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00)
제 444화
119화. 검황성의 연회(6)
검황성 중앙 대련장은 세상에서 가장 크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이란의 권속이 아닌 이상 평소 찾아올 수 없는 곳이기도 했다.
대련장으로 들어선 외인들은 터무니없이 넓고 길게 펼쳐진 대련장에 저도 모르게 헛숨을 삼켰다.
대련장 가운데에 하이란의 기사들이 도열하고 있었다.
론이 손짓하자 기사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관객석을 가로막았다.
관객석이 빠르고 질서정연하게 채워지고 있었다.
진과 라타는 대련장 한가운데에서 서로를 마주 보았고, 론은 그들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그토록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데도 숨소리 하나조차 들리지 않았다. 다들 마음속으로 응원하는 인물이 승리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라타 프로치, 진 룬칸델.”
“예, 론 경.”
“예.”
“둘 사이에 어떤 배경이 있는지 나는 모르오. 그러나 선배 무인으로서, 검황성의 주인으로서 그대들에게 한 가지 충고를 해줘야겠군.”
“말씀해주십시오.”
“상대를 불구로 만들거나 죽이는 일은 절대로 삼가도록 하시오. 이를 어기는 자는 내 직접 검을 맞대주도록 하겠소.”
사실상 라타에게 하는 이야기였다. 라타가 일방적인 적의를 드러내고 있던 건 둘 사이의 사정을 모르는 이들이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연회에서의 살인은 룬칸델의 외나무다리 파티에서도 엄격히 금하는 일이었다.
“명심하겠습니다.”
“승자에겐 영광이, 패자에겐 배움이 있을 터. 내 손자와 여기 모인 이들의 격에 어울리는 멋진 싸움이 되기를 기대하지.”
론이 관객석 쪽으로 물러서자 한 기사가 대련장 한쪽에 있는 거대한 북을 힘껏 내리쳤다.
두우웅-!
결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리고 북소리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라타가 선수를 뻗었다.
페이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쌍검을 사용하는 모습.
쩌엉-!
두 자루의 칼날과 시그문드가 맞물리며 머리가 울리는 굉음이 일었다.
‘예상하긴 했지만, 꽤나 묵직하군.’
두 사람이 딛고 선 단단한 바닥에 균열이 일었다. 관객들 중 초장부터 대련장이 부서질 만큼 강한 공방이 오갈 줄 몰랐던 자들은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보다 한참 선배인 데다 무명도 드높으시니, 선수를 양보해주실 줄 알았는데 말이죠.”
“그런 아량을 베풀 만큼 마음에 드는 놈이 아니어서 말이지.”
씨익, 미소를 짓는 진.
“뭐, 선후배나 무명 따위 따지지 않고 순수하게 무위의 격으로 보면 이게 맞는 그림이긴 합니다.”
그 말에 라타는 마냥 분노할 수 없었다.
검을 섞자마자 느낀 것이다.
‘검의 정원에서 그 난동을 부렸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군.’
쌍검 ‘귀신’의 칼날이 진이 지닌 강대한 기운에 부르르 떨고 있었다. 검신의 떨림으로부터 이어지는 전율이 서늘하게 라타의 등허리를 지나쳤다.
강하다.
라타는 본래 진이 운이 좋아서, 혹은 자신의 부하들이 뭔가 실수를 해서 살아남았다고 생각했었다.
자신 몰래 임무에 참여한 동생은 둘째치더라도, ‘그리몰’이 그 곁을 지키고 있었으니 실패할 리 없다고 여긴 것이다.
그러나 아니었다.
‘애초에 나와 직속 수하들이 직접 나서야 할 일이었다. 혹은 그리몰 같은 대장급으로만 인원을 짰어야 했어.’
12기수라는 이름의 무게감을 얕보았다.
세간에 알려지진 않았으나, 과거 라타는 룬칸델의 다른 기수와 일전을 펼쳐 승리한 적이 있었다.
쾅, 콰앙, 크직!
