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78)
제 111화
59화. 영검의 전승지(2)
차원문 너머로 보이는 것은 도시였다.
탄텔이 차원문으로 들어서 손짓하자 진이 그 뒤를 따랐다. 신기하게도 차원문에 들어서자마자 사막의 모랫바닥과 다른 단단한 바닥이 발바닥에 닿았다.
출렁.
탄텔이 허리춤에 찬 수통을 열어 진에게 내밀었다. 자연스레 그것을 받아 쭉 들이켠 진은, 하마터면 머금은 걸 다 뱉을 뻔했다.
수통에 든 것은 물이 아니라 술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전생에서도 경험해본 적 없는 독주였다. 액체가 아니라 불을 한 덩이 삼킨 기분, 진이 홱 노려보자 탄텔이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프하핫, 우리의 말로는 라프라로사고, 인간들은 검은 빛이라고 불렀다.”
“이 고약한 술의 이름이냐?”
“아니, 이 위대한 도시의 이름이다. 그나저나 쯧, 예나 지금이나 인간들은 술맛을 잘 모르는군. 그 술은 보석주다. 우리만의 방식으로 금강석을 정제해서 만든 것이지.”
“물이나 한 잔 줘.”
라프라로사, 검은 빛.
진이 보고 있는 것은 명왕족의 전성기에 세워진 도시였다.
라프라로사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반만년 전에 지어졌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척 보기에도 수준 높은 문명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치스러웠다.
‘황금 도로라, 왜 그토록 많은 모험가들이 황금을 찾아 대사막을 왔는지 알만하군.’
새로 받은 수통에 코를 대며 진이 생각했다. 이번엔 확실히 물이었다.
벌컥벌컥 들이켜며 둘러보니 도로는 온통 반질반질한 황금으로 이루어졌고, 그 위에 솟아 있는 건물은 꼭 어딘가에 보석이 장식되어 있었다.
보통은 문이었다. 문마다 탄텔의 가슴에 박힌 것과 비슷한 보석이 박혀 있었다.
“탄텔, 네 가슴에 장식된 그 보석은 뭐냐? 문마다 똑같은 게 달려 있군.”
“심장.”
짧게 대답한 탄텔의 목소리에 슬픔이 묻어났다. 진은 더 묻지 않고 그를 따라 황금의 거리를 걸었다.
황금과 보석으로 빚은 도시가 다 무슨 소용인가.
대로를 걷고 있는 건 진과 탄텔, 두 사람뿐이다. 아무리 화려하게 빛난다 한들, 라프라로사는 이미 죽은 도시였다.
혹은 멈춰 잊힌 도시.
이토록 찬란한 도시를 자랑하던 명왕족은 멸망했다. 극소수만이 살아남아 간신히 솔더렛이 만든 차원 속에 숨죽여 있을 뿐.
집집마다 대문에 박힌 보석은, 주인이 살아있을 때 뜨겁게 빛나던 심장이었다.
두 시간을 걷자 황금의 거리가 끝났다. 그들이 걸어온 길보다 걷지 않은 길에 더 많은 황금이 깔려 있었다.
황금이 끝난 길부터는 평평한 돌바닥이었다. 길 양옆으로 명왕족의 전사들을 기리는 거대한 석상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투신전으로 가는 길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진 룬칸델. 투신전의 형제들 앞에선 입을 조심해야 해. 알았나?”
“참고하지.”
“뭐, 투신전에 있는 형제들이 전부 투신이나 투왕의 칭호를 얻은 것은 아니긴 하지만.”
“명왕족은 몇 사람이나 남았지?”
“투신과 열둘 투왕을 포함해 일흔일곱. 그들 모두가 멈춘 시간 속에서 널 기다리고 있었다.”
“아까는 까딱하면 불합격시킬 것처럼 말하더니.”
“더 많은 시간을 기다리게 되었을지라도, 조건이 안 맞으면 못 가르쳐.”
명왕족이 썩 솔직한 종족은 아닌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한 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투신전이라…….’
이름 그대로 싸움의 신을 위한 전당, 오만하기 이를 데 없는 작명이다. 그럼에도 진은 투신과 열둘 투왕에 대해 강렬한 호기심이 일고 있었다.
저 멀리, 이제 막 보이기 시작한 투신전에서 이글이글 뻗어지고 있는 기운 때문이었다.
‘감히 테마르의 기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등골이 오싹하긴 하군.’
대사막을 걷기 전이었다면 그 오싹한 기운을 인지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세 개의 신기루를 해쳐온 것만으로도, 진은 상당한 성취를 이룬 상태였다.
