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56)
제 555화
147화. 흑해의 왕, 글리엑(1)
“물러나라!”
탈라리스가 다급하게 자세를 다잡았다.
내성이 있던 자리를 대신해 거대한 얼음의 방벽이 사방으로 펼쳐졌고, 그건 엘로나 지플의 봉인에 묶인 힘을 제외하면 탈라리스의 전력에 가까웠다.
그러나 혼돈의 기운은 그조차 아무렇지도 않게 찢어버렸다. 자신과 진 일행을 덮친 혼돈의 진행은 조금 늦출 수 있었으나 그게 전부였다.
“카학!”
탈라리스가 또 한 번 핏덩이를 토해내며 두 눈을 부릅떴다. 눈가에 경련이 일었고, 검을 쥔 손아귀는 떨리고 있었다.
두려움에 떨리는 것은 아니나,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지금 하얀 돌에서 쏟아지는 혼돈의 해일은, 그녀조차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광대한 것이었다.
-믿기 어려울 테지만, 그 하얀 돌은 제련하여 사용할 수만 있다면 제국의 모든 마법 장비를 지탱하고도 남으며 단숨에 제국을 몇 배는 부강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소.
배신자 티온 하이란의 증언.
-지금 또 대규모 지원군이 오는 것에서도 이미 증명이 되었다. 하얀 돌은 놈들에게 없어선 안 될 물건이다. 그러나 우린 아직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는군.
로사의 평가.
-선대 비궁주들께선 하이란이 세상에 위협이 될 만한 한 가지 물건을 갖고 있다는 기록을 남겼다. 우리 비궁은 하이란이 가진 그 물건이 마녀 헬루람의 물건이리라 추정하고 있지.
-……만빙의 절대적인 힘조차 끄떡없이 버텨내는 봉인이다. 이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느냐? 나조차 감당할 수 없는 혼돈이 저 안에 도사리고 있다는 뜻이다.
탈라리스의 추측.
그 이야기들은 모두 틀리거나 부족했다. 하얀 돌 속에 잠들어 있던 것은, 그들의 예상을 한참 벗어나는 존재였다.
흑해의 왕, 글리엑.
혼돈의 다섯 번째 지배자.
그 정체를 알고 있던 것은 오직 킨젤로뿐이었다. 켈리악조차도 하얀 돌에 봉인된 것이 설마 글리엑이리라고는 예상치 않았던 것이다.
만빙이 눈부신 광휘를 발했다. 평소라면 일대를 환하게 비추고도 남을 기운이나 글리엑의 혼돈 앞에선 그저 촛불처럼 미약했다.
만빙검이 펼쳐졌다. 잠깐이라도 주저하면 그 순간 자신은 물론이고, 진 일행도 결코 무사할 수 없었다.
3식 눈사태, 4식 서리몰이, 10식 빙하가르기. 탈라리스의 정수가 담긴, 귀신처럼 하얀 검이 몰려드는 혼돈을 향해 뻗어졌다.
혼돈은 우습다는 듯이 만빙을 받아내고 있었다.
‘하얀 돌이 흑해의 왕이었다니……!’
치이이이-!
만빙이 탈라리스와 한층 더 동화되며 포효처럼 거친 공명음을 발산했다.
달려드는 혼돈은, 그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일순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다.
만빙검 오의
백白
탈라리스가 만빙을 바닥에 내리꽂자 사방에 태산 같은 얼음꽃이 피었다.
터무니없이 날카롭고 단단한 빙화가 흐드러지며 공간을 잠식했고, 빛에 가까운 속도였다.
파르르 몸을 떠는 탈라리스의 입과 코에서 쉴 새 없이 검은 피가 흘렀다. 엘로나의 봉인과 더불어 지금껏 홀로 하얀 돌의 폭주를 지켜왔으니, 탈라리스라 할지라도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허억, 헉, 탈라리스가 가쁘게 숨을 토하며 오의 백의 기운을 증폭시켰다.
혼돈과 힘겨루기를 하는 모양새였다. 그녀는 빙화를 짓이기며 백의 안으로 들어서려는 혼돈을 필사적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제, 젠장…… 왜 저게 흑해가 아니라 여기에 있단 말이냐.”
