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396)
396화 원정대 (1)
정색한 채 한참이나 기사를 말없이 응시하고 있다가 표정을 바꾸었다.
“내 착각이었나 보군.”
부드러워진 내 표정에 안도를 하면서도 놈은 뭔 소리인가 하는 눈빛을 지었다.
“아, 머리에 문제는 없는 듯해 다행이라고.”
이내 기사의 어깨를 두드린 뒤, 다른 세 명에게도 내가 대장이 되는 것에 이견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후작 앞에서 공증까지 받은 약속을 깰 간담은 없을 듯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지 않은가.
후속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다는 판단이었다.
다만…….
“없어요.”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내기였으니까요.”
“그렇게 되었으니 언제라도 제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불러주시길.”
의외로 기사를 제외한 나머지 셋은 아무런 이견도 내지 않았다.
다들 생각보다 쿨한 타입들인가?
본인만이 아니라 뒷배의 정치적 이권이 걸린 만큼 욕심을 부리는 애가 하나는 나올 줄 알았는데.
뭐, 나야 일거리가 줄어서 좋긴 하지만.
“아무 불만이 없다니 잘 됐군. 그럼 나는 이만 가보겠다.”
“네? 가보겠다니요?”
떠나겠다 말하며 등을 돌리려 하자 네 사람 모두 의문의 눈빛을 쏟아냈다.
아무래도 대장도 정해졌으니, 뭔가 더 대화를 나눌 거라 생각한 듯한데…….
“배가 고파서 말이지.”
“……?”
“그럼 나중에 보지.”
그 말을 끝으로, 어처구니없는 표정의 네 명을 뒤로하고서 방을 벗어났다.
일종의 빌드업이다.
영원히 리헨 슈이츠로 살 것도 아니고, 세 달 뒤엔 밝혀질 거잖아?
미리 이런 모습을 보여 줘야 그때 납득이 빠를 거다.
어쩐지, 하는 짓이 뭔 야만인 같더라니. 그래서 그랬던 거구나 하고.
“왔나.”
이후 향한 곳은 후작의 집무실이었다.
떠나기 전에 일단 보고는 해주는 게 도리란 판단.
“어떻던가?”
“어떻고 자시고, 별일 없었다.”
“모두 순순히 납득을 했단 뜻인가?”
“안 하면 뭐 달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것도… 그렇긴 하겠군. 만약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긴다면 언제든 말해주게.”
“든든하군.”
그럼 이거로 중간 보고는 끝—
“아, 그리고 하나 더.”
“……?”
“지휘관이 정해졌으니, 곧 창단식이 있을 걸세.”
“창단식?”
“미궁에 들어가기 전에 서로 안면을 틀 자리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이번 계획에 참가한 후견인들도 자네들을 한번 보고 싶어 할 테고.”
“그럼 그건 언제 하는 거지?”
“일정이 나오면 바로 전달하도록 하겠네.”
조금 웃겼다.
미궁 입장까지 이제 열흘도 남지 않았는데, 이제 창단식을 하고 안면을 튼 뒤에 곧장 미궁에 들어가야 하다니?
이거야 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급하게 일을 진행시키는 이유가 뭘까.’
문득 의문이 들었지만, 그 답은 너무나도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일단 15일은 지난 뒤에 하려 했겠지. 노아르크 측에 정보가 넘어가기 가장 쉬운 시기니까.’
윗놈들 입장에서는 최대한 정보 노출을 줄이고 싶었으리라.
실제로 창단식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니, 보안 유지 때문에 수백 명을 불러놓고 성대하게 치르는 건 불가능하다는 답이 나왔고.
“아무튼, 창단식은 알겠는데 내 팀원이 될 둘은 어떻게 됐나? 걔네도 창단식 때나 만날 수 있는 건가?”
“그럴 리가. 자네만 괜찮다면 내일이라도 만날 수 있게 조치를 취해두겠네.”
“그럼 내일 내 집으로 둘을 보내주겠나?”
“그렇게 하지.”
내 요구에 후작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거로 주고받을 대화는 다 나눈 건가?
슬슬 대화를 마무리 지을 각을 보고 있던 때, 후작이 돌연 새로운 화제를 꺼냈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네.”
“뭐지?”
“만찬장에서 내기를 걸었을 때 말일세…….”
