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024)
제 1111화
247화. 라프라로사 해방 전쟁(13)
투신합일은 해제되었다.
다만 로키아가 훼손하지 못한 것은, 굳이 그런 무공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하나로 이어진 명왕들의 내면일 뿐.
그러니 진은 반의 감각 없이 명왕군림검의 최종장을 펼쳐야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미 아주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다.
반이 명왕군림검을 펼칠 때 의지를 전개하는 길이, 아직 진짜 투신만큼 완벽하진 못한 자신이 마치 그녀처럼 이 오의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
명왕검 투신기 제10검
명왕군림검 – 결
찰박……!
별안간, 물을 밟은 듯 부드러운 울림이 전장의 굉음을 밀어냈다. 매섭게 날뛰던 금뢰들이 잔잔히 흐르는 강처럼 진의 근처를 맴돌고 있었다.
맴돌면서 크리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림이 지워지듯이, 크리가 존재하고 있는 ‘공간’이 명왕군림검 속으로 흡수되어 사라졌다.
투명한 금빛 강 위로 전장이 비치고 있었다. 크리와 공중요새들의 일그러진 모습도, 하늘을 뚫고 나타나는 혼돈의 차원문들도 모두 그 속에선 투명할 뿐이다.
크리와 혼기는 이 금빛 세계에 아무런 위해를 가할 수 없고, 한 방울의 뇌기조차 더럽힐 수 없다.
[너의 그 하찮은 힘과 권능으로 감히 누구를 죽이겠다는 것이냐.]명왕군림검의 뇌기는 점점 백색으로 물들어갔다. 흐르면 흐를수록 맑아지는 물처럼, 새하얗게 일렁이고 있었다.
굉음이 잦아지고 있었다.
로키아, 그리고 그녀가 부리는 크리와 공중요새들이 동작을 멈췄기 때문이 아니었다. 로키아는 전투가 시작된 후 가장 격렬하게 혼기를 방출하고 있었다. 공중요새들도 쉴 새 없이 적뇌와 혼기를 토하고 주포를 토하는 중이었다.
다만 그 모든 소음이 새하얀 빛 속으로 잠기고 있었다. 고막을 찢는 폭음뿐만이 아니라, 작디작은 모래알갱이가 흩날리는 소리마저 모두 빛 속으로 가라앉아 고요해졌다.
‘숨이…… 막힌다.’
로키아의 진체는 현재 인세와 다른 차원에 존재한다. 그녀는 영체를 통해 진과 대적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물에 빠진 듯 호흡이 멎는 것 같았다.
대사막에서 벌어진 전투가 어떻게 진행돼도 반드시 안전했어야 할, ‘로키아의 세계’가 전장 한복판에 노출된 것 같았다. 절대로 그럴 리가 없는데도.
로키아는 저도 모르게 몇 번 자신의 목과 심장을 더듬거렸다. 시그문드의 칼날이 자신을 지나는 모습이 현실처럼 눈앞을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죽음을 두려워하기에는, 나는 이미 너무 많이 죽어보았다. 이 검을 깨뜨리는 건 내게도 무리지만…… 너의 투신을 저주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지.’
시간이 느려지고 있었다. 마치 사물처럼 무언가에 가로막힌 듯이, 전장의 시간이 느린 속도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평소와 똑같은 속도로 움직일 수 있는 건 오로지 진과 무라칸, 그리고 로키아뿐이다. 투왕들도, 공중요새들도 느려진 시간에 맞춰지고 있었다.
다만 로키아에겐 벅찬 일이었다. 그녀는 억지로 명왕군림검의 힘을 거스르고 있었다. 어떻게든 라프라로사를 저주하기 위해, 반을 죽이기 위해.
그것만 성공하면 틀어진 계획을 일부나마 복구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제 반이 없어도, 진이 그 역할을 충분히 대신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직접 확인했으니까.
마녀를 베는 일을 말이다.
