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023)
제 1111화
247화. 라프라로사 해방 전쟁(12)
로키아가 재차 발사를 시도했으나 분리된 크리의 주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뇌기가 주포의 제어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있었다.
[이런, 똑똑하네. 한 방 먹었어.]주포가 입자로 흩어지며 다시 본체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곧이어 투왕들이 로키아를 향해 달려들었으나 그들의 일격은 허공을 쳤다. 로키아는 이미 그림자처럼 변해 크리로 향하고 있었다.
“허, 이상하네? 분명 검이 닿은 것 같았는데.”
“내 눈에도 닿은 거로 보였어, 벨리즈 형제.”
“뭐지?”
투왕들의 눈에 로키아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천 년 전 룬칸델의 십대기사라고는 결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몸놀림이 둔하고 무겁게 보였다.
[마법이다. 마법으로 너희 감각을 교란한 것이지. 기억나는군. 우린 저걸 로키아계 마법이라 불렀었지.]천 년 전 위기에서 테마르와 동료들을 몇 번이나 구한 로키아의 마법은, 이제 진과 동료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쪽에서 당장 빠져나와서 내 근처로 와라, 명왕들. 교란된 감각 때문에 서로를 찌르고 싶지 않다면 말이지.]후우웅-!
무라칸이 투왕들 쪽으로 부드럽게 숨결을 뱉었다. 평소처럼 적들을 찢어발기기 위한 파괴적인 기운 대신, 투왕들이 로키아의 마법에 길을 잃지 않도록 잡아주려는 숨결이었다.
그 영기가 투왕들이 선 쪽에 닿자, 그들의 눈엔 보이지 않던 마력의 실체가 드러났다. 뒤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한 마력의 선들이 투왕들의 근처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선들에 닿지 말고 조심스레 빠져라. 너희 정도 되는 녀석들의 감각도 단숨에 뒤집어버리는 마법이니까.]명왕들도 마력의 선들을 직접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뇌기, 그리고 파괴적인 검술. 그런 요소만으로는 쉽사리 파훼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이었다.
[그래, 네 말대로 직접 싸우는 건 정말 오랜만이야. 나는 십대기사였던 때에도 전장을 누비는 걸 즐기지 않았지. 굳이 몸을 부딪치지 않더라도 상대를 꺾을 방법은 많으니 말이야. 그런 건 사라처럼 무식한 녀석들이나 선호하는 방법이지.]“친근한 척하는군, 사라 경과.”
[귀여운 녀석이니까. 네게는 의외일지 몰라도, 사라는 내게 꽤 의지했거든.]피식, 진은 한 번 더 웃음을 터뜨렸다.
“이봐, 로키아. 그렇게 생각하면, 뭔가 위안을 얻는 건가?”
진은 웃는 와중에도 크리의 외부 장갑으로 연격을 떨궜다. 크리는 계속 투명해지며 진의 검을 무력화했으나, 이젠 처음과 달리 작은 파편들이 튀었다. 적명족의 기술력은 조금씩 시그문드의 속도를 쫓지 못하고 있었다.
“사라 경 말고 또 누구와 친했지? 르엣 집사장? 프레이 경? 어쩌면, 그분들과 너는 정말로 가까웠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분들이 지금 네 모습을 보면 무슨 표정을 지을 것 같나.”
진이 판단하기에, 로키아는 약점이 너무나도 분명한 적이었다.
그녀는 아직 천 년 전의 찬란하던 자신의 가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끈적하고 더러운 후회, 네가 애써 부정하는 그 감정이 전장의 탁한 바람마저 덮어버리는 것 같군. 불쾌해. 넌 앞으로 나아가기엔, 지나치게 소중한 걸 저버렸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지.”
프즈즛-!
푸른 칼날이 크리의 중앙부를 베었다. 미처 투명화하지 못한 장갑과 그 속을 가득 채운 마력 회로가 찢어졌다. 부품들은 마치 살점처럼 끈적하게 떨어진 채 뇌기에 휩싸여 산화되었다.
아주 서서히, 하지만 확실하게.
