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93)
제 444화
137화. 모두 좋은 계획들을 갖고 있었으나(5)
망령대들은 거리가 있어 듣지 못했으나, 흑기사 제인은 진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12기수, 적절하지 않은 발언을 하는군.”
제인이 말했다.
“흑기사께선 나서지 말아주십시오. 가문에 헌신한 검은 투구까지 해하고 싶지는 않으니.”
복면 속 제인의 눈동자가 커졌다.
1년 전 몬과 함께 흑기사가 된 후, 가문의 그 누구도 자신에게 이런 식으로 말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예의와 법도를 들먹이며 함부로 반박할 상황이 아니었다.
명분도 없고, 앞에는 네 명의 망령대가 진을 치고 있기 때문이었다.
‘2기수와 우리가 정보를 숨기고 있었다는 걸 다 알고 왔다. 게다가 허세나 겁박 따위가 아니야. 금고 위치를 알리지 않으면 진짜로 2기수를 죽일 생각이다.’
그간 제인이 직접 보고 전해 들은 진은 그야말로 서슴없는 인물이었다. 방금 스스로 밝힌 것처럼 빈말을 결코 던지지 않은 부류이기도 했다.
-처음부터 4기수와 12기수에게 2마탑의 정보를 공유하지 않은 게 걸리긴 하지만 말이오.
몬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때 조슈아에게 더 이야기하지는 않았으나, 사실 몬과 제인은 둘 다 진의 이런 면모를 우려하고 있었다.
‘게다가 4기수는 어떤가. 2기수에 대한 원한이라면 오히려 이쪽이 훨씬 깊다. 까딱하면 정말 위험할 수 있겠어. 몬이…… 와야 한다.’
같은 룬칸델, 아군이 도착했건만 조슈아와 제인은 방금까지 적들에게 밀리고 있을 때보다 오히려 더 큰 압박감을 느꼈다.
“임무 방해?”
조슈아의 말에 진의 눈동자가 한층 더 어둡게 물들었다.
“적들이 눈앞에 있으니 아직 팔이 몸에 붙어있는 겁니다. 그러나 다음에도 의미 없는 대답을 하면 잘릴 겁니다.”
디푸스로서는 어린 시절, 한창 루나가 날뛸 때를 제외하면 그간 수천, 수만 번 상상으로만 겪어온 광경이었다. 조슈아가 이렇게까지 몰아 붙여지는 모습은.
‘조슈아의 이런 꼴은 정말 오랜만이군. 지금 죽여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기는 한데, 막내의 판단을 지켜보는 게 좋겠어.’
다시 망령대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디푸스와 제인, 무라칸이 연사로 쏟아지는 마법들을 막아냈는데, 무라칸은 최대한 힘을 숨기라는 진의 말을 의식해 영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때문에 망령대는 무라칸이 룬칸델의 흑기사 중 하나이리라 짐작하고 있었다.
전투의 소음 속에서 진과 조슈아의 시선이 맞부딪치고 있었다.
“……17층이다.”
이윽고 조슈아가 그렇게 대답하며 품속에서 한 장의 종이를 꺼내 내밀었다. 금고의 위치와 진입로가 상세히 표시된 종이였다.
“이게 전부가 아닐 텐데요, 2기수.”
“무슨 소리냐?”
“결계를 무시할 수 있는 수단. 그것도 내놓으십시오.”
“그런 건 없다.”
“머리가 나름 굴러가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말귀를 못 알아들으시는군.”
샤악! 챙-!
진은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고, 조슈아는 일격을 받아내며 한 걸음을 물러섰다.
막 전투를 시작한 룬칸델들과 망령대들도 일순 진과 조슈아 쪽을 쳐다보았다.
“막내, 네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 줄은 아느냐?”
“방금 말했듯이, 임무 방해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2기수께선, 킨젤로가 테러를 시작해 상황이 급변했을 때라도 2마탑에 대한 정보를 나와 둘째 형님에게 알렸어야 합니다.”
분노에 젖어 겨우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조슈아와 달리 진은 차분한 목소리였다.
