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56)
제 333화
109화. 오즈도크(4)
남자는 비먼트의 무인들이 흔히 사용하는 곡검을 사용했는데, 평범한 곡검보다 두 배는 길어 보이는 검신이 인상적이었다.
‘근처에 분명 이런 사람은 없었는데? 대체 어디서……!’
진도, 메리도, 무라칸도.
그 남자가 아까부터 전장 한쪽에 자리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남자가 그걸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본래 기수들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고 그냥 돌아갈 생각이었으나.
오즈도크라는 마물에게 흥미를 느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엄청난 실력자다. 아니, 실력자라는 표현 따위론 부족해.’
초인.
남매는 즉시 남자를 그렇게 분류했다.
갑작스러운 강자의 난입에 송곳이 폐부를 찌르는 듯 마음이 긴장되었다.
변신한 오즈도크는 명왕검 절기와 투신기, 마검 비기까지 사용한다 할지라도 이길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상대였다.
그런 오즈도크의 오른팔을 단 일격에 베어낼 만한 인간은 분명 세상에 그리 많지 않을 터.
그리고 이곳은, 흑해다.
‘아버지의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흑기사, 혹은 전대 흑기사.
로브의 검은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어 남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잠시 진과 메리에게 눈길을 주곤, 어느새 거리를 벌려 팔을 다시 붙이고 있는 오즈도크에게 고개를 돌렸다.
[네놈은 누구냐……!]오즈도크는 과연 사람의 말을 할 정도로 영리한 마물이었다.
일격을 받자마자 느낀 것이다. 남자는 절대 자신이 어쩔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전성기였다면 위축될 필요 없었을 테지만, 그런 가정은 의미가 없었다.
“네놈?”
푸하악-!
초승달 같은 검기가 막 다시 붙은 오즈도크의 오른팔을 베고 지나갔다. 분수처럼 시커먼 피가 튀었고, 오즈도크는 꺽꺽대며 또 팔을 들고 거리를 벌리는 모습.
“내 주군조차 날 그리 부르지 않으시건만…… 한낱 마물 따위가 입이 거칠구나.”
[누구…… 십니까?]오즈도크는 곧장 저자세로 태세를 전환했다. 멀리서도 공포에 질린 표정과 기세가 도드라졌다.
“머리가 좋은 녀석은 아니로군. 학습 능력이 없는 거냐?”
스걱! 곡검이 흔들리자 또 무언가 절단되는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도 오즈도크가 붙이고 있던 오른팔이었다.
[끄아아……!]“상대에 대해 물을 땐, 보통 본인의 이름과 신분을 밝히는 게 우선이지. 아, 마물에게 내가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나?”
[아니, 아닙. 컥!]뻐억-! 트걱! 이번엔 남자가 오즈도크의 뒤를 잡고 놈의 허벅지에 하단 발차기를 먹였다. 일행이 근육이 파열되고, 뼈가 우그러지는 소리에 익숙지 않았다면 질끈 눈을 감아버렸을 것이다.
“이름.”
남자가 무감한 목소리로 묻자 오즈도크가 신음을 참으며 답했다.
“전설 속 마물이로군. 이런 곳에 묻혀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살려주시면, 절 유용하게 쓰실 수…… 커헉!]이번엔 복부에 주먹이 꽂혔다. 가볍게 내지른 듯 보이는 주먹은 복부 반대편까지 충격파를 일으켰고, 남자는 그 충격파가 다 퍼지기도 전에 도약해서 발꿈치로 내려찍어 놈을 다시 지상으로 떨궜다.
쿵!
머리통이 땅바닥에 처박힌 오즈도크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금방이라도 떨림이 멎고 죽을 것처럼 보였다.
“미리 경고하는데, 엄살은 용납하지 않겠다.”
물론 남자가 그 모습을 딱하게 여기는 일 따윈 벌어지지 않았다.
애초에 무라칸이 대기하고 있으니 끝까지 싸우면 오즈도크가 승리할 확률은 매우 희박했으나, 남자의 등장으로 그것마저 완전히 사라져버린 셈.
오즈도크가 어기적대며 땅에 처박힌 머리를 꺼냈다.
