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73)
제 222화
87화. 남매(5)
머리와 가슴속에서 용암이 들끓는 것 같았다. 혈류가 빨라졌고, 어찌나 이를 꽉 악물었는지 턱이 다 얼얼했다.
폭발과 쇳조각에 온몸이 난자 당한 고통을 참느라 그런 것이 아니었다.
메리를 향해 급격히 치솟은 분노 때문이었다.
퉤!
피 섞인 침을 뱉어내고, 불타서 몸에 들러붙은 옷 조각을 떼어냈다. 벌겋게 익어 달아오른 피부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따가웠지만, 살점 사이사이 깊숙이 박혀있는 쇳조각에 비하면 별것 아니었다.
뼈는 몇 군데가 덜그럭대는 기분이었으나, 축복받은 육체와 투신혈 덕에 내장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는 건 피했다.
진심으로.
진은 자신의 셋째 누이를 죽이고 싶었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메리는 산발이 된 머리카락을 손바닥으로 쓸어 넘기며 천진난만한 얼굴이었다.
“날 죽이고 싶다고?”
끄덕.
“그렇게 예쁜 말은 또 어디서 배워온 거야……! 덤벼, 덤벼!”
메리는 진에게서 풍기는 형형한 살기가 마냥 기뻤다.
어쩐지 요나나 할 법한 대사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메리는 진 몰래 꼰 녹장미 같은 걸 두고 간 적이 없었다.
불사조 심장을 선물 받은 걸 제외하면 진이 크게 빚진 적은 없는 셈.
그리고 이만하면 그에 대한 빚은 거의 다 갚았다.
“하나만 미리 묻겠습니다.”
“뭔데?”
“지금껏 누님의 반응을 보아하니 충분히 만족하신 것 같은데. 저도 한 번만 기회를 드리죠. 이쯤에서 브라다만테를 돌려주시고 끝내는 게 어떻겠습니까?”
메리가 즐거운 기색을 싹 지우며 즉시 정색을 했다.
“그건 안 될 일이지. 만족은 무슨! 아직 한참 멀었어.”
“알겠습니다. 그럼 빚은 다 갚은 걸로 생각하겠습니다. 그리고 슬슬 저도 궁금하네요. 누님이 정말로 미친 부류인 건지, 아니면 미친 척 연기를 하고 있는 건지. 후자라면 나중에 빌어도 소용없을 겁니다.”
프즈즉……!
시그문드가 뇌기를 머금으며 푸르게 불타올랐다.
메리는 제 몸에 박힌 쇳조각을 떼어내다 진이 새로 꺼낸 힘을 보고, 하마터면 기쁨의 비명을 지를 뻔했다.
진이 솔더렛의 계약자라는 게 가문에 알려진 건 바로 어제지만, 정체불명의 뇌기를 쓰는 건 성국 사건 때 이미 드러났었다.
그래서 메리는 사실 영기보다도 뇌기가 궁금했다. 바멀의 정체가 밝혀지기 전까진 지플도, 비먼트도 한껏 탐을 냈던 그 뇌기는 대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얼른 보여…….”
주렴!
말을 끝맺기 전에, 메리의 정수리로 한 줄기 뇌전이 떨어졌다.
명왕검 평식 벼락.
영검과 마찬가지로 라프라로사에서 매일같이 갈고 닦은 검. 벼락 또한 전보다 한층 더 진한 뇌기를 품고 있었다.
콰캉-!
벼락이 내리친 자리에 구덩이가 생겼다. 메리는 본능적으로 보법을 밟아 벼락을 피했고, 사슬검을 뻗어 반격까지 시도했다.
진은 이제 적당히만 할 생각이 없었다.
생사결단의 승부도 아닌, 그저 기수끼리의 대련에서 먼저 악랄한 수를 쓴 건 메리였다.
그리고 그건 본래 진의 특기였다.
파지직, 쿠르르-! 집요하게 들러붙는 뇌전을 피하고, 쳐내며. 메리는 다시금 진과 거리를 좁힐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막내 녀석은 원거리에서 승부를 낼 생각인가? 하긴, 나 같아도 저런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이만한 번개를 다룰 수 있다면 그쪽을 택하겠어. 계속 내리치다가, 내게 빈틈이 생긴 순간 검기를 쏠 테지.’
메리가 깜빡 잊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진은 단지 ‘뇌기를 다루는 무인’이 아니라 마검사였다.
‘뭐야, 왜 갑자기 거리를 좁혀? 근접전도 자신이 있는 건가? 아니면, 번개를 다루는 게 벅찬가?’
진이 예비 기수 시절 테싱을 떠난 이래, 적들은 보통 이 마법을 경험한 다음에야 진의 마법적 능력을 의식하곤 했다.
지플에 의해 역사에서 이름이 지워진 한 대마법사의 비전절기, 유실된 고대의 빛 마법.
섬광포.
파아앗!
“욱!”
난데없이 진의 손바닥에서 빛이 터지자, 메리가 반사적으로 신음을 내질렀다.