그렇게 말하는 탈라리스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벌써 머리는 산발이 되었고, 온몸으로 진땀을 쏟았으며 오의 백을 형성한 검은 금방이라도 바닥에서 뽑힐 듯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탈라리스 엔도르마, 비궁의 주인이자 시론조차 인정한 절세의 강자가 혼돈이 깨어나자마자 난관에 부딪힌 것이다.
“탈라리스 님!”
“진, 잘 들어라. 저건 흑해의 왕이다. 어쩌면 전장의 모두가 힘을 합쳐도…… 빌어먹을, 바깥 놈들은 아직인가!”
탈라리스가 혼돈을 막아내고 있는 공간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
아직 오의 백을 깨뜨리지 못했을 뿐, 혼돈은 이미 빙화를 넘어 전장 전체로 퍼져나가는 중이었다.
탈라리스는 시간을 벌고 있을 뿐이었다.
바깥의 론과 켈리악, 룬칸델과 지플이 혼돈을 조금이라도 밀어낼 수 있는 시간을. 그 안에 오의가 깨지면 끝장이었다.
“그리고 저놈은, 크흑, 널 원하고 있다……!”
흑해의 왕이 그림자에게 가진 원념.
탈라리스는 혼돈에 맞서며 그 증오를 생생히 느끼고 있었다. 이토록 힘겹게 혼돈을 막아내는 자신이 아니라, 바로 진에게 향하고 있는 증오를.
진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직감적으로 혼돈이 깨어나자마자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었다. 너무나 짙어 거의 형체마저 있는 것 같은 증오가 진의 온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몸을 석화시키는 듯한 압박감, 아버지가 자신에게 전념으로 투기를 드러내고 있는 것 같은.
탈라리스가 아니었다면 이번만큼은 진도 결코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혼자서는 도저히 어쩔 수 있는 힘이 아니고, 동료들은 지쳤으며 그를 지켜야 할 수호룡들 또한 옛날 같지 않거나 힘이 다 소진된 상태였다.
게다가 적은 지금껏 진과 동료들이 겪어온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하고 거대하며, 탈라리스가 버틸 수 있는 시간도 그리 길지는 않았다.
오의 백이 끝난 이후 그녀가 다시 제대로 싸우려면 기운을 가다듬고, 엘로나 지플의 봉인에 사용되는 힘을 일부라도 회수할 수 있는 틈이 필요했다.
황제가 지플과 거래하지 않았다면, 지플이 이토록 과한 욕심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세상이 하이란과 검황성을 궁지로 몰아붙이지 않았다면…….
저 끔찍한 존재가 인세에서 깨어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뚝, 뚝.
탈라리스의 얼굴에서 흐른 피가 하얗게 얼어붙은 땅 위에 붉은 점을 남겼다.
그리고 탈라리스가 형성한 백의 영역 안에선, 또 다른 문제가 불거지고 있었다.
[카아아악-! 크아아아아!]돌연 아멜라가 눈을 까뒤집으며 발작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녀에게 깃든 혼돈이 글리엑의 기운에 반응해 폭주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요나가 한 번 그 혼돈을 짓밟지 않았다면, 아멜라는 몇 초도 버티지 못하고 미쳐서 동료들을 공격했을 것이다.
[나, 날 좀, 어떻게, 아아아악!]심지어 그녀와 더불어 라타와 페이 역시 신음을 토하며 주저앉는 모습이었다. 스마리온으로부터 물려받은 미약한 혼돈의 향기마저 글리엑의 힘에 반응하고 있었다.
“주군, 혹시라도 제가 동료들을 공격하면, 주저 말고 저를 베어 제압하십시오. 당장이라도…… 이성이…… 큽!”
푹!
라타는 극기를 발휘해 자신의 허벅지와 페이의 어깨를 찔러 간신히 정신을 붙잡았으나, 더 이상 전투를 이어갈 수는 없었다.
“귀신대장!”
“라타, 페이!”
백의 영역이 깨지고 있었다.
진은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판단해야 했다.
