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081)
제 1081화
254화. 태양신의 자아들(5)
넵돌과 블리기에트의 말은 사실이었다.
반도 그들의 의견에 동의하며 비통한 얼굴로 눈을 감았다. 단테가 크라고스와 지플의 공세를 홀로 받아 내는 건, 죽음에 다다를 수 있는 위협이 초 단위로 찾아온다는 뜻이었다.
“빌어먹을! 이봐, 태양신들. 정말 수가 없는 거냐! 진짜로? 우린 그냥 약골 녀석이 놈들에게 당해 죽는 걸 가만히 지켜봐야 한다고?”
무라칸이 격양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에게도 이제 단테는 단지 ‘꼬마의 친구’가 아니라 동료였다.
단테는, 진에게만 소중한 사람이 아니었다. 제국의 백성들에겐 섭정이라곤 하나 더할 나위 없는 성군이었고, 연합의 모든 이들에게 그는 언제나 의지할 수 있는 검황이었다.
[……어쩔 수 없어. 말루기아의 힘은, 절대적이야. 설령 너희가 우리 구속구를 풀어 준다 할지라도 큰 도움은 될 수 없을 거야.]“일단, 나는 계속 기록을 추적할게. 단테 경의 생사를 확인하면서, 무언가 실마리가 될 만한 작은 단서라도 찾을 수 있도록.”
진은, 그들이 하는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단테가…… 죽는다고? 이토록, 허무하게?’
창성에 오른 감각으로도, 지금 폭발할 듯이 뛰는 심장을 제어하기가 쉽지 않았다. 귀는 멎어 버린 것 같고, 물에 잠긴 듯 숨도 쉬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진 형제!”
“꼬마, 안 돼. 마성화가 온다!”
발레리아도 그걸 우려해 일부러 제국의 백성들이 순식간에 몰살된 기록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푸른 기록 창 위로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숫자가 계속 갱신되고 있었다.
그러나 진이 그 참극을 모를 수는 없었다.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몇 번이나 이어진 지플의 대학살, 그리고 과거 몇 번이나 깊고 거대한 비극을 겪은 제국에 또다시 벌어진 참상, 그 속에서 홀로 싸우다 죽게 될 친구의 운명까지.
그 모든 게 진의 내면에서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선을 끊으려 하고 있었다.
속죄는 모든 일을 끝낸 다음이라며 늘 간신히 밀어 두던 감정이, 분노와 증오와 죄책감과 광기가 수면 위로 솟구치려 하고 있었다.
진을 더욱 미치게 만드는 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저 안에서 죽어 간 사람들을 위해, 죽어 가는 사람들을 위해, 친구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바멀 연합을 만들고, 라프라로사를 해방해서 이토록 거대한 세력을 일구고도.
진은 선택을 내려야 했다.
단테를 배제하는 선택이었다. 절대적인 확률로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는 친구를 위해 연합의 모든 병력을 끌어오는 건, 당연히 총수로서 반드시 피해야 할 선택이다.
그의 결정 한 번에 수십, 수백, 수천만의 목숨이 생과 사를 넘나드는 것이다.
단테를 위해 반이 하루 내내 명왕군림검을 펼치고, 연합의 모든 초인과 함대가 말루기아의 황금 벽을 뚫는다면.
이후 벌어질 일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예정대로 단테는 전사할 것이며, 연합은 크나큰 피해를 받은 채 한 번 더 적들의 손에 끌려다니게 될 것이다.
‘이걸…… 어떻게…… 억누르지. 대체 어떻게.’
바멀 연합 총수로서의 무거운 의무와 유일한 회귀자로서의 책무는, 이번에도 진을 합리적인 선택으로 이끌 것이다.
그러나 그는 바멀 연합의 총수이기 이전에, 본질적으로 한 사람의 인간이었다.
자신의 결정에 목숨이 오갈, 그 수많은 이들보다…… 단 한 명의 사랑하는 사람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바로 지금이었다.