투신전은 진이 이제껏 직접 본 그 어떤 건물보다도 거대했다.
강철과 돌을 섞어 만든 외벽엔 사치스러운 장식이 단 하나도 없었으나, 성벽처럼 웅장한 철문엔 셀 수 없이 많은 명왕족의 심장이 박혀 있었다.
탄텔이 손바닥을 대자 철문이 스스로 열리기 시작했다.
쿠그그그그…….
“오!”
“오오오!”
진의 목소리가 아니다.
감탄을 내지르고 있는 건 한 무리의 명왕족이었다. 어찌나 애가 탔는지, 대문 앞에 바짝 붙어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드디어 우리 제자가 온 건가!”
“크, 귀엽게 생겼잖아!?”
“테마르 이후 천년만이라고, 천년!”
탄텔이 무안한 듯 이마를 짚었다. 명왕족도 부끄러울 때 인간처럼 얼굴이 붉어지는 모양이었다.
‘미친…… 얼굴을 붉힐 것까진 없는데.’
초롱초롱.
진을 바라보는 명왕족들의 눈빛이 빛나고 있었다. 남녀 구분 없이 전부 2미터가 넘는 거구에 다부진 몸.
“형제님들, 제가 이러시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탄텔이 그렇게 말하는데도 명왕족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진에게 관심을 보였다.
“몇 살이냐!”
“라프라로사에 온 소감이 어떠냐?”
“밥은 먹었어?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
울림 깊은 두터운 목소리로 조잘조잘 떠드는 모습을 보니 이들이 과연 대륙의 옛 패자가 맞나 싶을 지경.
‘설마 이들 중에 투신이나 투왕이 섞여 있진 않겠지. 음, 어딜 가나 수다스러운 친구들은 있는 법이니까.’
진이 뭐부터 대답해야하나 고민하는 사이, 한 여인이 번쩍 진을 들어올렸다. 진은 그를 밀어내려 했으나, 완력에서 상대가 되질 않았다.
‘무슨 힘이……!’
명왕족이 강하다는 건 이야기를 들어서도 알고, 탄텔과 일합을 섞어보아서도 잘 안다.
그러나 탄텔과 검을 맞댔을 때는 이 정도가 아니었다. 진은 여인의 손아귀를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그녀는 그저 어린애를 다루듯 여유로웠다.
껄껄 웃음을 터뜨리며 진을 목마 태우는 여인. 이번엔 진도 탄텔처럼 얼굴이 좀 붉어질 수밖에 없었다.
“애 얼굴이 아주 시커멓군, 일단 좀 씻겨야겠다! 펠로스, 목욕물 준비는 물론 끝내놨을 테지?”
“물론입니다, 칠투왕 형제!”
그녀는 명왕족 투신전의 일곱 번째 투왕, ‘벨리즈’였다.
놔!
그렇게 소리치려던 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설프게 덤벼봐야 좋을 게 없을 것 같군.’
게다가 다들 진심으로 환영해주는 분위기인데, 굳이 악을 써서 초를 칠 필요는 없었다.
이제부터 진은 이들에게 ‘영검’을 전승받아야 하는 것이다. 진은 가르침을 받으러 온 것이지, 이들과 싸우러 온 것이 아니다.
“훌륭하다! 크하하, 씻기는 건 누가 할 것이냐? 가위바위보로 정해라! 마지막에 남은 자에게 우리의 역사적인 두 번째 제자를 씻길 기회를 주겠다!”
“가위, 바위!”
“보오오!”
“다시 해, 다시……!”
다들 광기에 젖은 것 같았다. 탄텔도 이제는 포기한 듯 멍한 얼굴이었다.
무려 천 년 만에 새로운 인간, 그것도 영검을 전승받을 인물을 만났으니 그럴 수 있었다. 납득하기는 어렵지만…….
‘아니, 이건 아니야. 정말 아니다.’
이대로 가만히 내버려두면 저 우락부락한 명왕족 중 누군가가 자신을 목욕시킬 터였다. 한 살 때 길리가 씻겨주는 것도 질색했던 진이다.
“혼자 씻겠소!”
진이 소리치자 한순간에 뚝 소란이 멈췄다.
그리고 모든 시선이 일제히 벨리즈의 목마를 타고 있는 진에게로 향했다.
“아니, 그건 안 돼.”
“왜 안 된다는 말이오?”
“너는 이제 투신 형제를 만나야 하는데, 불결한 몸으로 만날 수는 없잖아.”
