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5)
제 33화
14화. 마미트 무법 지대(1)
마미트 무법 지대는 온갖 밑바닥 범법자들이 다 모인 땅이다.
그 무법자들의 성지는, 끔찍한 인간들이 뿜어낸 어두운 기운 때문에 잡초조차 자라지 않는다는 설이 돌 지경이었다.
마냥 설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마미트는 풀 한 포기 없이 척박한 황무지였다.
뜨겁게 내리쬐는 뙤약볕.
그리고 그 아래 작은 도시에 꽉꽉 들어차 벌레처럼 우글거리는 악당들.
도시로 들어서는 입구엔 그 흔한 관문조차 하나 없다. 그저 오물이 말라붙은 부러진 푯말을 지나면, 거기서부터 마미트인 것이다.
“신참 받아라, 쓰레기 새끼들아!”
한 거한이 막 도시 중앙의 선술집으로 들어서며 소리쳤다. 등에는 그의 외모와 어울리는 무시무시한 철퇴가 묶여 있었다.
“크헐헐, 신참은 무슨. 저놈 또 수배돼서 돌아온 거야? 옘병, 네놈이 무슨 연어냐? 자꾸 돌아오게?”
선술집 안에 있던 이들은 모두 그를 알고 있는 듯, 반가운 기색을 드러냈다. 목이 터져라 비웃으며 손가락질을 하거나, 들고 있던 맥주를 잔째로 던지는 게 마미트만의 독특한 인사법이었다.
쨍그렁! 쨍!
두꺼운 유리잔이 거한의 머리와 가슴팍에 부딪쳐 깨졌다. 깨진 파편이 맥주와 함께 바닥을 흘러 다녔으나 종업원조차 그것을 치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유리잔에 얻어맞은 거한이 무척 즐겁다는 얼굴로 바닥에서 유리 조각을 하나 집었다.
으적으적.
이내 기예단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장면이 연출된다. 거한이 유리를 이빨로 씹어서 꿀꺽 삼켜 버린 것이다.
“그럼! 연어지. 이 톤크 님의 진짜 고향은 바로 이곳, 마미트다, 이거야! 다들 마셔! 오늘은 내가 산다!”
“어이, 톤크. 이번엔 바깥에서 또 무슨 사고를 치고 도망친 거냐? 주둥이 좀 털어 봐. 얼른.”
“크하핫! 이번엔 이 톤크가 에칸 왕국의 지체 높은 계집애랑 재미 좀 봤지.”
“오오! 누구였는데?”
“몰라, 그냥 귀족이었어. 그리고 날 잡으러 온 경비대 다섯을 죽였는데. 아, 글쎄! 이것들이 나를 일반병으로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계속 보내네?”
“크흐흐, 하여간 멍청한 놈들.”
“푸하, 그래서 다 감자처럼 으깨 버렸다고. 한 오십 명쯤. 정신없이 으깨다보니까 내 발걸음이 어느새 마미트로 향하고 있더군…….”
“톤크에게 건배!”
“건배! 다시 돌아온 걸 환영한다!”
꿀꺽, 꿀꺽, 꿀꺽!
단숨에 술잔을 비우는 남자들.
왁자지껄한 소요가 가라앉고 맥주가 그들의 목을 타고 넘어가는 소리만이 들리는 와중, 끼익…….
누더기 같은 로브를 뒤집어쓴 한 남자가 선술집으로 들어섰다.
진이었다.
“얼레?”
“이번엔 진짜 신참인 것 같은데?”
톤크와 남자들이 저들끼리 눈빛을 주고받았다. 누군지 아는 사람이 있냐는 의미였고,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투벅, 투벅. 진의 낡은 부츠가 바닥에 닿을 때마다 탁한 소리가 났다. 묵묵히 선술집 중앙을 가로지른 진이 톤크의 옆에 앉았다.
“차가운 물. 그리고 간단한 요깃거리.”
진이 품속에서 꺼낸 은화 한 닢을 종업원에게 튕겼다.
“허허.”
은화를 받아 든 종업원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켜자, 이내 선술집 곳곳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캬!”
“와, 나 무슨 소설 주인공인 줄 알았잖아. 폼 잡는 게 보통이 아닌데?”
“뭐냐? 너 뭐야, 응? 9성 기사쯤 되냐?”
“전설의 검객인가 보다! 푸힛!”
한창 비아냥대던 남자들이 동시에 싹 표정을 바꾸었다. 그러곤 위압적으로 진을 둘러싼 채 씩씩 콧김을 뿜었다.
