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77)
제 555화
150화. 대가를 받아야 할 때(1)
단테는 다음 날 곧장 자신이 섭정이 되었음을 선포하지 않았다. 그 전에 정리해야 할 문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제국 중부 지대, 어느 지하 별장.
한 남자가 의미 없이 거실을 오가고 있었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과 떨리는 어깨가 그의 불안감을 드러냈다.
그는 론 하이란의 둘째 아들이자, 하이란의 기수였던 ‘티온 하이란’이다.
가장 먼저 하이란을 배신하고 황제의 역적 몰이에 동참한 인물. 그는 검황성전이 끝나기도 전에 이 지하 별장으로 피신했다. 그를 따르는 제국의 기사들 오십여 명과 함께.
‘제기랄,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이란 말이냐……!’
그가 하이란을 배신한 이유는 여럿이다. 기수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 한 번도 론을 만족시키지 못했으며, 늘 조카인 단테에게 가려져 빛을 본 적이 없었다.
티온은 그 모든 게 재능의 차이에서 비롯된 차별이라 생각했다. 날 때부터 혼돈에 잠식되어 극단적인 약골로 태어난 단테가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를 뻔히 알면서도 외면했다. 재능의 차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편하니까.
늘 가문에 반감을 지니고 있던 도중 향후 이십 년은 자리를 지킬 것 같던 론이 내상으로 쓰러졌고, 황제는 티온에게 달콤한 제안을 해왔다.
‘하얀 돌’이라는 물건이 있으니, 백성들 앞에서 그에 대해 거짓 증언을 하면 추후 하이란이 멸문했을 때 그를 가주로 만들어주겠다고 말이다.
그때, 황제는 정말로 티온의 잠재력이 탐나는 듯이 말했었다. 그렇기에 티온은 한 시간도 고민하지 않고 황제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간 가문이 티온이 가진 배신과 불충의 낌새를 알고도 다시 정도로 돌아오기를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제국군이 밀리면 지플이 나선다기에 절대로 패배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건만, 흑해의 왕? 대체 그딴 게 왜 튀어나와서는!’
쾅!
티온이 내리친 주먹에 식탁이 부서지며 파편이 튀었다. 그의 눈치를 살피던 기사들은 무춤하며 괜히 헛기침을 했다.
“저, 티온 경…… 폐하로부터 연락이 온 것은 없습니까?”
한 기사가 조심스레 물었다.
“있겠는가? 그리고 이 멍청한 사람아, 폐하는 이미 끝장이다.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은, 이제 폐하가 아니라 황실에 달렸단 말이다.”
“그래도 폐하께선 아직 당하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바깥 상황을 살펴보니 조만간 단테 하이란이 섭정을 선포한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
“하, 가문도 모자라 제국까지 집어삼키겠다? 내 조카의 세상이 와버렸군. 아버지가 살아 계신다면 모를까, 제깟 놈이!”
티온이 씩씩대며 소리를 질렀다.
“티온 경, 황실은 우리 연락을 벌써 세 번이나 무시했습니다. 우선 어떻게든 폐하와 연락을 취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폐하는 끝장이라고 대체 몇 번을 말해야 하는가! 자네까지 왜 이러는 것이야?”
“폐하가 지금까지 잡히지 않으신 이유가, 황실의 비호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어쩌면 황실은 아직 폐하를 포기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여전히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패를 폐하가 들고 있을지도 모르고요. 그러니 폐하와 이야기를 나눠봐야 합니다.”
“한 번만 더 폐하를 찾아야 한다고 지껄이면 골통을 부숴줄…….”
거기까지 말하던 티온이 흠칫하며 기사와 눈을 맞췄다.
문득, 불길한 직감이 그의 뇌리를 지배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따르는 기사 중, 이렇게까지 말대답을 하는 인물은 아무도 없던 것이다.
“네놈…… 무엇이냐, 왜 자꾸 폐하를 찾지? 황실로부터 무슨 지령을 받기라도 한 것이냐? 너 누구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투구 벗어.”
“티온 경?”