“목욕물 있다면서? 그걸로 잘 씻으면 되잖소.”
“아, 부족해. 아주 깨끗하게, 귓속에 남아 있는 모래 한 알까지 다 닦아야 하거든.”
“맞아, 인간들은 좀 더러운 편이잖아. 오물이 묻은 옷을 그냥 입고, 잔뜩 때 낀 손으로 식사를 하는 게 인간이라고. 상한 음식도 가리지 않고 잘 먹고 말이야.”
명왕족의 기억 속 인간들은 대부분 그랬다. 그들의 역사는 반만년 전에 멈춰 있었고, 당시의 인간들은 실제로 청결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안 그렇소.”
대답하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심지어 진은 한동안 자신이 ‘얼마나 잘 씻는지’도 설명해야했는데, 명왕족은 미심쩍은 듯 흠흠 낮은 콧소리를 내며 경청했다.
“……생각보다 씻는 법을 꽤 잘 아는군.”
“어떻게 할까요? 칠투왕 형제. 상당히 완강하게 거부하는데요.”
“음!”
벨리즈가 진의 발목에 손가락을 까딱댔다. 혼자 씻게 둬도 괜찮을까 고민하는 것이다.
“일단 혼자 씻고 나온다. 그 다음에 우리 기준에 미달한다면 군말 없이 도움의 손길을 받는다. 알겠나?”
“알겠소.”
투신전 한쪽에 있는 목욕탕에서 세 시간이나 몸을 씻었다. 행여 트집 잡히지 않을까 병적인 목욕을 했지만 사실 진도 개운했다.
사막에 들어선 후 첫 목욕이니 당연한 일. 목욕탕엔 과일과 명왕족 전통 과자도 준비되어 있어 간단히 요기도 할 수 있었다.
오는 길에 살펴보니, 투신전은 이름과 달리 일종의 광장 역할도 하는 것 같았다. 대문으로 마중 나오지 않은 명왕족 대부분은 투신전 1층에 모여 책을 읽거나, 잡담을 주고받았다.
“합격.”
탄텔이 명왕족 전통복을 내밀며 말했다. 언젠가 찾아올 전승자들을 위해 맞춰놓은 옷이었다.
“잘 씻는군. 입고 온 것은 태워 없앴다.”
“여기 와서 잘 씻는다고 칭찬을 받게 될 줄은 몰랐어. 의외로 시끌벅적하더군, 네 동족들. 싸움에 미친 악귀 같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우리도 사람이다. 테마르 이후 천 년이나 시간이 멈춰 있었으니, 다들 좀 흥분한 거지.”
진이 브라다만테를 허리에 묶으려고 하자, 탄텔이 고개를 저었다.
“투신을 만날 땐 무기를 소지해선 안 된다. 그런 건가?”
“비약이 심하군. 네가 검을 찼다고 투신 형제께 위협이 될 것 같나?”
“그럼?”
“당분간 그 검은 여기서 쓸 일이 없기 때문이다. 아까 보니 테마르가 쓰던 바리사다의 형제검인 것 같던데, 영검을 배울 땐 다른 검을 사용해야 해.”
“어째서?”
“검이 네 영기를 보조해줄 테니까. 그래서는 제대로 수련할 수 없잖나. 네가 묵을 방에 들렀다가 투신 형제에게 갈 거니까, 검은 그곳에 둬라.”
진이 사용할 방은 단출했다. 침대 하나와 작은 책장 하나가 전부, 투신전은 바깥 도시와 달리 사치스러운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본당에 가면 아까 봤던 칠투왕 형제도 있을 거다. 그런데 분위기가 전혀 딴판일 테니, 당황하지 말고 묻는 말에만 잘 대답해. 아까도 말했듯, 쓸데없는 말은 말고.”
“영검의 전승은 언제부터 시작하는 거지?”
“그건 투신 형제가 정할 문제다. 네가 통과한 시험은 어디까지나 최소 기준일 뿐, 투신 형제가 이르다고 판단한 순간 넌 왔던 길을 그냥 되돌아가야 할 수도 있어.”
날벼락 같은 소리에 진이 칼눈을 떴다.
“하나부터 열까지 억지스럽군.”
“억지스럽게 강한 무예를 익히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되지 않겠어? 우리가 영검을 가진 채 신들에게 맞섰다면, 결과가 지금과는 달랐을 거다.”
투신전 본당에 가까워질수록 탄텔의 심장이 점점 더 밝아지고 있었다. 투신이라는 명왕의 기운에 뭔가 영향을 받는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