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23)
제 333화
99화. 별장 습격(3)
반사적으로 구슬을 집었다.
다시 살펴봐도 솔더렛의 기록 장치였다. 차이점이 있다면, 기존에 진이 갖고 있던 것들보다 조금 더 무겁다는 정도.
‘아니, 이게 대체 왜 여기에?’
뜬금없는 발견에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인 듯 서로를 쳐다보며 눈동자를 껌뻑였다.
‘조슈아, 그놈이 이걸 대체 어디서 얻은 거지? 놈도 설마 테마르의 무덤에 접근했던 건가?’
테마르의 무덤은 ‘자격’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다.
그 자격이란 당연히 솔더렛의 계약자라는 신분.
곧장 두 가지 가정이 떠올랐다.
첫째, ‘예언자’라는 인물이 조슈아가 테마르의 무덤에 들어설 수 있도록 무언가 술수를 부렸다.
둘째, 조슈아는 테마르의 무덤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이 기록 장치를 얻었다.
‘어느 쪽이든, 중요한 건 놈이 이 구슬이 기록 장치라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다.’
진이 쓰러진 마족을 내려다보았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마족을 살릴 수 있었다면 꽤나 많은 정보를 알아냈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 목에서 시커먼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아쉽긴 하지만.
예상치 못한 수확이었다. 매번 기록 장치를 얻을 때마다 거의 죽을 고비를 넘겼던 것에 비하면 그냥 굴러들어온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공자, 일단 이 마족의 다른 소지품들도 좀 챙겨놓는 게 좋겠습니다.”
“예, 알아볼 필요가 있는 마족인 것 같군요.”
죽은 마족의 품속을 뒤져보았다. 읽을 수 없는 고대어와 마족의 문자가 적힌 종이 뭉치와 한 권의 책 외엔 딱히 챙길 것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진이 무의식적으로 책을 펼쳐본 순간.
화아앗-!
별안간 책이 불길한 보랏빛 광휘를 뿜었고, 그 속에서부터 기묘한 울림을 가진 목소리가 퍼졌다.
[마계의 위대한 공작가, 론텔기우스의 마도서를 함부로 들춘 자. 영원토록 론텔기우스의 저주를 받으리라! 네놈은 산 채로 석상이 되어 부서져도 죽지 않는 몸이 될 것이니, 가루가 되어서도 영원히 스스로를 원망하라.]방금 죽은 마족의 것과 다른 목소리였다.
저주의 주문이 끝나자마자 책에서 보랏빛의 반투명한 사슬이 튀어나와 진을 옭아맸다.
“공자님!”
“진 공자!”
동료들이 화들짝 놀라며 검을 뻗었다. 당연하게도 저주의 사슬은 검에 베이지 않았다.
그리고 진은 가볍게 손을 들어 괜찮다는 뜻을 내비쳤다.
“당황하지 마십시오, 다들. 어차피 전 면역입니다.”
솔더렛의 계약자는 세상 모든 종류의 저주에 완전한 면역을 가진다.
회귀 전의 발레리아가 ‘지나치게 사기적’이라 표현했던 그 권능을, 진은 실로 오랜만에 경험하게 되었다.
진을 묶었던 사슬이 서서히, 바닥에 붙은 그의 그림자로 스며드는 모습이 이어졌다.
사슬이 그림자에 집어삼켜져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은 채 5초가 필요하지 않았다.
동료들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린 채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이렇게 물었다.
“공자, 정말 괜찮은 겁니까?”
“예, 다행이군요.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이 책을 만졌다면…… 석상이 되었을 것 아닙니까? 론텔기우스라는 놈들이 단지 겁을 주기 위해 책에 이런 장치를 해둔 게 아니라면 말이죠.”
주박이 덮친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지긴 했었다. 저주가 두렵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동료가 만졌다면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으리라는 사실 때문에.
“앞으로 마족이나 어둠계 마법을 사용하는 놈들은 더 조심히 상대해야겠습니다. 방금은 순전히 운이 좋았군요. 론텔기우스라는, 이 마족의 가문으로 추정되는 이름도 하나 알게 되었고요.”
프스스스…….
마족의 시체가 분해되고 있었다. 그의 주검이 있던 자리엔 피가 번졌던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기분 나쁜 종족입니다.”
