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040)
제 1040화
249화. 명왕족의 첫 출격(7)
반은 한동안 정좌하고 다시 명상에 돌입했다. 시론도 조금은 지친 듯 그 옆에 앉아 명상을 했고, 그러자 투왕들과 오즈도크도 나란히 앉아 눈을 감았다. 물론 마물인 오즈도크는 딱히 효과가 없었다.
“가지.”
일어선 반이 허공에 떠 있는 조각을 한 손으로 붙잡았다. 그리곤 사과라도 으깨듯이 주먹을 쥐어 우그러뜨렸는데, 완전히 파괴되진 않았다. 우그러진 조각은 고장 난 기계처럼 더는 기능하지 않았다.
그리고 반은 느끼고 있었다. 조각은 완전히 망가진 게 아니며, 아주 약간의 계기만 있어도 언제든 방금 전투에서처럼 위험한 물건으로 변모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시론, 이건 그대가 가져가서 처리하는 게 좋겠군. 연구해서 사용하기엔 지나치게 위험해. 태양신교를 비롯한 그 어떤 사람도 찾을 수 없는 곳에 버리면 되겠어.”
“알겠소. 태양신교라는 놈들이 만일 오늘 그대를 만나면 과연 계속 존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나저나 다른 원정대원들은 두고 온 건가?”
“차원문의 혼기를 여러 번 견디는 건 위험한 일이니 말이오.”
시론은 그냥 강해서, 오즈도크는 마물이기에 차원문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명왕족들은 애초에 면역이니 니르간드의 혼기와 태양신의 힘으로 빚은 차원문을 별다른 충격 없이 이용할 수 있던 것이다.
“하긴, 그렇겠군.”
투왕들과 오즈도크는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투왕들은 정말 루나 말대로 제트와 오즈도크가 닮은 점이 많다며 신기해했고, 오즈도크는 원정대원들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강한 투왕들의 힘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바깥은 좀 어떻소.”
“꽤 어지럽더군. 어떤 면에선 천 년 전 그대의 선조가 사투하던 때보다도. 그렇기에 창성이 많아진 게 아닐까 싶기도 해. 그대의 맏딸도 내가 해방된 날 경지에 올랐으니 말이야.”
“루나, 그 녀석은 막내에 비해선 쉽게 창성에 올랐지.”
“어떤 면에선 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 아이는 날 때부터 너무 강했으니, 오히려 진 형제보다 길을 헤맨 것이야.”
“그것도 맞는 말이오. 그대를 비롯한 명왕족들을 해방한 건, 물론 막내일 테지?”
“그렇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말해주시오.”
반은 한동안 바멀 연합과 적명족이 전쟁을 치러 명왕족이 해방된 이야기와 더불어, 루나가 원정대를 떠난 후 지금껏 있던 모든 사건들을 요약해서 시론에게 전해주었다.
그중엔 시론이 진과 루나의 내계를 통해 알고 있던 내용도, 흑해 5왕의 영역까지 그 기운이 전달되어 어느 정도 짐작하던 내용도 있었다.
하지만 세부적인 내용들은 전혀 모르기에 듣는 내내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장성한 자식들의 활약상이니 말이다.
“……다들 잘 해내고 있군.”
“시종일관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질 않고, 눈은 반짝반짝 빛난 주제에 소감이 다소 간결한데.”
“진의 활약을 설명할 때 그대도 만만찮은 얼굴을 하고 있었소.”
“형제이니 당연히 자랑스럽지.”
“나 또한 자식이니 당연히…….”
거기까지 말한 시론은 문득 자신이 마성화에 빠진 지난 세월을 떠올렸다.
자식들은, 그중에서도 특히 진은 본래 자신이 감당했어야 할 수많은 일들을 묵묵히 감내했다. 로사의 죽음은, 시론의 삶에 가장 큰 낙인이 되었다. 운명을 감당하느라 집안을 돌보지 못했다는 낙인이었다.
반도 그런 아픔을 품고 있었다. ‘신들과의 전쟁’이라는 결정, 그때 죽어간 형제들, 겨우 살아남아 무려 반만 년이나 세상 빛을 보지 못한 지금의 명왕족들.
