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6)
제 77화
25화. 있어선 안 될 모조품(2)
“호오, 손님이 더 있었군요.”
씨익 웃는 안드레이.
퀴칸텔은 그 웃음에 일순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무라칸의 외침에 따라 뒤쪽으로 몸을 피했다.
안드레이가 꺼낸 정체불명의 돌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불길한 힘이 흐른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퀴칸텔의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키에에에엑!
고막을 손톱으로 긁는 것 같은 괴성.
다음 순간, 돌 안에서 튀어나온 기다란 무언가가 내지른 소리였다.
‘얼굴……!?’
무라칸이 ‘근원석’이라 말한 돌에서 튀어나온 시커먼 것은 거대한 얼굴과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다만 눈동자가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어있고, 얼굴 곳곳이 뭉개져 있어 정확한 생김새를 가늠할 수는 없었다.
얼굴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긴 목을 빼 퀴칸텔을 물어뜯으려 했으나.
간발의 차로 허공을 삼켰다. 무라칸의 목소리를 무시했다면, 퀴칸텔은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당신은 실험체로 사용하고 싶었건만… 아깝게 됐군요. 이 얼굴을 봐 버렸으니, 안식 같은 건 기대하지 않는 게 좋겠소.”
이어 무라칸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안드레이.
“흑룡이라. 이 세상에 남은 흑룡은 단둘. 그리고 당신은 여성체가 아닌 걸 보니, 룬칸델의 무라칸이겠군. 잠에서 깨어난 모양이지? 그렇다면 옆에 있는 소년은.”
진은 뮬타의 룬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안드레이는 확신하고 있었다.
“솔더렛의 계약자일 것이고… 분명해, 진 룬칸델. 이 시기에 여기 있을 수 있는 룬칸델은 예비 기수인 자네 하나뿐이지. 내 말이 틀렸나?”
안드레이의 두 눈동자가 순식간에 욕망으로 물들었다.
올타의 계약자를 ‘잡아먹을’ 생각으로 왔건만.
비교할 바 없이 더 큰 대어를 낚을 수도 있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탐욕이었다.
진은 대답하지 않고 안드레이를 노려보았다. 퀴칸텔도 경계 상태를 유지해 전투는 잠시 소강상태가 되었다.
그사이 무라칸은 안드레이의 손에 쥐어진 돌과, 그 돌 속에서 나온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근원석과 비슷하나, 조금 달라. 애초에 근원석은 신들이 직접 폐기했으니 저 인간이 갖고 있을 리 없어.’
모조품. 하지만 어떻게?
그런 의문이 계속해서 무라칸의 사고를 잠식하고 있었다.
‘근원석’이란 모든 신의 힘을 담아 만든, 일종의 안전장치였다.
언젠가 신들이 피조물들에게 공격당할 때, 혹은 신들이 서로를 공격해 자칫 세상이 멸망에 이를 수 있을 때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
그러나 근원석은 신들의 예상보다도 훨씬 위험한 힘을 지닌 물건이 되었고, 인간의 역사가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올랐을 때 폐기되기에 이른다.
신들이 근원석의 힘 때문에 세계가 통째로 파괴될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결과였다.
‘저번엔 묘지 거인이 보이더니, 이번엔 근원석의 모조품까지. 대체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비록 모조품에 불과하다지만. 안드레이가 쥐고 있는 돌은 분명 끔찍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얼굴’이 이미 주검이 된 뷰렛타에게 다가가 무언가를 속삭이자.
뷰렛타의 환부에서부터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고, 상처가 빠르게 아물기 시작한 것이다. 결코 일반적인 재생은 아니었다.
초록빛의 살과 비늘 대신, 근원석과 똑같이 어둡고 기괴한 살갗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 힘을 아끼지 말걸 그랬군. 다치게 해서 미안하네. 내 오랜 벗, 뷰렛타여.”
허연 뼈가 새로 돋은 살과 비늘에 감춰지기까지 채 10초도 필요하지 않았다.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뷰렛타. 그가 디딘 땅엔 아직도 선혈과 녹색 살점, 비늘이 남아 있건만, 재생이 끝난 뷰렛타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 듯 보였다. 목 한쪽이 시커멓게 변한 걸 빼면 말이다.
진 일행으로선 기겁할 수밖에 없는 대목.
방금까지 용맹의 화신 같은 모습을 보인 퀴칸텔마저 흠칫하며 뒷걸음질을 쳤고, 무라칸은 이를 악물었다.
막 숨을 거둔 용이 눈앞에서 되살아났다.
