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018)
제 1111화
247화. 라프라로사 해방 전쟁(7)
‘이건, 명왕군림검……!’
시마트는 이미 한 차례 진의 명왕군림검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과거 시마트가 각성하기 전, 라키만과 함께 킨젤로 7지부를 쳤을 때였다.
그러나 지금 시마트의 눈앞에 펼쳐진 시퍼런 뇌기는,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이 사나운 대해를 이루고 있었다.
‘다르다. 그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강해……!’
적뇌 파장이 걷히고 있었다.
붉은 함대는 이미 명왕군림검의 푸른 뇌기에 뒤덮여 사라지고 있었다. 일반 함대의 보호막이나 장갑 따위는 명왕군림검 앞에 어떤 의미도 가질 수 없었다.
용암처럼 뜨거워지는 공기, 눈동자를 불태우는 빛.
그 속에서 녹거나 부서지거나 흩어지지 않고 버티는 건 시마트와 네 기의 공중요새뿐이었다.
공중요새들은 급격히 거리를 벌렸고, 시마트도 진의 사거리를 벗어나고자 반사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나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다. 눈이 닿는 모든 영역, 닿지 않는 저 멀리까지도 전부 명왕군림검의 빛이 들어차고 있었다.
뒷걸음질 치고, 뒤를 돌아보고, 다시 앞을 보고, 내면에 들어찬 공포를 응시하고, 자꾸 의미 없이 도망치려는 두 다리를 붙잡고.
“하.”
돌연 시마트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다 끝났다는 허망함,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패배감, 그 대봉인까지 버텨내고 어렵게 쟁취한 생존의 희망이 끝났다는 상실감, 이해의 범주를 벗어난 무력에 대한 경외감…….
그 모든 감정이 뒤죽박죽 섞인 머릿속에 번갯불이 치고 있었다.
하지만 시마트는 절망에 잠식되지 않았다.
잠식되지 않으려 악을 쓰고 있었다. 극히 미세한 가능성조차 보이지 않지만, 이대로 겁먹은 들개처럼 엎어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시마트는 보려고 했다.
절망과 좌절의 틈바구니 어딘가에 분명히 남아 있을 투쟁심을. 창성에 닿고 언제부턴가 너무 익숙해지기만 한 그 감정을.
“모든 공중요새는 나에 대한 지원을 해제하고 본체 방어와 라프라로사 타격에 집중하라.”
팔찌를 통한 통신이 아닌, 기운을 담은 낮은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뇌기의 폭음을 뚫고 전장 모두의 고막을 울렸다.
그 역시 창성인 것이다.
아무리 버거운 운명도 초월해낼 수 있는, 그런 가능성을 쟁취한 자들만이 닿을 수 있는.
성벽처럼 시마트의 사방을 가로막고 있던 적뇌 파장이 옅어지고 있었다. 그러곤 마침내 심마를 완전히 빠져나온 얼굴로 진을 마주했다.
“그래, 그 말이 맞는 것 같군. 괜한 놈들을 건드렸어. 하지만 어쩌겠나? 처음부터 이렇게 태어난 것을. 우린 날 때부터 싸우고, 파괴하고, 정복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던 사람들이다, 진 룬칸델.”
처음으로 듣는 진솔한 목소리였다.
진과 반, 투신합일을 한 두 사람의 내면은 그 목소리에 공감하고 있었다. 진 또한 룬칸델이라는 패도의 가문에서 태어났고, 반 역시 명왕족으로서 언제나 정복자의 삶을 살아온 것이다.
[잘 알지. 하지만 그런 자들의 종착점은 언제나 같다, 시마트. 세상을 정복하고, 지배하다가…… 부러지는 거다. 지금처럼 더 강한 상대를 만나서든, 그저 세월에 분열되는 것이든.]시마트는 그게 반의 목소리라는 걸 바로 알아보았다.
공중요새의 지원이 사라진 지금, 그는 유려하게 싸우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지상의 패권을 가장 많이 틀어쥔 인물이었다고는 믿을 수 없이 거칠게 싸우고 있었다.
