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5)
제 77화
25화. 있어선 안 될 모조품(1)
‘이 미친놈들… 이렇게 뻔뻔하게 혐의를 시인할 줄은 몰랐는데?’
놈들이 라트리를 납치했다는 확신이 있긴 했지만, 이토록 당당한 모습을 보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게다가 퀴칸텔쯤 되는 용을 주저 없이 제거하겠다는 저 태도. 라트리나 엔야에 관련된 일은 지플의 핵심 권력도 연루된 것이 분명했다.
‘엔야를 내놓으라는 말까지 아무렇지 않게 할 줄이야. 저놈들은 지플 외 신의 계약자들을 찾아내 이용하거나, 제거하고 있다.’
전투가 시작될 기세였으나 당장 나설 수는 없었다.
‘퀴칸텔 님이 위험해지거나, 확실한 기습 기회가 생길 때 나선다.’
아직 안드레이와 뷰렛타는 진과 무라칸의 존재를 모르고 있으니, 상황을 지켜보는 게 더 좋은 선택이었다.
[사실 나도 그대가 전부터 썩 마음에 들진 않았어, 퀴칸텔.]뷰렛타가 날개를 펼치며 소리쳤다.
날개가 일으킨 바람을 따라 마력이 번졌고, 사방을 잠식하고 있는 회오리들이 퀴칸텔을 덮치기 시작했다.
휘이이익……!
거대한 뱀처럼 움직이는 회오리들. 예리한 바람에 근처 나무들이 갈려 나가는 와중, 퀴칸텔은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설마 이깟 애들 장난 같은 바람 따위로 날 어쩔 생각은 아니겠지?]8성 마법 정도의 위력. 분명 ‘애들 장난’이라고 폄하당할 수준은 아니지만.
퀴칸텔의 외피를 뚫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녀는 굳이 피하지도 않고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 냈는데, 과시가 아니라 진심으로 피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었다.
회오리가 퀴칸텔의 은빛 외피를 긁기 시작하자 이명이 번질 정도로 강렬한 마찰음이 퍼졌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회오리들은 비늘 한 조각조차 떨구지 못하고 이내 완전히 잦아들었다.
주변 풍경은 포격이라도 맞은 듯 땅이 다 뒤집어진 모습이지만, 퀴칸텔은 처음과 같은 자세로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뷰렛타는 조금 당황스러운 듯 동공이 커졌고.
“오오……! 과연!”
안드레이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감탄을 내뱉었다.
퀴칸텔은 안드레이의 그 여유로운 태도가 불쾌하면서도 은근히 신경 쓰였다.
9성 대마법사, ‘풍왕’ 안드레이 지플.
지플의 부가주로서 그가 얼마나 강한 인간인지는 세상사람 모두가 익히 알고 있으나, ‘정확히’ 알고 있는 이들은 극히 드물다.
그와 싸운 인간은 대부분 죽었으니 당연한 일. 때문에 세인들은 안드레이의 전투력을 막연하게만 유추할 뿐이었다.
그리고 퀴칸텔 역시 안드레이에 대한 정보가 많지는 않다.
[풍왕이라는 이명이 마냥 우스운 것은 아닌 모양이지? 건방진 인간아. 이제 네놈 실력을 보여 보아라. 내가 날뛰기 시작하면 기회가 별로 없을 테니.]“이 노인이 오랜만에 전력을 다 쏟을 수 있겠군요. 그럼 재미있게 즐기겠습니다, 시간의 은룡이시여.”
안드레이의 지팡이가 빛나기 시작했다.
마력 개방, 마법사의 개전을 알리는 기술.
‘9성 마법사의 마력 개방을 직접 보는 건 오랜만이군.’
순식간에 반경 500미터 정도의 대지가 푸른 마력으로 물들었다. 9성 마법사의 마력 개방인 만큼 일반적인 형상이 아니었다.
또한 바람의 신 멜자이어의 계약자인 만큼, 안드레이의 마력은 바람 그 자체다. 섬에 부는 바람은 단 한 점도 남김없이 모두 안드레이의 무기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인위적으로 압축되고 쏘아지며 공간을 일그러뜨리는 모습은 직접 확인할 수 있지만, 바람 그 자체는 본래 형상이 없다.
그것은 즉.
안드레이의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검이 될 수도 있고.
무형의 창이 되어 상대를 찌를 수도 있다는 의미.
안드레이를 둘러싸고 있는 공간이 바람의 흐름에 따라 왜곡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일그러진 공간 속에서 언제 무엇이 튀어나올지는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안드레이가 지그시 미소 지으며 손가락을 뻗었다.