‘이대로라면 탈라리스 님과 동료들 모두가 위험하다. 어떻게든 방법을 생각해내야……!’
영검 특수식, 검은빛 부르기는 아직 사용할 수 없었다.
‘대신 뒤에 스탐 경과 흑기사들이 있다.’
부서진 내성 바로 바깥, 스탐과 흑기사들도 이제 망령대가 아니라 혼돈에 대응하고 있을 터였다. 서로를 향해 검과 지팡이를 겨누고 있을 여유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스탐 경은 가문으로부터 나를 살리라는 명을 받았다. 게다가 위치상, 스탐 경 또한 탈라리스 님의 도움을 받고 있어.’
그 예상대로 스탐은 지금 백의 영역으로 들어서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가 판단하기에, 현재로서는 오의 백이 뚫리는 순간 동료들 중 누구도 진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었다.
“탈라리스 님, 후방에 퍼진 힘들만 일부 거두는 게 가능한 일입니까?”
탈라리스는 그 말을 즉시 알아들었다. 글리엑이 깨어나기 전에, 그녀 또한 스탐과 흑기사들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으니까. 정신없이 혼돈을 막아내느라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
“스탐과 흑기사들, 하지만 진. 어느 정도는 도박이다. 후방의 빙화들이 사라지는 즉시 혼돈도 함께 들어설 것이다.”
대답하기 전, 진은.
간절히 염원하며 소환진을 형성했다.
작년에 브라다만테에 본신의 힘을 일부 불어넣은 뒤 회복에 전념하고 있는 자신의 불사조를 부르기 위해.
무작정 행운을 바라고 한 행동은 아니었다.
‘혼돈이 깨어나자마자 브라다만테에 깃든 청화가 강렬하게 반응하고 있다. 마치 옛 오테리엄에서 테스가 강제로 내 힘을 이용해 현현했던 것처럼.’
진의 절실한 바람은, 채 몇 초가 지나기도 전에 응답받을 수 있었다.
애초에 테스는 글리엑이 하얀 돌에서 풀려난 직후부터 현현을 준비하고 있던 것이다.
아직 힘을 다 회복하지 못했다곤 하나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가아아아악-!
테스가 소환진을 빠져나오며 화염계 주인의 위엄을 드러내고 있었다.
게다가 옛 오테리엄에서와 달리, 그는 진의 힘을 담보로 본신의 능력을 끌어오지 않았다. 화염계 주인의 권능을 통해 사방에 산재한 혼돈을 일부 정화해 매개로 사용한 것이다.
무한정 그렇게 혼돈을 매개로 사용할 수는 없다. 테스라 할지라도 이런 식으로 혼돈에 노출되는 건 분명 위험한 일이나, 계약자의 생명을 담보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판단이었다.
“테스!”
“테스 님!?”
“오, 이 양반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진과 미샤, 무라칸이 동시에 소리쳤고, 테스가 등장하자 또 한 번 빙화를 짓누르던 혼돈이 물러나는 기색을 보였다.
동시에 탈라리스가 뒤쪽의 빙화를 일부 꺾었고, 스탐과 흑기사들이 들어섰다.
옥타비아와 망령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혼돈을 피해 본대 쪽으로 후퇴하는 중이었다.
“12기수!”
“무사합니다!”
쩌저적-!
이어 전면의 빙화들이 터지며 꺾였고, 주춤했던 혼돈이 내부로 쏟아졌다.
스탐과 흑기사들은 주저 없이 앞으로 나서 탈라리스를 대신해 검을 휘둘렀는데, 그녀와 다른 동료들을 구하기 위한 행동은 아니었다. 도저히 진만 빼낼 수가 없는 상황일 뿐.
어쨌거나 그 덕에 탈라리스는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었고, 진과 동료들은 바깥에서 악을 쓰며 명령을 내리고 있는 두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룬칸델 전 기사들은 12기수를 지켜라, 반드시!”
“진 룬칸델을 확보하라, 그가 혼돈에 먹혀서는 안 된다!”
로사 룬칸델과 켈리악 지플.
각 수장들의 명령에 따라 룬칸델과 지플의 모든 인원들이 진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