바닥을 구르고, 몰려드는 뇌기를 쳐내느라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르고.
그러나 오히려 진과 반에겐 그 모습이 더욱 창성답게 보였다. 그저 본능적인 야욕에 심취해 있던 괴물이 아니라.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우린 과거 대전쟁에 패배해서 저 안에 갇힌 신세다. 그러나 우린 진 형제라는 구원자를 만났어.]“하하! 그러한가? 이토록 말도 안 되는 힘을 갖고도, 네게는 구원자가 필요했나? 라프라로사의 투신.”
[태어난 이상 구원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다.]“우리에겐 그런 구원자를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설령 있었다고 한들, 잡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적명족의 삶이 아니니까.”
크아아아아-!
시마트가 포효를 내지르며 테탈론을 들어 올렸다. 그사이 악귀처럼 쇄도한 뇌기가 그의 온몸을 물어뜯었다.
살점과 핏물이 튀었다. 이대로라면 당장이라도 시마트의 육신이 사라질 것 같았다.
하지만 진과 반은 그가 수세에 몰릴수록 더 강해지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아슬아슬하게 급소만 보호하면서 광심장의 뇌기를 끌어올렸다.
그에 맞춰 진도 명왕군림검을 개방하고 있었다.
명왕검 투신기 제10검
명왕군림검 – 전
투신 오의의 두 번째 결.
라프라로사에서 고통받고 있는 형제들에까지 그 기운이 닿고 있었다. 차원과 차원을 넘어 울려 퍼지는, 명왕들의 진군가였다.
그 모든 의지가 진의 광심장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적뇌는 물론이고, 전장을 잠식하고 있던 혼돈마저 이제는 뇌기를 피해 어디론가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
동시에 보호막 안에서 주포를 장전하던 공중요새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심지어 가장 먼저 장전을 완료하고, 지금 막 라프라로사로 주포를 발사하고 있던 피빌마저도 완전히 멈춘 상태였다.
라프라로사를 향해 쏘아진 주포도 얼어붙은 듯 상공에 그대로 고정되어 있었다.
흉신전 때 람의 포격조차 이렇게 멈추게 만든 검이었다. 그때와 똑같은 장면이 대사막에 다시 한 번 펼쳐지고 있었다.
정지한 전장 속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은 오로지 한 사람, 진.
그리고 들려오는 것은, 오로지 명왕군림검의 뇌성뿐.
[너는, 우리를 초월할 수 없다. 시마트.]셀 수도 없이 쏟아지는 우레가 시퍼렇게 물든 하늘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투신의 천둥이 떨어진 자리마다, 폭음과 더불어 육중한 무언가가 날카롭게 베이는 소리가 터졌다.
공중요새가 베이는 소리였다. 하늘에서 떨어진 시퍼렇고 거대한 칼날들이 네 기의 공중요새를 유린하고 있었다.
보호막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의지가 담기지 않은, 기계 장치가 형성한 방패 따위로는 투신의 번개를 결코 받아낼 수 없었다.
하물며 공중요새를 지켜야 할 대투왕들마저 바깥에서 싸우고 있으니, 뇌전은 무참히 내리칠 뿐이다.
적명족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들이 자랑하는 네 기의 공중요새가 속수무책으로 부서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채 5분이 지나기도 전에 모조리 흔적도 없이 사라질 터.
스아악-!
다시 한번, 시마트의 검이 진의 목으로 날아들었다. 상처와 피로 범벅된 무거운 몸이 잠시 진의 시야를 가렸다.
“아니! 초월할 것이다, 결국 부러지더라도, 죽더라도, 그래서 우리의 운명이 모조리 부정되더라도! 그 모든 건 너를 초월한 다음일 것이다!”
시마트가 다시 검을 휘두른 순간부터 공중요새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명왕군림검의 파동에 흠집을 낸 덕분이었다. 테탈론의 칼날이 진의 영역에 붉은 잔상을 남기고 있었다.
시마트의 몸에 난 몇몇 상처는 뼈가 드러날 만큼 깊다.
