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6)
제 33화
14화. 마미트 무법 지대(2)
회귀 전, 검의 정원에서 추방당한 직후.
진은 한동안 노숙을 하며 정처 없이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아다닌 이력이 있었다. 추방 이후 삶의 목표가 사라져 한동안 폐인처럼 살았던 것이다. 마법 스승을 만나기 전까지.
그때 진은 구석진 거리를 좀먹고 있는 수많은 망종들을 경험했었다.
좀도둑, 강도, 거지, 알코올 중독자 등… 그들은 내일이 없는 하루살이처럼 살아갔고, 언제나 그때그때의 욕망에만 충실한 부류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압권이었던 건 약쟁이들.’
약쟁이.
그들은 단 하루라도 마약을 못 하면 살아갈 수가 없는 이들이다. 약이 없으면 퀭한 눈을 한 채 거품을 물고, 약을 준다면 제 심장까지도 꺼내 바치려는 어리석은 습성을 지니고 있다.
열이면 열, 백이면 백, 천이면 천!
그가 거리에서 겪어 본 약쟁이들 중 그렇지 않은 인간은 단 하나도 없었다.
초인적인 의지로 마약을 끊고 정상적인 삶을 되찾는 이들이 있지만, 말 그대로 극히 드문 경우다.
진이 보기에 알카로 첸더러는 결코 그만한 의지력을 지닌 인물이 아니었다.
“젠장! 제발, 제발 부탁할게. 응? 그게 없으면 한 시간도 버틸 자신이 없단 말이야. 이렇게 빌게, 제발…….”
털썩 주저앉아 손바닥을 싹싹 비비기 시작한 알카로.
그를 호위하는 비궁 단원들은 담담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진은 그들의 눈빛에 담긴 일말의 혐오감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안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희의 최우선 과제는 도련님을 보호하는 것이지, 응석을 받아 주는 게 아니라는 걸 명심해 주시길. 계속 난동을 부린다면 저희로서도.”
“으아아악! 듣기 싫어! 약을 주지 않겠다면, 나도 나대로 생각이 있다고! 빌어먹을, 우리 자기만 돌아오면 네놈들은 모두 모가지야! 모가지라고! 진짜로 모가지를 잘라 줄 테다!”
“하아.”
“허! 너 지금 한숨 쉬었어? 내가 우스워? 너희 따위가? 버러지 같은 평민 새끼들이! 나는 첸더…….”
퍽!
별안간 호위 하나가 알카로의 복부를 힘껏 주먹으로 갈겼다. 알카로는 부들부들 몸을 떨다가 그대로 기절했다.
“빌어먹을, 이 쓰레기를 대체 언제까지 지켜 줘야 하는 거야.”
“그냥 약이나 하다 뒈지면 좋겠군. 그분께선 왜 이런 놈을 살려 두고 계신 건지…….”
“조용히 해. 우린 맡은 일만 한다. 사적인 감정은 금물이야.”
호위들이 쓰러진 알카로를 어깨에 메고 객실로 돌아갔다.
그 장면을 모두 지켜본 진은 보물단지라도 찾은 기분이 될 수밖에 없었다.
‘호위들과 알카로의 관계는 최악. 게다가 알카로는 내일이라도 약을 구하기 위해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는 분위기.’
흐음.
종업원이 내어 준 맥주를 들이켜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알카로를 암살하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았다.
약쟁이 도련님은 날이 갈수록 오늘보다 더 심한 난동을 부릴 것이다. 그리고 돌발 사태가 계속 이어진다면, 암살할 수 있는 순간은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올 터.
그때 암기를 쓰건, 마법을 쓰건, 영기를 쓰건. 죽이는 것 자체는 식은 죽 먹기다.
‘하지만 문제는 놈을 죽인 이후야. 알카로를 처리하고 호위들을 피해 무사히 복귀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해.’
그게 이번 단독 임무의 최대 난관이었다.
여관 내에서 대놓고 죽인 다음 도주를 하는 건 불가능하다. 비궁 단원들은 모두 6성 이상인 만큼 체력적으로 진보다 훨씬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독살 역시 마찬가지였다. 만약 알카로를 마약으로 유혹한 뒤, 독을 타서 죽인다면 마미트 전체가 다 뒤집어질 터였다.
이 무법 도시는 불문율을 어기는 것보다 중대한 사항이 없으니까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달빛우물이라는 밀실 안에서 알카로를 몰래 살해하는 건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탁.
