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13)
제 333화
95화. 그녀를 찾는 사람들(4)
“받들겠습니다.”
절도 있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메사.
그녀는 얼마 전 수호기사 임관 최종 시험에 합격해 12기수 예하로 배속되었다.
반대편에 함께 서 있는 동기, ‘스컷 라이먼’과 함께 말이다.
“스컷.”
“예, 주군.”
“넌 길가에 있는 쓰레기들 좀 치워.”
강도, 살인, 폭행 등,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실시간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무법자들이 눈에 보였다. 아직 진이 마미트에 찾아온 걸 인지하지 못한 자들이 있는 것이다.
밑바닥 쓰레기들끼리 치고받고 하는 것은 알아서 할 일이나, 일반인으로 보이는 이들도 몇 섞여 있었다.
진이 치우라고 한 건 일반인을 상대로 난리를 피우고 있는 자들이었다.
“실행하겠습니다.”
철컥, 철컥!
메사와 스컷이 진을 지나쳐 이동하기 시작했다.
몇 초 지나지도 않아, 근처 곳곳에서 무법자들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비명이 울리는 빈도는 매우 빠르게 잦아들었다.
스컷이 무법자 몇을 베자마자 다들 상황을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수호기사 하나가 단독 임무를 나온 것이 아니라, 룬칸델의 기수가 이 황폐한 땅을 찾았다는 사실을.
한순간에 거리가 고요해졌다.
하지만 스컷은 그러거나 말거나 마저 청소를 행하러 말없이 골목골목 사이를 유령처럼 지나다녔다.
한산해지기도 했다. 마미트의 범죄자들은 천적을 만난 짐승들처럼 각자의 집이나 선술집으로 숨어드느라 정신이 없는 모습이었다.
휘이이잉…….
찬바람이 휑한 길을 훑었다. 마미트가 이토록 조용해진 것은, 근 몇 년 동안 처음 있는 일이었다.
‘메사, 스컷. 두 사람 다 많이 컸군.’
진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이 어엿한 수호기사가 되었다는 게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벨롭 녀석도 슬슬 미텔 동남부 설산에서 돌아오겠군.’
나머지 7인의 막내 사단은 곧 최종 시험을 치르게 될 터였다.
‘전원 다 수호기사가 되면, 단체로 지옥 훈련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이왕이면, 쉰이 되기 전엔 다들 흑기사로 차출될 수 있을 만큼 강해지면 좋겠는데. 아닌 게 아니라, 한 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도록 굴려볼까?’
진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는 채.
메사와 스컷은 간신히 두근대는 가슴을 억누르며 마미트의 무법자들을 겁박했다. 그들은 진과 다시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에, 모든 것을 다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달빛우물로 향하는 진의 걸음이 느렸다.
‘막내 사단 녀석들의 인생이 바뀌었듯, 나를 만나면 스승의 삶 또한 전생과 달라질 것이다. 어쩌면, 조슈아가 이 시기에 스승의 가명을 알아낸 것도 내 회귀로 인한 결과일지도 모르는 일.’
새삼 등골이 서늘해졌다.
회귀한 이후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주변인들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인식은 늘 갖고 있었다.
그렇기에 되도록이면 자신이 아끼는 모두에게 좋은 영향으로 작용할 수 있는 선택지를 골라왔다.
하지만 발레리아에 대해선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발레리아를 만나는 것이 과연 그녀에게 좋은 영향을 줄지, 나쁜 영향을 줄지 도무지 감이 서질 않았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것을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곁에 두고 안전장치를 마련해줘야 한다. 전생에선 룬칸델도, 지플도 스승을 잡지 못했으나 이번 생엔 어떻게 될지 결코 확신할 수 없어.’
발레리아는 분명 강한 사람이었다. 진이 알고 있는 사람들 중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단순히 전투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발레리아라는 인간이 지닌 의지는.
분명 동경해도 좋을 만큼 빛이 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상엔 분명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있었다.
가령, 이제 겨우 열일곱이 된 혈혈단신의 천재 마법사가 두 거대 세력의 추적을 피하는 일.
