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56)
제 222화
79화. 부자父子의 생각
두 거대 가문의 가주들이 직접 나서서 각각 금화 3억, 1억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억 단위 현상금은 문명이 생긴 이래 처음이었다. ‘성국 사건’으로 인해 안 그래도 시끄러운 세상이 수배령에 또 한 번 들썩이고 있었다.
흑왕단과 귀신대 같은 특급 용병단들은 독자 수색을 시작했고, 그 이하 용병단들은 연합을 결성했다.
심지어 중소 왕국의 정규군이나 기사단조차 진을 찾는 것에 혈안이 되었다. 금화 3억이라면 일국의 경제를 일으킬 수도 있는 돈인 만큼 당연한 현상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추적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룬칸델과 지플, 두 거대 가문이야말로 가장 치열하게 진을 수색하고 있었다.
수천 명에 달하는 수호기사들, 마법사들, 예하 병력과 동맹 가문들이 추적조를 꾸려 진을 찾고 있는 것이다.
“도련님…… 정말 괜찮으실지 모르겠네요.”
길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앞엔 ‘예비 기수 진 룬칸델’의 수배지가 놓여있었다.
그녀를 비롯한 동료들은 모두 티칸에 모여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과거 진이 시론에게 받아낸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게 작용했다. 진의 허락 없이는 룬칸델의 그 누구도 티칸 땅을 밟을 수 없다는 바로 그 약속 말이다.
덕분에 룬칸델 수호기사들은 티칸을 직접 찾아오지 않았으나, 오십여 명 정도가 티칸 근처에 대기하고 있었다.
반면 지플의 마법사들은 이미 티칸을 이 잡듯이 뒤지고 떠났다.
그들은 전 세계 이동 관문의 기록을 뒤져 ‘진 그레이’와 ‘바멀’이 사용한 모든 경로를 파악했고, 진이 티칸에 근거지를 뒀던 사실을 유추했다.
물론 지플은 허탕만 치고 돌아갔다. 티칸이 중립 세력이라는 사실조차 무시한 채, 윽박지르듯 카시미르의 저택 내부까지 살폈으나 진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진은 티칸에 없기 때문이었다.
“괜찮을 거다. 너무 걱정 말거라, 딸기파이여.”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길리를 보며 무라칸이 얼굴을 구겼다.
기분 나쁜 기색을 드러냈다는 뜻이 아니라, 그녀를 웃기기 위해 말 그대로 얼굴을 이 모양, 저 모양으로 구겼다.
“풋.”
“그래, 그딴 꼬마 놈 때문에 계속 울상만 쓰고 있지 말고 그렇게 웃어라. 보기 좋구나.”
길리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자 무라칸도 씨익 미소를 지었다.
‘별 미친…… 저딴 게 웃긴가?’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본 베리스가 속으로 욕을 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쿠잔은, 놀랍게도 무라칸을 따라서 베리스를 향해 얼굴을 이리저리 구겼다.
큽! 가까스로 웃음을 참는 베리스를 보며 이번엔 율리안이 그녀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쿠잔, 베리스. 미친 것들끼리 잘 노는군.’
하지만 율리안 역시 유리아가 다가와 괜히 옆구리를 콕콕 찌르며 장난을 치자,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세상은 온통 진을 잡으려는 사람으로 가득했으나 티칸은 꽤나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바로 어제까지는 온갖 세력의 방문에 몸살을 앓았지만 말이다.
“그야말로 거물이 됐군요, 진 공자.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 되기도 했고요.”
카시미르가 피곤한 얼굴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지플 마법사들이 제 안전가옥들을 얼마나 샅샅이 뒤지던지…… 신물이 다 날 지경입니다.”
“그래도 그거 전부 응해준 덕분에 당분간 지플 측도 우리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게 됐잖아. 명분이나 확증도 없이 남의 집을 막 뒤져댔으니.”
알리사가 카시미르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진이 이곳에 머문 것은 사실이나, 지플에겐 중립 세력인 티칸을 수색할 명분이 많지 않은 상황이었다.
덕분에 알리사의 말대로 지플은 당분간 티칸을 찾아올 수 없게 되었다. 제아무리 지플이라 한들, 루테로 마법 연방 바깥의 중립 세력을 마음대로 부릴 수는 없는 법이었다.
“비먼트 친위대가 찾아왔을 땐 깜짝 놀랐다니까요.”
이번엔 엔야였다. 옆에 있는 퀴칸텔도 고개를 끄덕였다.
비먼트는 지플만큼 티칸을 철저히 뒤지지 않았으나, 두 사람은 여전히 비먼트의 비공식 수배자였다.
