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080)
제 1080화
254화. 태양신의 자아들(4)
* * *
제국 수도에 사는 모든 이들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은 온통 황금이 흐르는 듯 물들었고, 그 가운데 마치 인간 같은 모습을 한 채 검을 쥔 존재가 보였다.
그가 크라고스였다.
“아아, 악……!”
“누, 눈, 내 눈!”
“크아아악!”
하늘을 올려다본 백성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태양을 정면으로 마주한 듯, 눈동자가 타오르는 고통이 그들을 주저앉게 만들고 있었다.
단지 고통뿐만이 아니었다.
잠시라도 크라고스와 그가 만든 금빛 하늘을 바라본 백성들은 실제로 눈이 멀고 있었다. 황금 하늘이 열리고 채 3분이 지나기도 전에, 수도 백성의 4할 이상이 그렇게 빛을 잃고 말았다.
잠들어 있던 이들, 지하에서 지내던 이들, 그리고 하이란의 기사들처럼 극히 단련된 이들만이 실명을 피하고 있었다.
[나는 너희들의 창조자, 크라고스. 필멸자들은 들으라. 진정한 종말이 시작되었다. 그대들은 내가 만든 이 더러운 땅조차 누릴 권리가 없음이니…….]갑자기 눈이 먼 이들이 너무 많았다. 수도 어디든, 사람이 모인 곳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비명이 가득한 가운데, 사람들은 크라고스의 음성을 마치 귓속에서부터 울리는 듯이 선명하게 듣고 있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마주해 본 적 없는, 순수하고 절대적인 악의.
그 악의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단련되지 않은 이들은 몸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숨거나 피해야 한다는 본능조차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모두 속히, 죽음으로 향하라.]추하아아……!
이내 크라고스가 뒷말을 잇자 금빛으로 물든 하늘에서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묵은 피처럼 찐득하고, 사람의 머리통처럼 둥근 빗방울이었다. 그렇게 떨어지는 금빛 덩어리들은, 닿는 모든 것을 녹여댔다.
그 끔찍한 비가 시작되니 빠른 속도로 수도에서 일어나는 고통의 소음들이 끊어지는 모습이 이어졌다. 마치 축제장의 문이 닫히는 듯이.
돌도, 쇠도, 땅도, 사람들도.
모든 것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빗방울에 닿은 모든 것은 금빛 물이 되어 바닥을 채웠고, 벌써 어디론가 흘러가는 급류를 형성하고 있었다.
크라고스는 그 모습이 흡족한지 걸터앉은 듯 하늘에 자리를 잡은 채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실명을 버티던 이들조차 황금비는 견딜 수 없었다. 수도 수비대들도 하염없이 녹아 급류 속으로 휩쓸리고 있었다.
[너희들의 왕이 의미 없는 몸부림을 치러 왔구나.]크라고스의 시선이 정면을 향했다.
하이란의 황금함대가 태양기를 헤치며 다가오고 있었다. 황금함대 특유의 강력한 보호막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도달하기도 전에 전부 침몰했을 터였다.
단테 하이란.
그는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끔찍한 풍경을, 담담히 눈 속에 담았다. 하이란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이어져 선대 검황 론 하이란, 자신에게 이르기까지.
녹은 금덩어리처럼 변해 가는 이 도시를, 제국을 지키는 건 언제나 그들의 의무이자 자부심이었다.
그런 이 땅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잔혹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검황성전의 비극이나 흉신의 만행조차 아득히 뛰어넘는 파멸이 도래하고 있었다.
“……모두 분노를 가라앉히시오. 증오에 젖어서는 제대로 싸울 수 없소.”
자신과 기사들이 냉정을 잃는 순간, 얼마 남지 않은 생존자들도 빠짐없이 죽는다.
단테는 그 일념으로 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가주, 여전히 통신이 되지 않습니다. 공간 도약 또한 불가능합니다.”
크라고스의 태양기는 수도에 집중되어 있을 뿐, 제국 전역을 감싸고 있었다. 그렇게 퍼진 태양기가 통신과 공간 도약을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어쩔 수 없군. 그래도 진과 연합은 이미 사태를 파악했을 것이오. 우리와 연락이 되지 않으니까. 지원군이 올 때까지 버티도록 하겠소.”
“……설마, 나가서 전투를 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기사의 물음에 단테는 몇 초쯤 말이 없었다.
명예가 삶의 전부라면, 나가서 싸워야 할 것이다. 설령 패해서 죽더라도. 차라리 그게 마음도 편할 터였다. 검황으로서 가만히 있는 건,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나약한 시절의 나였다면 그랬을 것이오. 하지만 이제는 아니지. 연합의 지원이 올 때까지 버텨야 하오. 상황은 확인했으니, 후퇴 비행을 시작하시오. 우리가 의미 없이 병력을 잃는 일이 없도록……!”
혀를 끊는 심정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증오를 삭이느라 터질 듯이 붉게 변한 단테의 눈동자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분명 현명한 선택이었다.
[허어? 뱃머리를 돌리다니? 내게 대적하는 것이 두렵더냐? 네게 의존하던 필멸자들이 이토록 허무하게 죽어 가도, 결국 네 목숨 하나가 중요할 따름이었느냐?]크라고스의 비아냥대는 외침은 수도를 넘어 제국 전체로 퍼져나갔다. 수도 바깥, 아직 파멸의 황금비가 내리지 않은 지역이 전부 듣게 되도록.
[그러나 내게서 도망칠 수는 없다, 단테 하이란.]스하아악……!
