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269)
269화 파루네 섬 (3)
한 여인이 싸늘한 눈빛으로 한 곳을 응시한다.
그 시선의 끝에는 한 사내의 주검이 있었다.
가드위버 드로우스.
새 이름으로 본인이 저지른 업보에서 도망쳐 두 번째 삶을 살아가려 했던 쓰레기.
그래, 분명 그랬을 터인데…….
“언니, 표정이 왜 그래요?”
아멜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씹었다.
생각했던 것처럼 개운한 기분은 아니었다.
“얘 동료들이 도망쳐서 그래요? 에이, 너무 걱정하지 마요. 나머지 둘이서 찾으러 갔잖아요? 금방 잡아올 거예요.”
여정 내내 투정만 부리던 철없는 동료마저 그녀의 눈치를 볼 정도였으나, 막상 아멜리아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내 책임이야. 너희가 휘말릴 이유는 없어. 그러니까 어서 가!]녀석이 동료를 위해 희생을 하는 모습이 계속 눈가에 아른거렸다.
처음에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금 이놈이 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지?
우리를 배신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그것도 정작 본인이 어떤 인간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을 위해서?
까드득.
절로 이가 갈렸다.
그런 걸 할 수 있는 놈이었다면, 왜 우리에겐 그러지 않았던 건가?
“그래도 물건은 탈환했잖아요? 설령 놈들이 살아서 도망쳐도 우리 임무는 성공이에요.”
그제야 아멜리아는 상념을 지우고서 손에 쥔 보석으로 시선을 옮겼다.
대현자 가브릴리우스의 유산이자, 오랜 시간 노아르크의 성주들이 보관해 왔던 보물.
그러고 보면 이것도 어딘가 찝찝했다.
정확히 말하면, 이 물건을 놈에게서 빼앗으며 들었던 말이 자꾸만 떠올랐다.
[아멜리아, 이거로는 무엇도 바꿀 수 없어.]이 물건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면서 그런 말을 하다니.
“…….”
아멜리아는 갖고 있던 독을 이용해 사내의 시체를 녹여 없앴다. 그리고 쥐고 있던 보석을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어차피 노아르크의 수뇌부들은 전부 바깥세상으로 떠나서 연락도 제대로 안 되는 판국 아닌가.
앞으로 한동안은 그녀가 보관하게 될 터.
급하게 행동할 것 없이 나중에 돌아가서 이 보석을 사용할 방법을 찾아볼 계획이었다.
‘드디어 손에 넣었어.’
이러니저러니 해도 오랜 세월 품어온 숙원의 끝이 다가왔다. 그런 일념으로 아멜리아는 찝찝한 기분을 털어냈다.
그때였다.
“근데 언니.”
팀의 소환술사 겸 6층에서의 이동수단을 가진 여인, 카르밀라가 그녀에게 슬쩍 다가와 붙었다.
눈동자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이게 진짜 그 물건이 맞는 거예요?”
저 감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노아르크 내에서도 전설처럼만 전해지던 물건이자, 어느 면에서는 ‘소생의 돌’보다도 더 허구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물건이 바로 이것이니까.
그렇기에 아멜리아는 여지를 주지 않았다.
“나도 모른다.”
물론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물건에 대한 이야기가 단순히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니며, 방금 아공간에 넣은 이 물건은 틀림없는 진품이라는 것을.
하지만 견물생심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괜히 그런 얘기를 해서 변수를 만들어 내는 것은 우둔한 일일 터.
“에이, 그러지 말고요. 언니는 저 남자랑도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잖아요. 이게 진짜인지 아닌지 정도는 알 거 같은데?”
“다시 말하지만, 나도 모른다. 그리고 이게 진짜 그 물건이든 아니든 우리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다. 우리 임무는 놈이 갖고 있던 걸 탈환해 돌아가는 것뿐이니까.”
아멜리아는 다시 한번 선을 그었다.
그리고 막 등을 돌리려는 찰나.
“뭐야, 이런 반응을 하는 거 보니까 진짜인가 보네?”
카르밀라가 씨익 웃었다.