그리곤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쉰 후.
남자를 향해 냅다 무릎을 꿇고 두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비는 모습을 보였다. 두 손을 어찌나 빨리 비벼대는지 잔상이 남을 지경.
“그래, 이제 좀 본인의 위치를 자각한 것 같군.”
[이 불쌍한 마물이 죄가 있다면, 잠에서 깨어난 것뿐입니다. 저는 세상에 다시 혼란을 야기할 생각이 없으며, 그저 오랜만에 향긋한 먹이, 그, 그러니까 사람은 아니라 금입니다. 아무튼 먹이에 이끌려…….]오즈도크가 구구절절 자신의 사정을 늘어놓자 진으로선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방금까지 자신과 메리를 수세에 몰아붙였던 마물이 이토록 비굴해질 줄은 상상한 적 없는 것이다.
[……하여, 선량하고 조용히 살겠습니다. 그러니 절 그냥 놓아주시면.]“야, 야. 오즈도크. 이 새끼가 어디서 약을 팔아. 선량? 조용? 그게 네놈 입에서 나오는 게 가당키나 하냐?”
무라칸이 진 쪽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상당히 어처구니가 없는 듯 잔뜩 미간을 찡그린 채.
[먀먀!]슈리도 동의한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슈리 역시 전성기 오즈도크의 악명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물론 자신의 옛 주인에 비하면 귀엽다 못해 하찮은 수준이었지만 말이다.
“천 년 전, 네놈이 심심풀이로 잡아먹거나 죽인 인간이 몇이야? 사르바 왕국에선 네놈과 부패한 인간 위정자들이 합작으로 또 몇 사람을 굶겨 죽였고? 자는 동안 꿈에 그 원혼들이 나타나진 않든?”
[너는, 설마. 무, 무라칸!? 그렇다면, 이분께서도 룬칸델의 기사인가!?]오즈도크가 흠칫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이분’이라 칭한 것은 당연히 남자를 뜻했다.
오즈도크의 기억 속 무라칸은 여전히 전성기 하늘의 패왕으로 남아있었다. 사르바 왕국을 통째로 인질로 잡지 않았다면, 웬만해선 눈도 마주치지 말아야 하는.
후비적, 후비적.
무라칸이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파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직 덜 맞은 모양이야. 내 이름을 그렇게 함부로 다 부르고?”
[미, 미안. 아니, 죄송합니다. 제가 오랜만에 깨어나서 그렇습니다.]“그래, 그렇게 나오는 게 옳지. 그럼 이제 가자.”
[어딜…… 갑니까?]“지옥으로 가야지. 지상은 너처럼 업보가 많은 마물이 살기에 썩 어울리지 않는 곳이거든. 가는 길에 내단은 내놓고 가라. 어떻게, 알아서 할래. 아니면 내가 해줄까?”
남자에 이어, 무라칸을 두려워하는 모습에 진은 또 한 번 묘한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천 년 전의 존재들이 무라칸을 어려워하는 태도는 도무지 적응이 되질 않았다.
[그,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그리고 제 내단은 어디에 쓰시려고…….]“이제 죽을 놈이 궁금한 것도 많군.”
성큼성큼 무라칸이 걸음을 옮기자 오즈도크는 거의 펑펑 울음을 쏟아낼 기세였다.
오즈도크와 다섯 걸음 정도가 남았을 때, 남자가 무라칸의 앞을 가로막았다.
“뭐냐?”
“인사가 늦었습니다, 무라칸 님. 룬칸델의 검이 가문의 수호룡을 뵙습니다. 저는 투벤이라고 합니다.”
남자가 이름을 밝히며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무라칸은 투벤의 태도가 매우 흡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뭐야, 넌. 흑기사냐?”
“검은 투구를 벗은 건 좀 되었습니다만, 아직 그 시절과 비슷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래, 고생이 많다. 일단 비켜봐, 저것 좀 끝장내게.”
“죄송합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왜지?
무라칸은 이유 같은 걸 묻지 않았다.
“그럼 강제로 처리하는 수밖에.”
“물러나주실 수는 없는 겁니까?”
“내가 저놈 내단을 갖다 쓸 곳이 좀 있거든. 나와.”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무라칸을 쳐다보는 투벤.