발레리아는 예비 기수 시절의 진처럼 라프라로사로 자신을 숨겨줄 형제도, 목숨 걸고 자신을 보호해줄 동료도 갖고 있질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스승이 두 가문의 추적을 끝까지 피하는 건 불가능해.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조만간 잡힌다.’
제자로서, 스승에게 진 전생의 빚을 갚을 때였다.
달빛우물에 가까워질수록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오셨습니까, 주군.”
진이 달빛우물의 입구에 도착하자 메사와 스컷이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의 뒤로 다섯 명의 거두와 졸개들이 오와 열을 맞춰 무릎을 꿇고 있었다. 졸개는 약 백여 명, 각 세력의 간부들만 모인 숫자가 그 정도였다.
진은 한동안 말없이 무법자들을 내려다보았다.
발레리아를 찾기 위해서였다.
‘없군.’
그렇다면 지금부터 할 일은 거두들 중 발레리아를 알고 있는 자를 알아보는 것.
“다행히 익숙한 얼굴이 하나 남아있군. 거기, 너 말이다. 이름이 무엇이냐.”
진이 거두들 중 가장 앞에 앉은 자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요크입니다. 저와 경이 어디서 만난 적이 있습니까?”
거두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공손히 답했다.
요크는 과거 진이 한 번 만난 적 있는 인물이었다.
-꼬마야. 네 나이치곤 대단한 수준인 것 같다만, 그걸 믿고 이 동네에 오래 머물러 봐야 좋을 게 없을 거다. 함부로 설쳐도 문제일 거고.
-조언 감사합니다. 하지만 찾아야 할 사람이 있어요. 여기 지내시는 분들께 폐 끼칠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허허, 어제는 선술집 비렁뱅이들을 단칼에 죽였다더니. 지금은 순한 양처럼 행동하는군.
-그들과 당신들은 격이 다르니까요. 저는 분수를 잘 아는 사람입니다.
-예의는 합격이야. 좋아, 여기 며칠 더 머무르는 것 정도는 허락해 주지.
-감사합니다. 마미트의 왕들께서 배려해 주신 건, 나중에 돌아가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중급반 임무를 나왔을 때, 요크를 포함한 마미트의 왕들과 나눈 대화.
“그래, 요크. 4년 전, 달빛우물의 로비에서 내게 예의 운운했던 친구는 당시 비궁의 검에 목이 떨어졌었지. 이제 좀 기억이 나나?”
“아……!”
그 말에 거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조아렸다.
기억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진이 중급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외부의 마법사인 척 달빛우물에 테러를 가한 이후, 마미트의 거두들은 시리스에게 한동안 엄청나게 시달렸었다.
당시 비궁 7검의 류와 히텐이 달빛우물에 ‘번개 부름’을 떨군 마법사(진)를 끝내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시리스는 그날 이후로도 범인을 색출하겠다며 한동안 거두들을 짓밟았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이 풀어준 소년, 진이 범인일 수도 있겠다는 결론에 다다른 것이다.
그래서 시리스는 거두들을 시켜 마미트를 찾아온 소년의 행적을 조사시켰다. 소년이 마미트에 방문한 날짜, 목적, 와서 행한 일거수일투족 전부를.
거두들로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셈이었으나 시리스의 명령을 거절할 힘이 없었다.
-시리스 님. 그 소년은 마미트에 오자마자 주점에서 톤크라는 피라미의 목을 땄고, 웬 사람을 하나 찾는 것처럼 굴었다더군요. 그러고는 달빛우물을 찾았고, 그 외엔 마미트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전부냐?
-예, 제가 보기엔. 그놈은 범인이 아닐 것 같습니다. 그 핏덩이가 6, 7성 수준의 마법을 쓰는 건 솔직히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놈이 아니면, 내 부하들이 마법사를 놓쳤다는 말이냐?