“와, 이게 정말로 실존할 줄은 몰랐는데.”
어떻게 보면 철없는 농담처럼도 들릴 말.
다만 살아오며 온갖 못 볼 꼴을 봐온 아멜리아는 본능적으로 단검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 순간이었다.
푸욱-!
등에서부터 피어나는 후끈한 감각.
“죄송합니다, 레인웨일즈 님.”
카르밀라만을 경계한 것이 실착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전사의 검이 배를 꿰뚫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아멜리아는 실수를 돌이킬 시간에 바로 판단했다.
“아저씨, 잘했어!”
칼날이 파고든 곳은 늑골 아래.
“언제쯤 오라버니라고 불러줄 거냐?”
장기가 상하긴 했으나, 즉사를 할 만한 부상은 아니다.
따라서…….
“뭐래, 피도 반만 섞인 게…… 읏!”
단검을 뽑아 잽싸게 앞으로 내찌른다.
목표물은 카르밀라.
평소에도 몇 번이나 죽여 버리고 싶었던 그 여자.
휘익-!
애석하게도 조금 짧았다.
물론 큰 의미는 없었다.
예전에 바바리안과 싸우며 익히게 된 잡기술이 있으니까.
후우우웅!
칼끝에 오러를 불어넣은 즉시 부족했던 거리가 메워진다.
푸욱-!
“아악!!”
단검의 끝이 카르밀라의 눈을 파고들었다.
“아깝군.”
좀만 더 깊었으면 뇌까지 쑤실 수 있었을 텐데.
피슉-!
아쉬움을 느끼기 무섭게 배에 박혀 있던 칼이 뽑혀져 나갔다.
그 반동으로 몸이 휘청거렸다.
그러나 쉴 시간은 없다.
“제기랄!”
곧바로 급소를 향해 휘둘러지는 전사의 검.
피하기는 어려울 듯해 아멜리아는 팔을 뻗었다.
그야 팔은 급소가 아니니까.
서걱-!
날카로운 장검이 팔죽지를 베어냈다.
목숨은 구했으나, 전투에 있어서는 크나큰 손해를 본 셈.
이번에도 그렇게까지 큰 문제는 아니었다.
본체가 망가졌으면 분신체를 써서 싸우면 그만이니까.
타닷.
아멜리아는 도플갱어의 [자가복제]를 이용해 전사의 바로 뒤편에 분신체를 생성했다.
그리고 곧장 머리통을 향해 발을 휘둘렀다.
대부분의 적은 대응도 하지 못했던 연계.
“뒤, 뒤에!”
이내 분신체의 발이 상대에게 닿으며 폭발음이 피어났다.
콰앙-!
목표로 했던 머리에서 난 소리는 아니었다.
“크윽!”
발이 닿은 곳은 전사의 어깨.
제때 날아든 경고에 전사가 몸을 옆으로 틀은 것이 요인이었다.
푸욱-!
공격이 실패한 대가로 전사의 검이 복부를 한 번 더 헤집었다.
비록 분신체를 이용한 견제로 전사도 급히 몸을 빼느라 깊이 박히진 않았지만…….
‘잘못하면 죽겠군.’
위험하다.
그런 생각이 아멜리아의 머릿속을 지배하던 찰나였다.
“뭐 해, 얼른 팔 챙겨!”
전사가 바닥을 구르며 잘려져 나간 팔을 주워 들었다.
아공간 팔찌가 채워진 팔이었다.
낭패감을 느낀 아멜리아는 분신체를 이용해 빠르게 전사를 뒤쫓았다.
하지만…….
“용용아, 가자!”
세 걸음이 부족했다.
[크와아아아아-!]카르밀라가 소환한 드레이크 위에 전사가 올라타는 게 먼저였다.
후웅! 후웅!
순식간에 하늘 위로 떠올라 버린 드레이크.
세찬 날갯짓 소리에 파묻힌 둘의 대화가 들려왔다.
“……아멜리아 레인웨일즈. 정말 무시무시한 여자군. 설마 저 지경에서도 저렇게 위협적일 줄이야.”