계속해서 세 자루의 검이 뒤섞이며 폭음을 일으켰다.
진이 강한 것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라타의 분노가 사그라진 것은 아니다.
또한 여전히 그는 자신이 진에게 질 리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라타 역시 지금껏 만나온 수많은 강적들을 매번, 단 한 번도 빠짐없이 꺾어왔던 인물이었다.
절대로 이길 수 없을 것만 같던 적들도 결국 무릎을 꿇렸었다. 눈앞의 룬칸델 12기수의 미래도 다르지 않을 터였다.
반면 진은 라타를 상대하며 그만큼 진한 감상을 느낄 수 없었다.
절대 상대를 죽여선 안 된다는 론의 엄명을 감안하더라도, 라타의 검이 아주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매 순간 쌍검이 코앞을 스치거나 귀밑을 찌르고 있는데도 말이다.
‘……내가 요즘 너무 강한 적들을 상대로만 싸운 건가.’
룬칸델 전체를 상대로 전력으로 싸웠던 게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았다.
그 싸움에서 진은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었고, 그건 곧 그만큼 성장의 벽을 넘었다는 의미였다.
말하자면.
진의 검은 그때보다 한층 더 완숙해졌다. 이 나이에 이룰 수 없는 통찰이 담겼고, 경지에 이른 이들도 쉽사리 읽을 수 없는 깊이가 배었다.
라타의 검이 움직일 궤적이 미리 보이는 듯했다.
“룬칸델의 12기수가 밀리는 것 같군.”
“아직 귀신대장을 넘기엔 이르다.”
경지에 닿지 못한 이들은 그렇게 결과를 점쳤다.
그러나 싸움의 흐름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는 무인들은 놀라운 마음을 간신히 감추고 있었다.
“저게 정녕 12기수란 말인가?”
“이대로라면 반드시 귀신대장이 패배할 것이다.”
엇갈린 평가가 오가는 와중, 론은 확신하고 있었다.
진과 라타는 이미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저 악마 같은 놈은 이미 초인의 반열에 오르고 있었군…… 귀신대장은 꽤 대단한 잠재력을 갖고 있으나, 아직 범인들의 세계에 머무르고 있다.’
범인 최강, 초인 최약.
이를테면 그런 싸움이었다. 겉보기엔 진이 뒷걸음질을 치고 있으나, 그건 수세에 몰리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여유롭게 공격을 받아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론이 고개를 돌려 손자를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단테는 신을 영접한 신자라도 된 듯 거의 넋이 나간 모습이었다.
‘질투나 경쟁심을 느낄 법도 하건만, 그저 네 벗이 이룬 성취에 신이 난다는 것이냐.’
묘한 기분이 되었다.
단테가 그런 눈빛을 보내는 사람은, 세상에 자신밖에 없으리라 여겨왔던 것이다. 실제로 어린 시절의 단테는 항상 론을 그렇게 바라보았었다.
자신이 결국 닿아야 할 종착점으로 여겨왔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문득 론은 단테와 진의 가장 큰 차이점 한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진 룬칸델은, 저 악마는 내 사랑스러운 손자와 달리…….’
종착점이 존재하지 않는다.
놈은 제 아비이자 세계 최강의 기사인 시론 룬칸델을 그저 하나의 ‘벽’으로만 인식해왔을 것이다.
자신이 닿아야 할 극점은 그 너머 어딘가에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실로 오랜만이었다. 타인의 싸움을 보며 그런 감정을 느낀 것은.
스걱-!
돌연 핏물이 허공에 호를 그었다.
진의 피였다. 쌍검 귀신이 진의 손등을 벤 것이다. 조금만 깊었어도 손이 잘렸을 터.
진이 황급히 거리를 벌렸다.
라타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는 뜻이다.
‘차라리 파고들어 승부수를 띄우지 그랬나, 12기수!’
쌍검 귀신이 사선으로 떨어졌다. 이미 자세가 흐트러진 진으로서는 그 검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베었다.
