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4)
제 33화
13화. 첫 단독 임무를 받다
토나 형제에게 하달된 임무는 ‘행사 참석’이었다.
비먼트 제국의 황제와 공작들이 주최하는 각종 행사에 참여해 온갖 가식을 떠는 게 그들의 임무였다.
사실, 고작 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임무라고 부르는 건 웃긴 일이다. 피 한 방울 볼 일 없이 안전할 뿐더러, 제국의 특급 요리들을 즐기며 적당히 시간이나 때우면 되는 일이니까.
“으으!”
“행사라니! 그것도 비먼트 제국…….”
그러나 토나 형제는 임무 내용을 듣자마자 표정을 구겼다.
‘행사 참석’은 가문 직계에게만 허용된 임무다.
적당한 왕국에서 초대장이 날아왔다면 그냥 무시할 수 있지만, 제국에서의 초대는 이야기 다르다. 룬칸델로서도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
즉, 형제들 중 누군가 하나는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는 뜻.
때문에 제국에서 초대장이 날아올 때마다 룬칸델의 형제들 사이에선 치열한 눈치 싸움이 벌어졌다.
형제들 중 어느 누구도 그 역겹고 지루한 파티는 가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애도를 표해 주지, 조카들아. 네놈들 덕에 다른 형제들은 제국 파티장에서 춤을 추지 않아도 되겠군.”
“하아.”
“한숨을 쉬어? 비록 행사 참석이라지만 엄연히 임무다. 한 번만 더 그따위 태도를 보이면 차라리 죽여 달라는 소리가 나오게 만들어 주마.”
토나 형제가 쓴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이번 임무는 일종의 ‘벌’이었다. 5성 파벌을 빌려줬는데도 막내를 짓밟지 못한 동생들에게 내리는, 누이들의 벌.
특히나 말주변도 없고 처세술이라곤 쥐뿔도 찾아볼 수 없는 토나 형제에겐 고역일 수밖에 없었다.
‘하여간 뮤, 앤 누님들도 짓궂군.’
진이 속으로 웃으며 생각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가면 여흥 삼아서 놀러 온 강자들도 심심찮게 보일 테니, 그들을 잘 살펴보아라.”
“알겠습니다, 숙부님…….”
“그리고 막내.”
“예, 숙부님.”
“네게 하달된 임무는.”
제드가 잠시 말을 멈추자 토나 형제가 쫑긋 귀를 세웠다.
누님들이 과연 막내에겐 얼마나 지랄 같은 임무를 내렸을지 궁금한 것이다.
되도록이면 막내가 처참히 박살나고, 깨져서 돌아올 만한 임무라면 좋을, 아니. 아예 돌아오지 못할 임무이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요인 암살이다. 암살 대상은 비궁주 탈라리스의 장난감. 흐음… 놈팡이 한 놈 잡아 죽이는 일이로구나.”
비궁주.
그것은 대륙 서쪽 바다 한가운데 덩그러니 솟아 있는 거대한 탑, ‘비궁’의 주인을 일컫는 말이다. 탈라리스는 51대 비궁주로서 ‘심연의 거미’라는 이명을 지닌 인물이었다.
비궁은 룬칸델과 지플의 영향력 바깥에 있는 독단적인 세력이다.
“숙부님, 비궁주의 장난감이라 하면…….”
“심연의 거미. 그 여자의 애인이지.”
그리고 진이 암살해야 할 대상은 그녀의 장난감.
말하자면, 정부였다. 진은 탈라리스가 가지고 노는 수많은 젊은 남자 중 하나를 잡아 죽여야 하는 것이다.
“세상에.”
토나 형제가 저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고 입을 틀어막았다.
비궁주의 애인을 암살하고도 막내가 살아 있을 순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현 비궁주 탈라리스의 악명이라면 미텔 왕국 촌구석의 뜨내기들도 다 안다. 특히 그녀는 자신의 애인을 건드린 인간에겐 한없이 무자비하기로 유명했다.
“암살 대상은 현재 비궁 단원들에게 호위를 받으며 마미트 무법 지대에서 지내는 모양이더군.”
“마미트!”
“마미트라니!”
토나 형제가 한입으로 소리쳤다.
마미트 무법 지대로 향하는 임무는 본래 수호기사들에게나 하달되는 것이다. 이제 중급반이 된 진이 맡을 임무가 아니었다.
마미트에서 비궁주의 정부를 죽인다.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임무지만, 토나 형제는 벌써부터 동생이 살아 돌아오긴 글렀다는 마음이었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숙부님.”
