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609)
제 666화
156화. 혼돈 정화(14)
* * *
다시, 진이 혼돈의 문 앞에 섰다.
여느 때처럼 명왕족 형제들 모두가 진과 혼돈의 문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오늘로 놈의 운명이 정해지겠군.”
“진 형제가 어떤 선택을 하든, 우린 진심을 다해 따르도록 하겠네.”
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는 반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담담한 눈빛 속에, 지난 이틀 동안 내내 혼돈의 문을 보며 품었던 쓸쓸한 느낌이 깃들어 있었다.
“다녀오겠습니다.”
문으로 들어서자 공허한 혼돈의 어둠이 진을 맞이했다.
원래는 늘 들어오면 즉시 혼돈의 거대한 몸집이 보였었다. 매번 강력한 앞발 휘두르기, 혹은 초강력 꼬리치기를 맞으며 전투를 시작했던 것이다.
지금은 힘을 잃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혼돈이 보이지 않았다.
때문에 진은 정처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한 시간 정도를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진은 혼돈의 영역에 들어선 이래로 처음, 이 어두운 공간에 ‘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유난히 검은 장막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글리엑의 심연에서 그랬던 것처럼, 혼돈의 무의식으로 이어지는 지점인 줄 알았으나 그곳은 그저 끝이었다.
벽에 가로막힌 듯 그 앞으로는 나아갈 수가 없었다. 영검으로 베어도 균열이 열리지 않았으며 파괴되지도 않았다.
벽을 따라 조금 더 걷자, 저 멀리. 웅크리고 있는 혼돈의 모습이 보였다.
혼돈은 진이 시야에 들어오자 몸을 일으켰는데,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도 더욱 작아진 모습이었다.
용의 형태는 유지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동글동글해서 거의 새끼 토끼처럼 보일 지경. 손바닥 위에 올려도 가득 차지 않을 것 같은 크기였다.
게다가 혼돈에게서는 더 이상 이전 같은 파괴적인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진의 영검 궁극기에 당한 그때, 혼돈은 거의 모든 힘을 잃은 것이다.
[흥, 애송이 놈. 벌써 승리감에 취해 기고만장한 얼굴이 아주 꼴 보기 싫은걸.]진은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밖에서 투신 형제가 그러더군. 네놈은 날 죽이지 못하는 게 아니라, 더 외로워질까 봐 죽이지 않은 것이라고. 그게 사실이냐?”
[알 게 뭐야, 이제 날 죽일 거면서.]진이 검을 풀어 옆에 내려두었다. 그러곤 해할 의사가 없다는 듯 손을 들어 보인 후 혼돈과 열 걸음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혹시 모르지, 네 대답에 따라 내 마음이 바뀔지도.”
[흥! 무기가 없어도 지금의 나 정도는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으니 여유를 부리는 거냐?]“상당히 꼬아서 보는군.”
[안 그러게 생겼어? 너 때문에 내 삶은 망했다고. 원래는 너와 하나가 되어 완벽하게 부화했어야 하는데, 그건 네 형제들이 날 빼낸 덕분에 틀어졌고. 그럼 각자의 삶을 살면 될 텐데, 네놈은 날 죽이겠다고 달려들고.]“그건 네가 내 힘을 빼앗아갔으니 당연한 거 아니냐?”
[괴물 같은 네 형제들은 네 편만 들어주었지. 내 호소 따윈 다 무시한 채.]“내 힘을 돌려주면 끝날 문제였잖아.”
[그걸 돌려주면 난 이용 가치가 없으니 네놈과 그 괴물들에게 죽었겠지! 지금처럼 이야기를 할 생각이라도 했겠어? 게다가 넌 계속 뺏었다고 하는데, 그건 내 힘이거든?]잠시 정적이 흘렀다.
“방금 전에 삶이 망했다고 했는데, 그건 힘을 다 잃었기 때문이냐? 아니면, 한 번 이곳에 들어온 이상 자력으로는 바깥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인가?”