‘내가 너의 검이 내 영체들과 병기를 부수는 걸 막을 수 없듯, 너도 나의 저주가 라프라로사를 덮치는 걸 막을 수 없어. 너와 나는 태양신이나 마녀처럼 전능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지.’
주륵……!
돌연 라프라로사의 차원문 한가운데에서 한 줄기 끈적하고 검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처음 대사막에 차원문이 열린 후 지금껏 쭉 그 안에 존재해온 혼기가 저주, ‘마녀의 웅덩이’로 변하고 있었다.
진이라 할지라도 미리 차단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건 사실상 라프라로사 내부에서 시작된 저주인 것이다.
진은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저주라…… 아마 내가 알지 못하는 특별한 저주일 테지. 현실감각도 잃은 모양이군. 저주 따위로 반 형제를 위협하려고 시도한 건 네놈이 처음일 거다.]로키아는 비아냥거리는 진의 목소리에 대답할 수 없었다. 초가 지날 때마다 명왕군림검의 뇌류 속으로 영체가 빨려 들어가 소멸하고 있었다.
진은 로키아의 속내를 훤히 꿰뚫어 보았다.
[그래, 반 형제는 몰라도 다른 형제들이 위험할 수도 있겠지. 한데, 내가 네 저주를 막지 못한 건 그저 명왕군림검의 범위 바깥에서 시작된 탓일 뿐이다.]진이 로키아의 저주를 미리 차단하지 못한 건, 오로지 그 저주가 라프라로사 내부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같은 차원, 같은 공간에서 발현된 저주였다면 얼마든지 차단할 수 있었다.
[장담하지, 투신 형제는 이 정도 저주로 죽일 수 없다. 지금은 천 년 전처럼 저주나 역사 따위로 상대를 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 시대가 아니야.]물론 로키아는 반이 명왕군림검이나 어떤 특수한 권능을 통해 저주를 막아내는 걸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그 과정에 반이 죽거나 그에 준하는 피해를 입는 건 필연이라 확신했다.
반은 지금껏 오랜 격전에 시달렸기 때문이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 적명족과 지플의 합동 공격을 매일 견뎌야 했고, 심지어 오늘은 투신합일을 펼치며 이미 진에게 많은 힘을 나눠주었을 터였다.
제아무리 명왕족 투신이라 할지라도 한계는 존재할 수밖에 없는 법. 그러나 반에 대한 진의 믿음은,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확고했다.
[굳이 명왕군림검으로 전장의 시간을 뭉갤 필요조차 없었겠어. 어차피 너의 시간은 천 년 전에 멈춰 있는데. 이제 네게는, 더 이상 남은 수가 없다.]판단이 끝났다.
진으로서는 더 이상 거칠 게 없었다. 이제 로키아를 쫓아내고 크리와 공중요새들을 모조리 파괴하면.
마침내 라프라로사 해방 전쟁은 끝이 날 터였다. 진과 형제들의 염원이 마침내 현실이 될 터였다.
라프라로사와 인세, 두 개의 차원에서 투신과 투신의 후계가 동시에 명왕군림검을 펼치고 있었다.
진과 반, 두 사람은 그런 서로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서 있는 공간은 다르나, 두 사람은 함께 검무를 추는 셈이었다.
[룬티아 누님, 그리고 베일. 두 분은 라프라로사 통로 방어에 합류하십시오.]베일이 진의 명을 받아 부른 지원군이 막 전장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베일은 명왕군림검에 분해되는 로키아의 영체들을 보고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명왕군림검의 마지막 장에 넋을 잃고 있었다. 흉신전에서 투신 반이 직접 사용한 결에 비하면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기에 더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알겠어.”
[중간중간 제 검과 뇌기의 흐름을 최대한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균열 사이로 분명 반 형제의 명왕군림검 여파가 쏟아질 겁니다. 그 여파만으로도 제 검과 닮은 점이 많을 테니, 누님은 그걸 참고해서 막아주시면 됩니다.]“막내 네가 저걸 상대하는 일에 방해되지 않게?”