“……무얼 믿고 이러는 것인지 모르겠군. 막내, 너는 잘 알 텐데. 지금 나를 치면, 너는 나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걸 잃게 될 거다.”
“그건 상황이 끝나봐야 알겠죠.”
“나와 달리, 너에겐 다음 기회가 없어.”
그 말에 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잘 알고 있군요. 복제인 2기수와 달리 내게는 목숨이 하나뿐이니. 그렇다면, 당신이 해야 할 역할은 명확하지 않습니까?”
내게 모든 걸 넘기고, 가문을 위해 죽으십시오.
진이 뒷말을 이으며 재차 검을 휘둘렀다. 맞붙은 그들은 그저 힘겨루기를 하는 듯 보였으나, 검에 맺힌 극도로 응축된 오러들은 한쪽이 밀리면 언제든 폭발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때처럼 화산을 펼치든, 다른 수가 있다면 그걸 사용하든. 어떻게든 적들의 시선을 끌며 시간을 버십시오. 설계도는 내가 확보해서 검의 정원으로 가져가겠습니다.”
쩌엉-!
조슈아의 오러가 밀리며 브라다만테에서 한 차례 폭발이 일었다.
방금까지 망령대와 격한 전투를 치른 탓에 조슈아는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그는 뒷걸음질을 치며 진의 다음 검을 받아냈고, 급히 자세를 가다듬었다.
기묘한 전투였다.
전장을 양분해 앞에서는 룬칸델과 지플이, 뒤쪽에서는 룬칸델과 룬칸델이 싸우고 있는 것이다.
“네노옴……!”
“수련에 좀 매진하지 그러셨습니까? 3년 전 청새 군도에서는 분명 2기수께서 저보다 더 강했는데 말이죠. 망령대와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는 걸 감안해도, 검에 영 깊이가 없군요. 곧 지원군이 더 올 겁니다, 시간이 없다는 뜻이죠. 어서 결단을 내리십시오, 2기수.”
조슈아의 검이 무딘 건 단지 체력 저하 때문만은 아니었다.
번뇌하고 있는 것이다.
소타 사막에서 지금껏 변수에 시달린 것은 진뿐만이 아니었다. 조슈아 역시 갑작스럽게 계속되는 변수와 미지수에 육체와 정신이 갈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탑으로 들어서자마자 망령대와 마주친 것도 모자라 이런 꼴까지……!’
예언자가 만들어준 열쇠는 마탑의 결계를 무마시켜주었으나, 금고엔 아직 가보지도 못했다.
때문에 조슈아 역시 고민하던 참이었다. 차라리 자신이 시간을 벌고, 제인에게 뒤를 맡기는 게 옳은지를 말이다.
진의 말대로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진이 물러나지 않는다면, 이대로 계속 싸움을 속행한다면. 결국 룬칸델은 아무런 소득 없이 기수와 흑기사들을 잃는 결과를 맞이할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이곳에서 진이 사로잡히거나 죽으면 내 예언은, 잘못된 것이 된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이조차 예언의 한 조각, 혹은 분기점일 테지.’
끄드득, 악다문 어금니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각기 형태와 방식은 다를 테지만. 또한 마음이 모두 옳거나 훌륭하다고 할 수도 없을 테지만.
당연히 모든 기수들은 그 무엇보다도 가문을 우선하고, 사랑했다. 조슈아는 그중에서도 룬칸델에 미치도록 집착해온 기수였다.
그는 언제나 룬칸델을 위한 선택을 하는 인물이었다.
적어도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말이다.
‘막내의 말을…… 들어야 한다.’
지금 막내와 검을 섞을 일 없이, 처음 막내가 말을 꺼낸 순간부터 응했어야 했다.
다만 그가 가장 닮고 싶던, 닿고 싶던 인물들로 인해 오랜 시간 지독하게 훼손되어온, 한 가지 감정이 또다시 무너지는 걸 느끼고 있기에 잠시 판단력이 흐려졌을 뿐이었다.
자존심.
이번에도 조슈아는 가문을 위해 그 감정을 포기하기로 결심을 굳혔다.
휙!
조슈아가 품속에서 열쇠를 꺼내 진에게 던졌다.
