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633)
제 666화
163화. 가문 복귀(3)
* * *
1803년 2월 25일, 이른 새벽.
진은, 그들의 예상대로 검의 정원을 향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디노 재글런을 통해 ‘2월 25일에 검의 정원으로 돌아가겠다’는 사실을 온 세상에 광고까지 한 채.
심지어 디노가 직접 낸 그 특보는 진이 이제 ‘가주’에 오를 것이라고 은근히 암시하고 있었다.
그건 룬칸델을 향한 선전 포고나 다름이 없다.
“킨젤로와 지플이 정말 참전을 할까?”
탈라리스가 물었다.
곁에 있는 동료들은 걱정스러운 듯 그녀와 진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분명 올 겁니다. 이런 큰 기회조차 읽지 못한다면 거대 세력의 수뇌부에 있을 자격이 없습니다.”
진이 처음부터 양대 세력의 참전을 계획한 건 아니었다.
보름 전 룬칸델을 다녀오기로 결정했을 때만 해도 진은 확신하지 못했으나, 복귀 기사에 룬칸델이 대응하는 걸 보니 명백해졌다.
예언자가 이미 가문을 장악했다는 사실이.
또한 킨젤로와 지플이 검의 정원을 자극하지 않고 있던 것은, 룬칸델이 부담스러울 만큼 강한 힘을 보유 중이라 추정하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그렇기에 진은 승부수를 던졌다.
머저리가 아니라면 따라올 수밖에 없는, 큰 판을 형성해야 한다고 결심한 것이다.
“설령 적들의 수장들이 제 생각보다 훨씬 멍청해서 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저는 가는 게 옳습니다. 가문 내에서 예언자에게 저항하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예언자의 더러운 힘 따위엔 기댄 적도, 기대려 한 적도 없는.
끝끝내 충언하는 사람들이, 룬칸델의 진짜 기사들이, 그리고 형제들이. 검의 정원에서 고통받고 있을 터였다.
자신이 그들을 찾아가지 않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룬칸델이 낸 테마르에 관한 기사를 보면, 발레리아가 사로잡혔을지도 몰랐다.
“저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가문이 제 힘을 모르는 지금이야말로 적기이기도 하죠.”
“흐응, 뭐…… 그래. 지금 사위가 가진 무력이라면 일이 아무리 틀어져도 탈출은 충분할 테지. 이것 참, 10성까지 긴 시간이 필요 없을 거라고 했더니 설마 나보다 강해져서 돌아올 줄은.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그 정도는 아닙니다. 너무 띄워주시네요. 그리고 탈라리스 님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아마 다른 방도를 고민했을 겁니다. 모트와 붉은부엉이 호가 있으니 할 수 있는 선택이죠.”
“그래, 그래. 살다 보니 이 탈라리스 엔도르마가 누군가의 이동 수단에 불과한 존재가 되는 날도 오는구나.”
탈라리스가 웃자 진도 어깨를 으쓱이며 피식 웃음을 내뱉었다.
두 사람은 이제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아니라, 꼭 사이좋은 동료처럼 보였다.
그 모습이 생각보다 그리 싫지 않다는 사실에, 시리스는 스스로가 놀라울 지경이었다.
“진.”
“예, 시리스 님.”
“그간 우리 비궁이 수도 없이 너를 지켜주었으니, 이제는 네가 비궁을 지켜줄 차례다.”
진은 대답하지 않고 잠시 시리스와 눈을 맞췄다.
“그러니, 가서 죽지 말고 돌아와라. 빚을 갚아야 될 거 아니야. 나 검술도 좀 알려주고.”
“물론, 광속 성장을 보장해드리죠.”
“우리 딸이 웬일로 어른스러운 이야기를 다 하네?”
“어머니도 조심하십시오. 혹여라도 성치 않은 몸으로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도련님…….”
길리가 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부디, 무사히 다녀오십시오.”
“돌아오자마자 쉴 새도 없이 계속 강행군이로군. 주군, 보탬이 되지 못해 미안하오.”
“진 공자…… 정말 혼자서 괜찮은 거죠?”