“저는 용이란 종족에 아주 강한 편입니다. 그러니 조심하시길.”
씨이이익!
안드레이의 손가락을 타고 무언가 쏘아졌다.
송곳 형태로 압축된 바람. 이번엔 퀴칸텔도 위험하다고 판단했는지, 급히 날개를 펼쳤다. 날아올라 피한 다음, 브레스로 반격하려는 계획.
그러나 용에게 아주 강하다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비행이… 막혔어!?’
한 쌍의 거대한 날개를 펼쳐 힘껏 펄럭여도, 바람이 전혀 일어나질 않았다. 물속에서 움직이듯 평소보다 날개가 훨씬 무겁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무풍지대.
멜자이어의 계약자만이 쓸 수 있는 절기.
마력 해방이 닿아 있는 땅 안에서. 안드레이의 허락 없이 하늘을 날 수 있는 생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비행’이라는 특권이 사라지는 건, 용의 전투력에 더없이 뼈아픈 손실이었다.
콰지직!
안드레이의 바람 송곳이 퀴칸텔의 가슴팍을 적중시켰다. 가슴께 비늘 몇 조각이 부서지며 바닥으로 떨어졌고, 동시에 뷰렛타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 자식들이……!] [그대는 분명 강하지만 너무 안일했어.]수십 갈래의 곡선으로 낙하하는 뷰렛타의 브레스. 퀴칸텔은 마력으로 보호막을 쳤으나, 그사이 안드레이는 새로운 마법을 영창하고 있었다.
이번엔 멜자이어의 권능으로 이룬 마법이 아니다.
지플의 비전 마법, 번개 폭풍. 서슬 퍼렇게 빛나는 전류가 안드레이의 손아귀에 모이고 있었다.
멜자이어의 계약자라고 해서 바람 속성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진이 영기를 쓰면서도 타 속성 마법도 자유자재로 사용하듯이.
‘이건 위험하겠군, 빌어먹을 인간 놈이……!’
이렇다 할 공격 한 번 하지 못한 채, 퀴칸텔은 궁지로 몰리고 있었다.
지금 나서야 할까?
진이 눈짓한 순간, 무라칸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퀴칸텔이 안일했던 건 사실이지만, 저놈들도 너무 과소평가했어. 조금 더 지켜보자고. 지금 나가면 저 녀석 자존심에 흠집이 날 거다.”
무라칸이 말을 끝맺자마자 안드레이의 영창이 끝났다.
사납게 출렁이는 전류가 퀴칸텔을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일순 눈이 따가울 만큼 밝은, 수백 갈래의 번개 줄기가 뷰렛타의 브레스에 뒤섞였다.
그들로부터 꽤 떨어져 있는 데다, 영기로 몸을 보호하고 있는 진마저 온몸이 저릿저릿할 지경.
과연 지플의 부가주 자리에 부족함이 없는 마력이었다.
하지만 엄청난 위력의 마법이라 할지라도, 결국 상대에게 닿지 못해선 의미가 없다.
퀴칸텔은 어느새 시간의 권능을 발동시켜 안드레이의 마법을 정지시키고 있었다.
안드레이가 멜자이어의 계약자로서 바람을 지배하고 있듯, 퀴칸텔 역시 올타의 은룡으로서 시간을 지배하는 것이다.
[꽤 괜찮은 재주였어.]파직거리며 나아가던 번개 줄기들이 퀴칸텔의 정면에 쌓여 갔다.
권능과 권능이 대결하는 구도가 만들어진 셈.
안드레이가 지팡이를 거두며 지상으로 내려섰다. 묘하게도 그의 두 눈동자엔 욕망이 한가득 번들거리고 있었다.
“정말 탐나는 힘입니다… 클클. 직접 두 눈으로 보니 오랜만에 이 늙은 육신에 혈기마저 꿈틀대는 기분이군요.”
퀴칸텔은 대꾸하지 않고 유유히 정지된 공간 속을 빠져나갔다.
[이제 내 차례로군.]여전히 비행은 할 수 없는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퀴칸텔은 공중을 장악할 자신이 있었다.
[나는 날 수 없으나, 너희는 손가락 하나조차 움직일 수 없으리라!]키이이잉!
날카로운 공명음이 울리자, 퀴칸텔의 이마에서부터 파동이 번지기 시작했다.
호수 표면에 돌이 떨어진 듯 둥글게, 또한 거대하게 퍼져 나가는 파동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 시간을 잃게 된다.