특히 진 그레이라는 이름이 세상에 드러난 만큼, 비먼트는 ‘암흑마법회 잔당 사건’ 당시 엔야가 사용한 가명, ‘오스틴 그레이’의 정체까지 추적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당시 진과 엔야가 부하처럼 부린 아카데미 생도 셋, 칩과 마우라와 오렐은 여전히 오스틴이 엔야라는 사실을 비먼트 상부에 전하지 않고 있었다.
그 덕분에 비먼트는 지플만큼 거칠게 티칸을 수색하지 않았고 말이다.
“아이고오, 그래도 룬칸델이 안 찾아온 것이 어딥니까요. 룬칸델이었다면 죄다 때려 부수고 파내고 뒤엎고 난리도 아니었을 겁니다.”
제트가 어깨를 으쓱이며 뒷말을 이었다.
“그런데, 저는 시론 경의 마음을 도통 모르겠습니다요. 나으리를 굉장히 어여삐 여기시던 것 아닙니까? 그래서 웬만한 건 다 묵인해주고, 아직까지 티칸도 룬칸델이 건들지 못하게 하시는 것이 분명한데, 갑자기 금화 3억짜리 수배령을 내리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요.”
제트는 그 사실이 무척 서운한 듯 보였다.
“궁금하면 가서 따져보지 그러냐.”
“헹, 이 제트. 무라칸 님이 시론 경이 계신 흑해까지 태워주시면 얼마든지 여쭤볼 수 있습니다요.”
“저게 미쳤나, 누가 누굴 태워? 그리고 넌 인마, 시론 앞에 서면 눈도 못 뜨고 숨도 못 쉬어. 기운에 짓눌려 가지고.”
“아니, 무라칸 님은 서운하지도 않으십니까? 이 제트는 당연히 시론 경이 우리 나으리를 챙겨주실 줄 알았습니다요. 그런데 룬칸델이 지플보다 더 나리를 죽일 기세로 나오니, 속이 터질 지경입니다!”
“그건 꼬마의 아비도 다 생각이 있어서 한 행동일 거라고. 어제도 얘기해줬잖냐.”
“대체 무슨 생각이요? 흥, 저도 아들이 있습니다요. 저라면 절대 그렇게 안 했습니다요.”
“어, 그래. 네놈 마음은 알겠는데…… 아이, 저거 지금 나한테 화풀이하고 있는 거 맞지? 야, 미물. 애들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하지만 저도 제트 아저씨 의견에 동의해요! 만에 하나라도 진 공자가 현상금 사냥꾼들이나 룬칸델에 붙잡히면, 저는 어떻게 살아요?”
엔야가 소리치자 무라칸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아니, 네가 못 살 이유는 또 뭔데?”
“진 공자는 제게 빛이자 삶의 원동력, 생명이나 다름이 없다고요. 공자가 없는 세상은 상상만 해도 무가치해요. 안 되겠어, 제트 아저씨! 같이 시론 경께 따지러 가요.”
“그러세!”
짝!
이윽고 엔야와 제트가 손뼉을 마주치며 호기롭게 방을 빠져나갔다.
무라칸은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혀를 찼고, 나머지 동료들은 허허 웃어넘기는 분위기였다. 퀴칸텔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지만.
물론, 두 사람이 시론에게 직접 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둘은 라트리의 과자 가게로 가서 쿠키와 차를 축내며 실컷 시론의 뒷담화를 할 예정이었다.
* * *
긁적긁적.
시론이 귀를 긁었다. 반신의 경지에 오른 감각이 그간 증명한 바, 이렇게 귀가 간지러울 때면 꼭 시끄러운 손님이 찾아오고는 했다.
보오옹-!
눈두꺼비 모트가 차원문을 열었다.
“시론!”
엔야나 제트와 달리 시론에게 정말로 따지러 올 수 있는 한 사람.
비궁주, 탈라리스 엔도르마는 시론을 보자마자 씩씩대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귀청 떨어지겠군.”
“난 간장이 녹아내리겠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내 입장, 아니. 우리 딸 입장은 생각 안 해줘?”
혼인은커녕 약혼조차 하지 않았건만 시리스의 입장이라니. 어이가 없었으나 시론은 눈을 감은 채 달리 대꾸하지 않았다. 돌아보면 탈라리스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
“시론, 잘 생각해. 켈리악이 사건 덮자고 칼 지플, 자기 아들 죽인 것 때문에 여론이 얼마나 나쁜지 모르진 않을 것 아니야.”
“지플과 룬칸델의 상황은 다르다, 탈라리스.”
“진이 룬칸델에 해를 끼친 것도 아니잖아? 오히려 이득만 한가득 안겨줬지. 그런데 상을 주진 못할망정, 수배령이라니? 맹약을 어겼다는 점만 제외하면, 챙겨줄 명분은 충분하잖아.”
보오옹, 보옹! 모트도 탈라리스의 서운한 마음을 알겠다는 듯 거친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시론이 한 번 시선을 두자, 커다란 눈망울을 한쪽으로 돌리며 딴청을 부리는 모습.
