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070)
제 1070화
253화. 또다시 라프라로사로 모여드는(1)
1804년 6월 12일.
호기롭게 자신이 고통을 두려워할 것 같냐고 소리치던 블리기에트는, 채 이틀이 지나기도 전에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실토하고 말았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더냐, 정말로 모든 것을 다 말하였다…… 이제 나를 풀어다오.]태양신의 자아로서 보여주던 위엄은 온데간데없는 모습, 블리기에트는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애원하고 있었다.
“진 경이 처음에 말했듯이, 당신은 이제 다시는 세상 바깥으로 나갈 수 없어요. 대신 이제 당신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건 그만하도록 하죠.”
[……이해할 수가 없군, 루시. 너는, 아락시온이었다. 그런 네가 어찌 나를 이렇게 짓밟을 수 있다는 말인가. 너는 우리가 하나였던 때가 그립지 않더냐? 정녕 그 그리움을 잊고 만 것이야?]그리움.
루시는 블리기에트를 ‘원형’에 대한 그리움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고문했다. 그 어떤 육체적 가해 없이 그저 태양신의 원형, 즉 킨젤로를 기억하게 만드는 것만으로 블리기에트의 내면을 황폐하게 만든 것이다.
[나를 고문하는 동안, 너도 괴로웠을 것이다. 아락시온의 권능 대부분이 네 딸에게 넘어갔다 할지라도, 그것마저 잊었을 수는 없어……!]“난 그보다 더 그리운 게 많습니다, 블리기에트. 어쨌거나 이제는 편히 쉬도록 하세요. 우리가 당신을 완전히 소멸시킬 수 있는 안전한 수단을 갖게 될 때까지.”
[안 돼, 안 돼! 루시! 이, 이봐. 진 룬칸델! 나는 이 세상의 창조자다. 내가 너희를 만들었어! 게다가 나는 네 죄책감도 덜어줬지 않느냐. 부디 나를…….]“내 죄책감을 덜어줬다고?”
진이 블리기에트의 앞에 섰다.
그의 눈동자가 악귀처럼 서슬 퍼렇게 빛나고 있었다. 바로 오늘 아침, 지플이 또 한 번 루테로 연방의 민간인 지역에 테러를 감행한 까닭이었다.
이번엔 페일린 왕국이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단 한 번의 포격에 페일린의 수도와 인근 도시가 모조리 파괴되었고, 사망자만 최소 백만 이상으로 추정되는 중이었다.
[그, 그래! 네가 가진 재생의 권능. 그 또한 본래 나로부터 비롯된 힘이다. 그 힘이 있으면 죽은 필멸자들을 얼마든지 되살릴 수 있다고, 내가 알려주었잖느냐. 물론 조건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건 나를 풀어주기만 하면…….]“잘 들어라, 블리기에트. 설령 내 권능으로 죽은 이들을 되살릴 수 있다고 한들, 그들이 겪은 고통은 돌아오지 않아. 그건 누가 보상해줄 것이지? 불길에 휩싸여 고통스럽게 죽고, 눈앞에서 가족과 친인을 잃고, 갑자기 모든 게 무너진 삶을, 대체 어떻게 보상해줄 수 있나? 단지 다시 살아나면 그만인 건가? 부활만 하면, 삶은 여전히 그들이 알던 그대로인가?”
블리기에트는 대답하지 못하고 진의 눈치를 살폈다. 진이 당장이라도 루시를 시켜 자신을 또 고문할 것만 같았다.
“네가 이 세상의 창조자라고? 창조자인 네놈조차 이 세상을 재구축해야 한다며 개소리를 늘어놓고 있다. 네놈이 정녕 저마다의 고통을 이겨내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무엇인지를 알고 지껄이는 것인가? 애초에 세상을 이 지경으로 창조했으면, 네놈이 할 일은 오로지 참회뿐이다. 네놈이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다.”
