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02)
제 555화
139화. 협박(2)
* * *
룬칸델들과 산드라도 저편 상공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보다 조금 떨어진 아래, 지상 일대에서도 폭발이 계속되는 상황이었다.
지하 건조장에서도 킨젤로와 지플 사이에 전투가 이어지고 있던 것이다.
여전히 상황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요나는 기절한 채 진에게 업혀 있고, 조슈아와 디푸스, 제인 역시 방금까지 치른 전투에서 상당한 내상을 입었다.
건조장에 남았던 흑기사 몬의 생사도 당장은 확인할 길이 없었다. 일행 중 그나마 평소와 비슷한 컨디션으로 전투에 임할 수 있는 건 진과 무라칸뿐.
게다가 루테로 마법 연방을 떠나기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꺄하핫, 진 씨. 아무래도 헤도가 잘 둘러댄 모양이에요. 고모의 직속 마법사들이 엉뚱한 방향으로 떠난 걸 보면 말이죠.”
산드라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으나, 망령대는 바보가 아니다.
쿠타 숲 쪽에서 도주 흔적이 발견되지 않으면 분명 방향을 틀고 수색 영역을 대대적으로 넓힐 터.
‘비상 사태 또한 이미 옛적에 선포했을 테니, 망령대를 제외하더라도 소타 사막 인접 지역 전체에 봉쇄령과 경계령이 내려졌을 거다.’
그 모든 걸 뚫고 가문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킨젤로가 우리 도주에 도움을 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킨젤로.
그야말로 시의적절하게 나타난 또 다른 적.
진은 함선 그르닐의 공교로운 등장이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방금까지 2마탑에서 벌어진 상황을 아주 자세하게 인지하지는 못했을 테지만, 적어도 놈들은 우리가. 아니, 요나 누님이 금고를 탈취한 상황을 알고 있다. 누님은 놈들의 의뢰를 받은 것이니.’
기절하기 직전, 요나는 진에게 ‘두 가지’ 물건을 건넸다.
하나는 함선 설계도였고, 하나는 처음 보는 종류의 작은 기계였다.
기계는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판자 형태로, 흔들어보면 내부에서 톱니 같은 것이 복잡하게 얽히는 소리가 났다.
용도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예언자에게 미리 설계도와 더불어 기계의 존재까지 전해 들은 조슈아도, 산드라 지플도 정확한 사용처를 모르는 기계였다.
다만 설계도와 함께 있던 것인 만큼 몹시 중요한 물건이라는 건 확실했다.
물건 자체가 풍기는 기운도 묘하게 범상치 않고 말이다.
‘킨젤로는 우리가 드락카의 지원군에게 당하는 걸 막으려고 그르닐을 보냈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킨젤로 또한 애초에 금고를 털기 위해 이 난리를 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그들로서는 룬칸델이 얻은 물건들을 빼앗을 필요가 있었다.
룬칸델이 지플 본대에 사로잡히면 두 번 다시는 그 물건들을 얻을 수 없게 될 테니 말이다.
일행을 찾아오는 역할을 맡은 킨젤로가 누구인지, 그리고 언제 오는지가 중요했다.
현재 전력으로 감당할 수 있거나 대화가 가능하거나. 그중 하나라도 조건을 충족하는 인물이 와주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인물이 오더라도 아주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설계도와 기계가 있는 이상, 우릴 찾아오는 킨젤로와 어떤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주도권은 내게 있다.’
진이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산드라는 쉴 새 없이 목소리를 냈다.
“아아, 작은 언니만 아니었다면 자기 등에 업혀 있는 건 나였을 텐데 말이죠. 아쉽긴 하지만 이렇게 곤히 기절한 사람을 걷게 할 수는 없으니…… 팔짱이라도 낄까요?”
그런 산드라를 바라보는 다른 룬칸델들은 여러모로 심란한 마음을 간신히 감추고 있었다.