“무엇이냐?”
“의뢰자가 누구입니까?”
진이 담담한 목소리로 묻자 제드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 녀석… 비궁주와 마미트에 대해 모르지는 않을 텐데. 그냥 바로 수긍하는 건가? 불합리하다고 얘기한다면 기수들에게 말 좀 해 줄까 싶었건만.’
제드는 내심 진이 난처해하기를 바랐다.
최근 제드의 가장 큰 즐거움은 막내 조카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 아직 다 벼려지지도 않은 칼을 그런 위험 지역으로 보내는 건 그로서도 썩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진은 난처한 기색도, 싫은 내색도 표하지 않는다.
본인이 그냥 하겠다면 제드로서도 관여할 문제가 아니었다.
“첸더러 가문이다. 그 놈팡이의 이름은 알카로 첸더러. 첸더러 백작가의 망나니지.”
“알 만하군요. 집 나간 자식이 비궁주에게 가문의 비밀을 술술 불어 버릴까 걱정이 되었겠지요.”
“정확하다. 몇 번 살려 보려고 첸더러 측에서도 꽤나 노력을 한 것 같다만. 결국 우리에게 의뢰를 하더군. 놈의 평소 행실도 좋지 않았던 모양이고… 흐음, 해낼 수 있겠느냐?”
제드가 은근히 기대하며 물었다.
지금이라도 막내의 입에서 ‘이건 수호기사들에게나 할당되어야 할 임무인 것 같습니다’라는 말이 나오길 바라는 것이다.
“해내겠습니다.”
“넌 왜 그렇게, 아니다. 하, 단호해서 좋구나.”
제드가 헛기침을 하며 임무 서류를 조카들에게 나눠 주었다.
“셋 다 출격은 이틀 후다. 그때까진 오후 수련을 쉬고, 임무에 지장이 가지 않을 선에서 개인 훈련만 임하도록.”
“예, 숙부님.”
제드가 먼저 비밀 훈련장을 나섰다.
토나 형제는 한동안 우물쭈물하며 괜히 진의 곁을 맴돌았다.
이제 곧 막내가 죽는다고 생각하니 신이 나기도 하지만, 왠지 모르게 찝찝하고 싫은 기분이 함께 들었다. 형제는 그 감정이 ‘애증’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왜?”
“아니, 그. 잘하고 오라고.”
“맞아. 설마 죽기야 하겠어? 여차하면 룬칸델이라고 다 까발려. 그러면 아무도 널 건들지 못할 테니까.”
“하하, 뭐야. 내 걱정을 해 주는 거야? 형들도 귀여운 구석이 있네.”
“걱정이 아니라.”
“내가 다녀올 때까지는.”
진이 데이토나의 말을 끊으며 브라다만테를 뽑아 오러를 씌웠다. 동생의 갑작스런 발검에 토나 형제가 주춤했다.
샤악! 토나 형제가 왜 그러냐고 묻기도 전에 검을 휘두르는 진. 그가 내려친 것은 뒤쪽에 있던 청아석이었다.
차라라랑-!
아름다운 타격음이 아치형의 천장을 타고 비밀 공간 속을 흘렀다.
진이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어쩐지 지금 내리치면 단번에 성공시킬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왔고, 느낌은 곧바로 현실이 되었다.
청아석 훈련을 시작하고 한 달.
진은 이게 어떤 기록을 상징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형들도 선택을 하는 게 좋을 거야. 누이들이 좋은지. 아니면 내가 좋은지 말이야.”
꿀꺽 침을 삼킨 토나 형제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지 우리.”
“모르겠다. 위도 지랄이고 아래도 지랄이네, 진짜. 막내가 누님들보다 더 무서운 것 같기도 하고.”
“동감이야.”
여러모로 우울한 토나 형제였다.
바깥으로 나온 진은 막 떠안게 된 임무 대신, 다른 것에 대해 생각했다. 위험한 임무보다도 훨씬 신경 쓰이는 건 따로 있었다.
‘아까 그 감각은 대체 뭐였지?’
헤이토나가 깨뜨린 청아석에서 튀어나온 철 구슬.
그것에 맞은 후, 별안간 이유도 없이 정확한 궤적이 그려지는 감각이 들었다. 다음에 다시 한 번 그쪽 방향에서 철 구슬이 날아온다면 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도 함께.