진은 충동을 억누르고 있었다. 블리기에트를 찢어발기고 싶다는 충동을. 눈앞이 실시간으로 붉어졌다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와중, 진은 가까스로 내면을 다잡았다. 마성화가 엄습했던 것이다.
블리기에트는 차마 더 입을 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루시가 자연스레 진을 이끌고 지하 감옥 밖으로 나섰다.
“진 경, 잘 참으셨어요.”
“아닙니다, 선조님께 추한 모습을 보였군요.”
“전혀 그렇지 않으니 신경 쓰지 마세요. 그나저나 운이 좋았습니다. 블리기에트처럼 재구축을 원하는 자아들은, 완전체에 대한 그리움에 항상 목이 마르죠. 그가 아니라 파멸의 자아였다면 이런 식으로 고문해서 정보를 얻는 건 어려웠을 거예요. 태양신의 자아들은 자신들이 완전한 존재인 줄 알지만, 아니죠. 결국 결점투성이인 하나의 생명일 뿐입니다. 다른 모든 이들과 똑같이…….”
말루기아, 아락시온.
파멸의 자아로 알려진 두 존재는 현재 엘로나와 헤일린에게 귀속되어 있다. 그리고 블리기에트가 실토한 정보에 의하면, 재구축과 파멸은 각각 2개의 자아가 더 존재하고 있었다.
재구축의 넵돌, 일로아누.
파멸의 벨티안, 크라고스.
블리기에트는 그중 넵돌과 벨티안의 위치를 알고 있었고, 아이란의 제약이 해제되면 그들을 깨우려 했었다.
“넵돌은 루테로 연방 서해의 심해에, 벨티안은…… 라프라로사에 있다고 했죠, 블리기에트가.”
“예, 진 경.”
당연히 둘 다 전혀 예상치 못한 위치였다.
특히 라프라로사는 충격적이었다. 반만년 동안 봉인된 명왕족들의 땅에, 하필 파멸의 자아가 봉인되어 있다니.
진은 라프라로사의 풍경을 떠올리며 속으로 가슴을 한 번 쓸어내렸다. 다행히도 벨티안은 반을 비롯한 어떤 명왕족에게도 깃들지 않은 상태였다. 그저 라프라로사 깊은 곳 어딘가에 묶여 있을 뿐.
“불현듯, 우연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어떤?”
“미트라 대사막에서 적명족과 마지막 전투를 치른 후, 형제들뿐만이 아니라 라프라로사라는 지역 전체가 인세로 해방된 게. 어쩌면 그 벨티안이라는 자아의 영향이 작용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든 아니든 중요하진 않았다. 벨티안이 ‘파멸’의 자아인 이상, 그는 바멀 연합의 제거 대상이었다.
루테로 서해와 라프라로사에 대한 수색은 이미 시작된 상태였다. 특히 라프라로사는 명왕족들이 눈에 불을 켜고 뒤져보는 중이었다.
“저도 블리기에트에 대한 심문이 거의 끝났으니, 마무리만 하고 바로 라프라로사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파멸의 자아인 만큼, 제가 무언가 느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진이 걱정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자, 루시는 미소를 지으며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진 경, 혹시 이런 말 아시나요?”
“어떤?”
“위기를 기회로.”
진은 왠지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모르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어쩌면 말이죠, 그 벨티안이라는 자아를 이렇게 블리기에트처럼 구속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번처럼 아메리스와 저, 그리고 반 경을 중심으로 힘을 사용한다면 말이죠.”
“그렇더라도 파멸의 자아는 블리기에트처럼 다룰 수 없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맞아요. 하지만 구속이 가능하다면, 이용하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예를 들면, 그 벨티안이라는 자아를…… 투신전의 동력원으로 사용한다거나.”
진의 눈동자가 커졌다.
투신전은, 본래 황금함대의 모함이자 고대 명왕족의 그것과 같은 ‘공중요새’로 설계되었다. 그러나 아직 바멀 연합은 투신전을 공중요새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술 복원은 거의 완료되었으나, 투신전을 감당할 동력원을 구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가능한 일입니까?”
