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74)
제 555화
148화. 검황(7)
단테의 생명력이 점점 돌아오는 게 느껴지자, 론의 가슴 속에 뜨거운 무언가가 차올랐다. 창성의 기운에 계속 마음이 무감해지고 있으나 그조차 가릴 수 없는 감동에 눈가가 젖어 들었다.
수호벽을 뚫고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혼돈의 양도 확연히 줄어들고 있었다. 론의 검세가 글리엑을 찢어발기는 속도도 빨라졌다.
이제껏 세계 최강 가문들의 1군을 아무렇지도 않게 압도하던 글리엑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스걱, 썩-!
론이 강제로 뭉친 놈의 형상이 초 단위로 베어졌다. 글리엑의 기세는 급격히 꺾여 가는 반면, 론의 검은 갈수록 진가를 발휘하고 있었다.
글리엑의 비명이 이전보다 작아졌다. 고통이 줄어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기운이 약해진 결과였다.
하늘을 잠식한 혼돈의 검은 소용돌이도 작아져 갔다. 진은 놈의 영향력이 줄어든 틈에 결국 로사와 탈라리스에게 닿을 수 있었다.
“막내.”
로사가 입가에 흐르는 피를 훔치며 말했다. 잠시간 모자는 눈을 맞춘 채 말이 없었다.
진은 로사에게 자신을 구하기 위해 달려와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고, 로사도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서로 할 일을 했을 뿐이었다.
로사에게 짧게 묵례한 진이 탈라리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녀를 보자마자 즉시 깨달을 수 있었다. 로사가 만일 자신을 구하러 계속 격전지로 진입했다면, 탈라리스는 이미 죽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탈라리스에게 단테의 봉인을 부탁하는 건 무리였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으니까. 다행히 단테가 살아나고 있으니 탈라리스의 도움이 없어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단테의 몸을 살피는 로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목숨은 붙었으나 무인으로서는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는 상태로구나.”
“뭐라고요?”
“……온몸의 혈도가 막히고 단전을 포함한 오러 운용 기관 전체가 치명적으로 손상되었다. 몰랐느냐?”
정신없이 뛰느라 그런 걸 알아볼 겨를이 없었다.
확인해 보니 로사의 말대로였다. 죽은 자도 살려 내는 누메루스의 눈물이 아닌 이상, 결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진은 질끈 눈을 감으며 한숨을 삼켰다.
“살아만 있으면, 됩니다. 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제게는 충분합니다.”
“부디 론 경과 단테 하이란에게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군.”
“꼬마, 괜찮냐!”
무라칸의 목소리에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그는 지금이라도 진을 데리고 탈출하고 싶었으나, 진은 그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저 혼돈과 론 경의 수호벽을 뚫고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해. 게다가 가능하다 할지라도, 지금 나가는 건 오히려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야.”
진과 무라칸의 힘으로 전장을 이탈할 수 있다면, 켈리악과 로사 역시 그럴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켈리악은 나와 단테를 붙잡으러 쫓아올 거다. 가문이 어찌 그들을 떨쳐낸다 한들, 어머니 역시 켈리악 못잖게 위험한 건 마찬가지야.’
켈리악은 이제 진과 단테 둘 다를 확보해야 했다. 진은 마신석의 완성을 위해, 그리고 단테는 추후 론이 함부로 지플을 치지 못하도록 묶어두기 위한 수단으로 잡아둬야 하는 것이다.
로사만 남는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진처럼 단테를 아끼지 않는다. 켈리악과 마찬가지로, 그녀에게 단테는 론 하이란을 움직이기 위한 패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의 진과 무라칸에겐 그들로부터 단테를 지킬 힘이 없었다.
따라서 진은 전쟁이 끝난 후, 단테가 완벽하게 론의 품으로 돌아가는 걸 확인해야만 했다. 친구로서의 도리이자, 인간으로서의 책임이었다.
그어어어……!
강제로 형성되고 있는 글리엑의 육신이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봉인에서 깨어난 후 놈이 계획한 모든 것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미 정해져 있던 운명이, 바뀌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봉인되어 있었건만, 이토록 허무하게 소멸해야 한다니. 글리엑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론이 심마에 빠지지 않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몸이 찢기는 동안, 글리엑은 자연스레 그 원인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가 알던 창성의 힘은 결코 이렇게 빨리 안정화될 수 없는 것이었다.
곧 글리엑은 결론을 내렸다.
[네놈… 창성에 닿은 순간, 그 기운을 솔더렛의 계약자와 나눴군. 그래, 그 덕분에 마성화로부터 버틸 수 있던 것이구나.]“괴물이 사람 말을 하는 걸 계속 듣고 있자니 거북하군.”
[어째서 그런 짓을 했지?]“너 같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이유지.”
[후회하지 않는가?]“당연히.”
[너는 특별한 인간이다. 수백, 수천만의 필멸자를 합쳐도 네가 얻은 힘의 가치를 넘을 수는 없다.]“그래서 네놈은 내게 소멸당하고 있지 않나.”
[푸흐흐흐……!]글리엑이 자조 섞인 웃음을 토해냈다.
놈은 자신이 론을 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발악할 수 있는 수단이 단 하나도 남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자폭은 네가 아니라 나의 역할이었군.]론이 미간을 좁혔다.
그는 자신이 글리엑과 자폭하는 경우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었다. 단테를 구했다 할지라도 자신이 죽으면, 앞으로 그를 지켜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내심 글리엑이 자폭하는 경우를 경계하고 있었다. 놈을 이루고 있는 거대한 혼돈이 한꺼번에 폭발하면 자신이라 할지라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돌연, 혼돈의 바람이 움직임을 멈췄다. 땅과 하늘을 잠식하고 있는 혼돈이 일제히 정지하는 모습에, 인간들은 불길한 예감이 엄습하는 걸 느꼈다.