‘어째서 산드라 지플이 막내를 도우려는 것이지? 산드라 쪽 분위기만 보면 정말 죽고 못 사는 신혼 부부라고 생각될 정도다. 덕분에 2마탑을 쉽게 빠져나오긴 했다만, 이게 맞는 건가 싶긴 하군.’
‘산드라 지플이 나서지 않았어도 아마 막내와 무라칸은 2마탑을 빠져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납득은 안 가지만 헤도는 산드라 지플의 명령을 절대적으로 따르고, 분명 산드라가 길을 열라고 명령하기 전까지 나와 디푸스, 제인은 죽이려고 했었으니.’
산드라가 아니었다면 진과 무라칸을 제외한 나머지 룬칸델은 확실히 전사했다.
디푸스와 조슈아는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요나의 활약을 감안하더라도 헤도는 기수들이 어쩔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진도 그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산드라 지플.”
“응, 진 씨.”
“난 네 연인도 아니고, 남편은 더더욱 아니다.”
도저히 산드라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룬칸델과 지플이라는, 결코 함께할 수 없는 서로의 출신은 제쳐두더라도 애초에 그녀의 일방적인 애정은 특이하다는 표현 정도로는 설명이 안 되는 영역이었다.
두 사람은 가이파 군도에서 처음 만났을 뿐이었다. 그것도 적으로.
산드라의 행동이 무섭거나 심각하게 불쾌하지는 않았다.
다만 진은 그녀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도움만 받는 상황을 달갑게 여길 수 없었다.
“그러나 네 덕에 형제들과 흑기사가 목숨을 건진 것은 사실이니, 어떤 식으로든 대가를 치르고 싶군. 필요한 것이 있다면 요구해라.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면 탈출한 후 실행하도록 하겠다.”
진의 담담한 목소리에 산드라가 처음으로 입을 닫았다.
아무리 적이라곤 하나, 또한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기이한 행동을 하고 있다고는 하나.
무조건적으로 도와주려는 태도를 보이는 이를 이토록 차갑게 대하는 건 마음이 편치 않은 일이었다. 말을 하면서도 진은 양심, 혹은 그 비슷한 무언가가 날카롭게 찔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선을 그어야 했다. 그래야만 하는 위치에 있다고, 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세상 모두가 똑같이 생각할 것이다.
산드라는 진의 담담한 목소리에 상당히 충격을 받은 듯 보였다.
“오…… 꼬마. 아주 싸늘한 대사네. 멋있다, 멋있어.”
조용해진 산드라의 모습에 마음이 불편해진 무라칸은 괜히 그런 말을 내뱉었다. 그 역시 삼천 년을 넘게 살아오며 산드라 같은 인물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산드라가 침묵했던 이유는, 진의 건조한 태도에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맞아요, 무라칸 님. 역시 잘 아시네요, 너무 멋있어, 우리 진 씨…….”
그녀는 그저 진의 냉철한 모습이 충격적으로 멋있다는 생각이 들어 입을 닫았을 뿐이었다.
‘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이런 반응이 나올 수 있는 거지?’
충격의 연속. 진은 물론이고, 나머지 모두의 등허리에 소름이 돋는 대목이었다.
“볼수록 더 매력적이야! 더 확실해졌어요,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은 바로 진 씨를 사랑하기로 한 것!”
“아니, 그게 무슨.”
“반드시 진 씨랑 결혼할 거예요. 맞아요, 아직은 연인도, 부부도 아니죠. 내가 조금 앞서갔던 것 같아요.”
“그…… 조금이라고?”
진은 하마터면 말을 더듬을 뻔했다.
“진 씨. 내가 당신을 사랑하기로 결정한 것엔 이유가 없어요. 그러니 대가를 바라지도 않고, 다른 많은 이들의 사랑이 그렇듯 굳이 이해할 필요도 없지요.”
산드라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뒷말을 이었다.
“그냥 지루한 인생에 불꽃이 튄 거죠. 마른하늘에서도 때때로 날벼락이 내리치잖아요?”