단테를 구할 수 있든 없든, 자신과 바멀 연합의 전력을 쏟아붓고 싶은 충동이 송곳처럼 내면을 쑤셔댔다.
“진! 야, 진!”
빠악-!
별안간 누군가 진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베라딘, 그는 고개를 든 진의 어깨를 붙잡고 마구 흔들며 뒷말을 이어갔다.
“이 멍청아, 모르겠어!? 단테는 저 안에서 제국 백성들이 죽어 간 걸 두 눈으로 직접 봤을 거라고. 싸우고 싶었겠지. 싸우다 차라리 죽어 버리고 싶었겠지! 그런데 아직 안 죽고 살아 있어.”
“베라딘.”
“그게 무슨 뜻이겠어? 그 녀석은 도망치고 있는 거다. 그게 옳으니까. 지원군이 오기 전에 어설프게 싸우면 병력만 잃을 테니까! 우리도 마찬가지다, 진. 물러나야 해. 단테는…… 단테는…….”
베라딘의 입술 사이로 핏물이 흘러나왔다. 그는 말하는 내내 저도 모르게 혀를 깨물고 이를 악물고 있었다.
“단테는, 이 상황을 알면 우리가 그렇게 하길 바랄 거다. 그게 옳으니까. 자기 때문에 헛된 힘이 쓰였다가 세상이 위험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할 테니까! 그 녀석은 옳은 일밖에 할 줄 모르잖아…… 그러니까 정신 차려, 네가 흔들리면 세상은 끝이야. 널 대체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어?”
진의 두 눈동자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베라딘은 터지려는 울음을 간신히 참고 있었다.
“……전 함대, 집결 취소. 제국은, 지원하지 않겠습니다. 모두 다음. 다음…… 다음 싸움을, 준비하겠습니다.”
선은 끊어지지 않고, 지금 막 진의 내면에 벌어진 깊은 상처 속으로 가라앉았다.
통신을 받은 이들은 고개를 떨궜다. 검의 정원과 티칸에 상주 중이던 제국의 인사들은 주저앉아 오열했고, 혼절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단테는 제국의 기둥을 넘어, 지금의 제국 그 자체나 다름이 없었다.
삐……!
진은 몸과 내면 모두에서 무언가가 터진 듯한 느낌과 더불어, 엄습한 이명에 질끈 눈을 감았다.
이내 통신기를 내려놓은 채 진은 공허한 눈으로 황금의 벽을 응시했다. 저 벽 너머에 있을 친구의 모습이, 그 얼굴이 머릿속에서 그려지지 않고 있었다.
“발레리아, 기록은…… 계속 추적해 줘.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알아야 추후 대응할 수 있으니까.”
뒤돌아보지 않은 채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발레리아의 눈동자에도 눈물이 맺혀 있었다.
-[동료, 전우가 죽는 감정이라는 건 말이야. 나처럼 많은 경험을 한 놈도 익숙해질 수가 없어. 게다가 적이 크라고스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니…… 최악의 경우, 이야기의 탑이나 말루기아, 아락시온까지 상대해야 할 수도 있다.]
진은 조금 전에 오르갈이 한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 말대로, 이 슬픔은 결코 익숙해질 수 없었다.
[……진. 위로가 될 수는 없겠지만. 너흰 슬퍼할 수 있기에 괴물이 아닌 거야.]넵돌이 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녀와 블리기에트는 창조자로서 진을 비롯한 연합의 모두에게 부채감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을 이토록 괴로운 곳으로 만들어 주었다는 부채감을.
진의 시선은 계속 황금의 벽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무리 강해도, 아무리 대단해도, 무슨 일에도 슬퍼할 수 없다면. 너흰 깨닫기 전의 우리나, 저 끔찍한 필멸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어?]넵돌이 별안간 말을 끊으며 눈동자를 끔뻑였다.