‘임무가 끝나면 루나 누님께 한번 여쭤봐야겠군. 이 감각이 혹시 그간 누님께 받은 훈련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
* * *
이틀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임무를 하달 받은 이들은 모두 어제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이제 휴페스터 이동 관문으로 가서 각지로 떠나면 되는 것이다.
“후우, 도련님.”
강철 마차에 오르기 직전, 막내 사단이 진을 찾았다.
막내 사단은 하나같이 어둡고 칙칙한 얼굴이었다. 꼭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떼 같은 분위기였는데, 오늘부터 수행하게 될 임무에서 몇이나 죽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서럽고 답답한 건 그것만이 아니다.
“마미트 무법 지대로 가신다고요.”
“그래. 나는 암살 임무라서 따로 이동 관문으로 가야 해. 입국 수속도 제대로 다 받아야 하고. 이건 좀 귀찮군.”
“……떠나기 전,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굳이 막내 사단이 인사를 하러 온 것은 다름이 아니다.
어쩌면 이 만남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막내 사단은 미보호 구역에서 몇이 당할지 몰랐고, 진 또한 8할 이상의 확률로 죽음을 맞이할 테니까.
진을 제외한 중급반의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인사는 무슨. 왜, 마지막이 될 것 같아서냐?”
진이 장난스런 어투로 말하자 메사가 한숨을 푹 쉬었다. 나머지 생도들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뭐, 사람 일이라는 게 뜻대로만 되는 건 아니니까. 우리 중 누군가는 죽을 수도 있겠지. 재수가 없다면.”
“저흰 괜찮지만, 도련님이 맡은 임무는…….”
“괜찮긴 뭐가 괜찮아, 이 자식들아. 내 걱정은 말고, 너희들 임무에만 집중해라. 알겠나?”
“예…….”
“그럼 가 봐. 다녀와서 보자고.”
막내 사단이 한동안 머뭇대다 어쩔 수 없다는 듯 복도를 나섰다. 진은 그런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귀여운 놈들. 무라칸, 쟤들 잘 지켜 줘라.”
“냐앙.”
“몇 번이나 얘기했지만, 절대로 티는 나면 안 돼. 알았지?”
“냐아앙.”
고양이로 변한 무라칸이 앞발을 까딱였다. 애송이, 너나 잘하라는 의미였다.
“도련님도, 무라칸 님도 없으니 한동안 이 유모는 쓸쓸하겠네요.”
“휴가라고 생각해, 길리. 마미트에서 기념품이라도 좀 갖다 줄까?”
“도련님께서 중급 생도 수준이 아니라는 것은 저도 잘 알지만. 마미트는 그래도 위험한 곳입니다. 하필 비궁주의 정부를 암살하는 일이라니… 부디 몸 조심히 다녀오시길.”
“그래, 다녀올게!”
진은 강철 마차가 아니라 말을 타고 움직였다. 머리는 이미 하루 전에 갈색으로 물들였고, 옷은 평범한 여행객처럼 꾸며 놓았다.
그나마 브라다만테가 있지만, 그것도 머리와 마찬가지로 검신을 평범한 강철처럼 코팅해 놓았다. 이대로 나가면 아무도 진이 룬칸델인지 알아볼 수 없는 것이다.
두 번째 임무이자, 첫 단독 임무.
길리의 말처럼, 현재 진의 전력을 감안해도 꽤나 위험한 임무다. 그러나 진은 두려운 마음 따위 없이, 그저 영기와 마법을 마음껏 쓸 수 있다는 사실이 즐거울 뿐이었다.
‘마미트는 전생에서부터 가보고 싶은 도시였지.’
회귀 전, 진의 마법 스승은 마미트를 ‘생각보다 낭만적인 도시’라고 표현하곤 했다.
마미트에서 2년을 지낸 적이 있는 스승은 종종 그에 대한 추억을 얘기했는데, 그 추억 속엔 마미트의 온갖 정보가 녹아 있었다.
‘도시 중앙에 있는 선술집들은 마미트의 하급 정보원들이 드나드는 곳이라고 했지? 고급 정보를 사고 싶다면 지하의 암시장으로 가야 한다고도…….’
스승에게 지겹도록 들은 추억담이 이런 순간에 도움이 될 줄이야. 물론 시간차가 있으니 모든 정보가 일치하진 않겠지만, 마미트의 굵직한 질서들은 분명 변함이 없을 터였다.
새삼 스승에게 고마운 마음을 느끼며, 진이 고삐를 잡아당겼다.
홀로 검의 정원을 나서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시원한 해방감이 몰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