“이미 결정한 사안이다. 번복은 없어.”
“맙소사, 정말로 진을 죽일 셈이야?”
“물론.”
망설임 없는 대답.
탈라리스는 무어라 소리를 지르려다, 품속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러고는 한 호흡에 담배를 다 태운 뒤, 또 새로운 담배를 물었다.
그렇게 담배 다섯 개비를 순식간에 끝장낸 탈라리스가 시론을 노려보았다.
“시론, 혹시 흑해의 왕들과 싸우다 혼돈에 잠식된 거야? 반신의 경지에 오른 후, 인간성을 잃어간다고는 느꼈지만…… 이건 아니야. 미치지 않고서는 이럴 수 없다고.”
츠르릉…….
탈라리스의 오른손에 얼음이 모여들어 한 자루의 검을 형성했다.
만빙, 그녀를 선택한 신검이었다.
“너야말로 무슨 생각이지?”
“네가 정말 혼돈에 잠식되었다면, 만빙의 주인으로서. 그리고 친구로서 가만히 지켜볼 수가 없다. 셋을 셀 동안, 네가 멀쩡하다는 확신을 줘. 그렇지 않다면 베겠다.”
하나, 둘…….
탈라리스를 지켜보던 시론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약속을 잊지 않았군. 검을 거둬라, 탈라리스. 네 예상은 틀렸다.”
방금까지의 대화는 탈라리스를 향한 시론의 시험이었다.
탈라리스가 만빙을 소환한 것 역시, 시론의 진심을 듣기 위한 도박수였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무리 벗이라 한들 ‘외인’인 자신에게 속뜻을 내비치지 않을 것 같았다.
또한 그녀는 시론이 정말로 혼돈에 잠식되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만빙을 거두는 탈라리스.
그녀의 뒤로, 흑해 중앙의 대지가 거대한 부채꼴 모양으로 얼어붙어 있었다. 눈으로 다 좇기 어려울 만큼 드넓은 영역이 그녀의 힘에 얼어붙은 것이다.
“매력 넘치던 룬칸델의 사자는 어디로 가고, 어떻게 이런 괴팍한 노인네만 남았는지 모를 일이로군. 그래, 이제 이야기해줘. 대체 무슨 의도야?”
* * *
“아버지께서 내게 또 한 번 기회를 주셨군.”
“어떻게 그렇게 해석할 수 있소? 그대도 태평한 구석이 있었군. 룬칸델도 지플과 마찬가지로 가주, 그대의 아버지께서 직접 수배령을 내렸소. 단순 보여주기식 수배일 리가 없잖소.”
단테가 소식지를 내려놓으며 답했다.
“내가 직접 그대를 우리 가문에 숨겨준다 할지라도, 두 달 이상 들키지 않을 자신이 없소. 여기, 베라딘 공의 별장도 마찬가지일 것이오.”
룬칸델과 지플이 동시에 총력을 기울인다면, 세상에 못 찾을 사람은 단연코 단 한 명도 없었다. 세상 그 어디에 숨어도 꼬리를 잡히게 되어있는 것이다.
하물며 진 같은 유명 인사라면 더더욱 가망이 없었다.
“맞아, 잡히면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겠지. 어디까지나 잡혔을 때의 이야기지만. 반대로, 1년 이상 붙잡히지 않고 내 발로 돌아가면 내 명성은 하늘을 뚫게 될 거고, 난 지플에 이어 룬칸델까지 농락한 예비 기수가 돼.”
진에게 지플이 농락당한 것은 그야말로 치욕일 수밖에 없지만.
진에게 룬칸델이 농락당한 것은 치욕인 한편, 모순적이게도 가문의 명예가 드높아지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되면 시론 경이 그대에 대한 수배를 거둬주기라도 하신다는 말이오?”
“예비 기수 진 룬칸델에 대한 수배령은 거두지 않으시겠지. 그러나 기수 진 룬칸델에 대한 수배령은 애초에 없었거든.”
“허…… 그대라면 어떻게든 해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소. 정말 룬칸델과 지플을 피해 1년이 넘도록 살아남을 자신이 있단 말이오?”
인세에 숨는 것이라면 진이라 할지라도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그의 형제들이 있는 땅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아버지도 내가 라프라로사에 숨으리라는 걸 알고 계시겠지. 카시미르 경의 보고를 받았을 테니.’
그것까지 단테에게 말할 필요는 없었다.
미소로 대답을 대신하려는 찰나, 창문 너머로 별장 전용 이동 관문이 빛을 발하는 모습이 보였다.
“숙여.”
진과 단테가 창문에 바짝 붙어 몸을 낮췄다.
저 이동 관문에서 빠져나오는 게 베라딘이 아니라 다른 지플일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