“일단 계속 진입하도록 하죠.”
다시 이동이 시작되었다. 갑자기 마족을 조우했기 때문인지 일행은 다들 한층 더 긴장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일행은 지하 시설의 끝에 도달할 때까지 단 한 번도 적과 마주치지 않았다.
세 명의 수호기사와 여덟 명의 사냥개, 나머지 상주 인원은 부재중인 것이다.
오히려 그래서 신경 쓰였다.
이렇게까지 인원이 없다면, 율리안의 수호룡을 다른 곳으로 이감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불안감이 일행의 뇌리를 스치려는 찰나, 율리안이 떨리는 손으로 지하의 어둠 저 너머를 가리켰다.
“카, 칼토르……! 칼토르!”
불빛을 비추자, 벽에 걸려있는 한 인간이 보였다.
그가 바로 인간으로 변신한 율리안의 수호룡, 뇌룡 칼토르였다.
질끈 눈이 감길 만큼 처참한 모습이었다. 짓이겨진 손과 발은 거대한 못에 박혀있었고, 온몸엔 정체 모를 고문의 흔적이 가득했다.
숨은 거의 쉬지 않았다.
“칼토르! 나야, 율리안! 금방 풀어줄게……!”
율리안의 두 눈에서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번만큼은 쿠잔도 율리안이 좀 안쓰러운 듯 말없이 함께 못을 빼냈다. 움찔! 못이 빠질 때마다 칼토르의 몸이 흔들렸는데, 의식은 돌아올 기미가 없었다.
“아아…… 칼토르, 대답 좀 해봐. 그 개자식들이 네게 대체 무슨 짓을.”
“살아있다, 율리안. 돌아가서 치료하면 돼. 공자님께서 분명 반켈라의 성자들을 불러주실 거다. 그러니 일단 진정하고, 목소리 낮춰. 지금 당장은 속이 썩겠지만, 이제 조슈아가 널 협박할 수 있는 수단은 아무것도 없잖냐?”
쿠잔이 율리안의 등을 두들기며 말했다.
진이 코트를 벗어 야윈 칼토르의 몸을 감쌌다.
“복귀한다.”
다시 지상으로 나가 숲을 탈출하기 직전.
진이 고개를 돌려 덩그러니 서 있는 조슈아의 비밀 별장을 바라보았다.
‘조슈아가 이곳에서 수련하던 시절, 아버지가 놈을 진심으로 인정해줬다면. 놈이 지금보다는 덜 쓰레기가 되었을까?’
문득 떠오른 의문에 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어차피 한 살이었던 내게 저주를 건 시기와 겹칠 확률이 높다. 대체 무엇이 놈을 그렇게까지 추악하게 만든 건지 가끔 궁금하긴 하군.’
* * *
“은신처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주군.”
세 명의 수호기사 중, 대장격인 인물이 조슈아에게 보고를 올렸다.
“어디였던가?”
“놀랍게도 에칸 왕국 동부의 한 시골이더군요. 나귀 마을이라는 곳인데, 총 거주 인원이 100명도 되지 않는 데다 그마저도 대부분이 노인인 곳이었습니다.”
“그런 곳에? 확실한가?”
“예, 이미 거주자들을 겁박해 확인했습니다. 아예 마을 한쪽에 연구실을 지어놨더군요. 연구실도 직접 살펴보았습니다. 거주자들이 말하는 아리아 아울하트의 인상착의도 전원 일치합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그 말이 딱 들어맞는군.”
“그래도 그 마족의 탐지 마법이 없었다면 찾기 어려웠을 겁니다.”
본래 조슈아의 비밀 별장에 대기하고 있었어야 할 세 명의 수호기사와 여덟 명의 사냥개.
그들이 비밀 별장에서 부재하고 있던 이유였다. 그들은 마족이 어둠계 ‘탐지 마법’으로 찾은 에칸 왕국 내 아리아 아울하트의 흔적을 추적하기 위해 별장을 비운 것이다.
론텔기우스 람펜.
조슈아가 그자의 끔찍한 외형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탐지 마법의 재료랍시고 사형수를 천 명이나 잡아먹더니. 결국 성과를 내오는군. 그 나귀 마을이라는 곳에 아리아 아울하트의 다른 은신처에 대한 단서는 없었나?”