이내 후작이 호흡을 고르고서 내게 물었다.
“넷을 상대로 이길 거라는 확신이 있던 건가?”
“왜 그게 궁금해진 거지?”
“그야 궁금할 수밖에. 자네도 내가 준비한 서류를 봤을 테니, 그들에 대해 자세히 알았을 거 아닌가. 그래서 처음에 내기를 걸 때 압도적으로 이길 자신이 있어서 그런 줄로만 알았네.”
“그런데?”
“지켜보니 그렇지가 않더란 말이지. 몇 번이나 마음을 졸일 상황이 있었는지 아는가?”
대충 뭘 묻고 싶어 하는지는 알 거 같다.
그렇게 겨우 이길 거면서 무슨 깡으로 그런 내기를 걸었냐는 거겠지.
나는 그냥 솔직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후작, 당신 말대로다.”
승리의 요인은 불사자 7단계 각인이었다.
재생의 효율을 올려주는 특수 스탯 수복력.
이게 없었다면 내 기본 자연 재생 수치로는 그리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내 쪽에서 먼저 MP가 부족해졌을 수도 있고.
수복력은 MP 재생에도 적용이 된다.
즉, [영혼잠수]로 인한 MP 회복량도 늘어나는 것.
이거면 저 네 명과 비벼 볼 수 있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반드시 이길 거라는 확신은 없었다.”
그럼에도 승리를 100% 자신한 것은 아니다.
애초에 싸움이라는 게 그렇잖아?
럭키 펀치를 잘못 맞고 골로 간 사례는 예시를 들 필요도 없이 많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군. 확신도 없는데 어찌 그렇게 과감한 행동을 한 건가?”
“글쎄, 어째서였을까.”
후작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는 것으로 답한 뒤, 방에서 빠져나왔다.
그야…….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어. 지면 절대 인정 못 한다고 억지를 부리려 했으니까 맘껏 시비를 털었지.’
플랜 B는 언제나 감춰둬야 하는 법이다.
***
집으로 돌아간 다음 날 점심.
후작의 연락을 받은 두 명의 팀원이 우리 집에 방문했다.
“그쪽이 리헨 슈이츠 씨겠군요. 반갑습니다. 렝만 학파의 3급 마법사 리어드 애쉬드입니다.”
훈훈한 인상과 마법사치고 훤칠한 키를 소유한 30대 중반의 마법사(남).
그리고…….
“젊군. 그올드 알디디라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정정한 모습을 하고 있는 60대의 이능술사(남) 한 명.
“반갑다, 리헨 슈이츠다.”
“…자네 혹시 군인 출신인가?”
“아닌데, 그건 왜 묻지?”
“하대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말일세.”
나이로 대접이라도 받고 싶어서 돌려까는 건가?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깊게 고민하진 않았다.
정답이 무엇이든 그리 중요하진 않을 테니까.
“알디디, 만약 일반적인 탐험가 팀을 생각하고 이 자리에 온 거라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일단 우리는 한동안 군부 소속으로 행동할 것이며, 체계를 위해선 상명하복이 절대적이니까.”
원래 첫 만남은 기선 제압이 중요한 법.
내가 단호하게 선을 긋자 그올드 알디디, 줄여서 디디 영감이 유하게 발을 뺐다.
“하하, 그럴 리가. 그저 궁금했을 뿐, 자네가 말을 낮추는 것에 불만이 있거나 한 것은 아닐세. 이 나이까지 탐험가 일을 해왔는데, 어디 나보다 어린 자들의 밑에 있던 적이 없겠는가? 익숙하네.”
“그렇다면 다행이군. 마법사…….”
“리어드 애쉬드. 성이든 이름이든 편한 쪽으로 호칭하셔도 됩니다.”
“그럼 애쉬드로 하지. 애쉬드, 너도 이 영감과 같은 생각인가?”
“물론입니다. 능력에 따라 대접을 받는 것은 우리 마탑 사회에서 지극히 당연한 일일뿐더러……. 이 팀은 제게도 놓치기 싫은 기회니까요.”
“기회라…….”
“이미 원정대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보상이 약속됐습니다. 한데, 어제 후작님께 전해 듣기로… 슈이츠 님께서 원정대장 자리에 올랐다지요?”
아, 후작이 벌써 거기까지 말해준 건가.