치유의 신이 강림해도 불가능한 일이 눈앞에서 벌어진 것이다.
[아무래도 이번엔 긴장 좀 해야겠다, 꼬마.] [무라칸! 비먼트의 용들을 부르겠다. 그때까지 시간을 벌.]“아아, 그렇게 둘 수는 없소.”
핏!
일순 안드레이가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그는 어느새 퀴칸텔의 뒤에 있었고, 손에 쥔 근원석에서 튀어나온 얼굴이 주둥이를 벌리고 있었다.
카짓-!
퀴칸텔의 왼쪽 발이 그 이빨에 스쳤다.
단지 스치기만 했을 뿐.
그러나 퀴칸텔은 자지러지는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뷰렛타와 그토록 격한 몸싸움을 하면서도 괴로운 기색 한 번 보이지 않은 그녀가 말이다.
스친 상처에서 불이 난 듯 연기가 피었고, 다시 거리를 벌린 퀴칸텔은 다리를 쩔뚝거리는 모습.
“듣기 좋은 비명이오, 은룡. 그리 오래 감상하지 못할 것 같아 아쉽군.”
그리고 무라칸이 달려 나가려는 순간.
[그대가 나서면 상황이 달라질 것 같나, 무라칸.] [비켜라, 뷰렛타.] [비키라고? 천하의 무라칸이 부탁을 다 하는군! 하하, 그대가 깨어난 걸 알면 치를 떨 동족이 참 많은데… 나 역시 안드레이와 같은 마음이야. 동족들에게 소식을 알릴 수 없어 아쉽군.]무라칸의 두 날개에서부터 영기가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한때는 모든 용들이 그 힘을 두려워했지. 하지만 아직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나? 그대는 약해졌어. 그리고 계약자는 아직 핏덩이로군!]화아아악!
말을 끝내자마자 뷰렛타가 브레스를 내뿜었다.
한없이 압축된 바람의 숨결.
그 앞에 무라칸의 영기가 허무하리만치 빠르게 걷혀 나갔다. 심지어 뷰렛타의 브레스는 ‘되살아나기’ 전보다 더 강해진 상태. 근원석 모조품의 힘 덕이었다.
뷰렛타는 그 광경을 지켜보며 희열에 찬 기색이었는데, 과거엔 감히 쳐다볼 수도 없던 존재를 압도하고 있다는 기분에 취한 것이다.
[이 뷰렛타는 그대를 죽인 존재로 기록될 것일세!] [놀고 있네, 미친 새끼.]전성기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약해졌다고 하나.
무라칸은 한때 하늘을 나는 모든 존재의 정점에 섰던 용. 고작 브레스 한 번에 승기를 내어 줄 정도는 아니었다.
화르르륵……!
브레스를 견디던 무라칸의 몸이 검은 연기로 흩어졌다. 그러곤 연기 상태 그대로 뷰렛타에게 접근해 다시 모습을 드러낸 무라칸.
[그래, 너무 쉬워도 허탈할 테지!]곧바로 육탄전이 이어졌다. 성채만 한 두 용이 부대낄 때마다 섬 전체에 얕은 지진이 퍼졌다.
영기와 바람이 뒤섞일 때마다 공간이 일그러졌는데, 진은 그 뒤로 보이는 안드레이와 퀴칸텔의 싸움에 집중하고 있었다.
싸움의 흐름을.
냉정하게 읽어야 했다.
‘지금 내 무위로 무라칸과 뷰렛타의 싸움에 끼어드는 건 자살 행위야. 충격파 때문에 다가서는 것조차 버겁다. 반면 안드레이 쪽은…….’
파고들 틈이 있었다.
안드레이가 근원석을 꺼낸 후 퀴칸텔은 도망치기만 하는 형세였으나. 바로 그 점 때문에 진이 난입할 여지가 있었다.
게다가 이 전투의 핵심은 뷰렛타가 아니라 안드레이였다. 안드레이를 먼저 잡아야 뷰렛타를 죽이는 것도 의미가 있으니까.
‘안드레이는 저 돌을 꺼낸 이후 제대로 된 마법을 구사하지 않고 있다. 아마 사용 자체에 어마어마한 마력이 소모되는 아티팩트이기 때문이겠지.’
오히려 9성 마법을 난사하고 있다면 접근이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안드레이는 돌에 집중하고 있는 상태. 간간이 퀴칸텔을 따라잡기 위해 짧은 순간이동 마법을 쓰고 있는 게 전부였다.
‘대신 돌의 능력인지, 전반적인 신체 능력이 대폭 상승했어. 최소 7성 기사 이상. 기회가 많지는 않을 것 같군.’
