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634)
634화 재건 (3)
상관 A가 있다.
과중한 업무를 지시해 놓고 반년을 넘게 얼굴 한 번 내비치지 않은 상관이다. 그런 상관이 오랜만에 돌아와 8,712개의 일거리를 갖고 돌아왔다.
이때 부하 직원의 마음은 어떨까?
위 문제의 정답은 지금 내 앞에 선 샤빈 에무어의 표정을 통해 알 수 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
분노에 의해 한곳에 고정된 시선.
그리고…….
‘살기……?’
어떻게 일반인이 이런 살기를 표출할 수 있는 것일까.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을 정도지만…….
“저… 이제 그만둘—.”
그 단어가 완성되기 전에 일단 서둘러 샤빈의 말을 끊었다.
“샤빈! 잠시만 진정해라! 네가 없으면 우리 부족은 망한다!”
“저 하나 빠진다고 망할 곳이면 진작 망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어…….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닌데…….
“우, 우리 사이에 왜 그러냐? 내가 지금까지 잘 해줬—.”
“그럼 저는 잘 해주지 못했다는 뜻인가요?”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원래 가족 같은 문화는 중소 기업의 특징이기도 한 법.
다만 나는 의리로 설득하는 방법은 바로 폐기했다.
인력난을 겪는 중소 기업이 인력난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가족 같은 문화에 질려 떠나려 하는 이들을 잡기 위해 필요한 것은 도의적인 말 따위가 아니다.
“두 배.”
“두 배?”
“그래, 지금까지 받던 월급의 두 배를 주마!”
파격적인 월급 인상 소식에 차갑게 굳어 있던 샤빈 에무어의 표정에 조금 균열이 생긴다.
“……그, 그런 거로 제 마음이 바뀔 거라—!”
연계기를 넣을 때였다.
“앞으로만 말하는 게 아니다!”
“……?”
“내가 없는 동안 네가 홀로 성지에서 고생한 시간들까지 두 배로 쳐서 지급을 하겠다!”
“……!!!”
맘 떠났던 부하 직원조차 눈이 번쩍 뜨게 만드는 파격적인 성과금 약속.
“…….”
본인도 멋쩍기는 한지 대답을 바로 하지 않지만, 표정을 보니 완전히 무장해제가 됐다.
따라서 나 역시 더 이상 보채거나 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리며 시간을 주었고, 이에 샤빈도 천천히 입을 뗐다.
“…할게요.”
개미 기어가는 듯한 작은 목소리.
“뭐라고?”
“……맡겠다고요! 그 행정사무총장 자리!”
이내 샤빈이 결심을 끝마친 사람처럼 큰 소리로 외쳤다가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변명하듯 뒷말을 이어붙였다.
“그… 저도 이제… 결혼 준비를 해야 할 나이니까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유였다.
“어…….”
……준비할 나이가 아니라, 한참 늦은 나이가 아니고?
이제 몇 년 뒤면 마흔인 거로 알고 있는데…….
초혼이 늦어지던 현대 사회라면 모를까. 이 사회적 시대상으로는 역시 늦은—.
“하긴.”
그때 아멜리아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나이면 슬슬 생각이 날 때지.”
…아무 말도 안 하길 잘했네.
***
행정사무총장, 샤빈 에무어.
오늘로서 행정 및 사무 계열의 최고 권위자 위치를 손에 넣은 그녀의 실력은 진짜였다.
“내년에 팔려고 정리해 둔 땅이 있어요. 거기라면 이 인원도 수용은 가능할 거예요. 조금 비좁기는 하겠지만.”
퇴사를 결심했던 순간이 무색할 정도로 샤빈은 미리 준비해 두기라도 했던 사람처럼 8,712명의 난민들을 수용해냈다.
“지붕이 문제긴 한데……. 미리 준비해 둔 자재들이 있어서 간이로 설치하는 건 금방 끝날 거 같아요.”
“금방 끝난다고? 아무리 그래도 인원이 인원인데. 정말 가능하겠나?”
“물론이죠. 비요른 님은 오래 자리를 비워서 잘 모르시겠지만……. 바바리안들요, 진짜 선천적으로 타고난 일꾼이에요. 어쩌면 전사 일보다 이쪽 일을 더 타고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뭐?”
바바리안의 부족장으로서 어딘가 버튼을 누르는 말이었지만, 이어진 결과물에 나도 납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일당백의 전사임을 증명하듯.
“베헬—라아아아아아아!!”
거대한 통나무를 기합 한 번 내뱉으며 들어 올린 뒤 혼자서 나르는 전사들.
“거기 가운데! 가운데 기둥을 잘 박아놔야 집이 단단하다! 우리 근육처럼!!”
심지어 성지에 자기 집을 짓는 게 유행이다 보니 건축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뭐, 드워프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거기! 삐뚤어졌다!”
“귀찮은데 그냥 세워라!”
“좋다!”
이게 바로 태생의 한계일까.