강줄기가 바다로 모여들듯, 멈춘 혼돈들이 전장의 한가운데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론이 그 흐름을 붙잡으려 했으나 놈의 기운은 멈추지 않았다.
선택하라! 론 하이란.
십여 초쯤 뒤, 다시 글리엑의 목소리가 전장을 울렸다.
놈이 선택하라는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너라면 충분히, 혼자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네가 너 자신을 지키는지, 네게 비하면 아무런 가치가 없는 필멸자들을 구원하는지. 마지막으로 지켜보도록 하겠다. 기쁜 마음으로…….]글리엑으로서는 그게 최선의 판단이자, 마지막 남은 수였다.
창성의 빛을 진에게 나눠준 이상, 론은 결코 자신의 자폭을 온전히 막아낼 수 없었다. 막는다 할지라도 죽거나 더는 싸울 수 없는 몸이 될 테니, 추후 티그리스 산 너머에 있는 형제들을 위해서라도 이렇게 해야만 했다.
론이 홀로 도주한다 할지라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그토록 지키고 싶던 혈육을 버렸다는 사실은, 다시금 그의 심마를 증폭시킬 테니까.
그 순간, 단테가 몸을 일으켰다.
“단테!”
생명력이 돌아오고 있기는 하나 아직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마치 죽음을 극복해냈던 론처럼, 자신의 조부를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안… 됩니다, 조부님…….”
론은 손자가 달려오는 방향을 돌아보았다.
다 부서지고 꺾여버린 몸으로 달려오는 손자의 모습을 보며, 론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제 곧 글리엑의 모든 혼돈이 폭발할 테니 물러서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손자가 자신에게 똑바로 다가올 수 있도록, 빛을 일으켜 길을 형성해주었다. 창성의 바람이 단테의 걸음을 보조해주고 있었다.
“이리 가까이 오너라, 단테.”
론에게 다가서는 단테의 두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툭…….
이내 단테가 쓰러지며 론의 품에 다다랐다.
론은 몇 번쯤 손자의 등을 토닥여주다, 어깨를 붙잡고 그를 일으켜 세웠다.
“단테 하이란, 나의 손자야.”
“조부님, 하, 할아버…….”
“어차피 나는 네게 모든 것을 주려고 하였다. 그 시기가, 어쩔 수 없이 조금 앞당겨졌을 뿐. 네가 태어난 순간부터 내 목숨은 너의 것이었느니라.”
단테는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이게 정말 조부와의 마지막이라는 직감에, 조부는 절대로 선택을 바꾸지 않으리라는 확신에. 목이 메어 견딜 수가 없었다.
“내내 아픈 채로 싸워 보니, 그간 네가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알겠더구나.”
론이 자신의 검, 라시드를 단테의 손에 쥐여 주었다.
단테는 론과 눈을 맞춘 채 계속 고개를 저었으나, 라시드를 받아든 자신의 손을 붙잡고 있는 론의 손은 너무나 단단했다.
그리고 따뜻했다. 뿌리치고 싶어도 뿌리칠 수 없을 만큼.
“이제…….”
네가 검황이다.
네가, 검황이 되는 것이다.
이어진 론의 목소리에 단테는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단테는 자신의 몸에 믿을 수 없을 만큼 강한 활기가 들어서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론 하이란이라는 인간이 얻은 창성의 빛과, 검황이라는 무인이 얻은 진기가 그로부터 단테에게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손 틈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듯, 그 모든 힘이 온전히 단테에게 전달될 수는 없었다. 진에게 창성의 빛을 나눌 때도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단테의 혈도가 다시 거세게 뛰고, 부서진 장기들이 다시 제자리를 찾기에는 충분했다.
아울러, 단테 하이란이 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단테를 그토록 병약하게 만들었던, 그의 ‘선천적인 혼돈’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건 그 혼돈을 형성한 주체인 하얀 돌, 글리엑이 자아를 잃어가기 시작한 결과였다.
이제 글리엑이라 부를 수 있는 존재는 세상에 남아 있지 않다.
그저 폭발하기 직전 활화산처럼 거대한 혼돈만이 전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네가 늘 자랑스러웠다.”
“할아버지, 제발, 제발 멈추십시오. 저 따위가 아니라 할아버지가 살아남으셔야 합니다. 저 혼자 남아 봐야……!”
“그리고 세상 그 무엇보다도 너를 사랑하였음이니, 이 할아비는 복 많은 세월을 누렸구나.”
론이 고개를 들어 단테를 뒤따라온 진과 눈을 맞췄다.
“단테를 잘 부탁한다. 마지막까지 네게 신세를 지는구나, 준 것도 없이.”
진은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론이 마지막으로 단테를 품에 안았다. 손자의 심장이 힘차게 뛰고 있는 게 느껴지기에, 그는 안심할 수 있었다.
“이제 가거라, 단테야. 이것이 너와 나의 끝은 아닐 것이니, 슬픔에 너무 오래 주저앉아 있어선 안 된다.”
론이 뒤돌아섰고, 단테와 진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단테는 몸부림을 치며 론을 향해 손을 뻗었으나, 두 사람의 몸은 빛의 길을 따라 그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론은 자신을 부르는 단테의 목소리가 완전히 잦아든 후에야, 손자가 사라진 빛의 길을 뒤돌아보았다. 손자가 멀어지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흔들릴 것 같기에, 이제야 돌아본 것이다.
그러고는 라시드를 대신해 한 자루의 검을 형성하며.
전쟁을 끝내러, 혼돈의 핵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단테의 죽음과 하이란의 멸망이라는 혼돈의 운명이, 완전히 바뀌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