“나귀 마을에서 외부로 나갈 수 있는 길이 한정적이니, 예상 이동 경로를 추적하다 보면 의심되는 지역을 좁힐 수 있을 겁니다. 확실한 건, 아리아 아울하트는 휴페스터에 또 다른 은신처를 갖고 있습니다.”
“또 다른 은신처를 확보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필요하지?”
“한 달이면 적어도 한 곳은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계속 그런 식으로 범위를 좁히면, 제대로 꼬리를 물 수 있습니다.”
“알겠다, 수고했다. 가능하다면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도록.”
“곧 더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오겠습니다.”
“람펜에겐 더 많은 사형수를 제공해. 그자의 마법이 뛰어나다는 게 증명되었으니.”
조슈아가 미소를 지었다.
‘론텔기우스 람펜…… 그자가 만약, 그 구슬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다면. 내 복제에 쓰일 사형수까지 제공하는 것도 고려해봐야겠군.’
영기 구슬.
그것을 얻은 건 룬칸델의 영묘에서였다. 초급반 생도 시절, 언제나처럼 루나에게 패배하느라 정신이 없던 어느 날.
조슈아는 평소처럼 방에 틀어박혀 스스로를 저주하는 대신, 가문의 영묘로 향했다.
그때 자신이 왜 갑자기 영묘를 찾았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었다. 운명에 이끌리듯, 혹은 무언가에 홀린 듯 영묘를 찾은 것이다.
그리고 영묘의 가장 깊숙한 곳.
본래 초대 가주인 테마르가 안치되어 있어야 할 텅 빈 무덤 자리에서, 영기 구슬을 발견했다.
‘영기 구슬에 손을 대자, 그때부터 그 개 같은 것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었지.’
개 같은 것, 예언자.
그녀는 처음엔 목소리로만 존재했었다. 어린 조슈아를 위로하고, 조언을 해주는 목소리로만 말이다.
조슈아가 나이를 먹을수록 목소리는 점점 실체가 되었다. 처음엔 유령처럼 흐릿한 형상이었고, 기수가 된 무렵부터는 지금처럼 또렷한 여인의 모습으로 변모했다.
‘하지만 예언자는 자신이 그 구슬 속에서 깨어난 것을 모른다. 내가 구슬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조슈아는 한창 예언자를 전적으로 신뢰하던 시절에도, 그녀에게 구슬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건 타고난 본능 덕이었다.
어린 조슈아는 본능적으로 영기 구슬이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고 직감한 것이다.
가령, 언젠가 예언자가 모종의 이유로 자신을 배신하는 순간에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으리라고 말이다.
‘요즘 예언자의 태도를 보면, 언제든 날 배신할 것 같은 느낌이다. 가주가 되는 즉시 처리하든, 그전에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을 확실히 마련하든. 둘 중 한 가지 수는 써야 해.’
조슈아는 영기 구슬에 대한 그 오래된 직감을 아직까지 놓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우연히, 아니. 어쩌면 필연적으로 만나게 된 마족 론텔기우스에게 사용처를 알아보라고 맡긴 상태였다.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주군.”
보고를 끝낸 수호기사가 경례를 올리고 물러나려는 순간.
누군가 다급한 목소리로 조슈아를 찾았다.
“조슈아 경!”
방으로 들어와 고개를 숙인 이는 사냥개 중 하나였다.
“무슨 일이냐?”
“버려진 숲의 별장이, 습격당했습니다.”
“뭐라고?”
“하필 저희가 마족에게 받은 정보로 에칸 동부로 향하던 시점이었습니다.”
조슈아가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욕지거리를 눌렀다. 물러나려던 수호기사도 흠칫하며 사냥개에게 시선을 옮겼다.
“……피해 상황은?”
“감금해뒀던 뇌룡과 마족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남아있던 인원 둘이 사망하였…….”
사냥개는 마족이 죽은 것인지, 사라진 것인지 정확히 인지할 수 없었다.
비밀 별장 지하 시설에 마족의 시신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추적은 해보았나?”
“뛰어난 놈들입니다, 흔적이 전혀 남아있지 않습니다. 면목 없습니다.”
후우-!
조슈아가 한 차례 크게 호흡을 골랐다.
결국, 예언자에게 한 번 더 기댈 수밖에 없는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