“됐고, 포션부터 줘!”
“우선 얘기부터 나누고. 이제 어쩔 거지? 제대로 죽이지 못했는데.”
“아씨, 그게 뭔 상관이야! 어차피 죽을 텐…….”
그녀의 발달된 청각으로 들을 수 있는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이제는 완전히 하늘 위로 사라져 버렸으니까.
“빌어먹을.”
아멜리아는 정말이지 오랜만에 욕지거리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변하는 건 없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스스로를 구원하는 길은 오로지 행동뿐.
터벅.
아멜리아는 멀쩡한 분신체를 이용해 본체를 업었다.
그리고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저놈들이 확인 사살을 위해 다시 지상으로 내려왔다가는 정말로 끝이라는 판단.
터벅, 터벅.
아멜리아는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도 제대로 모르는 채 계속해서 움직였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영혼력이 바닥나 [자가복제]가 해제되고서도 꾸역꾸역 일어나 앞으로 걸음을 내딛던 때였다.
탓.
옆에서 들려온 인기척에 몸이 굳었다.
만약 저들이 추격을 하러 간 동료들이라면 살 것이고, 그 반대라면 죽을 것이라 여겼다.
삶과 죽음이 결정되는 양자택일의 상황.
하지만…….
“……아이나르? 아이나르냥?”
놀랍게도 아멜리아의 예상은 빗나갔다.
“너.”
“으, 으응?”
“비요른 얀델의 동료로군.”
고개를 들어 확인한 측면부.
털썩-!
그곳에 있던 것은 고양이였다.
***
“으아, 얘는 또 뭐냥!”
미샤는 혼란스러웠다.
그야 당연하다.
갑자기 눈앞에서 팔이 잘리고 배에 구멍이 난 여자가 나타나 쓰러지면 누구라도 그럴 테니까.
‘어, 어…… 그 싸우고 있었다는 그 탐험가들 중 한 명인 건가?’
“포, 포션. 그래 일단 포션부터…….”
정체불명의 여자였으나, 미샤는 우선 물에 젖은 확장형 배낭을 열어 포션부터 꺼냈다.
이 여자가 착한 쪽인지 나쁜 쪽인지.
아니, 애초에 착한 쪽이 있기는 했을지 아직 아무것도 정보가 없지만…….
[비요른 얀델의 동료로군.]여자가 쓰러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뱉은 말이 조금의 망설임조차 없애 주었다.
그래, 비요른과 아는 사이일지 모르지 않나.
우선은 치료부터 하고 보자.
뽕-!
포션의 마개를 딴 미샤는 서둘러 여자의 상처에 부었다.
그런데 이건 또 뭘까.
드드드드드.
포션 특유의 물 끓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마치 찬물을 부은 것처럼 상처 사이로 흘러가기만 하는 포션.
“엑? 공인 잡화점에서 산 건데?”
도무지 이해가 안 됐지만, 초창기에 짝퉁 포션을 샀던 경험이 있는 미샤는 가방에서 다른 포션을 꺼냈다.
그러나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어, 이게 왜 안 되지?’
설마 이것도 가짜였다고?
이내 미샤는 실험 삼아 물에 빠지며 몸에 났던 생채기에 포션을 조금 부었다.
치이이이익-!
미칠 듯이 가려운 걸 보니 포션은 멀쩡했다.
근데 왜 이 여자한테는 통하지 않는 걸까.
알 수 없지만, 미샤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는 게 바바리안의 정신이라고 비요른에게 배웠으니까.
‘이걸 쓰는 건 진짜 오랜만이네…….’
미샤는 약초와 붕대를 꺼냈다.
언젠가 포션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때 쓰려고 쟁여둔 구급용품.
“조금 따가울 거당……. 아, 어차피 안 들리겠구나.”
우선 소독약으로 상처 부위를 씻어낸 미샤는 약초를 바르고 붕대를 감았다.
그리고 모포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눕혔다.
이거로 임시 조치는 끝.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니, 나머지는 이 여자의 의지에 달렸다.
“……숨은 잘 쉬넹.”