그러나 진과 반의 눈엔 보였다. 설령 상처가 계속 깊어져 뼈만 남게 되더라도, 혹은 그조차 남지 않더라도 계속 검을 휘두를 시마트의 모습이.
‘목숨을 끊는 건 쉬운 일이나, 의지를 죽이는 건 쉽지 않지. 그런 의미에서는…… 강적이라 부를 만하구나, 진 형제.’
시마트의 검격이 계속 진의 온몸을 스치고 있었다.
그러나 단 일검도 깊게 들어가지는 못했다. 적천신검의 기운이 상처를 타고 육신으로 침투하기도 했으나, 광심장을 뚫을 수는 없었다.
세포 하나, 혈관 한 줄기까지도 모두 진과 투신의 뇌기가 흐르고 있었다. 적해가 라프라로사를 위협했던 건, 어디까지나 반이 형제들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었을 뿐이다.
터걱-!
테탈론을 쥔 시마트의 중지와 약지가 폭발했다. 손가락이 떨어진 것쯤은 그의 검과 의지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나, 안 그래도 닫혀 있는 문이 더욱 굳게 잠기는 건 어쩔 수 없다.
초월을 위한 문은 그렇게 점점 더 문턱이 높아지고 있었다. 진이 시마트의 의지를 베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로지 충분한 시간밖에 없었다.
격차는, 처음부터 아득했다.
“방어는 포기한다, 보호막에 사용된 동력을 전부 회수해! 모든 동력을 공격에만 집중시킨다. 공중요새 네 기를 다 잃는 한이 있어도, 라프라로사만큼은 반드시 파괴해야 한다!”
공중요새 안에서 리마가스가 소리쳤다.
그는 자신의 판단을 후회하고 있었다. 시마트가 크리를 사용하지 않도록 직언한 자신을 죽이고 싶었다.
‘이렇게 되기 전에 크리를 가져왔어야 했다. 마녀를 이용해? 개 같은 소리였어. 오히려 마녀가 우릴 이용한 거다! 마녀는, 라프라로사가 해방되길 원하고 있었어……! 크리를 파괴하기 위해서!’
크리, 그리고 소멸의 빛.
리마가스는 마녀가 노린 게 그것이었다고 확신했다. 소멸의 빛이야말로 어떤 상황에서든 마녀 자신에게 가장 위험한 요소였을 테니까.
하나 그렇게 생각한다고 한들, 지금은 늦었다.
라프라로사는 이제 해방되기 직전에 놓였고, 그들의 투신은 아직 풀려난 게 아님에도 벌써 끔찍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제 와서 실수를 바로잡기엔 너무 늦었다.
상상조차 하기 어렵지만, 설령 시마트가 진을 꺾는다 한들 적명족에게 남을 것은 없었다. 투신을 비롯한 동포들은 모두 죽거나 차라리 죽는 게 나은 상태가 될 것이며, 공중요새와 함대도 다시 쓸 수 없었다.
이를테면, 지금 선택할 수 있는 건 자폭밖에 없었다. 끝장이 나더라도 적을 최대한 다치게 만드는 게 그나마 최선이었다.
“크리는 아직 소식이 없는가!”
리마가스는 투신합일이 펼쳐진 그 순간 이미 크리를 부른 상태였다. 혼기 때문에 통신이 불가능하니 일부 함대를 보낸 것이다.
그러나 크리를 호출하러 떠난 동포들은 이미 죽었을 것 같았다. 공중요새와 대투왕들, 그리고 시마트조차 종잇장처럼 찢어발기고 있는 이 어마어마한 뇌기 속에, 그들이 무사히 대사막을 빠져나갈 수 있었을까.
리마가스는 고개를 저었다. 방금 자신이 소리친 말에 대답해야 할 승무원들도 푸른 뇌기에 삼켜져 사라지고 있었다.
명왕군림검이 피빌의 장갑을 뚫고 내부로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리마가스는 허망한 얼굴로, 파괴된 함교 장갑 너머로 시선을 두었다.
적명족 중 오직 시마트만이, 절망을 헤치며 앞으로, 진에게로 나아가고 있었다. 무의미한 걸음이라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