‘눈이…… 타들어가는 것 같다! 맞아, 저 녀석. 마검사였지!’
그마저도 섬광포가 터지는 찰나 반사적으로 눈을 보호한 덕이었다.
라프라로사에선 영검과 명왕검만 익힌 것이 아니었다. 마력 또한 몇 번이나 역류에 빠질 정도로 잔인한 단련을 했고, 그 결과 현재 진의 마법 경지는 8성 후반이었다.
그 덕에 섬광포의 위력도 이제는 전성기의 첸미가 펼치던 수준에 거의 흡사한 수준까지 올라왔다. 미리 예견하고 제대로 방어하지 않는 이상, 누구든 곤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천재 중의 천재가 회귀를 했고, 셀 수 없이 많은 시련을 넘었고, 온갖 기연을 만났으며, 단 하루도 본인의 성취에 만족하고 안주하지 않았다.
그런 진이 메리보다 약해서야 되겠나.
스걱!
당연히도 진은 메리가 움찔한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즉시 평식 벼락을 압제로 전환시켜 그녀의 목덜미로 찔러 넣는 진.
핏-!
‘우와, 진짜로 죽이려고 하네……!’
칼날이 목선을 스치고 지나가자, 새삼 말뿐만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메리였다. 물론, 그조차 메리에겐 오래전 사둔 복권이 거액의 당첨금으로 변하는 것 같은 기쁨일 뿐이었다.
빠각!
이번엔 진의 하단 발차기가 메리의 허벅지를 찍었다. 메리는 주춤하며 또 한 번 자세가 흐트러졌고, 진은 다시 압제를 벼락으로 바꿔 내리쳤다.
“컥!”
빗맞은 벼락에 비명이 새어 나왔으나, 메리 또한 룬칸델의 기수였다.
그녀는 시그문드의 옆면을 주먹으로 쳐내며 진의 머리에 박치기를 가했다.
맨머리와 뮬타의 룬이 격돌한 것이다.
뮬타의 룬은 7성 기사의 일격조차 가볍게 튕겨내는 아티팩트지만, 놀랍게도 진은 투구 안쪽까지 퍼진 충격에 골이 왱왱 울리는 걸 느껴야만 했다.
‘미친, 뭐 이런 박치기가!’
똑같은 맨머리였다면 확실히 진이 더 많은 피해를 입었을 터.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사슬검이 있는데도 굳이 주먹으로 시그문드를 쳐내고, 맨머리로 박치기를 한 것은 진짜 유효타를 위한 준비에 불과했다.
스르륵, 스걱!
튕겨진 사슬검이 진의 가슴팍을 베었다. 동시에 메리는 시그문드에 손목이 베여 순간 검을 놓칠 뻔했다.
이 유혈이 낭자하는 싸움이 딱히 원한도, 애정도 없는, 무려 4년 만에 만난 남매의 결투라는 걸 설명하면. 누구든 믿기 어려운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 뒤에 ‘그 둘은 룬칸델의 기수야’라는 사족을 덧붙이면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
이것이야말로 테마르 이후의 선조들이 기대한 서열 전쟁의 참모습에 가까웠다.
“죽엇!”
메리가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잔뜩 상처를 입고도 그녀의 검은 점점 더 매서워지기만 했다.
진도 질세라 냅다 시그문드를 가져다댔다. 메리가 검을 휘두를 땐 날카로운 오러의 파편이 튀었고, 진이 휘두를 땐 뇌기가 번졌다.
공방은 전반적으로 호각세였다. 1초 사이에도 몇 번씩 시그문드와 독사가 궤적을 그렸으나 깔끔하게 한쪽만 공격을 성공시키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나가 베이면 다른 하나도 베였다. 먼저 집중력에 한계가 오는 쪽이 치명상을 입고 쓰러질 것이다.
“으하하! 칼끝이 아주 싸늘하구나, 내 동생!”
물론 각자 숨기고 있는 무기가 있었다.
메리는 결전기를, 진은 투신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투신기를 사용하면…… 누님은 정말로 죽는다.’
어쩌면 자신이 누이의 결전기에 당할 수도 있기는 했다.
룬칸델 결전기의 가공할 위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전개였다.
다만, 진에게 남은 패는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 중요했다.
이번 수련에서 투왕들에게 새로이 전수받은 영검도, 반에게 직접 전수받은 ‘명왕검 절기’도, 아직 꺼내지 않은 마법도 있었다.
그 모든 걸 다 써가면서까지.
메리를 정말 죽여야만 할까?
결코 아니었다.
표현 방식이 지나치게 과격해 욱, 죽이고 싶을 만큼 분노가 차올랐던 것은 사실이지만.
메리는 사실 진을 인정했을 뿐이었다.
어제 진이 검의 정원으로 돌아온, 처음 그 순간부터 메리는 진을 자신이 온몸으로 맞서 싸워도 부족하지 않을 강자로 인정한 게 전부였다.