[……잠깐, 내가 혼자서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걸 어떻게 알아?]“투신 형제가 알려주더군. 내가 균열을 열 때마다 너의 내면이 전해졌었다고.”
혼돈의 눈동자가 커졌다. 혼돈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던 것이다.
[하! 그래? 다 알고 있었단 말이지. 그런데도 네가 날 죽이겠다고 덤벼드는 걸 계속 방관했어? 대단하네.]억울한 듯, 혼돈이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나의 형제다. 널 적으로 분류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
어깨를 으쓱이는 진.
그는 잠시 자신이 걸어온 이 어두운 공간을 되짚어보았다. 그야말로 칠흑 같은 어둠 외엔 아무것도 없으며, 그마저도 겨우 한 시간 정도를 걸으면 끝에 닿을 수 있는 정도의 땅.
이곳이 혼돈에게 허락된 전부라는 생각이 들자, 한층 더 딱한 마음이 들었다.
‘투신 형제가 그렇게까지 쓸쓸한 눈으로 계속 문을 바라본 건, 아마 놈의 고독을 절절히 느꼈기 때문일 테지.’
진도 혼돈이 바깥에 있을 땐 그 내면을 읽을 수 있었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혼돈을 향한 분노만이 가득할 때였는데도 놈이 불쌍하다고 느꼈던 것이다.
어쩐지 슈리가 생각나기도 했다. 천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버림받은 채 흑해 한구석의 황량한 가시나무 숲에서 홀로 지냈던 자신의 적옥묘가.
살려주자.
진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지금은 내 생각을 못 읽는 모양이지?”
[날 어떻게 끝장낼까 고민하고 있잖아.]“그 반대다. 그러나 몇 가지 걱정되는 부분이 있군.”
[뭐?]“우선, 너는 마녀 헬루람으로부터 시작된 최초의 혼돈이라고 들었다. 그리고 최초의 혼돈은 특히 더 종잡을 수 없는 특성들을 지니고 있다더군.”
[마녀 헬루람이 뭔데.]“뭐라고?”
[난 그런 거 몰라. 그냥 네 속에서 깨어났을 뿐.]혼돈은 자신이 ‘마녀로부터 시작된 최초의 혼돈’이라는 인식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줄곧 진의 힘을 ‘자신의’ 것이라고 인식한 것도 그 이유였다.
혼돈은 자신이 마녀가 아니라, 진으로부터 탄생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럼 영기에는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했지?”
[본능적인 공포다. 어째서 그딴 걸 가진 네놈으로부터 내가 존재할 수 있었는지 모를 정도라고.]이를테면, 혼돈은 일종의 ‘씨앗’이었다. 헬루람의 힘은 그저 진의 내면에 씨앗이 발아하듯 자리를 잡았을 뿐이다.
혼돈에겐 씨앗을 누가 뿌린 것인지는 중요치 않으며, 궁금하지도 않았다.
본래 진을 잡아먹고, 하나가 되려던 것 또한 혼돈의 입장에선 본능적인 성장 과정에 불과했다.
혼돈이 이러한 내용을 설명해주자 진은 헛웃음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이로군.”
[이게 거짓말인지 아닌지는 밖으로 나가면 곧장 알려질걸. 네 괴물 형제가 내 내면을 읽을 수 있을 테니까.]“밖으로 나가기 위해 수를 쓰는 건 아니고?”
[넌 진짜 끝까지 날 못 믿는구나. 난 애초에 네 괴물 형제들이 무서워서, 그리고 네놈이 자꾸 괴물 형제와 공명하며 강해져서 이곳으로 도망쳤어. 지금은 힘까지 잃은 상태인데, 내가 밖으로 나가봐야 뭘 할 수 있지? 난 이제 남은 패가 아무것도 없거든, 잘난 네 덕에!]거짓말 같지 않았다.
‘하긴, 애초에 힘이 있을 때도 형제들을 몹시 두려워했지.’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밖으로 데려가 주마. 어떻게 하면 되지?”