아니, 베었어야 했다. 쌍검 귀신이 허공을 긁은 순간, 라타는 순간적으로 세상의 시계가 멈춰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없다, 분명 완벽한 거리였는데……!’
다음 순간 라타의 눈에 보인 것은, 하나의 점.
진의 칼끝이었다. 대체 어느 순간에 이런 매서운 찌르기를 내지른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핏!
라타의 뺨에서 핏방울이 튀었다. 시그문드가 닿기 직전에 고개를 돌려 화를 면한 것이다.
그 회피 역시 라타 정도의 무인에게나 가능한 신기였다.
그러나 라타는 알고 있었다.
‘내가 치명상을 면할 수 있도록, 일부러 얼굴을 향해 찔렀다.’
싸움에 있어, 얼굴은 당연히 최악의 급소 중 하나다.
그러나 그만큼 보호하기 가장 수월한 신체이기도 했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몸을 살짝만 숙여도 얼굴로 향한 공격은 대부분 처리할 수 있다.
때문에 무인들의 싸움은 목이나 얼굴보다 다른 부위에 치명상을 입고 끝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만일 진이 얼굴이 아닌 심장을 노렸다면. 어떻게 대응했어도 승기를 넘길 수밖에 없는 부상을 입었을 것이다.
꾸드득……!
굴욕감에 치가 떨렸다.
“제대로 해라, 진 룬칸델.”
“이번엔 무엇이 문제입니까?”
“일부러 얼굴을…….”
“제가 얼굴을 노린 건, 다른 쪽보다 그게 안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심장이나 복부를 노렸다면, 라타 님은 죽음을 무릅쓰더라도 반격을 했을 테니.”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렇게 되면 진 역시 어떤 부상을 입을지도 모르는 데다, 한쪽은 반드시 죽거나 그에 준하는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그리고 제가 제대로 하면, 라타 님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분하게도.
라타에겐 그 말이 ‘오만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저 자신보다 명백히 강한 인간의 당연한 평가로만 들렸다.
“적어도 이 대련장에선 그렇다는 뜻이죠. 이곳이 전장이나, 제 침소였다면 또 이야기가 다를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귀신대의 존재 의의는 기사들의 일대일 결투에 있지 않다.
보다 강한 상대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것에 특화된 용병 집단. 라타는 그 수장이었다.
그렇다고 개인의 무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나, 상대가 좋지 않을 땐 어쩔 수 없는 법이다.
한동안 두 사람이 가만히 서로를 쳐다보았다.
객석 일부는 그것을 새로운 탐색전으로, 일부는 그것을 승패를 인지한 침묵으로 읽고 있었다.
그리고 라타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패배한 것이 부끄러운 게 아니었다. 상대의 실력을 몰라보고 천둥벌거숭이처럼 시비를 걸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운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눈앞의 애송이보다 작은 그릇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진은 암살자로 찾아온 제 동생을 살려주었고, 그에 대해 아직까지 자신에게 지나친 요구를 하지도 않았다.
라타는 동생을 되찾겠다는 마음에 지레 겁을 먹은 개처럼 짖어댄 것이다.
정적이 흐르는 와중.
진은 갑자기 라타로부터 엄청난 기운이 방출되는 걸 느꼈다.
‘승패에 승복한 눈빛이었는데?’
라타 역시 진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아니라, 진에게서 위험한 기운이 뻗어지고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라타는 결과에 따르는 무인의 마음으로, 자신의 신체 한 곳을 베라고 말할 참이었다.
진이 분노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위험한 기운은 진의 것도, 라타의 것도 아니었다.
바로 그들의 발밑에서 시작되고 있는 것이었다.
“피해!”
“피해라!”
그 사실을 깨달은 두 사람이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다음 순간, 대련장 바닥이 통째로 갈라지며 거대한 무언가가 치솟았고, 론은 이미 검을 뽑아 그것을 저지할 준비를 끝마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