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07)
제 222화
67화. 마녀 헬루람의 유산(4)
광심장에서 분출된 뇌기가 창백한 검신을 휘감았다. 그 기운에 활활 타올라 붉게 물든 풍경이 일순 푸른빛으로 물들었고, 마물은 뒷걸음질을 쳤다.
눈이 부실 정도로 찬란한 빛.
곧 거대한 송곳이 된 빛이 마물의 목덜미를 향해 쇄도했다. 맹렬한 기운에 사방에 퍼진 가시나무의 재가 빨려 들어가는 모습.
마물은 단죄의 송곳이 코앞에 온 순간에도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었으나, 진은 왜인지 이런 직감에 빠져 있었다.
‘일격에 끝날 것 같지가 않다.’
돌격대장급 백랑족 다섯을 단숨에 집어삼킨 검이다. 그럼에도 마물은 죽이지 못할 것 같았고, 이럴 때 직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캬하아악!
송곳이 목덜미를 찌르기 직전, 마물이 등을 활처럼 굽히며 앞발을 내질렀다.
검처럼 날카로운 다섯 개의 발톱이 빛나고 있었다. 오러도, 마력도 아닌 마물이 지닌 고유한 힘으로 덧씌워진 모양이었다.
파즈즈즉!
송곳과 앞발이 부딪히자 뇌전과 푸른 불꽃이 튀었다. 놀랍게도 마물의 필사적인 앞발질에 송곳은 궤도가 비틀어졌고, 진은 다시 검을 휘둘렀다.
대각으로 튕겨진 송곳이 시그문드를 따라 다시금 마물의 측면을 덮쳤다. 마물은 이번에도 발톱으로 송곳을 쳐내는 모습을 보였다.
직접 격돌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도 마물이 지닌 괴력을 유추하기엔 충분했다.
‘바네사 경이 괜히 시험이라 표현한 게 아니로군.’
괴력뿐만이 아니다. 뇌속에 가까운 송곳에 벌써 두 차례나 정확히 반응한 것 역시 충격적인 대목.
다만 마물은 송곳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송곳이 몸에 닿는 순간 어떤 고통이 뒤따를지 본능적으로 느꼈기에, 끊임없이 비명을 내지르고 있는 것이다.
프즈즉, 캉! 프즉-!
그렇게 송곳을 쳐내길 다섯 번, 결국 여섯 번째에 마물의 뒷다리에 빈틈이 생겼다. 진은 즉시 송곳을 그곳으로 유도한 후, 몸을 날려 마물의 정면을 함께 노렸다.
평식 압제, 시그문드에서 퍼지는 뇌기가 마물을 잡아당겼다. 때문에 마물은 뒷다리를 덮친 송곳을 피하지 못했고, 정면으로 뻗어진 칼날만 겨우 쳐낼 뿐이었다.
[캭!]마물의 발톱 끝이 검신 중앙을 가격했다. 진은 중심을 잃지 않고 검을 흘린 뒤 재차 공격했고, 그사이 마물의 뒷발을 덮친 송곳이 뇌전을 토했다.
괴로운 울음소리가 퍼졌다. 갓난애 수십 명이 울어재끼는 것 같은 불쾌한 소음이 귀를 울린 순간, 진은 마물의 얼굴을 향해 벼락을 떨궜다.
벼락과 단죄의 송곳, 두 공격이 동시에 적중했다. 보호막 없이 가격당한다면, 9성 무인이라 할지라도 결코 멀쩡할 수 없는 위력.
분명 평식 벼락은 마물의 얼굴을 정통으로 강타했고, 송곳은 뒷발을 꿰뚫고 갈기갈기 찢어 지져놓았다.
[키아아악! 카아악!]듣는 이가 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괴로운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진은 놀라운 광경을 맞닥뜨려야만 했다.
‘재생……?’
마물의 상처가 재생되고 있었다.
뒷발에서 빠져나온 깨진 뼛조각들이 분해되며 다시 환부로 스며들었고, 벼락에 찢긴 얼굴은 빠른 속도로 아무는 모습.
고위 마물 중 재생 능력을 가진 종이 있다는 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니 딱히 놀라울 것은 없지만.
‘빨라도 너무 빨라.’
문제는 그것이었다. 진이 알고 있는 고위 마물의 재생 능력은 결코 이 정도 속도가 아니었다. 고양이 마물은 문자 그대로 상처를 ‘즉시’ 재생하고 있는 것이다.