[아뇨, 설령 누님과 베일이 없다고 해도 반 형제의 검이 제게 방해가 될 일은 없습니다. 다만, 루나 누님을 지켜달라는 뜻입니다.]“어, 루나 언니를!?”
[정확히는 루나 누님의 승부라고 해야겠군요. 오늘은 제가 라프라로사의 형제들을 해방하는 날이기도 하지만, 루나 누님에겐 마지막 기회이기도 합니다.]엘티엇의 제자로서 시마트와 겨룰 수 있는 마지막 기회.
루나는 대사막에 오기 전부터 시마트를 의식하고 있었다. 이대로 자신이 도착하기 전에 막내가 그를 베어버리면, 엘티엇의 제자로서 그와 결착을 지을 순간은 올 수가 없었다.
“아하, 그렇지. 언니에겐 중요한 일이겠군.”
“이야, 우리 막내. 이젠 이런 상황에도 여유를 다 부리네. 시마트를 정말 내게 넘겨도 되겠어?”
[누님, 시마트는 공중요새를 전부 잃었으나 저와 싸우며 각성했습니다. 어떤 면에선 누님이 엘티엇 경과 적명족 부품을 가져오던 때보다 강하다는 뜻이죠.]“안 그래도 강적이 필요하던 차였다. 그에겐 갚아야 할 것도 있으니. 후후, 온전히 일대일로 싸워볼 수 있겠군. 영영 그런 기회가 안 오면 어쩌나 싶었는데. 개인적인 바람보다는, 당연히 가문과 연합의 안전이 우선이니까.”
[저도 이런 상황을 처음부터 예견한 건 아닙니다. 상황이 따라주었을 뿐이죠. 룬티아 누님이 공중요새를 전부 파괴하면, 그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누님과 싸울 수 있을 겁니다.]진은, 마치 적이 앞에 없는 듯이 평온한 어투로 말하고 있었다.
이제는 로키아가 위협적이기 않은 까닭이었다. 진은 그녀의 수를 빠짐없이 읽어냈고, 그녀가 이번 전투의 핵심으로 사용하려 했던 요소를 모두 무력화시켰으며, 그녀의 아공간을 찾을 단서까지 찾았다.
그리고 지금 로키아의 영체와 크리는 명왕군림검의 최종장을 견디지 못하고 있었다. 크리의 주포는 단 한 번도, 라프라로사를 타격할 수 없었다.
그나마 유효하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는 수는 단 하나, 저주였다. 그마저도 지금 반의 명왕군림검이 막아내는 중이고 말이다.
루나와 룬티아, 베일이 각자의 위치로 떠났다.
[어딘가에 숨어서 분신을 보내고, 그런 식으로 안전하게 자신이 모든 걸 조종할 수 있다고 믿는…… 뭔가 익숙하게 한심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제 알겠다. 과거 조슈아가 했던 짓과 똑같군. 그놈도 말로는 세상에 자신보다 룬칸델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굴었었다.]진이 상공을 무겁게 짓누르는 크리를 향해 시그문드를 겨눴다.
그리곤 칼날을 천천히 아래로 끌어내리자, 그 거대한 크리의 선체가 그에 맞춰 아래로 기울며 하강했다.
즈즉, 츠아아아아……!
이내 크리의 하부가 지면에 닿자 뇌기의 강에 새하얀 거품이 일었다. 마치 섬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크리 특유의 투명화도 결의 뇌해를 피할 수는 없었다. 그저 태양 아래 던져진 한 덩이 얼음처럼 허물어져 갈 뿐.
[머잖아 네 본체와 권속들을 모조리 찾아 그 어두운 삶을 끝내주마, 로키아 가네스토. 오늘 이후 나는 동료들, 형제들과 함께 너 같은 놈들을 모조리 없애버릴 것이다. 멀쩡히 잘 굴러가는 세상을 가만두지 않고는 못 배기는 놈들을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