크라고스의 일검이 막 회전해서 속도를 높인 검황선의 후미를 덮쳤다. 황금비를 버틴 보호막이 종잇장처럼 찢어졌으나, 외부 장갑 덕에 선체 피해가 크지는 않았다.
그러나 단지 일격일 뿐이었다. 크라고스는 흥미로운 듯 입맛을 다시고는 재차 같은 위치로 검기를 쏘았다. 단거리 공간 도약조차 제한된 만큼 회피는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공격에는 절대 동력을 사용하지 마시오. 전 함대, 오로지 탈출과 방어에만 모든 동력을 쏟겠소.”
최소한의 응전조차 지금은 무의미하다.
오르갈이 예견했듯이, 크라고스는 지금껏 연합이 확인한 태양신의 자아들과 차원이 다른 전투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앞선 자아들과 달리 약화되거나 제약을 품은 채 깨어나지 않은 까닭이었다. 심지어 말루기아의 힘을 받아 본래보다 더 강해지기까지 했으니, 지금 제국 전력만으로 응전을 하는 건 호수에 돌을 던지는 일이나 다름이 없었다.
본질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거대한 힘이 한데 뭉쳐 있어야만 유효한 피해를 가할 수 있는 것이다.
최소한 연합의 모든 창성들이 힘을 합쳐야만 가능한 일일 것 같았다. 비록 단테는 아직 창성에 닿지 못했으나, 그 정도는 가늠할 수 있었다.
[애처롭구나. 진 룬칸델, 그 필멸자를 기다리는 모양이다만…… 그는 이곳에 올 수 없다. 필멸자들의 길을 막는 것은, 내게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 한데 말루기아가 직접 길을 막아 두었으니, 감히 너희가 무슨 수로 그녀를 거스를 수 있다는 말이냐?]단테는 말루기아의 힘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아군이 된 자아들은 말루기아를 표현할 때면 두려움에 떨었고, 지금 단독으론 절대 대적해선 안 될 크라고스조차 그녀를 경외하고 있었다.
[뭐, 아무래도 상관은 없다. 덧없는 희망을 붙잡다 죽든, 체념하고 죽든. 어차피 너희가 무로 돌아간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구나. 원한다면 마음껏 원망하도록 하여라, 내 추악한 작품들이여.]크라고스가 이야기를 끝낸 순간.
하이란 함대는 크라고스의 반대편, 즉 자신들의 정면에 또 다른 적이 나타나는 모습을 목도하고 말았다.
“……지플!?”
지평선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듯한 새하얀 원반, 이야기의 탑이 도주 중이던 하이란의 함대를 가로막은 것이다.
[아, 말루기아에게 잠시 삶을 허락받은 필멸자들을 잊어버릴 뻔했군. 너희도 이 세상의 끝을 즐기고 싶겠구나. 그녀를 보아 특별히, 너희가 누릴 만큼은 남겨 두도록 하마. 단테 하이란과 그를 따르는 필멸자들을 말이다.]* * *
“빌어먹을, 제국이었다고……!”
진이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방금 막, 제국에 크라고스가 깨어난 사실을 보고받았다. 연합은 즉시 전 병력을 출격시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제국은,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 땅이다.
그런 지역에 파멸의 자아가, 그것도 말루기아의 힘으로 강화된 상태로 깨어난다면, 발생할 사상자는 헤아릴 수조차 없을 터.
게다가 그곳엔 단테가 있다.
황금함대와 하이란, 그리고 수많은 기사들이 있기는 하나, 연합의 최정예 초인이라 부를 만한 인물은 오직 단테 한 사람뿐이었다.
그 혼자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사실, 이런 사태는 어느 정도는 예고되어 있었다. 연합은 그간 지플의 무차별 학살에 대비하느라 초인급 인원들을 최대한 많은 지역에 배치한 상태였으니 말이다.
지플과 싸울 때는 그런 식으로 배치해도 즉각적인 지원이 가능하니 큰 문제가 된 적이 없으나, 이번 경우는 다르다.
공간 도약은 당연한 듯이 막혔고, 통신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제국을 지원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소요될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기함 사라 출격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일단 저와 일부 인원이 먼저 가서 통로를 뚫고 있겠습니다. 나머지 병력은 출격 준비를 끝낸 후, 제 명령이 있을 때까지 대기하십시오.”
목소리는 침착하나 마음은 그럴 수 없었다.
진이 기함 사라에 오르자마자 공간 도약이 시작되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알아낸 도약 가능한 좌표는, 제국 남부 영해 끄트머리였다.
거기서부터 수도까지는 순전히 비행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함 사라의 앞에 펼쳐진 것은, 하늘과 바다 사이를 완전히 가로막고 있는 광대한 황금의 벽이었다.
발레리아는 곧바로 단테의 기록을 추적하기 시작했고, 창성들은 함교 바깥으로 나온 그녀를 엄호하며 포격 명령을 내렸다.
“단테 경은 아직 살아 있어, 진! 어, 그런데…… 크라고스에 이어, 이야기의 탑까지 단테 경을 공격하고 있다고……?”
콰아아아-!
발레리아의 말이 끝나자마자 함선 사라의 주포가 황금의 벽을 강타했으나, 벽은 작은 균열조차 생기지 않았다.
[이건 말루기아가 만든 보호막이야…… 진, 이걸 부수려면. 너희를 포함한 연합 전 병력이 달려들어도 며칠은 필요할…… 수밖에 없어.] [설령 반이 명왕군림검의 최종장을 펼치더라도 최소한 하루는 걸릴 것이다. 반이라 할지라도 하루 내내 그 검을 유지하면 싸울 수 없는 상태가 될 거고.]넵돌과 블리기에트가 진의 옆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진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