“아아, 새로 온 친구. 오늘 이 톤크가 기분이 몹시 좋은데, 서로 얼굴 붉힐 일 만들지 말자고.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우리들 발가락이라도 한 번씩 다 빨아 주면 용서해 줄… 컥.”
톤크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쓰러졌다. 앞으로도 그는 영원히 뒷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방금 진이 뻗은 단검에 목덜미가 찔렸기 때문이다. 톤크는 진에게 너무 바짝 붙어 있었고, 이 앳된 꼬마가 설마 아무 망설임 없이 자신을 찌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커헉, 그르륵.”
진이 단검을 뽑자 톤크의 목덜미에서 콸콸 핏줄기가 쏟아졌다.
다소 긴 정적이 흘렀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고, 진은 아무 말 없이 손가락을 까딱대며 종업원을 압박했다. 어서 차가운 물과 요깃거리를 가져오라고.
“갔구만!”
“톤크가 갔어!”
“내 언제 이럴 줄 알았지, 푸흐흐.”
이내 진을 둘러싸고 있던 남자들이 흩어졌다.
그들은 방금까지 톤크와 주고받은 우정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다시금 저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맥주를 퍼마실 뿐이었다. 더 이상 진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흔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톤크와 아무리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한들, 그들 사이에 진정한 우정 따윈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스승님께 듣던 대로, 미친 인간들만 모인 게 확실하군.’
그들이 잠시 진에게 관심을 보였던 건, 단지 진이 몹시 약해 보이기 때문이었다. 솜털도 다 떨어지지 않은 녀석이 어쩌다 이 마굴로 들어오게 되었는지도 궁금했고.
그러나 궁금증이 순식간에 해결되었다.
진은 단칼에 톤크를 죽였고, 그로써 선술집의 무법자들에게 합격점을 받은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마미트의 ‘진짜 인사’였다.
‘전생에서도, 지금도. 도움을 많이 받는군. 언젠가 갚을 날이 오면 좋겠어, 스승.’
딸각.
종업원이 진의 테이블에 유리잔 하나를 내려놓았다. 차가운 물이 들어 있었다.
“독은 타지 않았다.”
“이 동네에서 독살이 금기라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어.”
“어린 녀석이 마미트를 잘 알고 있군. 부모나 형제가 이곳 출신이냐?”
“알 거 없잖아.”
팅.
진이 이번에는 금화를 꺼내 튕기자, 종업원이 어깨를 으쓱했다.
“뭘 원하나? 마약? 요즘 마미트에 끝장나는 상품이 하나 있지. 아니면 사람을 찾나?”
“후자. 부족한가?”
종업원이 손수건으로 금화를 문지르며 차분히 무게를 쟀다. 묵직한 것이 제대로 된 금화였다.
“글쎄,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서 달라지겠지.”
“이 동네에 히스터라는 이름을 쓰는 자가 있나?”
“없다. 확실해.”
진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그렇군. 요깃거리나 내와. 그리고 묵을 곳을 추천해 주면 좋겠군. 벌레가 기어들지 않는 곳으로.”
‘벌레가 기어들지 않는 방’이란, 마미트에서 가장 안전한 여관을 뜻했다.
“그런 곳은 딱 하나야. 도시 서쪽에 달빛우물이라는 여관이 있다. 거긴 마미트의 왕들이 묵는 곳이니, 굳이 소란을 일으킬 필요는 없어.”
“고맙군.”
진은 종업원이 내온 푸석푸석한 빵과 마른 베이컨을 깔끔하게 비우고 선술집을 나섰다.
* * *
‘달빛우물’은 마미트의 최고 강자들이 모인 만큼, 선술집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마미트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하고 정돈된 느낌의, 평범한 여관인 것이다.
제대로 된 도시의 고급 여관에 비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들개처럼 짖어대는 하급 무법자들과는 마주칠 일이 없었다.
‘비궁주의 애인이라곤 하지만, 그래 봐야 백작가 망나니다. 알카로 첸더러가 묵을 곳은 여기밖에 없어.’
굳이 지하 암시장까지 가서 비싼 값을 치르고 알카로에 대한 정보를 찾을 필요가 없었다.
가문에서 받은 알카로에 대한 문서들을 살펴보면, 그는 결코 더럽고 축축한 저급 여관에서 지낼 인물이 아니었다. 고생 따윈 해 본 적 없는 망나니 도련님이니 당연한 일이다.