“금고 열쇠다. 결계는 그 덕에 무시할 수 있었다.”
“가관이군. 어디서 얻었지?”
“그것까지 알려줄 필요는 없을 것 같다만. 그 물건이 진짜인지는 의심하지 마라. 아니, 넌 마력을 읽을 수 있으니 그럴 리 없겠군.”
금고 열쇠는 일종의 아티팩트다.
열쇠 속에 흐르고 있는 마력의 흐름은 바깥에 있던 결계와 유사한 구석이 많았다.
게다가 고작 열쇠 정도 크기에 이토록 복잡한 마력을 심어두는 것은 지플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게 있었으면서, 우릴 미끼로만 사용할 생각이었다고?”
“너와 디푸스라면 내가 설계도를 얻는 사이 충분히 탈출해 복귀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가문의 수호신도 함께하고 있으니.”
“후.”
한숨을 내쉬는 진.
“마지막에라도 나쁘지 않은 선택을 하긴 했지만, 이것 하나는 말해줘야겠군. 만일 이번 임무가 실패한다면, 그건 네놈의 욕심 때문이었다는 걸 알아둬라. 복제를 쓰는 주제에, 진짜 기수들과 흑기사들을 이런 식으로 위험에 빠뜨려?”
“욕심이라, 마음대로 생각해라. 하나, 내가 가문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지금 네게 열쇠를 줄 일은 없었을 것이다.”
조슈아가 뒤돌아서며 말했다. 방금까지 검을 겨누던 진이 자신의 등을 찌르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진 또한 지금 자신의 복제를 죽여 사사로운 앙금을 갚는 대신, 가문을 위한 일을 행하리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당장 금고로 가라. 너도 이미 예상했겠지만, 이곳에 망령대 네 사람만 남아 있는 건 함정이 아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만, 킨젤로에 대비하느라 그랬으리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더군. 그러니 금고엔 분명 설계도가 있을 거다.”
조슈아의 검을 휘감은 오러가 한층 밝은 빛을 내기 시작했다. 결단을 내렸고, 번뇌가 사라졌으니 다시금 본연의 무위를 되찾은 것이다.
“……설계도를 확보하면 신호를 주겠습니다. 그때 흑기사와 함께 탈출하십시오.”
“그러도록 하지.”
제인은 두 사람의 분위기를 언뜻 살펴보고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정확히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들을 수 없었지만, 흐름을 보아하니 2기수가 시간을 벌고, 12기수가 설계도를 얻기로 했나 보군.’
적지에서 룬칸델 기수끼리 서로를 죽이는 일이 없어졌다는 사실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제인과 조슈아는 망령대에게 일방적으로 밀리고만 있지 않았다.
수적 열세 속에서도 망령대의 체력을 이미 상당히 빼둔 상태였고, 덕분에 무라칸과 디푸스는 비교적 손쉽게 망령대에 타격을 입히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어떻게든 버티는 것이다. 12기수가 임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12기수가 4기수나 수호신, 둘 중 하나라도 남겨주면 더할 나위 없을 테지만. 모두 떠나더라도 이전보다 망령대와의 전투는 훨씬 수월할…….’
제인이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쿵, 쿵…….
돌연 그들이 서 있는 층의 철문 바깥에서부터 육중한 울림이 전해졌다.
마치 어떤 거대한 생명체가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울림이었다. 그 울림에 약속이라도 한 듯 전투가 잠시 멈추었고, 모두의 시선이 철문에 닿고 있었다.
이윽고 울림의 주인공이 장내로 들어섰다.
완벽하게 재단한 정복을 갖춰 입은 거구의 사내였다. 옷 따위론 가릴 수 없는, 도저히 사람의 육체처럼 보이지 않는 거대하고 단단한 근육들.
지플의 2등 집사장이자 산드라의 전속 집사, 헤도였다.
그리고 하얀 장갑을 낀 그의 손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한 남자의 머리가 들려 있었다.
“아주 어리석지는 않은 망령대원들이 조금 남아 있었군.”
툭.
남자의 머리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담배를 꺼내며, 헤도는 그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