특유의 장인 정신으로 야금술과 건축술에서 만인의 인정을 받는 드워프들의 디테일은 따라갈 수 없었다.
하지만…….
“빠르죠?”
“그렇군…….”
성지의 바바리안들 모두가 달려들자, 작업 속도가 미쳤다는 말로도 모자랐다.
이 추세면 며칠 만에 난민들을 수용할 수 있는 간이 오두막이 전부 다 완공될 거 같달까.
‘뭐, 날림으로 지어서 1년이면 무너질 거 같긴 하지만…….’
그래도 덕분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바바리안은 가성비가 좋구나……!’
아니, 그냥 좋다가 아니라 이 정도면 그냥 미친 수준이다.
매우매우 저렴한 노동력.
그럼에도 혼자서 몇 인분이 가능한 신체 스펙.
또한 무엇보다…….
‘불만이 없어.’
싼 값에 부려져도 그냥 그려러니 하는 긍정적인 마인드까지.
타고난 일꾼이란 샤빈의 말에 괜히 자존심이 상하거나 할 이유가 없었다.
그야 오히려 그 말조차 모자랄 지경이었으니까.
단언컨대, 바바리안 전사들은 이 시대 최강의 일꾼이었—.
“얀델.”
새로이 발견한 가능성에 소름이 돋아나던 그때,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로트밀러?”
“오랜만일세. 진작 찾아오려 했는데, 바빠 보여서 말이지.”
“네가 왜 성지에 있냐?”
진짜 궁금해서 물은 것인데, 로트밀러는 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한 눈빛으로 이렇게 되물을 뿐이었다.
“얀델, 자네였지 않은가. 성지의 어린 전사들에게 탐색 기술을 전수해달라고 한 건.”
“아…….”
그랬었지.
나도 참…….
“미안하다. 요즘에 일이 너무 많아서 잠시 잊고 있었다.”
“충분히 이해하니 그렇게 사과하지 않아도 되네. 이번에도 큰일을 여러 번 겪지 않았나?”
“그렇게 말해주면 고맙긴 한데……. 아무튼, 그럼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성지에서 지냈던 거냐?”
“특별히 도시에 용무가 있는 게 아니라면. 어린 전사들에게 내 기술을 가르치는 일도 나름 뿌듯하고, 적성에도 맞더군.”
“오, 정말이냐?”
“빈말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일세. 내가 가르친 기술 덕분에 미궁에서 살아 돌아오고, 또 내가 알려 준 게 도움이 됐다며 보답으로 돌빵을 줄 때면 어찌나 가슴이 벅찬…….”
그때 돌연 로트밀러가 말꼬리를 흐리더니, 약간 무안한 얼굴로 헛기침을 뱉었다.
“크흠! 아무튼 나쁘지 않은 생활을 보내는 중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그, 그렇군……?”
“아, 그리고 요즘에는 내 업무를 마치고도 조금 여력이 남아 행정 쪽 일을 돕는 중일세.”
“행정 쪽 일을……?”
“에무어 양이 많이 힘들어해서 말일세. 나이도 어린 친구가 고생을 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기 어렵기도 하고…….”
“응? 샤빈 에무어가… 어려……?”
“몰랐나? 나보다 두 살이나 어린데. 아아, 물론 나이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말일세. 두 살 어리다곤 해도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이룬 여인이기도 하고…….”
그리 말한 로트밀러는 어딘가 자조 섞인 웃음을 내뱉었다.
그 모습에 불현듯 머리에 벼락이 쳤다.
‘……샤빈이 결혼 준비 어쩌고 한 게 혹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무슨 사이냐고 묻는다거나 하는 눈치 없는 짓은 하지 않았다.
둘이 알아서 하겠지. 어린애들도 아니고.
“아 참, 얀델… 비프론 지역은 어떻게 됐는지 혹시 아는 게 있나? 다들 티는 안 내지만 불안해하고 있네.”
“그거라면 나중에 알게 되면 말해 주겠다. 지금 당장은 나도 아는 게 전무해서.”
“그렇군…….”
이후로 30분 정도 로트밀러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수다를 떨고 있자니, 샤빈 에무어가 나를 찾아왔다.
“비요른 님……! 어? 로트밀러 씨도 계셨네요?”
“반갑소이다. 에무어 양. 어제 부탁한 측량 작업을 마치고 잠시 지나가는 길에 얀델과 만나서 담화를 나누고 있었소.”
“앗, 정말요? 측량이 벌써 끝났어요?”
“미룰 이유가 없지 않소. 에무어 양이 바쁜 건 나도 잘 아는데.”
“네에……. 항상 감사해요. 로트밀러 씨…….”
로트밀러의 말에 입을 가리며 아가씨 같은 미소를 짓는 샤빈 에무어.
‘쓰읍, 이거 진짜 뭔가 있는 거 같은데.’
전사로서의 직감이 말하고 있지만, 내가 관여할 부분이 아니기에 그냥 주제를 돌렸다.