알카로 첸더러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저질에 무엇이든 고급을 좋아하며, 쾌락과 유흥에 미친 부류. 가진 것이라곤 반반한 얼굴과 혈통뿐이다.
그런 알카로가 굳이 이 위험한 도시에서 죽치고 있는 건 다름이 아니다.
요즘 다른 애인에게 빠져 자신을 홀대하는 비궁주 탈라리스의 관심을 끌어 보려는 얄팍한 수였다.
‘내가 이렇게 위험한 곳에 있는데, 정말 가만히 내버려 둘 거야?’라는 유치한 몸부림.
그리고 비궁주가 행여 진짜로 관심을 보여 이곳을 찾아온다면, 다음 암살 기회는 또 언제가 될지 모른다. 비궁주가 알카로를 직접 보호한다면 루나조차 암살이 불가능할 것이다.
이것이 첸더러 가가 룬칸델에 급히 암살을 의뢰한 이유였다.
‘일단 오늘부터 마미트에 나에 대한 이야기가 퍼질 것이다. 웬 미친 꼬맹이가 새로 들어왔는데, 오자마자 한 놈을 죽이고 히스터라는 인간을 찾고 있다는 소문이.’
진이 선술집에서 난동을 부린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하급 정보원들이 득실대는 곳에서 최대한 요란한 난동을 부린 다음, 거짓된 정보를 퍼뜨리는 것이다. 나는 히스터를 찾고 있다고. 그를 찾아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그리고 그 소문은 하루 안에 알카로를 지키고 있는 비궁의 호위 단원들에게 전해질 터였다. 호위들은 눈에 불을 켜고 매일 들어오는 수십 명의 신입들을 모두 확인하고 있으니까.
자연스레 진은 그들의 주요 감시 대상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 알카로를 죽이려고 온 자객이라면 결코 진처럼 어설프게 움직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을 터.
‘그간 알카로를 죽이려고 했던 자들은 모두 실력 좋은 용병들이었지. 하지만 나는 일부러 엉성하게 보였으니, 의심받을 확률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
알카로의 호위들이 신경 쓰는 대상은 진처럼 목적이 명확하고, 괜히 무게를 잡는 인간들이 아니다.
오히려 톤크처럼 완벽하게 마미트 냄새가 나는 부류야말로 호위들이 주시하는 대상이었다.
암살자란 대개 현지인처럼 자연스럽게 스며있는 걸 선호하는 법이니까. 이를테면 진은 등잔 밑을 어둡게 만든 셈이다.
그리고 진의 전략은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낮부터 줄곧 자신을 관찰하던 달빛우물의 몇몇 남자들이, 밤이 되자 확연히 경계를 푸는 게 느껴진 것이다.
‘아무래도 그 셋이 알카로를 호위하는 비궁 단원들인 것 같고… 실력은 대략 6성 이상. 정면으로 부딪치는 상황이 만들어지면 내 쪽에 승산은 없다.’
마법과 영기를 총동원한다면 하나쯤은 어찌어찌 처리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둘 이상부터는 답이 없다.
하루가 꼬박 지났지만, 알카로는 보이지 않았다. 진은 알카로가 호위들이 가져다주는 음식을 먹으며 지내는 중이라고 확신했다.
‘방으로 찾아가서 죽이는 건 불가능하다. 아마 방 안에서 상시 대기하는 호위가 더 있을 거야. 그렇다면 놈이 나오는 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진이 문서상으로 살펴본 알카로의 성격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알카로 첸더러는 쾌락과 유흥에 미친 부류.’
그리고 번뜩 뇌리를 스치는, 선술집 종업원에게 들은 이야기 한 가지.
-뭘 원하나? 마약? 요즘 마미트에 끝장나는 상품이 하나 있지.
알카로는 여관방에 틀어박혀 마약을 하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거기까지 생각한 진이 이마를 쓸어 넘기며 로비로 걸음을 옮겼다. 시원한 맥주나 한 잔 마시면서 로비에 있는 인물들을 조금 더 파악해 볼 요량이었다.
그러나 로비로 내려서자마자 진은 만면에 화색이 도려는 걸 감춰야 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 왜 안 된다는 건데! 어제까진 잘 구해줬잖아!”
“더 이상은 안 됩니다.”
“빌어먹을! 구해오란 말이다!”
지금 로비 한가운데서 악을 쓰는 청년이, 바로 알카로 첸더러였다. 얼굴을 미리 익혀 둬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호위들이 약을 구해 주지 않아 단단히 심통이 난 모양새.
‘흔해도 이렇게 흔할 수가 없는 망나니로군.’
진이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