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045)
제 1045화
249화. 명왕족의 첫 출격(12)
반은 자신을 공격할 수 없다.
블리기에트가 그렇게 확신한 이유는, 그녀를 ‘태양신’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반이 블리기에트에게 검을 뻗는 건, 바닷물이 바다에 위해를 가하는 것과 같다. 의미를 지닐 수 없는 것이다.
반은 그 생각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너는 솔더렛이나 마녀에 비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한 격을 가지고 있으나, 그들과 같지 않다. 또한 너흰 자꾸 내게 태양신의 축복이 깃들었다고 하나, 나는 너희가 아니다.”
츠즈즈즛-!
블리기에트의 전면에 투명한 벽이 펼쳐졌다. 반이 두 번째로 쏜 검기는 그 벽에 가로막혀 흩어졌다.
다른 누구도 아닌, 투신 반의 검이었다. 그 검기를 완벽하게 상쇄하는 보호막이 아무런 전조도 없이 순식간에 전개됐다.
블리기에트의 능력을 확인하자마자 반은 흡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싸움다운 싸움을 하겠어.”
난데없이 등장한 블리기에트의 정보와 목적을 파악하는 건, 연합 차원에선 단연코 중요한 일이다. 그는 스스로를 태양신이라 밝히기까지 했으니까.
하지만 반 개인의 입장에서 블리기에트는 자극적인 적이었다. 니르간드나 루크와 달리 투신으로서의 허기를 채울 수 있는.
광심장을 터트릴 듯한 통증도 투지를 증폭시킬 뿐이었다.
‘기뻐하고 있어? 필멸자가…… 저 고통을 견디면서?’
블리기에트로서는 충격의 연속이었다. 그가 기억하는 고대의 필멸자들은, 그 누구도 태양기의 압박을 견디지 못했다.
‘내 격이 불완전하다고는 하지만, 내가 만든 세상을 이해하기 어려울 지경이라…… 하긴, 이 벌레가 남긴 제약조차 지금은 내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으니.’
블리기에트가 바닥에 떨어진 아이란의 하체를 회수했다. 푸른 광파가 계속 보호막을 두들겼으나, 블리기에트는 여유롭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아이란의 허리 절단면에 태양기가 번지며 하반신이 들러붙었다.
“태양신이라는 존재를 처음 알게 된 후, 종종 궁금했다. 과연 내 검은 그것을 벨 수 있을지.”
“너를 벨 수 없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동기가 되고, 벨 수 있다면 그럭저럭 괜찮은 수련이 될 터.”
또 한 번 명왕군림검이 시작되고 있었다.
개에 이어 전까지, 반은 그 어느 때보다 신속하게 투신 오의의 두 번째 장을 펼쳤다. 아공간의 하늘이 온통 우레로 뒤덮였고, 지상은 그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무겁게 진동했다.
투신의 진군가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마침내 강대한 적을 만난 쾌감, 그 적을 언제나처럼 짓밟고 싶은 열망, 단지 한 자루 검으로 저토록 드높은 신격을 꺾을 수 있다는 확신.
그 모든 의지는 푸르게 흘러넘치는 광기로 변해 셀 수도 없는 벼락을 내리친다.
명왕 위에 군림하는 자를 그린다. 투신 반, 오로지 그녀만이 그렇게 할 수 있었다.
“나는 위대한 명왕족의 투신. 나를 강제할 수 있는 건 태양신의 축복 같은 느닷없는 이야기 따위가 아니라, 적을 향한 내 굶주림과 형제들의 목소리뿐이다.”
천풍처럼 나아가는 목소리가 블리기에트의 보호막을 흔들었다.
그리고 진동이 멎기 전에, 이미 투신의 검은 벽을 찢고 블리기에트의 얼굴로 날아들고 있었다.
유일한, 그리고 죽은.
친구의 얼굴을 한 신, 그와 똑같은 머리칼, 그를 닮은 자세, 그와 같은 눈동자.