“아무래도 저희가 좋은 줄을 잡은 모양입니다. 원정대장 직속의 팀이라면 공을 세울 기회도 더욱 많을 테니. 그렇지 않습니까? 알디디 님?”
“크흐흠,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마법사 애쉬드가 부드러운 미소를 그리며 묻자 디디 영감도 헛기침을 뱉으며 긍정을 표했다.
나는 그런 그 둘을 쓱 훑어보았다.
‘다들 첫인상은 나쁘지 않네.’
일단 마법사 애쉬드.
몇 마디 대화를 나누지 않았지만 유능해 보인다.
뭐, 마법사 중에 멍청한 놈이 있겠냐마는.
그래도 사회성이랑 지능은 다른 거니까.
‘영감도 나이 갖고 고집은 안 부리는 거 같고.’
물론 여기에는 애쉬드의 공도 있다.
기회니 원정대장이니, 속물적인 면모를 보이며 자신들이 을이란 사실을 영감에게 각인시켜 줬으니.
“그럼 슈이츠 씨, 괜찮으면 뒤에 두 분도 소개를 시켜주겠습니까?”
이내 애쉬드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고, 내가 눈짓을 하자 에르웬과 아멜리아도 스스로를 간단히 소개했다.
“에르웬 포르나치 디 테르시아에요.”
“에밀리 레인즈다.”
에르웬의 소개 때는 ‘혈령후!’ 하며 놀란 얼굴을 한 반면, 아멜리아 차례에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에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얘가 누군지 궁금할 텐데도 쓸데없는 소리를 안 한 건 좋네.’
음, 이 정도면 뽑기 운은 나쁘지 않은 거 같은데?
“자, 들어와라.”
통성명이 끝난 후에는 우선 둘을 집 안으로 들였다. 얘네가 오면 같이 식사를 하려고 밥도 많이 차려뒀거든.
“그나저나 이걸 묻지 않았군. 식사는 했나?”
“저택으로 부른 걸 보고 혹시나 해서 먹지 않고 왔습니다.”
“중요한 일을 앞에 두고는 공복을 유지하는 편이 좋으니 말일세.”
그래, 둘 다 식전이라는 거구나.
“차린 건 없지만, 양껏 먹어라. 할 말이 있으면 먹으면서 하고.”
일단 다들 식탁에 앉힌 뒤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어느 분 솜씨인진 모르겠지만, 음식 맛이 아주 훌륭하군요.”
“후후, 제가 차렸어요. 고마워요.”
“감사는 이쪽에서 해야 하지요.”
“어머나, 별것도 아닌데요. 호호.”
분위기를 한층 더 유하게 만드는 애쉬드와 에르웬의 화담.
나는 그냥 가만히 음식이나 먹었다.
그야 음식들은 모두 식당에서 산 것들이거든.
아침에 나가서 직접 사온 뒤 접시에 담아 상에 올렸으니 차렸다는 말이 아예 거짓말은 아니겠지만.
‘미샤였으면 자기가 차린다고 아침부터 난리였을 텐데…….’
문득 미샤 생각이 났으나, 에르웬의 노고를 깎아내릴 생각은 아니었다.
괜히 고생하는 모습을 보는 게 싫어서 나는 항상 나가서 밥을 사오자는 주의였으니까.
항상 미샤가 고집을 부렸었다.
‘잘 지내고 있으려나…….’
단기적으로 뭉친 것이긴 하나, 새로운 팀원을 들이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싱숭생숭—
“슈이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나?”
아멜리아가 내 허리를 쿡 찔렀다.
“아무것도. 지금 경력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지?”
잠깐 생각이 딴 길로 새기도 잠시, 나는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새 동료들의 호구 조사를 시작했다.
후작을 통해 들었던 내용과 크게 다른 건 없었다.
“가장 최근에 미궁에 들어간 건 7년 전입니다. 5년 정도 머물렀던 클랜이 깨지고서는 마탑에서 연구 활동에 전념했지요.”
“이제 와서 생각을 바꾼 이유는?”
“탐험가들이 기를 쓰고 위층으로 향하는 것과 같은 이유지요.”
보다 나은 삶.
보다 많은 기회.
이상한 신념을 늘어놓는 것보다는 이쪽이 몇 배는 더 신용이 간다.
“미궁에서는 뭘 할 수 있지?”