동료들이 길리를 중심으로 모여 진을 걱정하고 있었다.
탈라리스는 그 모습이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으흐응, 정말이지. 이제 사위는 자네들이 걱정할 그런 수준이 아니라니까? 그러니까 다들 그렇게 진이 죽으러 가는 사람처럼 굴지 말라고. 차라리 저쪽 연구실에 처박혀 있는 잡놈이 나아 보일 지경이군.”
콰울은 진이 홀로 룬칸델에 가거나 말거나 알 바 아니라는 듯 연구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는 진이 라프라로사에서 가져온 물건들에 완전히 심취한 상태였다.
마법 공학자라면 영혼을 팔아서라도 얻으려 할 자료들뿐인 것이다.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행복을 함께 나눌 발레리아가 부재중이란 사실이었다.
“탈라리스님 말대로, 너무 걱정들 마십시오. 다녀오겠습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제가 사흘 내로 돌아오지 않으면 꼭 대피 준비를 하시고요.”
“결국 우리 사위까지 쓸데없는 말을 덧붙이는군. 이제 타, 가자!”
진이 붉은부엉이 호에 올랐다.
“다녀오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원하는 것을 얻어오도록 하죠.”
* * *
천 년이 넘도록 룬칸델 검귀들의 본산이었고, 세상에 존재해온 모든 무인이 숭상하고 두려워하던.
검의 정원.
그 한가운데, 로사는 가만히 서 있었다.
얼굴은 창백하고 입술은 메말랐다.
시론과 함께 가문을 호령하던 룬칸델의 흑표범이 과연 맞나 싶을 만큼 앙상하게 야윈 몸으로, 그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겨울과 어울리지 않는 태양이 작열하고 있다.
로사는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하고도 눈동자가 불타는 감각을 느끼지 않았다.
그저 쓸데없이 환하구나, 하는 감상이 들 뿐.
“막내가…… 오고 있구나.”
검은 후드를 쓴 한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나 룬칸델, 조슈아의 불행한 반려로 알려졌던 여인.
이제는 룬칸델의 모두가 그녀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었다.
재앙의 예언자. 로사를 비롯한 룬칸델의 일원들을 혼돈으로부터 구원한.
“아쉬운 듯 말씀하시는군요. 조금만 더 빨랐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푹!
로사가 순식간에 광란을 뽑아 일리나의 목을 찔렀다.
일리나는 곧바로 숨을 거두며 쓰러졌고, 이내 몇 초쯤 경련하더니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환부에서 피 대신 혼돈이 흘러내렸다.
“아, 정말. 이럴 때마다 사람 목숨이 한둘 들어가는 게 아니라고 몇 번이나 설명해야 하죠?”
“룬칸델의 일원이 내게 그따위로 말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설령 이것이 네 마지막 목숨이었다 할지라도 널 죽이는 일을 망설이지 않았을 것이야.”
“좋게 타일러주실 수도 있…….”
“또 죽고 싶은 것인가? 죽음의 고통은 나 또한 느껴본 바, 네게도 마냥 가벼운 일이 아닐 텐데.”
로사의 낮은 목소리에 일리나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더 조심하겠습니다.”
로사는 다시 말없이 정문 쪽을 바라보았다.
정문.
돌이켜보면 로사 룬칸델에게 저 정문은, 셀 수 없이 고독했던 기다림의 세월이었다.
저 문으로 부디 과업을 끝낸 시론이 돌아와 가문을 구원하는 날이 오기를 그 얼마나 끔찍이, 절절히 고대해왔던가…….
결국 그날은 오지 않았다.
대신 찾아올 것은 분명히 끝끝내 굽히지도, 타협하지도 않아 자신이 직접 부러뜨릴 수밖에 없는 막내아들.
그 사실이 조금은 썼다.
“룬칸델의 전 기사들은 가문의 12기수를 맞이할 준비를 하라.”
로사의 말은 바람과 같고 지엄하다.
아무리 작더라도 퍼지지 않는 곳이 없으며, 듣지 못하는 사람이 없다. 마치 시론의 목소리가 그랬던 것처럼.