전투의 즐거움, 그 진한 광기 속에서 분노가 치솟았다. 검이 신에게 닿는 그 찰나의 순간, 반은 분노를 정제하고 또 정제했다.
한 점 칼끝으로 벼렸다.
블리기에트는, 그 속도를 느낄 수 없었다. 그 창백한 칼날을 눈으로 볼 수도 없었고, 귀를 찢는 파공음도 들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피할 수 있는 건, 그저 그가 가진 신격이 높은 까닭이다.
‘내가…… 피했다고?’
이마에서 핏물이 튀었다.
뒤늦게 반이 쇄도한 위치를 바라보며, 블리기에트는 반사적으로 검을 들어 자세를 취했다. 이번엔 신격이 아니라 육신의 기억이 반응하고 있었다.
‘필멸자의 검이 두려웠다는 말인가?’
심장이 덜컹거리는 듯했다. 공포, 일순 그 감정에 지배되었다는 사실이 이루 말할 수 없는 모멸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감히. 너는 나의 파편에 불과하다. 이 세상을 창조한, 나의.]블리기에트가 소리치자, 아공간을 가득 채운 투신의 뇌기가 거짓말처럼 꺼지고 말았다.
그러나 잠시뿐이었다. 한 번 눈꺼풀이 닫혔다 열릴 정도의 시간이었다. 뇌기는 다시 블리기에트를 포위하고 있었다.
신의 신을 자처하는 존재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연신 거품처럼 녹아내리는 보호막, 블리기에트는, 선택했다.
필멸자처럼 움직이는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태양기를 일으키고, 뇌기를 막으라는 의지를 발산하고, 권능을 펼치는 것만으로는 저 집요한 뇌기를 떨칠 수 없었다.
육신이 기억하는 대로 몸을 비틀고, 보법을 밟고, 땅을 짚고, 바닥을 굴렀다. 재와 흙먼지, 교도들의 살점과 피가 블리기에트의 온몸을 더럽혔다.
아이란이 거슬렸다.
오른손에 쥔 이 살덩이를 던져 버리기만 하면, 보다 수월하게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하고 싶다는 충동이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들었다.
“너 또한 태양신의 파편 중 하나일 뿐이다, 블리기에트. 네가 그리 전능한 존재였다면 이미 내 숨을 거뒀을 것이다.”
[그리해 주마.]블리기에트가 아이란을 내던지며 손을 뻗었다.
어차피 아이란의 육체는 얼마나 찢어지든 다시 붙이면 그만이었다. 단지 필멸자를 상대하다가 태도를 바꾼다는 게 불쾌할 뿐.
이어 블리기에트가 주먹을 그러쥐자, 돌연 반이 우뚝 멈추며 핏물을 뱉었다.
“카하악!”
광심장에 축적된 태양기가 폭발하고 있었다. 블리기에트의 손이 광심장 속으로 직접 들어서서 헤집는 것 같았다.
목숨줄을 쥐었다.
블리기에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채 5초가 지나기도 전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끝없는 오만을 돌아봐야만 했다.
‘으스러지지 않는다……!’
아무리 주먹을 쥐어도, 아무리 많은 태양기를 발산해도.
그의 권능에 붙잡힌 반의 심장은 도무지 파괴될 기미가 없었다. 오히려 그러쥘 때마다 점점 더 단단해졌고 어느새, 성큼성큼 반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젠 고통에 비명을 지르긴커녕, 움찔거리지도 않았다.
“큭…… 죽여 주마…….”
블리기에트는 정신을 집중했다. 반이 처음 자신을 파악하려 할 때처럼.
‘고작 천 년을 오랜 세월로 인식할 만큼 짧고 유한한 삶, 그러나 영원에 다다를 듯한 힘…… 그 거대한 모순.’
다시 살펴보니, 반은 지금의 자신과 닮은 점이 많았다. 세상의 시작이자 끝, 창조 그 자체인 자신도 결국 테마르의 육신과 아이란의 제약에 묶여 있으니.