잠시 상태를 지켜보던 미샤는 호흡이 안정된 걸 보고서 모포 옆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으, 이걸 이렇게 두고 갈 수도 없고…….”
그냥 기절을 한 거면 업고서라도 움직이거나 했겠지만, 상태가 너무 중하니 그런 방법을 쓰는 것도 불가능했다.
“비요른이 기다릴 텐뎅…….”
이내 미샤는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이 여자를 두고 떠날 수는 없었다.
그 상태로 10분 정도 지났을 때였다.
끼끽, 끽, 끼기긱!
어딘가 기분 나쁜 파생음에 미샤는 고개를 돌렸다.
“아, 이건 또 뭔뎅…….”
해안가에서 몬스터들이 기어나오고 있었다.
***
탁, 탁, 탁, 탁.
살이 부딪치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이어진다.
내 손에서 나는 소리다.
도무지 몸을 가만히 냅둘 수가 없다고 해야 하나?
자꾸만 애꿎은 손가락만 까닥이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2시간.’
중심부에 도착한 지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아무리 내가 빨리 도착했다고 해도, 동료 중 한 명쯤은 진작에 도착했어야 할 시간.
‘왜 아무도 안 오는 거지?’
믿음을 가지려 해도 자꾸만 불길한 상상이 머릿속을 메운다.
미샤는, 레이븐은, 곰아저씨는, 아이나르는, 그리고 에르웬은…….
정말 괜찮은 게 맞는 걸까?
이럴 줄 알았으면 중심부가 아니라, 해안가 근처를 쭉 돌아보는 건데…….
“계속 이곳에 있을 생각이십니까?”
가만히 불안에 떨고 있자 여신관이 조심스레 물음을 던져왔다.
내가 보기엔 존나 사이비 같았다.
아니, 아까는 믿음을 가지라며.
“넌 신관이면서 뭐 이리 포기가 빠르나?”
툴툴거리듯 말했으나, 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신관이라는 직업을 감안해도 저런 반응이 이상하지 않다는걸.
끼끽, 끽, 끼기긱!
그 증거로 지금은 이벤트가 발생 시에만 등장하는 해양 몬스터들이 이곳에서도 간간이 모습을 비추기 시작했다.
통상적인 사람의 보행속도에 절반도 안 되는 걸음걸이로 어느새 여기까지 걸어온 것.
‘좀 있으면 더 센 놈들로 가득 차겠지. 이미 해안가는 그런 애들이 널려 있을 테고.’
그럼에도 누구 하나 도착하지 않았다.
“에르시나.”
“예, 말씀하십시오.”
“이동한다. 기다리는 건 역시 내 성미에 맞지 않아서 말이지.”
“믿음은 여전하신가 보군요.”
뭐래.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며 말할 땐 언제고.
“만약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얀델 님은 훌륭한 종교인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거, 종교인은 개뿔.
현대의 자랑스러운 무신론자로서 기분이 묘했지만, 비아냥거린다기보다는 감탄사에 가까운 뉘앙스라 별말은 하지 않았다.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어서 일어나라.”
“예.”
여신관을 일으켜 세워 채비를 갖췄다.
그리고 막 자리를 떠나려는 찰나였다.
터벅.
근 2시간 만에 마침내 방문객이 찾아왔다.
애석하게도 우리 팀원 중 한 명은 아니었다.
방금 전까지 고된 전투를 치렀는지 잔부상이 가득한 삐쩍 마른 몸매.
어깨에 걸친 한 자루의 장궁.
흙이 잔뜩 묻은 녹색 머리카락까지.
“……얀델 님.”
적인지, 아군인지.
분간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놈이 우리를 보며 물었다.
“너희들, 레인웨일즈 님을 어떻게 한 거지?”
참 공교로웠다.
사실 나도 너한테 궁금한 게 생겼는데.
나는 귓가에 맴도는 이명을 무시하며 물었다.
“야, 왜 네가 레이븐의 아공간 반지를 갖고 있는 거냐?”
잘 대답해야 할 거야.
안 그러면 진짜 뒈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