크리는 파괴되어가고 있었다. 진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검기가 번졌고, 푸른 뇌기가 휘몰아쳐 거대한 선체를 흔들어댔다.
크리에 다시 장착된 주포는 마치 짐승의 눈동자처럼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진을 쫓았다. 로키아는 이제 막 주포를 잠식한 뇌기를 풀어낸 상태였다.
본래라면 정확히 조준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피하는 게 불가능할 만큼 광범위한 공격 범위를 가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진은 선체 내부에서 날뛰고 있었다. 다시 바깥으로 주포를 빼내 라프라로사를 노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진이 처음보다 더 주포의 위치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전투가 막 시작되었을 땐 로키아의 위치를 찾느라 확실히 견제할 수 없었으나, 이제는 아니다.
진은 로키아와 주포가 선체로 돌아온 직후부터 그녀의 위치를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있었다.
‘당했군. 크리가 어느 정도 손상되는 걸 감수하더라도, 주포를 잠식한 뇌기를 바깥에서 풀어냈어야 했다. 진은 처음부터 나와 이 공중요새가 떨어지는 상황을 배제하려 한 거다. 아무런 정보 없이 처음부터 이런 수를 생각해내다니.’
크리가 가진 최대의 무기는 주포였다. 오늘 로키아가 대사막을 찾은 이유이기도 했다. 로키아는 그 무기를 이용해 이 싸움을 그녀에게 유리하도록 정리할 생각이었다.
[네 말대로 나는 그때의 룬칸델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지. 정확히는 애증이라고 해야겠군. 하아, 그래서 내 계획이 매번 이렇게 어딘가 조금씩 어긋나는 걸까? 얽매인 부분이 있으니, 자꾸 나도 모르게 악수를 두는 건가.]불현듯 로키아는 과거를 돌아보았다.
천 년 전 룬칸델이 패배한 후, 망령처럼 세상을 떠돌며 멀리서 검의 정원의 모습을 눈에 담던 나날들.
천 년 동안, 로키아는 마음만 먹으면 룬칸델을 끝장낼 기회를 적어도 수십 번은 마주했었다.
‘시론, 그리고 루나와 진…… 이런 아이들이 태어나는 것을, 나는 기대했었다. 그런 기대로 검의 정원을 부수지 않았어. 변질된 세계와 조작된 역사의 늪을 헤매면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로키아는 진이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며 전율하고 있었다. 여전히 투쟁심만으로 세상을 바꾸고 지킬 수 있다 믿는, 어리석고 강한 자가 룬칸델을 대표하고 있었다.
[나처럼 아주 멀리서 지켜본다면…… 룬칸델은 불변과 영원이라 할 수 있거든. 그게 나를 매료시켰지. 테마르, 시론, 루나, 그리고 너. 마녀가 없다면 얼마든지 찬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세상을 더 온당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 자꾸만 나타나고 있으니까.]낡고 닳아서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던 감정들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하지만, 네가 룬칸델이 아닌 명왕의 검을 사용하는 건 그리 아름답지 않구나. 아느냐? 그들은 결국 하나하나가 태양의 조각들이다. 때문에 세상을 바꾸는 일 따위엔 관심조차 없지. 전쟁과 정복, 오직 그뿐인 사람들이란 말이다. 그들의 검은 네게 어울리지 않아.]그 말이 끝난 직후, 진은 돌연 보이지 않는 수십 개의 손이 붙잡는 듯 몸이 무거워지는 걸 느꼈다.
광심장 때문이었다.
그 안에 담긴 링링의 내면이 혼돈에 잠긴 채 요동치기 시작한 것이다. 투신합일을 해제하려는 시도였다.
결속이 약해지고 있었다. 전장 사방을 짙푸르게 물들인 명왕군림검의 폭풍이 빠른 속도로 작아지는 모습이 이어졌다.
[이제는 그 결속을 끊어야겠어. 태양이 낳은 재앙들의 것이 아닌, 너만의 검은 어떠할지 궁금해졌거든.]순식간에, 전장에서 푸른 기운이 사라졌다. 그 광대했던 기운은 다 거짓이었다는 듯이.