당황해서 가만히 지켜볼 때가 아니었다. 투신기 3검, 단죄를 오래 지속한 탓에 오러가 제대로 안배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만한 재생 능력을 염두에 두지 않은 탓이다. 진은 조금 무리하더라도 일단 치명상을 입히고, 그 다음에 완급 조절을 하며 상대할 계획이었다.
그 누가 이 마물에게 이런 재생 능력이 있다고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처음 마물을 마주한 전대 흑기사들 역시 진과 똑같이 황당한 기분을 겪었었다.
순식간에 회복을 끝낸 마물의 형형한 눈동자가 진을 담았다. 반드시 죽이고야 말겠다, 그런 살의가 진하게 밴 눈동자로 또다시 마력이 모여들었다.
이번엔 마안이 아니다. 눈에 모인 마력은 그대로 광선이 되어 쏘아졌고, 진은 재빨리 보법을 밟아 회피할 수 있었지만, 광선이 떨어진 땅을 보고 마른침을 삼켰다.
시커먼 구덩이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주변 땅이 다 부서지고 헤집어져 꼭 성채가 무너진 흔적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당연히 저런 광선에 맞으면, 제아무리 진이라 할지라도 무사할 수는 없다.
‘맞지 않으면 그만이긴 한데.’
피하거나 막을 수 없는 수준으로 빠르진 않았다.
하지만 적에게 언제나 염두에 둬야 하는 무기가 하나 있다는 것은, 전투의 피로감을 현저히 상승시키기 마련.
특히 초속 재생을 하는 마물과 장기전을 펼쳐야하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놈도 무한정 재생할 수는 없을 터. 재생의 근원이 되는 장기를 훼손하거나, 더 이상 재생할 수 없을 때까지 부상을 입히면 내 승리다.’
물론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진은 단 한번이라도 정타를 허용하면 치명상인 반면, 마물은 고통만 감내한다면 치명상 몇 번쯤은 간단하게 재생해버릴 테니 말이다.
효율적인 싸움을 해야 했다. 명왕검처럼 파괴적인 검보다는, 더 섬세한 조절이 가능한 검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뜻.
스릉…….
진이 시그문드를 납검하며 브라다만테를 뽑았다. 발검과 동시에 영기 해방을 펼쳤다.
검 해방.
브라다만테의 검신에 깃든 광채가 어둠에 묻혀 사라졌다. 이어 진의 몸 근처에 영기의 입자들이 떠다니기 시작하자, 마물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영기를 본 적이 있는 모양이지? 하긴, 오래 살았을 테니.”
[캬아…….]“널 쓰러뜨리는 게 꽤 고생스러울 것 같은데, 부디 만족스러운 보상이 있으면 좋겠구나.”
동시에 서로를 향해 달려드는 진과 마물.
마물의 눈동자엔 계속 마력이 맺혀 있었다. 마물은 거리가 가까워지면 광선을 쏘고, 또 다시 마력을 맺어두길 반복하며 진을 압박했다.
네 개의 발과 꼬리, 그리고 주둥이를 이용한 공격도 멈추지 않았다. 발톱과 주둥이가 가장 위험할 줄 알았건만, 오히려 더 버거운 쪽은 꼬리였다.
몸통에 가려져 있다가 예고 없이 튀어나오니 방향을 읽기가 어려운 것이다. 진의 입장에선 난데없이 좌측에서, 우측에서, 상단에서 기둥 같은 철퇴가 내리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또한 진은 거대 마물과의 전투가 처음이었다.
용과 싸울 땐 겪어본 적 없는 민첩성과 유연성에 정신이 어지러울 지경이건만, 마물은 도통 적응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상당히 까다로웠다.
그러나 상대하기 버거울 만큼 성취가 부족하진 않았다. 집중력만 유지할 수 있다면, 마물의 모든 공격을 충분히 피하거나 쳐낼 수 있었다.
3분쯤 공방을 이어간 다음엔 슬슬 하나씩 빈틈이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마물은 재생이라는 수단이 있어도 빈틈을 찌르면 황급히 몸을 내빼기 일쑤였고, 진은 놈에게 더 이상 숨겨둔 패가 없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후우웅……!
검에서 퍼진 영기가 서서히 진과 마물 사이를 물들여갔다. 진은 처음에 마물이 숲을 이용해 그랬던 것처럼, 영기 속에 숨었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하며 점차 공방에 패턴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반대로 마물은 더 이상 숲에 숨을 수 없었다. 근처에 있는 가시나무는 온통 여전히 불타는 중이고, 깊은 숲으로 숨으면 이 간악한 인간이 또 소중한 식량에 불을 붙일 테니 말이다.