이 세상에 오직 반과 시론만이 같은 영역에 닿아있기 때문일까, 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어진 동안 서로가 겪은 일들을 헤아렸다. 아무런 설명이 없어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탈라리스, 그리고 론. 두 사람 외에 누군가와 벗처럼 대화를 나누는 것도 오랜만이로군.”
“나도 그대의 초대 가주 이후로 처음이다.”
“테마르 룬칸델, 그분은 어떠한 사람이었소?”
“무력으로는, 분명 그대만큼은 강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조차 장담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지. 경지에 명백한 차이가 있었음에도, 그는 누구든 꺾을 수 있었어.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지플에 맞서다가 결국 부러졌으니까.”
“이유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시오.”
“글쎄, 난 그 시절에도 이미 봉인되어 있었으니 검마대전의 정확한 양상과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 큰 흐름만 몇 들었을 뿐이지. 다만 내가 본 테마르를 기준으로 유추를 해보자면…… 그는 머리가 나빴다.”
“잘도 남의 선조를 모욕하는군.”
“진 형제를 처음 봤을 때, 우리 형제들의 눈에 그는 테마르의 환생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만큼 많은 부분이 닮았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하면, 테마르는 진 형제가 아니라 그대를 더 닮아있었다.”
“방금 초대 가주께서 머리가 나빴다고 하지 않았소?”
“그대는 그대가 똑똑하다고 생각하는가?”
“생전 처음 듣는 질문이로군.”
“똑똑하다는 건 이성적이라는 뜻이지. 그러나 그대의 삶은 이성과 거리가 멀다. 그대는 어느 시점부터 자신에게 부과된 숙명을 깨달았을 거고, 그래서 이곳 흑해에 삶 전부를 바쳤지. 그건 이성이 아니라, 따지자면 본능에 가까운 행위다.”
시론은 묵묵히 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오즈도크는 이제 반이 시론을 편하게 대하는 일에 놀라지 않기로 결정했다.
“마성화를 극복한 지금도 사실 별반 다르지 않지. 그대는 여전히 그대의 숙명에 충실하고, 그건 이성이나 의지로 결정하는 문제가 아니기도 하다.”
비록 오늘 처음 만났지만, 반은 누구보다도 시론의 삶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녀 또한 그와 같기 때문이었다. 이성이나 의지로 결정할 수 없는, 숙명에만 충실한 삶이 무엇인지를. 그 결과가 바로 신들과의 전쟁이었다.
“그대는 태양신교나 적명족 같은 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날 때부터 정해진 삶을 살고 있는 것이야. 나 또한 마찬가지고…… 테마르도 그러하였다. 그러나 진 형제는, 내가 느끼기엔 다르다.”
시론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의심이로군.”
“그래, 의심. 그것이 진 형제와 우리의 차이점이지. 나나 그대, 테마르는 한 번도 우리의 운명과 선택을 의심하지 않았어.”
반에겐 세상을 정복하라는 운명이, 테마르에겐 지플에 맞서 싸우라는 운명이, 시론에겐 흑해를 정벌하라는 운명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반면 진의 경우는 자신을 의심한 순간이 셀 수 없이 많았다. 회귀자인 자신의 선택 하나하나가 세상을 변화시켰으니까.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그 모든 일은 진의 책임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나와 테마르는 실패했다. 그래도 진 형제라는 구원자를 만난 덕에 나는 새로운 운명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고, 테마르의 의지는 계승되었지. 그대는 나나 테마르처럼 진 형제에게 기댈 일이 없으면 좋겠군.”
“그럴 생각이오.”
“후후, 정말 그대가 홀로 숙명을 완수한다면 그때는 나를 또 한 번 이겼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상대로 두 번이나 이길 수 있다니, 영광도 그런 영광이 없겠어.”
“그때까지 몸이나 제대로 만들어두시오, 투신. 그대가 가장 완전할 때 한 번 꺾어야겠으니.”
“과연 진 형제의 아버지다운 패기로군.”
벌써 두 개의 차원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시론이 온 길을 그대로 되돌아간다면, 이제 하나만 더 넘으면 태양신교의 차원문이 나타날 터였다.
“시론, 흑해에 대해 인세에 추가로 전할 만한 내용은 없었나?”
“아직은 없소. 있었다면 지난번처럼 원정대원 일부를 복귀시켜 전했을 것이오.”