“그를 어떤 형태로 구속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죠.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가능한 건 맞습니다.”
태양신의 자아를 동력으로 사용하게 된다면 투신전은 그야말로 최강의 공중요새가 될 것이다.
단지 전력 상승에만 의미가 있는 게 아니었다. 이야기의 탑을 추적하는 속도 자체가 달라질 것이며, 그들이 저지르는 무자비한 학살을 지금보다 훨씬 수월하게 막아낼 수 있을 터.
“경의 말씀대로, 마냥 나쁜 일만은 아니길 바라면서 찾아야겠습니다, 그 벨티안이란 놈을.”
벨티안과 넵돌은 물론이고, 일로아누와 크라고스의 위치도 한시가 급하게 파악해야만 했다. 재구축, 파멸, 유지, 그 어떤 태양신의 자아든 무조건 지플이나 가네스토보다 빨리 발견할 필요가 있었다.
“힘을 내요, 우리.”
“고맙습니다, 루시 경.”
이내 진은 티칸궁 상층 회의실로 향했다. 루시의 이야기로부터 왠지 모를 희망을 느껴서인지, 어지럽던 내면이 한층 가라앉는 것 같았다.
물론 근본적인 충격이 가시지는 않았다. 며칠 사이에 실감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죽음이 세상에 만연한 것이다.
‘그래도…… 블리기에트의 말이 전혀 위로가 되지 않은 건 아니다. 아율라 님의 말씀도 있었고. 비록 끔찍한 기억이 남더라도, 그냥 죽어 없어지는 것보다는 낫겠지, 누구에게든.’
이내 회의실로 들어서기 직전, 진은 손을 잡은 채 복도를 나서는 길리와 무라칸을 마주했다.
“헛, 도련님.”
길리는 반사적으로 무라칸의 손을 놓으려 했고, 무라칸은 오히려 더 꽉 붙잡으며 길리를 잡아당겼다.
“캬캬, 꼬마! 이제 딸기파이는 너만의 딸기파이가 아니다. 알아들어?”
“그건 원래부터 그랬다, 무라칸. 딸기…… 아니, 길리한테는 언제나 너랑 내가 최우선이었으니까. 길리, 이제 이런 건 신경 쓰지 마.”
“이젠 두 명 중에서도 내가 최우선이라는 말씀.”
“무라칸 님 그건 좀.”
“그, 그건 좀이라고?”
“방금은 왠지 민망해서 저도 모르게 그만. 사실 무라칸 님과 연인이 되기 전에 도련님께 먼저 말씀을 드렸어야 하는데.”
문득, 진은 두 사람에게 이루 말할 수 없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비록 이 세상에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그 모든 게 자신의 회귀 때문인 것만 같지만.
회귀한 순간부터 늘 함께했던 길리, 그리고 무라칸만큼은 행복을 찾은 것 같았다.
[오, 그림 좋은데.]진이 길리를 보며 미소를 짓는 사이 별안간 회의실 앞에 자그마한 강철 차원문이 형성되었다.
“이젠 아주 네 집처럼 들락거리는군, 오르갈. 넌 아직 우리 연합원이 아니다.”
[짜식 쩨쩨하게 굴기는. 이 몸이 지금 무슨 정보를 가져왔는지나 알고 이러나?]오르갈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진을 쳐다보았다. 진은 고개를 젓고는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이나스 칼리고. 그 여자 부바르가 얼마나 대단한 녀석인지, 내가 설명한 적이 있던가?]“아이나스와 피롭스의 꿈 능력은 우리도 파악하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이 해냈다, 진 룬칸델. 로키아와 켈리악의 만남을 포착했어, 그들의 꿈을 뚫어서. 내가 말했지? 로키아 그건 분명 켈리악을 만나러 갈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