‘세상이 완성되면 반드시 지워질 오류, 그러나 가련하고 아름다운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기에 태초의 내가 갈등하였을 테지.’
결국 블리기에트는 반을 지금의 자신과 ‘동격’으로 분류하기로 결정했다.
태양신교가 모아 둔 살점과 왼팔밖에 남지 않은 빛나는 필멸자의 육신을 통해 겨우 부활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이다.
[네가 나의 존재 이유를, 내 불완전함을 깨우쳐 주는구나, 반.]블리기에트가 손을 거뒀다.
그녀는 자신이 태초처럼 완전할 때가 아니면, 권능으로는 목숨을 거둘 수 없는 존재였다. 오로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자만이, 그녀를 죽일 수 있었다.
“내가 네 입으로 듣고 싶은 건 비명과 절규뿐이다.”
시잇, 처엉-!
반과 블리기에트의 검이 격돌했다. 둘 다 이를 악문 채 서로를 밀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알고 있었다. 아직 서로에게 남은 수가 더 있다는 사실을.
반은 아직 명왕군림검의 마지막 장을 펼치지 않았고, 블리기에트는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소멸을 각오하며 지금 반과 끝장을 보는 것과, 일단은 물러나는 것.
블리기에트는 어느 쪽이 더 나은지 쉽게 선택할 수 없었다.
행여 싸움에 패배하면 부활은 또 요원해지고, 세상은 완전해질 수 없다. 그러나 추후 신격을 올린 후 다시 싸운다 한들, 어차피 반은 권능으로 찍어 눌러 죽일 수 있는 필멸자가 아니다.
고민할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해일처럼 몰아치던 뇌기들이 조금씩 가라앉고 있으니, 명왕군림검의 끝이 시작되리라는 징조였다.
블리기에트는 반만년 전 투신이 그 검으로 수많은 불멸자를 벤 모습을 보고 있었다. 작든 크든, 태양의 의지에서 태어난 신들이 필멸의 검에 부서지던 순간들을, 현세에 흉신이라 불린 빛의 오류가 압도된 그날을.
‘오류는, 오류로. 질서로는 반을 바로잡을 수 없다.’
불현듯 블리기에트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시그문드가 목젖을 스친 직후였다. 그의 칼날은 반의 눈가를 지나가고 있었다.
화아악……!
블리기에트가 물러나며 손으로 허공을 휘저었다. 태양을 정면으로 보는 듯 빛을 뿜어대는 구체들이 떠올랐고, 반은 동작을 멈추며 그의 움직임을 읽었다.
“블리기에트. 설마 도망칠 생각인가?”
[나라고 한들, 필멸의 몸으로 너와 끝까지 싸우는 건 지나친 도박이군. 내가 세상을 다듬지 못한 탓이니, 이 수모는 기꺼이 받으마.]반은 빛을 정면으로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벌써 타오르는 듯한 빛을 극복했으나, 블리기에트는 금빛 차원문에 발을 걸치고 있었다.
“지금 나를 죽이지 못하면, 너는 영원히 나를 죽일 수 없다. 그런데도 물러나겠다는 말이냐?”
어느새 육편으로 흩어진 아이란의 육신도 다시 구성되어 블리기에트의 손에 붙잡혀 있었다.
싸움은 끝났다. 그 사실을 직감한 순간, 반은 예상치 못한 감정에 주춤하고 말았다.
블리기에트를 향한 분노와 투쟁심보다, 친구의 육신을 놓쳤다는, 이제 그만 쉬게 해 주지 못했다는 씁쓸한 마음이 내면을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 어쩌면 내게서는 영원히 도망칠 수 있을지 모르지. 하지만 그 왼팔의 후손…… 나의 형제는 지금처럼 너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블리기에트.”
블리기에트는 대답하지 않고 차원문을 넘어섰다. 어서 아이란과 왼팔을 사용해 육신을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