-그게 아니라…… 시리스 님 말대로 설령 그놈이 범인이라 하더라도 말이죠. 비궁을 공격하려고 한 건 아닐 겁니다. 그냥 우리 중 누군가 놈에게 밉보였거나, 원한이 있었을 겁니다.
-놈이 찾는 사람은 누구였지?
-그게, 휘즈타인가 훼스터인가하는 사람을 찾았다고 합니다.
당시 시리스와 이 대화를 나눈 것이 바로 진의 눈앞에 있는 거두, 요크였다.
요크는 시리스가 짜증나서 일부러 휘즈타, 훼스터라고 말했지만.
사실 열다섯의 진이 찾던 인물이 ‘히스터’라는 것을 똑똑히 확인했었다.
시리스는 휘즈타와 훼스터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을 알아보느라 또 시간을 허비했었고 말이다.
“바로 알아 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진 경.”
“요크만 남고, 나머진 빠른 속도로 내 눈앞에서 사라지도록.”
진이 나지막이 말하자 바퀴벌레가 흩어지듯 나머지 거두와 간부들이 어디론가 달려 나갔다.
휴페스터 내에서 룬칸델이란 이름이 갖는 무게는 감히 무법자들이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들어가서 이야기 좀 하지.”
그 말에 요크는 직감할 수 있었다.
진이 4년 전 찾던 인물을 만나기 위해 마미트를 방문했다고 말이다.
“옛!”
두 사람이 달빛우물로 들어서자 스컷과 메사가 문지기처럼 여관 앞을 지켰다. 아무도 없는 로비가 휑했다.
“사람을 하나 찾고 있다.”
“예, 진 경. 어떤 사람인지 말씀해주십시오. 이름이나 외모, 그런 것들을 알려주시면. 이 마미트에서만큼은 제가 곧장 찾아드릴 수 있습니다.”
“현재 마미트에 거주하는 인물 중 대략 열일곱쯤 된 소녀가 있나? 붉은 머리에 은소나무지팡이를 갖고 있을 것이다.”
“붉은 머리에 지팡이라…….”
요크가 기억을 더듬었다.
그가 알기론 마미트에 붉은 머리에 은소나무지팡이를 갖고 있는 소녀는 없었다. 애초에 이 험한 도시에서 열일곱 소녀가 살아남을 수 있을 리도 없고.
하지만, 떠오르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붉은 머리에 지팡이를 가진 소녀는 없지만, 최근 저희 조직에 들어온 말단 중 비슷한 나이대의 여자애가 하나 있기는 합니다.”
“이름이 뭐지?”
“아리아라고 하더군요, 성은 없습니다. 그 녀석도 뒷골목 출신으로 잔뼈가 굵은 녀석인지라…….”
두근!
심박이 빨라졌다.
“그 외에 다른 사람은?”
“없습니다. 스물도 되지 않은 핏덩이 여자애는 그 녀석 하나뿐입니다. 일단 데려와 볼까요?”
“확인해보겠다.”
“예, 진 경.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밖으로 나가 아랫것들에게 아리아를 찾아오라고 하겠습…….”
콰직!
요크가 일어서려는 순간.
별안간 로비 천장이 무너지며 한 줄기의 창이 떨어졌다. 전격 속성의 마력으로 이루어진 시퍼런 창이었다.
그건 진이 미트라 대사막에서 한 차례 경험해본 적 있는 변형 마법이다.
창은 요크의 정수리를 뚫고 그대로 바닥에 꽂혔다. 갑작스러운 일격에 요크는 비명 한 번 내지르지 못했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는 진.
번개창에 뚫린 천장 사이로, 후드를 눌러쓰고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얼굴을 가리고 있어도 알아볼 수 있었다. 후드 틈으로 삐져나온 낯선 갈색 머리를 보고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가 발레리아 히스터, 자신의 스승이라는 것을.
‘발레리아……!’
일순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소리 내어 그녀를 부르고 싶었다. 오랜만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형용하기 어려운 온갖 감정이, 마구잡이로 뻗어나가는 빛처럼 가슴 속을 찌르고 있었다.
“……진?”
발레리아가 진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