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77)
제 111화
59화. 영검의 전승지(1)
별을 향해 걷고 있는 것 같았다.
성큼성큼 발걸음을 떼고 있지만 테마르와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질 않았다. 별에 닿을 수 없듯, 테마르에게도 닿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힘겹게 뽑은 브라다만테의 칼날이 정신없이 떨리고 있었다.
후욱, 후욱…….
거칠고 뜨거운 숨이 목구멍을 들락댈 때마다 한 묶음 칼날이 입 속으로 들어오는 듯했다. 벤다, 벨 것이다. 새하얀 머릿속엔 단순한 의지만이 가득하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의지를 꺾지 않는 것.
일만 번 검을 휘둘러, 처음과 끝이 같게 만드는 것.
이제 막 강자의 반열에 올라선 무인에게, 그보다 멋진 일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몸은 괴롭지만 진은 마지막 시험에서 큰 만족감을 얻고 있었다.
‘보이지는 않아도, 나아가고 있다.’
가까워진다는 느낌조차 없지만 그런 확신이 가슴을 두들겼다.
얼마나 더 걸었을까.
천천히, 어둡게 닫힌 시야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흐릿하게 보이는 테마르의 모습은 아까보다 확연하게 가까워졌고, 그 옆에 선 새로운 여인, 흑룡 미샤의 존재도 인지할 수 있었다.
저건 누구지?
진은 미샤를 보고도 그런 생각을 품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품을 수 없었다.
테마르 룬칸델을 베겠다는 절대적인 의지로 뭉친 마음. 그 속엔 어떤 잡념도, 상념도 끼어들 틈이 없다.
테마르의 옆에 선 것이 누구건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진이 테마르를 벨 수 없는 이유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때쯤 테마르가 한 번 더 미소를 지었다.
주먹을 불끈 쥔 채, 진만을 바라보고 있던 미샤는 그 미소를 보지 못했다.
‘두근거리는 아이로군요…… 설마 이렇게까지 예상을 상회할 줄은 몰랐습니다, 솔더렛 님.’
세 번째 시험의 의의는 진의 예상과 정확히 일치했다.
그 누구를 만나도 ‘베겠다’는 의지를 갖는 것. 설령 테마르 룬칸델이라는 거인을 마주하더라도 절망하지 않는 것.
그러나 ‘테마르가 서 있는 곳까지 완전히 다가온다’는 것은 시험에 포함된 내용이 아니었다.
이곳은 진 룬칸델뿐만이 아닌, 영기를 다루는 룬칸델의 모든 마검사를 위해 준비된 공간이다.
룬칸델이 지플과 맺은 굴욕적인 맹약 때문에, 테마르가 죽고 천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새로운 전승자가 나타났지만.
본래는 솔더렛과 계약한 룬칸델의 마검사라면 누구든 한 번은 거쳐야하는 땅.
맹약이 없었다면 지난 천 년 동안, 적어도 열 이상의 룬칸델 마검사가 이 땅을 찾았을 것이다.
그중 진처럼 할 수 있는 마검사가 과연 몇이나 되었을까? 그것도 채 스물이 되지 않는 소년의 몸으로.
‘시론 룬칸델, 현 가주인 그 인간을 빼면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조차 저 소년처럼은 못했을지도…….’
진과 테마르 사이엔 이제 백여 걸음밖에 남지 않았다.
감히 상상조차 어려울 만큼 많은 정신력이 소모되었을 것이 분명하건만, 어째서인지 테마르에게 가까워질수록 진의 걸음걸이가 빨라지고 있었다.
대사막을 짓밟는 테마르의 기운이 불이라면, 시간은 망치였다.
그렇게 불과 시간이 진이라는 쇠를 벼리고 있는 것이다. 테마르에게 다가설수록 진은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검이 되고 있었다.
마침내.
검이 테마르에게 닿았다.
브라다만테는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백야의 태양빛을 잔뜩 머금은 채 푸르게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칼날이 젖혀졌다.
한 보 앞으로 나아가 내려치면, 이제 테마르를 벨 수 있을 터.
‘안 돼!’
돌연 진의 동공이 커졌다.