“투구 벗으라고! 폐하에 집착하는 모습이 수상하군. 여봐라! 이놈을 포박해라, 곱게 말해서는 실토하지 않을 것 같으니!”
다른 기사들이 분위기를 살피며 슬금슬금 그에게 다가갔다. 기사는 계속 투구를 벗지 않고 있다가,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이것 참, 성미에 맞지 않는 일이로군.”
기사가 허공에 손을 뻗었다. 그리곤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움켜쥐어 당겼고, 그러자 그에게 다가오던 기사 셋이 마구잡이로 썬 생선처럼 토막 나는 모습.
스거걱-!
그가 잡아당긴 것은 실 형태의 암기였다. 분수처럼 튀어 오른 핏물에 순식간에 티온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고, 그는 눈을 깜빡이자마자 시야에서 기사가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이, 이게 무슨……!’
기사는 어느새 티온의 뒤에 서서 그의 목에 단검을 대고 있었다. 투구도 벗은 채였는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것은 유백색 가면이었다.
무명의 최고 살수 비젠, 그가 티온의 지하 별장에 잠입한 것은 벌써 일주일 전의 일이었다.
그 일주일 동안 비젠에겐 일만 번도 넘게 티온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럼에도 지금껏 연기를 해온 것은, 두 가지 이유였다.
첫째는 황제 아미르 비먼트, 혹시라도 티온에게 아직 황제와의 핫라인이 존재한다면 그를 통해 황제의 거처를 알아내기 위함이었고.
둘째는 의뢰자의 부탁이 있기 때문이었다.
-며칠만 지켜보시고, 그가 조금이라도 죄를 뉘우치는 모습이 있다면 생포해서 데려와 주십시오. 가문의 반면교사로서, 참회할 수 있는 시간을 주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티온을 살려준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가 조금이라도 참회한 채 죽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려는 것이었을 뿐.
티온은 방금 그 기회를 완전히 걷어찬 셈이었다.
“무, 무명……!”
“보아하니 네놈은 아미르 비먼트와 정말 연락이 되지 않는 것 같군. 우리 공주님이 덜 수고로워지면 좋겠다는 마음에 인내심을 가져봤건만.”
“자, 잠깐. 폐, 폐하와 연락이 닿기만 하면 날 살려주는, 것인가? 그렇다면 내가 폐하께 당장 연락을…….”
“아쉽게도 마차는 떠났어. 그리고 찾느라 조금 시간이 걸릴 뿐, 어차피 그는 반드시 죽는다. 무명 최고의 살수가 붙었으니.”
슥!
단검이 부드럽고 빠르게 티온의 목을 관통했다.
티온 하이란은 그대로 절명했다. 나머지 기사들은 비젠에게 대항할 엄두도 내지 않은 채 혼비백산하며 도망치려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비젠이 또 한 번 허공에 설치된 투명한 실을 잡아당기자, 그들은 무참히 썰려 나갈 수밖에 없었다.
“으, 으아악!”
“살려, 살려줘!”
채 10초가 지나기 전에 나머지 기사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임무를 끝낸 비젠의 몸에는, 그들의 피가 단 한 방울도 묻어 있지 않았다.
* * *
검황성전 1차전 당시 황제의 편에 섰던 가문들의 본가와 별장, 비밀 대피소들에도 티온과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가, 가주 대행! 벌써 단테 하이란이 숙청을 개시한 모양입니다. 본가에 있던 가문의 기사들이 암살당하고 있습니다……!”
할로우가의 대피소.
그들은 중앙기사단의 스캇 할로우를 비롯한 기사들을 황제군에 내세워 하이란을 공격했었다.
할로우가를 죽이고 있는 이들도 무명의 살수들이었다. 그들은 할로우가에서 가장 유능한 인재 몇 사람만을 남기고 모두 살해하라는 의뢰를 받았다.
“푸흐흐…… 결국 이렇게 된 건가. 그래, 모든 것을 잃었으니 복수귀가 될 만도 하지.”
첸더러가의 본가.
그들 역시 백창기사단의 글로리아 첸더러를 내세워 하이란을 쳤었다.