그래서 진과 싸우기 위해, 이왕이면 처음은 손쉽게 이기고 그 핑계로 다음에 또 싸우기 위해 (썩 비상하지는 않은, 단순한 편인 머리를 굴려) 밤새 고뇌했고, 폭탄이라는 묘수를 발견한 것이다.
이를테면, 메리는 단 한 번도 진을 무시하거나 혐오하지 않았다.
그저 동등한 기수로서, 동등한 무인으로서, 동등한 경쟁자로서 싸움을 향유하고 싶었을 뿐.
물론 그 속엔 루나나 요나처럼 깊고 따뜻한 애정은 없었다.
그건 진 역시 마찬가지이니 따져볼 문제가 아니었다.
‘누님을 단지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죽이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내 사람으로 만들어서 어머니와의 전쟁을 대비해야 해.’
진이 그런 판단을 하는 사이, 메리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결전기까지 꺼내서 승부를 가리고 싶을 지경이지만, 이런 쾌락을 단 한 번에 끝내는 건 미친 짓이지. 너무 아깝다고.’
잠시 두 사람의 검이 멈췄다.
“야, 내 동생아!”
진은 아직 아니지만, 메리는 이미 동생을 향해 애정이 싹트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연스레 ‘막내’보다 ‘내 동생’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왜요.”
“브라다만테 돌려줄게. 대신, 나랑 한 가지만 약속하자.”
“무슨 약속이 또 필요합니까? 만족시키면 주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이미.”
“그래, 네 말대로 이미 만족은 했어. 그런데, 난 이 충만한 상태가 쭉 오래 지속됐으면 좋겠거든. 그러니까 조건을 조금만 바꾸자고. 너한테도 나쁠 것 없는 이야기니까 일단 들어봐.”
“그럼 말이나 해보십시오.”
“검을 좀 비벼보니까, 너랑 내가 제대로 승부를 내려면 한쪽이 죽어야겠다는 말이지? 그런데, 우리가 서로를 죽이면서까지 승부를 낼 이유는 없거든.”
“이유는 없어도 명분은 있습니다. 서열 전쟁의 일환이니까요.”
“그래, 명분은 있지. 하지만 원한은 없어. 그러니까, 브라다만테 받고 나랑 매일 이렇게 싸우자. 한쪽이 한쪽을 완벽히 제압할 수 있을 때까지. 그럼 승부가 나는 셈이 되잖아?”
“우리 가문에서 그런 미적지근한 것도 승부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습니까? 싸울 거면 한쪽이 죽는 게 맞습니다. 게다가 아까 죽엇, 이라고 소리친 건 누구였죠? 폭탄을 뿌린 건?”
“그건 그렇군. 난 네가 마음에 들어서 그런 것일 뿐이지만, 오해할 만해. 죽으라고 소리친 건 흥분해서 그런 거고. 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네가 납득할 수 있을까?”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애가 타니까 그렇지! 정말이지, 한 번으로 끝내고 싶지 않단 말이다. 동생아, 누나랑 싸우는 게 싫어?”
싫지는 않았다. 상대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려면, 상대를 굴복시키거나 상대가 원하는 걸 줘야 한다는 점에서.
그러나 매일 이렇게 싸우는 건 곤란했다.
“좋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죠.”
“말해봐, 얼른.”
“우선, 매일 이렇게 싸우는 건 안 돼요. 누님은 내가 원할 때만 나와 싸울 수 있습니다.”
“음…… 또?”
“싸울 때마다 승패는 기절을 기준으로 하죠. 먼저 쓰러진 쪽이 패자고, 패자는 반드시 승자의 명령 한 가지를 수행해야 하는 겁니다. 물론 불이행되는 일이 없도록 계약서를 작성할 거고요.”
“마음에 드는군. 계약서는 좀 거추장스럽지만.”
“그리고 누님은 브라다만테를 정상적인 방법 대신 탈취를 해서 가져오셨죠? 검을 돌려받은 뒤, 제가 어떤 책임도 지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주십시오.”
“그건 네가 말하지 않았어도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대신, 너는 최소 일주일에 한 번은 나랑 싸워.”
“일 년에 한 번.”
“양심 없네. 안 돼, 한 달에 한 번.”
“다섯 달.”
“두 달.”
“세 달. 여기서 합의하죠.”
“좋아.”
의외로 메리는 시원하게 제안을 받아들였다.
사실 그녀도 매일 이렇게 싸웠다간 몸이 남아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며 싸우려면 최소 한 달 이상의 휴식이 필요하다고 여겼고.
또한 기수 임무를 수행해야 하므로 컨디션 관리에만 집중할 수 없으니, 세 달에 한 번이 딱 적당한 것이다.
“그럼, 계약서는 하던 것 마저 끝내고 쓰기로 하자, 동생!”
“알겠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30분 동안 피 튀기는 혈전을 이어갔고.
나란히 의료원에 실려 가 종일 집중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그리고 치료가 끝났을 때, 메리는 행복한 꿈을 꾼 사람처럼 황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