검을 젖히자마자 테마르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오직 그를 베고자하는 마음으로 왔건만, 야속하게도 신기루가 사라진 것이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보고 달려온 이들이, 사실 그것이 신기루였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에도.
지금의 진보다 절망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테마르!”
허공을 베며 소리치는 진.
갈라진 목소리에 진한 절규가 배어 있었다. 테마르, 어디로 간 거냐, 테마르! 몇 번이나 선조의 이름을 부르며, 진은 미친 사람처럼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테마르는 더 이상 없다.
가히 신위라 부를 만한 기운을 뿜어내며 이 자리에 우뚝 서 있던 그는, 더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다.
“빌어먹을!”
팽팽히 당겨진 수만 가닥의 실이 한 번에 끊기듯, 진을 걷게 만든 의지가 터져나갔다.
그 자리를 대신 채우는 것은 허탈감이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실감이 진의 마음을 공허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렇게 의미 없이 검을 휘두르길 다섯 번.
‘여자, 테마르의 옆에 서 있던 그 여자라면 뭔가 알지도 모른다!’
문득 미샤의 존재를 떠올린 진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미샤 역시 다시 대사막의 결계 속에 숨은 상태였다. 진의 입장에선 그녀마저도 신기루였다고 치부할 수밖에.
“하……!”
털썩!
이내 진이 바닥에 주저앉아 고개를 숙였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테마르를 베기 위해 형제를 베었고, 그토록 사랑하는 스승을 베었다.
토나 형제와 발레리아가 아니라, 다른 누구였더라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 무라칸, 길리, 루나, 요나, 카시미르, 엔야, 알리사, 그 누구였더라도 똑같이 베고 지나쳤으리라는 의미다.
그야말로 심연이나 다름없는 날들을 지나쳐 마침내 그에게 닿았건만!
‘이토록 허무한 결말이라니.’
허탈감과 함께 분노가 치솟았다.
그러나 사방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에 화풀이를 할 수는 없다. 다시 테마르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 기다려도 그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한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곧 마음을 추스른 진이 가만히 주위를 살폈다.
평정심을 되찾기까지는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웃기는군. 죽어도 좋으니, 테마르를 베겠다는 집념으로 여기까지 왔건만. 막상 그가 사라지니까 더 이상 물도, 식량도 없다는 게 떠오르잖아…….’
두 번째 신기루, 발레리아를 마주쳤을 때 이미 식량과 물은 동이 났다. 그녀와 싸운 후 원기를 좀 회복하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테마르가 사라졌다고 절망하며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는 샘을 찾아 앞으로 나아갈 자신도 없었다.
차라리 테마르를 만나지 않은 채였다면 나았을 것이다.
-세 번째 신기루가 끝나면 영기 해방을 펼쳐라. 그렇게 하면 명왕족이 나타날 거다.
일단 무라칸의 말에 따라 영기 해방을 펼치기로 했다. 어쨌거나 세 개의 신기루는 모두 끝이 났고, 이제는 명왕족을 만날 차례인 것 같으니.
후우웅…….
진의 몸에서부터 스멀스멀 검은 영기가 피어올랐다.
황당한 마음에 깨닫지 못했으나, 대사막으로 길을 떠나기 이전보다 한층 짙어진 영기였다. 세 번의 시험을 끝내고 성취를 이룬 것이다.
한참을 정좌한 채 영기 해방을 펼쳤지만.
명왕족은 모습을 드러낼 기미가 없다.
‘신기루는 세 번 모두 끝이 났는데……?’
무라칸이 잘못 알려준 건가, 아니면 사실 미트라 대사막에 영기의 전승지 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건가.
그런 불안감이 뇌리를 스쳤다.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영기 해방을 펼쳐도 다가오는 이가 아무도 없기 때문이었다.
밤이 끝났다.
푸른 태양은 다시 새하얀 광휘로 물들어 지독한 열기를 토했고, 진은 황망한 얼굴로 상앗빛 사막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육두문자 대신 웃음이 터졌다. 누구라도 붙잡고 묻고 싶었다. 대체 이 부조리한 상황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나는 도대체 여기서 무엇을 더해야 하느냐고.
아아아악!
