려 두는지 몰라.”
“심장을 떼다 팔아도 저 주둥이는 여전할 거 같단 말이지.”
그간 바바리안은 미궁의 최하위 피식자였다.
인정하기 싫지만, 얼마 전에 직시한 현실 속의 모습이 그러했다.
정면승부에선 강할지 몰라도, 놈들의 영악한 술수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했다.
하지만…….
“얀델의 아들 비요른은 말했다! 이 모든 건 우리 모두를 위한 숭고한 첫걸음이 되리라고!!”
“베헬—라아아아아아!!!”
“베헬—라아아아아아!!!”
이제부터는 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