“미궁에서 마법사에게는 뭘 잘하느냐보다는 뭘 못하느냐가 더 중요하지요.”
내 질문에 씨익 웃은 애쉬드가 스스로가 가진 패들을 공유했다.
“5급 이상 저주 마법은 극히 일부만 가능합니다. 지원 보조 계통은 4급까지. 그 외에는 타 학파의 고유 마법을 제하고 다 할 줄 안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 미궁에 관심이 많아서 채집이나 소재 관련으로 지식이 꽤 풍부한 편이란 것도 장점이라 할 수 있을 듯하군요.”
애쉬드는 일종의 올라운더였다.
저주랑 지원 계통에서 스탯이 좀 딸리기는 하지만, 크게 흠 잡을 정도는 아니고.
“뭐가 자신 있느냐고 굳이 묻는다면, 공격 마법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속성은?
“딱히 편차가 있다고 생각되진 않는군요.”
이야, 속성까지 광범위해?
“렝만 학파가 전투 마법을 연구하는 곳인가?”
“아뇨. 저주 계열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뭐? 이거 웃긴 녀석이네.
저주 계통 학파에 갔는데 가장 잘하는 게 공격이라니.
뭔가 사연이 있을 것도 같은데…….
“그럼 제게 더 궁금한 게 없다면, 알디디 님에 대해서도 들어보고 싶군요.”
사연을 물어볼까 말까 고민하던 차, 애쉬드가 자연스레 옆에 있던 디디 영감에게 턴을 넘겼다.
‘…노린 건가?’
설령 그렇다 한들 기분이 나쁘거나 하진 않다.
애초에 개인사에 가까운 이야기일 거 같아서 나도 묻지 않으려 했으니.
“나는 치유사라네.”
치유사는 이능술사의 세부 카테고리다.
신관의 치유력을 흉내 내면 치유사.
마법사의 화력을 대체 가능하면 술법사.
술법사인데 독을 쓰면 독술사고, 불을 쓰면 화염술사.
버프 도핑이 주력이면 지원계 주술사.
그 반대면 저주계 주술사.
대충 이런 식으로 구분이 되며, 상위 탐험가가 될수록 이 분류법은 더 세밀해지고 광범위해진다.
나만 해도 만약 길드에 이력서를 제출하려면 바바리안 전사가 아니라 ‘수호자’라고 적어야 할 테니.
“치유사라… 균형이 좋군요.”
디디 영감의 직업군을 들은 애쉬드는 구성이 마음에 들었는지 연신 고개를 주억였다.
하기야 에르웬이 궁수인 거야 유명하고, 아멜리아 얘도 집에서 가죽옷에 단검까지 챙겨들고 다니니 어떤 포지션인지야 뻔했겠지.
나에 대해서는 후작에게 들었을 테고.
“대부분은 치유계 이능을 얻었지만, 지원 주술 계열도 두 개를 갖고 있네.”
쉽게 말해, 버프류의 지원 스킬도 있다는 뜻.
이후 디디 영감은 자신이 소유한 정수들 내역과 그 정수들을 어떤 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우리에게 설명했고, 그다음은 우리 차례였다.
물론 우리는 팀원의 이해가 필수인 이능술사가 아니었기에 정수 내역까지 전부 상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각자의 역할,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아멜리아의 ‘오러’와 ‘자가복제’, 에르웬의 ‘어둠 정령’ 정도만 특이점으로 말해줘도 충분하다.
“그럼 이제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대부분 알게 된 거 같습니다마는. 앞으로는 어떡하실 겁니까?”
“가능하면 매일 만나서 합을 맞춰봤으면 하는데.”
“예, 혹시 항상 가시는 훈련장이 있습니까?”
“있긴 한데, 얼마 전에 망해서 사라졌더군.”
“그렇다면 제가 아는 곳으로 잡아두겠습니다. 아, 이후 서면으로 연락할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다들 주소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여기 있네.”
유능한 집사가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
애쉬드는 팀 활동에 있어 필요한 자질구레한 일들을 내가 신경 쓸 필요 없도록 도맡아 주었고, 우리는 다음 날부터 매일 훈련장에 모여 합을 맞춰볼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슈이츠, 후작에게서 연락이 왔다.”
마침내 창단식 날이 되었다.
‘이 새끼들은 진짜 일처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미궁 입장까지 사흘이 남은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