놈에게 접근해, 단숨에 숨통을 끊는다.
아니면 적어도 돌을 쥐고 있는 오른손이라도 잘라 낸다.
최고의 결과는, 돌을 떨궈 낸 후 안드레이를 인질로 잡는 것이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진이 서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다행히 뷰렛타는 무라칸에게 정신이 팔려 진의 움직임을 눈치 채지 못한 듯 보였다.
무라칸이 필사적으로 뷰렛타를 막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
‘돌아가서 카시미르에게 생색 좀 내야겠어. 이 방법이 안드레이에게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뷰렛타를 지나치자마자, 속도를 높여 단숨에 퀴칸텔 쪽으로 달렸다. 그때쯤 퀴칸텔과 진은 정면이었고, 안드레이는 진을 등지고 있었다.
세 걸음 앞까지 다가섰을 때, 홱 돌아선 안드레이는 진을 보며 웃고 있었다.
당연히 이럴 걸 예상했다는 얼굴.
그러나 진 역시 애초에 뒤에서 안드레이를 벨 수 있으리라곤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왔구나, 진 룬…… 으윽!”
파아앗!
진은 검을 휘두르는 대신, 안드레이의 면전에 왼손을 활짝 펼쳤다. 미리 영창을 끝낸 한 가지 마법이 담긴 왼손을.
모두가 완전히 유실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얼마 전 단 한 사람만이 계승한 고대의 빛 마법.
섬광포. 티칸에 도착하기 직전, 배 안에서 익힌 대마법사 첸미의 비전절기.
‘됐다!’
안드레이가 반사적으로 눈을 가리며 몸을 숙였다. 그리고 엉거주춤 물러선 순간, 진이 브라다만테를 뽑아 사선으로 휘둘렀다.
스걱!
칼날을 타고 무언가를 베는 선명한 감각이 전해졌다. 가슴팍이다. 재차 놈을 찌르려는 찰나, 돌의 얼굴이 진을 노렸다.
하지만 얼굴은 안드레이의 시야에 영향을 받는 듯, 그저 긴 목을 마구잡이로 움직이며 주둥이를 딱딱거리는 모습.
진은 포복을 하듯 아예 몸을 바짝 낮춰, 기묘한 자세로 검을 휘둘렀다. 안드레이의 두 다리를 베기 위해.
“크아아!”
써걱……!
두 발목이 잘린 안드레이가 그대로 허물어지며 뒤로 넘어가는 광경이 이어졌다.
평범한 적이었다면 끝장을 낸 것이나 다름이 없으나, 올라타서 가슴팍이나 목에 검을 찔러 넣을 틈이 없었다.
퀴칸텔은 이미 한계였는지, 진이 잠시 시간을 벌어 줬음에도 안드레이와 더 거리를 벌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주저앉은 채 거친 숨만 몰아쉬는 모습.
“이 기습은 칭찬해주지. 그러나 너와 너의 신은 마신석의 가장 중요한 재료가 될 것이다, 진 룬칸델……!”
안드레이는 섬광포에 눈을 공격당하고, 두 다리가 잘려 쓰러졌음에도 불구하고.
‘마신석’의 얼굴을 이용해 침착하게 온몸을 방어하고 있었다. 또한 뷰렛타가 그랬던 것처럼, 잘린 발목이 재생되는 모습까지 이어졌다.
게다가 이제는 뷰렛타도 무라칸을 떼어 낸 채 진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무라칸을 벌써 꺾은 것은 아니고, ‘무풍지대’가 아직 유효하기에 혼자 날아온 것이다.
[꼬마! 위!]콰아앙!
뷰렛타가 진을 깔아뭉개려 거칠게 착지했다. 진은 다행히 몸을 던져 피할 수 있었으나, 곧장 이어지는 브레스와 마신석의 얼굴까지 회피하는 건 불가능했다.
죽음이 목전까지 다가왔다.
그리고 진은, 목덜미에 손을 올린 채 한 사람의 이름을 떠올리고 있었다.
시론 이후 모두가 인정하는 최강의 기사, 고고한 흰 고래.
루나 룬칸델.
제 누이의 이름을.
철그렁!
힘껏 주먹을 쥐자, 지난 6년간 단 한 번도 몸에서 떼어 낸 적 없는 오르갈의 펜던트가 깨졌다.
동시에 그곳에서부터 화산처럼 마력이 터지며 차원문이 열렸고.
“버거운 일이 생긴 모양이지? 우리 막내.”
백경이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