그의 머릿속에선 주군이 이럴 때 어떤 판단을 내렸을지, 빠르게 계산이 오가고 있었다.
“하, 나, 참. 다들 저랑 막내는 안중에도 없네요?”
메리가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목소리를 높였다.
“7기수. 마찬가지로 인사가 늦었군요.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보다시피 잘 지냈어요. 그런데, 저는 설마 제 싸움에 이렇게 난입한 분이 투벤 경. 아니, 투벤 아저씨일 줄은 몰랐단 말이죠.”
메리의 눈동자가 날카로워졌다.
“제가 아는 투벤 아저씨라면, 함부로 제 사냥감에 손을 댈 리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안 그래요?”
투벤은 과거 로사의 명을 받고 메리의 검술 수련을 도운 일이 있었다.
가르침이 길진 않았으나, 투벤은 당시 메리가 가진 야성을 매우 높이 평가했었다.
그렇기에 시론이 직접 비기를 전수한 사실을 보고도 그다지 놀라지 않았고 말이다.
우우웅……!
메리의 검이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오러로 환하게 물들었다.
사실 그녀는 투벤이 등장한 순간부터 나서서 한 마디를 하고 싶었으나, 역류하려는 오러를 억누르느라고 가만히 있던 것이다.
“다들 착각하시는데, 저놈은 나와 막내의 사냥감입니다. 전대 흑기사가 아니라, 아버지가 직접 오셨다 할지라도 내 사냥감에 손을 댈 순 없어요.”
메리는 이제 오즈도크가 아니라 투벤과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었다. 바로 그런 점들 때문에 시론으로부터 늘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던 것이고 말이다.
그러나, 지금 하는 말이 전부 진심은 아니었다.
‘누님도 허세라는 걸 부릴 줄 아는 분이었군.’
투벤의 난입에 메리가 진짜로 화가 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녀는 사랑하는 막냇동생이 얻어야 할 보상, 즉. 오즈도크의 내단을 지켜주기 위해 허세를 부리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투벤 경이 물러나주지 않으면, 꼼짝없이 내뱉은 말을 지키긴 해야 하는데.’
투벤을 상대로 자신과 무라칸, 메리가 힘을 합치면 이길 가능성이 있을까?
얼른 계산이 되지 않는 와중, 무라칸도 메리의 허세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그래, 메리가 옳은 말을 했네. 갑자기 등장해서는 남의 싸움에 훼방을 놓아선 안 되지.]본모습으로 변신한 무라칸이 투벤과 오즈도크를 내려다보았다.
오즈도크는 매 순간 생사의 강을 위태롭게 넘나드는 기분이었다. 자신을 죽이려던 꼬마들을 제압하려 했더니 웬 초인에게 폭행을 당하다 싹싹 빌었고, 이제는 꼬마들에 무라칸까지 합세해 위협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네 임무가 뭔지는 몰라도. 저 마물은 살려둬봤자 세상에 좋을 게 하나도 없는 놈이거든.”
“제 성격 잘 아시죠? 투벤 아저씨. 이럴 때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는 것. 설사 그게 허망한 개죽음으로 이어진다 할지라도.”
하는 수 없이.
진도 시그문드에 뇌기를 휘감으며 메리의 옆에서 자세를 잡았다. 설마 최강이라 칭해지는 전대 흑기사에게 이런 식으로 으름장을 놓는 건 상상해본 적 없지만 말이다.
“그냥 돌아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투벤 경.”
“12기수에게 이렇게 무모한 구석이 있는 줄은 몰랐군요.”
“하하, 투벤 아저씨. 이거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한 놈은 아니에요. 할 거면 빨리 합시다, 흥이 식으려고 하네.”
메리가 안광을 희번덕이며 검을 뻗으려는 순간.
[자, 잠깐만요!]방금까지 극한의 집중력을 발휘해 고민을 막 끝낸, 오즈도크가 입을 열었다.
[그, 우리 모두의……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무라칸과 룬칸델의 자녀분들께선 제 내단을 가져가시고, 여기 투벤 경은 살아있는 저를 데려가시면 되는 문제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