그래서 충격적인 재생력과 별개로, 싸움의 주도권은 진에게 있었다.
‘관건은 내 체력이 먼저 떨어지느냐, 놈의 재생 능력이 먼저 떨어지느냐.’
아예 숲 바깥으로 유인해서 동료들과 함께 해치우는 방식도 고려해보았다. 그러나 마물은 등을 보이고 달아나도 좋을 만큼 허술한 상대는 아니었다.
따라서 긴 싸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 * *
40시간이 넘도록 전투가 이어졌다. 마물은 진에게 한 번도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고, 재생 능력이 아니었다면 진은 마물을 벌써 수십 번은 죽였을 것이다.
불길에 뒤덮여 있던 진과 마물이 서 있던 땅엔, 이제 재와 잔불밖에 남지 않았다. 근처에 있는 모든 가시나무가 타들어가 사라진 상태였다.
그러나 화염옥이 일으킨 불길은 계속 가시나무를 타고 더 깊은 땅으로 진입해, 이제 화마는 가시나무 숲의 절반 이상을 뒤덮고 있었다.
바로 그때쯤이었다.
진이 계산하지 못한 한 가지 변수가 전장의 분위기를 바꾸기 시작한 것은.
‘놈이 초조해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숲이 남김없이 불타 사라져버릴 것이란 공포 때문일까.
지친 기색이 완연한 진과 달리, 마물은 처음과 별반 다르지 않은 컨디션을 보여주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마물의 몸놀림에 빈틈이 많아졌다. 발톱을 휘두르다가도 저 멀리 가시나무를 집어삼키는 불을 향해 시선을 뒀고, 그때마다 브라다만테에 어딘가를 베였다.
마물의 입장에서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는 건, 재생 능력이 여전하다는 것뿐이었다. 진의 예상과 달리 마물은 심장이나 머리를 다쳐도 발등을 긁혔을 때와 똑같이 회복하곤 했다.
재생의 근원이 되는 장기 따윈 없었다. 싸우는 동안, 진은 마물의 온몸을 한 번씩은 다 찌르거나 베었다.
마물이 지닌 재생력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세상의 법칙에서 한참이나 어긋나 있었다. 역사서가 서술하는 옛 어둠계열 마법들처럼.
진은 아직 만나본 적 없으나, ‘흑해의 왕’이라 불리는 존재들조차 이 마물처럼 초월적인 재생력을 갖고 있지는 않으며.
퀴칸텔과 같은 올타의 용들이 가진 시간역행을 통한 절대 재생에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 어떤 제약도 없이 무한정 회복하는 것은, 결코 필멸의 존재가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아니었다.
‘그냥은 가질 수 없는’ 능력.
그건 곧 충분한 대가가 있다면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40시간의 전투 끝에, 진은 마물에 대해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네놈, 재생이 아니었군.”
[카르륵……!]“마녀 헬루람, 네 주인이었던 자는 네게 저주를 걸었어. 아마 불사와 관련된 저주일 거고, 그래서 너는 끝없이 재생하는 거다. 그게 아니라면 설명할 길이 없거든.”
[카하악!]진이 서서히 다가가자 마물이 위협적으로 땅을 긁었다.
“넌 죽지 못하는 몸이야.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어서 몇 번이나 사지가 잘리고 심장이 터지고 목이 떨어져도 나와 싸우고 있는 거라고. 내 말이 틀렸나?”
진은 옛 어둠계 마법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으나, 확신할 수 있었다. 분명 마물은 모종의 이유로 헬루람의 저주에 빠진 상태라고.
그리고 아마 버려진 상태일 거라고 말이다.
“이 숲이 다 타서 사라지면, 넌 어디로 가지?”
마물은 대답하지 않고 그르르 낮은 소리를 냈다.
갈 곳이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갈 곳이 없어도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나무는 언젠가 다시 자랄 것이며, 그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해도 마물은 여전히 살아있을 테니.
대신 바위와 나무와 고독이 있던 세계에서, 마물은 이제 고독만이 남아 있는 세계를 오랫동안 살아가야 할 것이다. 숲이 다 복원될 때까지.
“날 공격하지 않는다면, 지금부터라도 화마를 잠재워보겠다.”
진이 납검하며 그렇게 말하자, 마물이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