멈춘 시간 속에 석상처럼 굳을 뿐.
“저게 바로 시간의 용들하곤 잘못 엮이면 꽃이 되는 이유다, 꼬마. 저 파동에 걸리면 끝이야.”
“완전 말도 안 되는 능력이잖아?”
“아니 뭐, 안 닿으면 그만이긴 해. 오래 유지할 수도 없고.”
뷰렛타와 안드레이 역시 시간의 용과 싸우는 건 처음이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파동을 피했으나, 한 가지를 간과한 점이 있었다.
발끝, 머리카락 한 올, 신체의 한 점이라도 걸리면 전체가 다 그대로 정지된다는 사실을.
안드레이는 몸집이 작아 쉽게 빠져나갈 수 있었지만, 뷰렛타는 아니었다.
콰직! 퀴칸텔이 뒷발로 땅을 박차며 하늘에 그대로 정지된 뷰렛타에게 달려들었다.
“뷰렛타!”
그리고 충분히 가까워졌다고 판단한 순간 권능을 해제하고,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뒤늦은 괴성을 지르며 퀴칸텔과 함께 추락하는 뷰렛타.
쿵!
뷰렛타의 긴 목에서 두꺼운 핏줄기가 쏟아졌고, 퀴칸텔은 먹잇감을 문 맹수처럼 집요하게 턱을 고정시켰다.
발버둥을 칠 때마다 녹색 비늘과 피, 살점이 튀긴다.
안드레이는 처음으로 분노한 얼굴을 한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함부로 마법을 펼치면 뷰렛타도 함께 당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안드레이가 접근하려고 시도하면, 퀴칸텔은 다시 예의 파동을 발산시켰다.
[크어어억!] [맛도 더럽게 없군. 내가 안일했다고? 다시 지껄여 봐!]크적! 퀴칸텔이 뷰렛타의 살점을 한 뭉텅이 뱉어 내며 소리쳤다. 뷰렛타의 목덜미에 허연 뼈가 드러났고,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치는 순간.
파동을 이용해 다시 뷰렛타를 정지시키는 퀴칸텔.
이 과정이 반복되며 절로 눈이 찌푸려질 만큼 참혹한 풍경이 이어졌다.
“어우, 소름 돋아. 나도 저거에 당해 봤거든.”
“퀴칸텔 님한테?”
“연인일 때 자주 싸웠으니까.”
두어 번만 더 물어뜯으면 뷰렛타의 목은 완전히 절단될 터. 이미 뷰렛타는 반쯤 의식을 잃은 채, 시간이 풀린 순간에도 겨우 움찔거리기만 했다.
“그만… 그만 멈춰라, 은룡!”
[닥치고 마저 구경이나 해, 지플의 마법사. 네놈은 다음 차례니까. 그런데 말이 짧아졌군? 죽을 때가 되니 정신이 나간 것인가.]그러나 그때쯤엔 퀴칸텔도 지친 기색이 역력한 모습이었다.
시간의 권능이 무한정 쓸 수 있는 힘이었다면, 세계 최강은 시론이 아니었을 것이다.
‘뷰렛타가 방심한 덕에 쉽게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이놈을 죽이고, 마법사는 진과 무라칸의 도움을 받아 처리한다……!’
권능을 난사한 탓에 퀴칸텔도 마력이 거의 바닥났다.
후욱, 후우…….
거친 숨결을 토해 내며, 퀴칸텔이 뷰렛타의 실낱같은 숨통을 끊으려는 찰나.
결단을 내린 듯, 안드레이가 용들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대는 도를 넘었소.”
[누가 할 말을.]“그것은 강자에게만 허용된 일이오, 은룡. 그대는 시간의 은룡으로 태어나, 평생을 자신과 자신이 모시는 신이 강자라고. 세상을 호령하는 존재들이라 생각해 왔겠지…….”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오.
모든 것은 결국 지플의 깃발 아래에 놓일 것이오. 인간도, 신도.
뒷말을 이은 안드레이가 지팡이를 내려놓고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안드레이의 손에 쥐어진 것은, 불길한 검은빛이 감도는 둥근 돌이었다. 그리고 그걸 본 순간, 무라칸이 반사적으로 기함을 내질렀다.
“근원석……!? 그럴 리가!”
동시에 본모습으로 변신하는 무라칸. 진과 무라칸을 숨기고 있던 영기가 무색할 만큼, 거대한 몸집이 지상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피해라, 퀴칸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