반의 시선이 시론의 허리춤에 걸린 바리사다로 닿았다.
“그 검을 열쇠로 요구하는 공간이 대체 무엇일지 궁금하군.”
“솔더렛 님과 관련한 공간임은 확실하오. 애초에 솔더렛 님이 남긴 기록 덕분에 알 수 있던 것이니.”
“솔더렛, 그는 속을 알기 어려운 신이지. 우리 명왕족은 솔더렛 덕분에 멸망을 면했지만. 그는 진을 위해 아주 오래전부터 많은 것을 설계해두었다. 천 년 전, 이미 진을 마지막 계약자로 점지해둘 정도였으니. 혹 그 열쇠가 그에 대한 비밀을 알려준다면, 내게도 말해줘라.”
“알겠소.”
이후로도 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각자의 이야기를 나눴다. 그 뒤에선 벌써 친해진 투왕들과 오즈도크가 낄낄거리고 있었다.
[그 제트라는 인간이 정말 나와 비슷하다는 말이지? 기대되는군. 돌아가거든 이 업계 최고의 부하가 누구인지, 우열을 한 번 가려보겠어.]“별 희한한 우열을 다 가리네 이 친구는.”
“그래도 한때는 진 형제랑 메리를 쌍으로 몰아붙이기도 했다면서, 그쪽으로는 뜻이 없는 거냐? 오즈도크.”
[자신이 잘하는 게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거든. 그런 의미에서 나와 제트는 둘 다 자신을 잘 몰랐다가 주군을 잘 만난 셈이지. 알고 있나, 명왕족들? 이 세상은 넓고, 강자는 수없이 많다. 그러나 나처럼 일을 잘하고, 어르신을 잘 모시는 내단마물은 몹시 희귀하지.]“아무튼 힘내, 오즈도크!”
[알겠어, 바바!]마지막 차원문을 넘었다.
그러자 5왕의 영역 초입이 드러났고, 근처엔 시론이 말한 태양신교의 차원문이 하나 더 놓여있었다.
그 차원문은 방금까지 사용한 것들에 비해 유독 더 강한 혼기를 품고 있었다. 시론의 말대로 근처에 남아있던 니르간드의 혼기가 원념처럼 들러붙어 차원문이 닫히는 걸 막은 것이다.
물론 그 차원문을 넘어간다고 바로 태양신교의 은거지가 나타나는 것인지, 일행은 확신할 수 없다. 어쩌면 함정이 나타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반과 명왕족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무엇이 나오든, 다 부숴버리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들에겐 그만한 힘이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니르간드에 이어 바로 태양신교의 꼬리를 잡을 가능성이 있는 차원문이라면, 더더욱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만나서 즐거웠다, 시론 룬칸델.”
“나도 그렇소, 투신.”
두 사람이 악수하며 미소를 지었다.
“모든 싸움이 끝나면, 그때는 거하게 한잔 나누도록 하지. 덜 닦인 견갑이 아니라 제대로 된 잔으로.”
“좋소. 그런데 내가 잔으로 쓴 견갑은 사실 나름대로 깨끗한 편이었소. 용케 그걸 더 닦지 않고 그냥 쓰더군.”
반이 견갑을 더 닦지 않은 건 시론에게 ‘깔끔을 떠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였다. 그랬다면 지는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사실 명왕족은 위생에 상당히 민감한 종족임에도 말이다.
“……왠지 그럴 것 같더니, 한 방 먹었군. 안부 전하겠다.”
“들어가시오.”
“잘 지내라! 오즈도크.”
[어어 들어들 가. 항상 밝고 유쾌하게 지내자고! 하물며 너흰 흑해처럼 빡빡한 땅도 아니고 인세에서 지내고 있잖냐, 후후후.]이내 명왕족들이 차원문 속으로 사라졌다. 시론은 잠시 그들이 사라진 자리를 보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곤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차원문 너머에 있던 태양신교 교도들은, 난데없이 들이닥친 명왕족을 보곤 기겁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무, 무슨!”
“대사제님, 대사제님께 알려라!”
반은 그들을 내려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형제들. 우리가 방금 사용한 차원문을 비롯해, 이 공간의 모든 통로를 폐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