종업원이 내온 맥주를 다 마신 진이 빈 잔을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결정했다.’
진의 판단은 바로 이것이다.
자신의 객실 안에서 마법으로 달빛우물을 테러하는 것.
달빛우물은 마미트의 왕들이 모인 곳이다.
마미트에 모인 최악의 범죄자들 중, 가장 악명 높은 거두들이 한자리에 모인 여관. 테러가 시작됨과 동시에 여관 내의 왕들은 모두 반격을 시작하고 범인을 색출할 터였다.
최소 ‘6성급 마법사’가 달빛우물을 공격한 범인일 거라고 확신하면서 말이다.
‘4성 마법에 내가 지닌 영기를 더하면 6성급 파괴력을 지니게 된다. 전격계, 번개 부름을 강화시키는 게 적절하겠군.’
하지만 고작 열다섯 먹은 꼬맹이가 6성 마법사라고 생각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무도 없다.
진보다 세 살이 더 많은 지플의 차기 가주 후보, 베라딘 지플조차 이제 막 6성이 되었다고 알려졌으니 당연한 일.
열다섯에 6성 마법을 난사하는 건 지플의 천재들에게도 불가능한 영역인 것이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문제였어. 방 안을 영기로 가득 채워 마력이 발생하고 있는 사실을 감추고.’
영기에 둘러싸인 것은 무엇이든 존재감이 옅어진다.
진은 초급반 임무 때 단검에 영기를 발라 4성급 무인들을 손쉽게 죽인 적이 있다. 마력이나 오러도 예외가 아니다. 4성급 마력 정도는 영기를 이용해 깔끔하게 숨길 자신이 있었다.
따라서 달빛우물의 투숙객들은 테러가 바깥에서 시작된 것이라 착각할 수밖에 없다.
여관 내부에서 갑자기 그만한 마력이 발생했다면, 마미트의 왕이라 불리는 자신들이 눈치 채지 못할 리 없으니까.
‘번개 부름을 영기로 강화시켜 달빛우물로 떨어뜨린다. 나도 피해를 입겠지만, 오르갈의 펜던트가 있으니 버틸 만할 거야.’
오르갈의 펜던트는 5성 이하의 마법 공격을 대부분 상쇄시켜 준다. 6성급부터는 다소 위험하지만 아예 상쇄력이 없는 건 아니다.
‘현재 내 마력과 영기로 강화 번개 부름을 사용할 수 있는 건 총 4회. 네 번 연속 객실 곳곳에 떨어뜨리면 순식간에 달빛우물은 난장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사이, 진은 부상을 입은 척 혼란스러운 객실 속을 돌아다니다가 알카로를 찾아 죽이면 임무는 끝이다.
알카로가 무작위로 떨어진 번개 부름에 맞아 죽으면 더 좋고.
‘나이가 너무 어린 게 가끔 짜증났는데, 이럴 때 생각지도 못한 도움이 되는군.’
번개 부름은 이름 그대로 번쩍 뇌격이 일고 끝나는 마법. 마법이 발현하는 순간은 찰나에 가까운 만큼, 영기가 섞여 있어도 알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설령 누군가 뇌격에 섞인 검은 기운을 알아본다 할지라도, 변종 마법으로 생각할 확률이 높았다. 영기는 알려진 바가 별로 없는 힘인 반면, 세상엔 온갖 변종 마법이 존재하니까.
회귀와 영기, 그리고 마법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
달빛우물 테러는 그것들 중 하나라도 부족했다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며칠이나 기다릴 필요도 없다. 그 약쟁이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괜히 변수만 많아져. 내일 정오 무렵에 바로 실행한다.’
모두가 잠든 새벽이나 밤보다, 차라리 백주 대낮에 저지르는 게 효과적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번개 부름이 6성급 마법이라는 사실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 * *
오전 열 시 반.
진이 로비로 내려와 늦은 아침 식사를 주문했다. 잘 구워 낸 빵과 삶은 달걀, 수프였다.
이 또한 일부러 연출한 모습이었다. 달빛우물의 다른 투숙객들처럼, 평범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로비에는 마미트의 왕들 중 다섯이 내려와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진에게서 느껴지는 미약한 오러를 인지하며 씨익 웃었다.
“꼬마야. 네 나이치곤 대단한 수준인 것 같다만, 그걸 믿고 이 동네에 오래 머물러 봐야 좋을 게 없을 거다. 함부로 설쳐도 문제일 거고.”