그런 식으로 릴리스타가와 릴리스타 마법대, 팬가를 비롯해 황제군의 편에 섰던 가문들이 멸문지화에 가까운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무명의 살수들은 거침없이 그들의 목숨을 거두었다.
“세상은 과연 알 수 없는 것이군. 단테 하이란…… 전쟁에서 그가 악귀처럼 변했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으나, 이렇게까지 빠르게 행동할 줄은 몰랐는데.”
헨서크가의 부가주가 체념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앞에는 또 다른 무명의 최고 살수 ‘안’이 서 있었다.
“착각하고 있군.”
안이 건조한 목소리로 말하며 헨서크의 부가주를 쳐다보았다.
“너희들을 죽이라고 의뢰한 인물은 단테 하이란이 아니다.”
“뭐라고?”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지. 본래 해줄 필요 없는 이야기지만, 죽어서 괜히 엄한 사람을 원망할 것 같아서 말이야.”
안의 검이 헨서크가 부가주의 목을 베었다. 그의 뒤로 죽은 헨서크가 마법사들의 시체가 즐비했는데, 유백색 옷에는 단 한 방울의 핏자국도 남지 않은 모습이었다.
단테는 그들을 곧장 죽일 생각이 없었다. 티온에게 참회하고 죽을 수 있는 시간을 주려고 했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제국의 정상화에 조금이라도 기여한 후 죽을 수 있는 기회를 주려 했던 것이다.
황제군의 편에 섰던 가문을 몰살해달라고 의뢰를 한 건, 단테가 아니라 황실이었다.
꼬리를 잘라 최대한 타격을 덜 받기 위한 명분을 만들려는 것이다. 그 역겨운 신비주의자들은 혼돈에 오염된 제국이 정상화되는 것보다 자신들의 안위를 더욱 중요히 여겼다.
황실은 진심으로 자신들이 건재해야 제국이 돌아올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자신들에겐 여전히 그럴 수 있는 힘이 있다고도.
무명은 중립에 서 있는 암살검이다.
자격이 있고, 충분한 대가를 치를 수만 있다면 어떤 세력이든, 누구든 무명의 검을 빌릴 수 있었다.
만약, ‘론 하이란’이라는 우산이 제국에 계속 존재하고 있었다면, 무명은 황실의 의뢰를 결코 맡지 않았을 것이다. 무명이 자칫하면 제국의 균형을 무너뜨릴 수도 있는 의뢰를 수락한 건, 순전히 론이 없기 때문이었다.
무명이 이번에 황실이 맡긴 의뢰를 모두 수락한 것은 아니었다.
황제군에 섰던 이들 중, 딱 한 가문.
무명은 ‘페럴가’의 남은 수뇌들을 암살해달라는 황실의 의뢰를 거절했다.
정확히는 거절이 아니라 의뢰가 ‘겹치기에’ 받지 않았다. 무명은 페럴가를 암살로부터 당분간 지켜달라는 의뢰를 황실의 의뢰보다 먼저 받았다.
-케빈 페럴은 쓰레기 같은 인물이었으나, 존시나 페럴 경은 결국 백성들을 위해 황제군의 편에 섰었습니다. 비록 그 선택이 결과적으로 잘못되었다곤 하나…… 기사로서,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존시나 경의 삶을 존중하고 싶습니다. 당분간 그들을 암살로부터 지켜주십시오.
그렇게 페럴가는 무명의 검으로부터 가문을 보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페럴가에 남은 이들은, 다행히도 대부분이 존시나 페럴을 닮아 있었다.
* * *
무명 최고의 살수가 황제 아미르 비먼트를 발견한 것은, 그로부터 나흘이 더 지난 다음이었다.
아미르 비먼트는 비먼트 남부의 한 이름 없는 숲에 숨어 있었는데, 그의 곁에는 내금위와 호위조차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안녕?”
요나 룬칸델.
배시시 웃으며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고개를 든 황제는 직감할 수 있었다.
자신에게도 결국 죽음이 찾아왔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