진의 광심장은 탁한 검은색으로 물든 채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더 이상 그 안에서 뇌기는 맥동하지 않았고, 시그문드는 광휘를 잃어 흐릿하고 창백한 본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런! 진 형제의 투신합일이……!”
“명왕군림검이 꺼졌다! 젠장, 진 형제는 괜찮은 건가!?”
무라칸과 투왕들의 위치에선 크리의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눈에 보이는 건 푸른 폭풍이 사라진 자리에 독무처럼 피어오르는 혼기였다.
“투신합일이 없으면 진 형제라 할지라도 최초의 혼돈을 저렇게 마주하는 건 위험할 텐데, 무라칸. 어서 진 형제에게 가! 라프라로사는 우리가 어떻게든 지키고 있을 테니!”
무라칸도 이번엔 간담이 서늘했다. 자신이 가는 순간 로키아는 반드시 라프라로사를 본격적으로 칠 테지만, 그에겐 언제나 진이 최우선이었다.
그래서 날개를 펼치려는 찰나.
무라칸과 투왕들은 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로키아, 명왕의 검은 곧 나의 검이다.
전장의 모두가 듣고 있었다. 심지어 진의 부름을 받고 이제 막 대사막 초입에 도착한 이들도 그 목소리를 들었다.
“솔더렛이 룬칸델의 신이듯, 반은 나의 투신이다. 나는 곧 룬칸델이며, 그렇기에 반은 룬칸델의 투신이지. 이 모든 건 온전히, 나의 검이다.”
솔더렛과 계약해 영기를 사용한다고 하여 그걸 진의 힘이 아니라고 할 수 없듯이, 투신합일을 진의 검이 아니라 할 수 없다.
“네가 감당하기엔 내가 너무 강해졌어.”
파아아아……!
푸른 뇌기가 사라진 자리마다, 그를 대신해 전장을 더럽히는 혼기가 들어찬 자리마다.
찬란한 금빛 뇌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눈부시게 빛나는 금빛 바람이 일어서고 있었다.
“네가 멀리서 본 룬칸델은 영원불변이라 하였지. 아니, 가문은 결국 사람의 집합일 뿐이고, 사람은 변화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토록 많은 세월과 변화를 거치면서도, 잊지 않으려는 무언가가 있기에 빛나는 것이지.”
로키아의 영체가 진의 등 뒤로 나타났다. 영체는 진을 향해 검은 칼날을 찌르려다 금뢰에 뒤덮여 어디론가 사라졌다.
“로키아, 나는 네가 한 번은 나를 이해시키길 바랐다. 네가 가문을 배신할 수밖에 없던 이유, 이 세상에 너의 이상이 필요한 이유 같은 것들을…… 그러나 너는 이제껏 내가 본 미친놈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 멀쩡히 잘 굴러가려는 이 세상을 망쳐봐야, 너는 허무해질 뿐이다.”
로키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분명 링링과 광심장을 혼기로 잠식해서 투신합일을 끊었다. 지금 진으로부터 번쩍이는 빛은, 지난 천 년 동안 세상의 비밀과 진리를 탐구해온 그녀의 인식을 완전히 벗어나고 있었다.
[……진, 나는 본래 라프라로사의 투신을 죽일 생각이 없었다. 그자는 쓰일 곳이 있었기 때문이지. 하지만 그건 틀린 판단이었군. 죽여야겠다, 이러다 정말 그자가 또 다른 솔더렛, 혹은 태양신이 되겠어.]상공에 혼돈의 차원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로키아는 그를 통해 새로운 영체들을 내보내고 있었다.
그녀로서는 예상치 못한 위험한 수를 던진 셈이었다. 바멀 연합엔 유일한 기록마법사가 존재하니, 그 차원문을 살펴 자신의 진체가 존재하는 위치를 추적할 수도 있는 것이다. ‘로키아의 세계’를.
그건, 진이 이 전투에서 가장 얻고 싶던 정보였다.
“이제는 별 시답잖은 걱정까지 하는군.”
이내 진은 검을 들어 올렸다. 명왕군림검, 투신 오의의 마지막 장을 펼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