원내 곳곳에서 기사들이 달려 나와 그녀의 앞에 도열했다.
그 또한 가문이 시론의 입원을 준비할 때와 같았다.
기수들이 가장 앞에 섰고, 흑기사 흑검회, 집행기사, 수호기사들이 그 뒤를 따랐다.
진이 기억하고 있는 장면을 한참 넘어서는 숫자였으나, 기수는 넷밖에 되지 않았다.
“로사 경.”
흑기사대장, 스탐이었다.
“말하라.”
“지하의 기사들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지하의 기사들, 그들은 로사에게 마지막까지 반기를 든 자들이었다.
“4기수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풀어주도록.”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사용하던 무기를 돌려주어도 되겠습니까?”
스탐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비록 지금은 로사를, 가문을 등졌으나 그들은 모두 한때 가문을 위해 헌신한 기사들이었다.
그들이 로사를 거부한 건 배신이 아니다.
단지 로사가 갖게 된 힘과 패도의 논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일 뿐.
그러니 스탐은 그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고 싶었다.
진과 함께 그들이 생각하는 ‘명예’를 실현하며 싸울 수 있는 기회를.
일리나는 그 말에 미쳤냐며 목소리를 높이려 했으나, 로사는 그런 스탐이 그리 싫지 않았다.
그 같은 사람도 있어야 했다.
“그렇게 하라. 또한, 그들의 검은 모두 정원에 꽂힐 것이다.”
“……감사합니다.”
“제가 감히 한 말씀 올려도 될까요? 전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진 룬칸델의 운명은 한 번 궤도를 벗어났었어요. 아주 작은 요소라도 자칫하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요!”
로사는 그녀의 의견을 묵살했다.
그리고 저 멀리서부터 빠르게 엄습해오고 있는, 막내아들의 기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진이 예비 기수 과정을 끝내고 처음 가문으로 돌아오던 날을 떠올리며.
-이 노인을 환영해주려는 자가 또 있나 보군.
-가주,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로사, 그대도 무뎌졌구려. 꽤나 강대한 기운이 검의 정원으로 다가오고 있소. 아주 빠른 속도로 말이오.
‘이제 그때의 당신이 느꼈던 것들이 내게도 보이는군요…… 시론.’
장하구나.
가장 먼저 로사의 가슴 속을 꽉 채운 감정은, 그때의 시론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천천히, 정문이 열리고 있었다.
진은 어느새 바뀌어버린 가문의 모습에, 혼돈에 물든 기사들의 검은 기운에도 아랑곳 않고 성큼성큼 로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두 사람은 주변의 모든 풍경이 지워지는 듯한 느낌에 휩싸였다.
이 수많은 사람과 사람 아닌 존재들 속에서, 모자母子는 서로에게만 모든 감각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모든 것이 그날과 같다.
진이 시론의 일검을 받아내며 비로소 기수가 될 자격을 가졌음을 증명한 그날과.
그러나 지금은 그날이 아니다.
“12기수 진 룬칸델, 폐관 수련을 마치고 가문으로 복귀하였습니다.”
진은 검례를 올리지 않았다.
로사는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진을 내려다보았다.
룬칸델로서, 인간으로서, 어미로서 막내를 대할 수 있는 이 짧디짧은 마지막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붙잡고 싶었다.
때문에 그날 시론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는 검을 뽑고 싶었다.
단 한 번 검을 맞대 성장한 아들의 검을 음미하고 싶었다.
그러나 진은 그 시간이 길어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머니…… 당신은 나와의 약속을 저버리셨습니다.”
실망스럽군요.
당신에게는 이제 나를 시험할 자격이 없습니다.
진이 뒷말을 잇자, 로사는 저도 모르게 허리춤으로 올리던 손을 멈추었다.
그것이 로사가 인간으로서 느낀 최후의 감동이었다.
로사의 갈라진 입술 사이로 한 줄기 검은 피가 흘렀다.
그녀는 손등으로 피를 훔치며 이렇게 답했다.
“약속은 아직 유효하다. 네가 내게 증명하기로 한 것을 이 자리에서 보여줄 수 있다면, 나는 지금 당장 가문의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려놓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