난데없이 사랑 예찬을 늘어놓는 산드라를 보며, 진은 더 이상 그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답이 없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군.”
“물론 대가 없는 애정은 진 씨와 작은 언니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랍니다. 거기 나머지 세 분은 제가 살려드렸으니…… 뭘 받는 게 좋을까? 흠.”
“막내는 그렇다 치고, 왜 요나만 포함되는 거지?”
디푸스가 물었다.
“작은 언니는 작은 언니니까?”
“아, 그런가.”
그도 이제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쪽이 오히려 산드라 지플이라는 인물을 이해하기가 쉬울 것 같았다.
“무엇보다 진 씨가 특히 아끼는 형제잖아요? 제가 알기로 진 씨와 좋은 관계에 있는 형제는 큰언니와 작은언니뿐이거든요.”
“아마 메리 녀석도 포함될 거다.”
“기억해두죠. 4기수, 당신은?”
“난 잘 모르겠고, 막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게 저 인간이라는 건 거의 확실하지.”
“그래서 저도 조금 의아하기는 했어요. 제가 진 씨라면 아까 헤도를 이용해 2기수를 죽였을 것 같거든요.”
“탈출을 위해선 손 하나도 아쉬운 상황이거든. 어쩔 수 없지. 그런데 나였어도 그랬을 것 같기는 하군. 막내가 그릇이 참 크다고.”
“하나부터 열까지 멋지지 않은 점이 없죠.”
킬킬거리는 디푸스와 산드라는 묘하게 죽이 잘 맞는 모습이었다.
“디푸스, 정신 차려라. 호의를 보여주고 있다지만 적은 적이다. 그것도 순혈 지플이지. 그따위 시답잖은 농이나 주고받을 만한 관계인가?”
그러자 이런 반응을 기다렸다는 듯, 디푸스의 눈동자가 살기로 어두워졌다.
“농담 같냐? 이 개 같은 새끼야.”
“뭐라고?”
“마음 같아선 당장 네놈을 찢어 죽이고 싶을 지경이다. 네놈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스스로가 가장 잘 알 테지. 가문 2기수라는 네놈은, 어머니 덕에 차기 가주가 된 네놈은! 이번 임무에서 모두를 위험에 빠뜨렸다. 배신이나 다름이 없다고.”
“배신? 그건 지금 네가 지플과 시시덕대는 꼴에 더욱 어울리는 말 같군. 정보를 모두 공유하지 않은 것 때문에 이러는 것이냐? 내가 싫은 건 알겠다만, 나는 그게 임무 성공에 더 적합하다고 판단을 했을 뿐이다. 헤도라는 인물은 파악하지 못한 변수였지.”
“뻔뻔한 소리를 지껄이는군. 막내가 아니었다면 그 잘난 판단 덕에 전멸을 당했으리라는 사실까지 부정할 수는 없을 테지?”
“애처럼 구는구나, 디푸스.”
“……4기수, 그만하는 게 좋겠소. 적지를 벗어나는 게 시급하오.”
제인이 중재에 나서자 디푸스는 픽 웃음을 내뱉었다.
“임무를 위해서다, 가문을 위해서다…… 신물이 나는군. 그런 번지르르한 명목으로 네놈이 그간 얼마나 많은 이익을 취해왔을지. 과연 네놈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모두가 알아볼 수 있는 순간이 반드시 올 것이다.”
다시 (산드라를 제외한 이들의) 침묵이 시작되었다.
바람이 일행의 발자국을 지워주고 있었다.
그리고 상공과 건조장에서 벌어지는 전투의 소음과 폭발이 한참 더 멀어졌을 때, 한층 짙어진 모래바람이 시야를 뿌옇게 흐리고 있을 때.
일행은 저 멀리에서부터 어두운 사람의 실루엣 하나가 자신들에게로 다가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올 것이 왔군.’
킨젤로의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