[넵돌, 이건!]동시에 블리기에트도 무언가를 감지한 듯 고개를 들었다. 오로지 태양신의 자아들만이, 지금 전장에 생긴 변화를 인지하고 있었다.
또 다른 태양신의 자아가 어디선가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뭔데? 넵돌, 블리기에트. 설마 다른 태양신의 자아가 온 거냐!?”
무라칸이 소리친 직후, 진과 연합은 기함 사라와 황금의 벽 사이에 처음 보는 형태의 거대한 차원문이 열리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포칼! 이건 포칼이야! 포칼이 여기에 왔어! 뀨!] [포칼……!]-그 제단에 잠든 킨젤로의 자아가 가진 이름은 포칼, 그는 세계 유지를 원하는 자아입니다. 지플은 그를 마신석의 재료로 사용한 적이 있어요. 깨어나면 연합의 든든한 우군이 될 겁니다.
얼마 전 밀라 왕국에서 실키아 아르시아가 했던 말.
그날부터 진마계는 진으로부터 태양검 테탈론을 전달받아 포칼을 깨울 준비를 해 왔다. 그리고 오늘, 성공한 것이다.
“진! 진! 우리왔어 실키아가포칼님을깨웠어! 포칼님이상황이 안좋다고그러셨어 그래서엄청빨리왔다구, 실키아와포칼님의능력으로.”
“진, 무사한 거냐!”
“진 경!”
미솔, 틸리아스, 실키아. 진마계 동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새로이 전장에 나타난 태양기에 휘감긴 채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리고 세 사람의 뒤로 가장 늦게 차원문을 빠져나온 포칼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크라고스처럼 인간을 닮은 모습이었고, 체구가 아주 작았다.
그러나 그 작은 육신은, 이 세상을 사랑하는 창조주의 무한한 자애를 품고 있다.
[가여운 필멸자여, 슬픔에 잠겨 있었구나.]포칼은 순식간에 진의 앞으로 다가와 그와 눈을 맞췄다. 진은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자마자, 내면의 슬픔이 씻겨 나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눈물로 뿌옇게 변한 시야가 이제야 환해지고 있었다.
이내 포칼은 진을 끌어안았는데, 함교 너머로는 그녀가 빠져나온 차원문이 닫히며 황금의 벽이 녹아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연합의 전 병력이 달려들어도 없애려면 최소 하루는 필요하다던 벽이었다.
유지의 자아들은, 당연하게도 파멸의 자아들에 가장 강력하게 맞서는 존재들이다. 그중에서도 포칼은 단독으로 어느 정도는 말루기아를 저지할 수 있는 유일한 자아였다.
[슬픔을 베러 가거라. 나는 세상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자, 그대들에게 내 힘을 보태 주겠다.]이미 포칼은 품에서 진을 놓아주며 자신이 열어 둔 길로 그를 날려 주고 있었다. 눈이 녹듯이, 황금의 벽들이 쉴 새 없이 허물어지고 있었다.
무라칸과 반, 기함 사라도 포칼이 형성한 길을 나아가기 시작했다.
단테가 홀로 분투하는 제국 수도에 닿기까지도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포칼과 실키아는 황금 벽이 허물어질 때마다 거리를 좁혀 새로이 차원문을 열었다.
“단테!”
십여 초 만에 다섯 개의 차원문을 넘은 후, 진은 반파된 검황선 위에 만신창이가 된 채 간신히 검을 추켜들고 있는 단테의 옆에 설 수 있었다.
“진…… 진? 정말 그대요? 헛것인가?”
“단테 이 자식아! 이 망할, 빌어먹을, 미안하다! 내가 미안해!”
거의 동시에 도착한 베라딘과 동료들도 단테의 곁에 자리를 잡았다. 진은, 단테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쉬고 있어라, 단테. 고맙다, 살아 있어서.”
친구는 구했으니, 이제 사람들의 복수를 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