[그냥 네가 균열을 열면…… 정말이야?]“어차피 힘을 다 되찾았으니, 사실 널 죽일 이유는 딱히 없어. 개인적인 원한도 어느 정도 해소되었고. 마지막 남은 문제가 하나 있기는 하지만, 투신 형제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
[……괴물 형제를 위해서라고?]주우욱-!
진이 영검을 펼쳐 균열을 열었다.
“나가자.”
혼돈은 진을 따라 균열 앞에 섰다가 잠시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나가면, 네 괴물 형제들이 날 싫어하지 않을까?]“글쎄. 계속 여기 있고 싶으면 그렇게 하고.”
[아니, 아니. 간다, 가.]이윽고 진과 혼돈이 훈련장으로 빠져나오자, 명왕족들이 신기한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게 그 최초의 혼돈이라고?”
“엄청 작아졌잖아?”
“기회를 한번 주고 싶다더니, 결국 진 형제가 저 녀석을 살려주기로 결정한 모양이군.”
“이왕 이렇게 된 거, 반갑게 맞아주자고. 좀 귀엽게 생기기도 했네.”
“오, 진 형제. 잘했어! 형제가 저 녀석을 죽이면 어쩌나 사실 걱정했거든. 반갑다, 나는 오투왕 보라스다! 앞으로 자네의 도움을 받아 몇 가지 연구를 진행해야 하니, 우리는 특히 빨리 가까워지는 게 좋겠지?”
예상치 못한 환대에 혼돈은 당황하며 진의 뒤로 숨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진은, 반의 미간이 좁혀지는 걸 보았다.
그녀는 그들이 다시 라프라로사로 나오자마자 혼돈의 내면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반면, 진에게는 혼돈의 마음이 들리지 않았다.
“가까이 오너라.”
반이 혼돈에게 손을 내밀었다.
혼돈은 그녀의 눈치를 살피다 조심스레 손에 올라타는 모습.
‘내내 괴물이라며 무섭고 싫다는 듯 말하더니, 반 형제에겐 그야말로 순한 양이군.’
마지막 남은 문제 하나.
방금 밖으로 나오기 직전에 진이 그렇게 말한 건, 몸에 남은 검은 반점을 뜻했다.
혼돈을 죽이면 사라질 것 같은 직감이 있었으나, 진은 반을 위해 혼돈을 살렸다.
반이 그토록 슬퍼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반은 혼돈의 고독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느껴왔고, 연민과 더불어 일종의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혼자서는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죽은 세계에 갇힌 신세라는 동질감을.
그래서 혼돈의 문을 그토록 쓸쓸한 눈으로 바라봤던 것이다.
혼돈은 반의 손 위에서 내면의 목소리로 계속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듯했다. 반은 종종 고개를 끄덕이며 답을 해주었다.
“……그래, 그렇게 하면 진 형제의 반점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이냐? 알겠다. 진 형제.”
“말씀하십시오, 투신 형제.”
“이제 이 아이는 내가 품도록 하겠다.”
진은 반에게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그녀가 그렇게 선택했다는 건, 혼돈이 결코 자신과 형제들을 위협할 수 없다는 확신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혼돈의 몸에서부터 영기처럼 검은 기운들이 흘러나왔다.
기운은 반의 근처를 맴돌다가 그녀의 광심장 속으로 흡수되는 모습을 보였다.
혼돈의 기운이 반의 광심장으로 스며들수록, 진의 몸 곳곳에 종양처럼 번진 반점들이 옅어지며 사라져갔다.
그건 일종의 계약처럼 보였는데, 혼돈의 입장에서는 ‘이사’였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매정할 수 있던 거죠? 내 내면을 다 읽고 있었으면서.’
‘그건 네가 진 형제를 해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결국 당신이 날 받아주기로 한 건, 내가 저 망할 놈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군요.’
반은 그 말에 혼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답해주었다.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그리고 혼돈은, 반의 내면을 읽고 있었다. 처음 균열을 통해 내면이 전해진 후부터, 자신을 그토록 안타깝게 여겨왔다는 그 진심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