“샤빈, 그래서 난 왜 찾은 거냐?”
“아아, 내 정신 좀 봐. 오전에 서신이 왔어요. 그것도 세 개나.”
“세 개나?”
일단 샤빈이 건넨 편지를 받아 확인하자 발신인이 제각각 달랐다.
“하나는 왕가, 하나는 멜베스, 하나는…….”
뭔지 모르겠네.
이게 대체 뭐지?
고민하던 차 박학다식한 샤빈 에무어가 설명을 곁들였다.
“그 인장은 종족 공문을 뜻해요. 아마 시기로 보아 내용은 종족 회담 참여 안내문일 가능성이 높고요.”
“종족 회담이라…….”
그러고 보니, 이런 이벤트도 있었다.
여섯 종족의 대표자들이 모여서 회담을 갖는 자리.
사실 진작에 한 번 갔어야 했지만, 의도치 않게 지하 1층에 오랜 시간 갇혀 있느라 불참하게 됐다.
“내가 없는 동안에도 회담이 열렸나?”
“아뇨. 안 열린 거로 알고 있어요. 원래 전원이 참석해야지만 자리가 만들어지는 게 전통이라고 들었거든요.”
“…그렇군.”
의문이 해결된 나는 나머지 편지들을 차례차례 뜯어서 읽어 보았다.
공교롭게도 모든 편지가 다 공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하나씩 짧게 정리를 해보자면 이랬다.
1, 왕실 회의 참석 권한 부여 안내서.
2, 멜베스 정기 집회 참가 요청서.
3, 종족 회담 동의서.
부족장에 작위 남작까지 겸업 중이라서 그런가?
이런 편지들을 받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고위 정치인이라도 된 기분이다.
…엄밀히 말하면 틀린 말도 아니겠지만.
“와아아…….”
이내 발신인들의 면면과 편지 내용을 확인한 샤빈이 감탄한 듯 탄성을 내뱉더니, 나를 보며 묘한 말투로 중얼거린다.
“확실히 이런 걸 보면 정말 대단한 사람인 건 맞는데…….”
뭔가 칭찬인 것 같으면서도 맥이는 듯한 뉘앙스.
“지금 뭐라고 했냐?”
“아뇨. 아무 말도요. 단지 이런 편지를 받는 사람이 제 앞에 있다고 하니 신기해서요.”
“…새삼스럽게.”
괜히 뭔가 멋쩍어진 나는 다시금 편지의 내용에 집중했다.
“그래서 어쩌시려고요?”
“어쩌다니?”
“세 곳에서 초대 비슷한 느낌의 편지가 왔잖아요. 전부 가실 거예요?”
“아무래도 그래야지. 전부 공적인 일이니까.”
“그럼 어디부터 가시려는 건데요?”
아, 그거.
그건 애석하게도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음, 어디 보자 가장 빠른 게…….”
이내 나는 편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게 가장 빠르군.”
이종족 귀족 연합회, 멜베스의 정기 집회 초청장이었다.
***
오랜만에 도시로 돌아온 만큼,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너무도 많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을 꼽아보자면, 역시 이것일 것이다.
원래 예정에 있던 퀘스트는 아니지만…….
[바바리안 성지에서 생활 중인 난민들을 이용해 돈을 버시오.]난민들은 모두 내 가신이 되었다.
그리고 왕법하에 귀족 가문의 가신들은 투잡을 뛰며 돈을 버는 일이 불가능하다.
뭐, 알게 모르게 하는 건 가능하겠지만…….
안 그래도 왕가에게 꼬투리 하나 잡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와중에 8,712명 전부를 투잡 뛰게 할 수도 없는 노릇.
‘내년 세금을 내려면 어떻게든 이익을 창출해야만 하는데…….’
이게 가장 큰 문제다.
내가 사업체를 갖고 있던 대귀족이라면, 그들을 그곳에 투입시키는 식으로 일자리를 줄 수 있었을 테지만, 나는 그런 게 아니니까.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러한 고민의 실마리는 놀랍게도 생존 신고나 하려 출석한 멜베스 정기 집회에서 얻을 수 있었다.
“아아, 다음 안건은 7구역 및 13구역의 재건 공사 수주에 관한 건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왕실에서는 총 세 개의 귀족 사업체를 선정해 재건 공사를 맡기겠다고 공표를 하였습니다.”
“…….”
“막대한 이익이 걸린 만큼 수많은 귀족 가문들이 수주에 참여할 것이 분명한 바, 저희 멜베스에서도 가문 하나를 선정해 뒤에서 조력을 하려고 합니다.”
“…….”
“해서 건축 관련 사업체를 여럿 소유하고 있는 골드비어드 백작가를 주축으로 수주 입찰에 참가하려 하는데, 이의가 있는 가문이 없다면 곧바로 찬반 투표를—.”
나는 조느라 끼고 있던 팔짱을 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의 있다!”
반드시 우리 가문이 따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