괴성을 지르며 일어섰다. 이렇게라도 소리치지 않으면 답답한 마음에 졸도할 것 같았다.
“개 같은 놈들, 끝까지 해보자. 그래. 어. 누가 먼저 끝장나나 보자고.”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진은 다시 걷기로 했다. 설령 영기의 전승지에 닿지 못하더라도, 이 빌어먹을 사막에서 생을 마감할 수는 없으므로.
그렇게 무거운 발걸음을 떼려는 찰나, 이런 목소리가 들렸다.
“합격.”
멈칫하며 돌아보자, 그곳엔 생전 처음 보는 한 수인종이 서 있었다.
그는 인간과 거의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두 손을 가득 뒤덮은 검은 털과, 가슴 한가운데 박힌 주먹만 한 보석, 그리고 엉덩이에 달린 꼬리를 빼면 모든 게 인간과 같았다.
반만년 전, 신들에게 도전했다 멸망한 이들.
명왕족이다.
진은 한동안 눈을 끔뻑이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2미터를 상회하는 키, 명왕족은 햇빛을 가린 채 무표정한 얼굴이다.
갑자기 이런 거구가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대사막에 들어서고 근 3주가 지났으니 이제는 익숙한 것이다.
“그냥 포기해야겠다며 주저앉아 질질 짜거나, 하늘에 대고 살려주라고 소리쳤다면 불합격이었다.”
“……뭐라고?”
“세 번째 신기루가 사라졌을 때, 넌 시험이 끝났다고 생각했겠지. 실제로 솔더렛의 기준에선 끝난 게 맞기도 하고.”
“그러니까, 말하자면…… 시험은 아까 끝났다는 말인가? 세 번째 신기루가 사라졌을 때.”
명왕족이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셈이지. 하지만 우리 기준에선 그것만으로 부족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투지를 일으키는 전사가 아니라면, 가르침을 받을 자격이 없지. 그런 의미에서 네놈은 합격이다.”
스릉!
진이 눈을 부라리며 브라다만테를 뽑았다. 그리곤 그가 무어라 더 말할 새도 없이, 품을 파고들었다.
챙!
명왕족은 어렵지 않게 기습을 쳐내며 미소를 지었다.
“왜 이렇게 화를 내지? 솔더렛의 계약자. 한 판 붙자는 건가?”
그러나 진은 두 번째 검격을 잇지 않고 다시 납검했다. 살의가 가득한 눈으로 기습했던 방금과 전혀 달리, 차분한 얼굴이었다.
“아니, 말하자면 네놈들은 날 갖고 논 셈이니. 한 번은 검을 뻗어야 직성이 풀리겠더군.”
“그래? 회심의 기습이 전혀 통하지 않으니까 겁을 집어먹은 건 아니고?”
피식.
이번엔 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네 눈엔 내가 겁먹은 것처럼 보이나? 원한다면 계속 싸워주도록 하지.”
명왕족은 흥미로운 듯 한동안 진을 내려다보며 말이 없다.
그러다가 이내 씨익 또 한 번 미소를 지었다.
“아주 마음에 들어. 내 기억 속 인간과는 많이 다르군. 그때의 인간들은 대부분 우릴 보면 오줌을 지리기 바빴거든.”
“약자들을 상대로만 싸웠나보군.”
“크하하, 글쎄. 그렇게도 해석할 수 있겠지. 그때의 우린 그야말로 무적이었으니까.”
명왕족이 대답하지 않는 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내 이름은 탄텔이다. 이름이 무엇이냐, 솔더렛의 아이여.”
“진 룬칸델.”
“좋아, 진 룬칸델. 한 가지 조언을 해주마. 나는 자비로운 편이라 네 건방진 언행도 귀엽게 여기고 넘어갈 수 있지만, 투신전의 형제들을 만날 땐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투신전?”
“이름 그대로, 투신들의 전당에 모셔진 형제들이지. 무지막지하게 강하거든. 아무튼, 그들 앞에서는 지금처럼 말하면 한 끼 식사가 될 거다. 그들은 널 솔더렛만큼 아끼지 않아.”
탄텔이 검으로 허공을 가르며 말했다.
그러자 거대한 차원문이 열리며 이제는 사라진 명왕족의 문명이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