다섯 중 하나가 진을 향해 말했다.
“조언 감사합니다. 하지만 찾아야 할 사람이 있어요. 여기 지내시는 분들께 폐 끼칠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허허, 어제는 선술집 비렁뱅이들을 단칼에 죽였다더니. 지금은 순한 양처럼 행동하는군.”
“그들과 당신들은 격이 다르니까요. 저는 분수를 잘 아는 사람입니다.”
“예의는 합격이야. 좋아, 여기 며칠 더 머무르는 것 정도는 허락해 주지.”
“감사합니다. 마미트의 왕들께서 배려해 주신 건, 나중에 돌아가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진이 가볍게 목례하고 자리를 떴다. 마미트의 왕들은 그런 진이 무척 귀엽다는 듯, 저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마미트도 다됐군. 저런 꼬맹이들이 들락거릴 지경이라니.”
“뭐, 며칠 버티다 떠나겠지. 아니면 떨거지들에게 살해당하거나.”
“그래도 꽤 괜찮은 재목인 것 같던데. 우리 조직 막내로 들여 볼까 고민이 될 정도야.”
“아서라. 네놈 부하들한테 당하다가 폐인이 될 걸. 반반하게 생겨 가지고.”
푸하하하!
마미트의 왕들이 동시에 웃어 젖혔다.
‘예의는 합격이라고? 하여간 웃긴 쓰레기들이군.’
방으로 돌아온 진이 실소를 터뜨렸다. 바깥에서 온갖 끔찍한 악행을 저질렀을 인간 말종들이 예의를 운운하는 것도 우습고, 이제 곧 그들의 머리에 번개를 떨궈 줄 것도 즐거웠다.
진이 방 한가운데 정좌했다.
눈을 감고 영기 해방을 펼치자, 그의 온몸에서 시커먼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나기 시작했다. 정오에 공격을 감행하려면, 지금부터 부지런히 밑 작업을 해 둬야 했다.
‘내 방에서 어떤 기척도 새어 나가지 않도록 영기를 꽉꽉 뒤집어씌운다.’
좁은 방이니, 한 시간이면 작은 틈 하나도 남김없이 채울 수 있었다.
이 한 시간이 가장 중요했다. 혹시라도 누군가 객실을 찾아오면 낭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객실 밖 복도에서 발소리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종업원들이 복도를 청소하는 소리와 투숙객들이 이동하는 소리였다.
‘뭐, 이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지.’
진이 영기 해방을 펼치기 시작했다. 검은 기운이 빠져나올 때마다, 바깥에서 전해지는 작은 소요들이 빠르게 단절되어 안정감이 들었다.
예정된 한 시간이 지나자 객실 사방이 먹을 머금은 듯 시커먼 풍경이 되었다. 책상이나 침대 같은 사물은 윤곽조차 남아 있지 않아, 그야말로 절대적인 어둠이었다.
그 속에서 색을 띠고 있는 건 오직 진 본인뿐이었다.
‘내가 했지만 완벽하군.’
후우.
진이 몇 차례 숨을 고르고 땀을 닦아 냈다. 이제 마력을 발화시켜 번개 부름을 영창할 준비만 하면 끝이었다.
‘객실 내부에 쌓인 영기는 마지막 번개에 실어서 없앤다. 이후 비명을 지르면서 객실로 나가 알카로의 생사를 확인하면 되겠어…….’
무식하면서도 훌륭하다.
스스로의 계획을 그렇게 평가한 진이 양손에 마력을 가득 일으키기 시작했다.
파지짓! 파짓!
시퍼런 전류가 진의 손을 타고 흘렀고, 꽤나 큰 소리가 났지만. 그의 예상대로 이 사태를 감지하고 있는 인물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어서 전류에 영기가 검은 실처럼 풀어진다.
‘번개 부름.’
콰아아아앙!
첫 번째 번개가 떨어지자, 달빛우물의 지붕 절반이 통째로 뜯겨 나갔다.
“억!”
번개에 맞은 이들의 비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들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살펴보기도 전에.
다시 한번 검푸른 번개가 달빛우물을 내리쳤다. 두 번째 번개였다. 순식간에 숯덩이가 된 객실에서 사람들이 빠져나오고 있었다.
“미친… 날을 잘못 고른 것 같군.”
그리고 막 달빛우물로 들어서려고 걷고 있던 한 소녀는, 그 광경을 보고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