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39)
제 888화
209화. 테마르의 일곱 번째 무덤 – 케이탐의 그림(13)
영검의 끝에 다다르면, 영혼 베기는 검술이 아니라 권능이 된다.
그 권능이란 시전자보다 의지가 약한 상대의 목숨을 거두는 것이다. 대상이 가진 절대적인 힘이 시전자를 뛰어넘는다 할지라도, 혼이 베이는 건 막을 수 없다.
그리고 테마르는 필멸자 중, 분명 영검의 종착지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인물이었다.
무라칸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영혼 베기를 의식하고 있었다.
과거 명백히 테마르보다 강하다고 확인된 엘로나 지플이, 영혼 베기에 당해 죽을 뻔한 걸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엘로나 지플은 영혼 베기가 펼쳐지자마자 괴성을 내지르며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였었다.
그리고 지금의 무라칸도 마찬가지였다.
[크아아아악……!]그토록 길게 이어진 전투에서 단 한 번도 지치거나 밀리는 기색이 없던 무라칸이, 처음으로 고통스러워하며 비명을 토했다.
무라칸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꺾을 때마다 그의 몸에서 검은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올랐는데, 바리사다의 칼날은 그 연기를 잡아끌었다.
연기가 칼날에 닿자 무라칸은 고통이 가중되는 걸 느꼈다. 본능적으로, 무라칸은 테마르가 자신의 영혼을 베고 있다는 걸 알아보았다.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운 게 아니었다.
애써 외면한, 결코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
풍경 속 무라칸에겐 얼마 전의 일이고, 지금의 무라칸에겐 천 년 전의 일들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무라칸에겐 역린이나 다름없는 기억이었다.
테마르는 그걸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자신이 무라칸을 꺾으려면, 영검으로 그의 영혼에 직접 타격을 주는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심장을 깨부수는 건 그 이후의 문제였다.
“네놈에게 감정이라는 게 있긴 있던 모양이지.”
[닥……쳐라……!]“어느 날을 마주하고 있나? 드라낙스와 그의 가문인 카말가를 모조리 몰살한 날인가? 아니면 네게 복수를 하러 찾아온 비올로를 무참히 살해한 날인가.”
끄드득……!
두 사람의 이야기를 하며 테마르는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무라칸에게 당한 그들을 생각하니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치솟았다.
하지만 마성화가 도지지 않도록 감정을 눌러야 했다. 만에 하나라도 다시 마성화에 빠진다면, 자신 또한 무라칸과 똑같은 괴물이 될 터였다.
무엇보다도 지금은 복수를 하는 순간이다. 분노에 취해 일을 그르친다면 테마르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무라칸에게 죽은 동료들을, 기사들을, 자신을 믿고 의지하던 사람들을 마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기에 테마르는 단숨에 승기를 잡았음에도 영검을 신중하게 전개해 나갔다. 마성화만 조심하면, 느리더라도 분명 무라칸의 숨통을 끊을 수 있을 것이다.
테마르의 말대로 무라칸은 드라낙스와 비올로를 살해한 날을 마주하고 있었다.
드라낙스는 카말 대신 룬칸델의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나, 카말가의 일원들은 여전히 드라낙스를 지도자로 여겼다.
새로 가주가 된 그의 형제, 키턴 카말은 그 사실을 거북하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형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며, 드라낙스 또한 시간이 날 때마다 휴페스터 남부를 찾아 식솔들과 회포를 풀고는 했다.
카말은 룬칸델의 가장 중요한 동맹 가문 중 하나가 되었으며, 그 일원은 모두 드라낙스와 마찬가지로 늘 전장의 선봉에 서는 일에 열망을 품고 있었다.
무라칸은 드라낙스와 카말가를 묶어 꼴통 패거리라 부르는 걸 즐겼다.
드라낙스와 카말가를 모두 죽여야겠다고 결심하기 전까지, 무라칸은 그들과 무척 가깝게 지냈었다.
“무라칸……! 네놈이 어찌 이럴 수 있다는 말이냐! 형님은 나보다도 너를 더 믿으셨다. 형님은 너와 우리 카말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면, 아마 너를…… 네놈을 선택하셨을 것이다. 그것이 세계를 위한 일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말이다! 그런 네놈이, 어떻게 드라낙스 형님을.”
무라칸의 두 눈동자에서 시커먼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테마르의 검은 계속 그의 영혼을 상처입히고 있었다. 검은 연기가 종이처럼 베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사이, 무라칸은 눈을 감아도 자꾸만 선명해지는 괴로운 기억들에 파묻혀갔다.
[드라낙스…… 내가 네게 무슨 짓을 한 거지.]“드라낙스는…… 그래, 네놈에게도 충분히 거슬릴 힘을 가지고 있었겠지. 그런데 카말가는 어째서 몰살한 거냐? 어린아이조차 살려두지 않았더군. 네놈이 드라낙스 그 멍청이에게…… 무슨…… 원한이…… 그리 깊다고. 카말의 아이들이 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복수를 위해 찾아온 비올로는 울먹이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친했잖아. 서로 욕하고 툭하면 치고받아도 한 번도 진심으로 증오한 적은 없었잖아. 적어도 드라낙스와 우리 동료들은 모두 그렇게 믿었다. 언젠가 우리가 지플과 싸우다 스러지는 날이 오면, 그때 끝까지 남아 복수를 하고 우리 넋을 기려줄 놈은 너일 거라고. 너조차 복수가 불가능하다면, 끝까지 살아남아 우리를 기억이라도 해줄 거라고…….”
“그래, 비올로. 내가 모두 기억해주마. 그러니 이제 그만 잠들어라.”
“아니, 너는 우릴 잊어라. 어차피 우린 죽어서도 널 잊지 못해. 네놈에게 기억되고 싶지 않다. 망령이 되어서도 네놈을 저주하고, 또 저주할 것이다. 솔더렛이 원한 미래도 결국 저주와 피에 젖어 어두운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비올로……! 어쩔 수가 없었다, 나로서는 정말 어쩔 수가 없었어!]“대체 네놈의 그 어쩔 수 없었다는 사정이 무엇인지는 모르나, 그게 무엇이든 네놈이 저지른 짓들을 정당화할 순 없어. 지플조차 그토록 잔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테마르의 눈동자에서도 검붉은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마성화와 이성의 아슬아슬한 간극을 겨우 유지하고 있었다.
“이젠 사람을 죽이는 게 당신에겐 한낱 유희에 지나지 않게 된 건가요, 무라칸. 사람들은 당신의 날개를 보면 그곳엔 재밖에 남지 않는다는 말들을 합니다. 당신은 어린애조차 살려두는 법이 없으니까요.”
프레이 룬칸델.
그녀는 내분 속에서도 어떻게든 사람들을 구하고자 모진 애를 썼다. 가망 없이 고통받는 자들이 간곡히 원할 때엔 무거운 마음으로 그들의 짐을 덜어주었고, 전장에서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곳엔 언제나 살아남기 가장 어려울 약자들이 있었다.
“아니, 아마 당신은 처음부터 그런 존재였을 겁니다. 그동안 그 추악한 민낯을 감추고 지내느라 얼마나 답답했나요? 하지만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면…… 아마 충분한 보상이 되겠죠. 당신에게 속아 모든 걸 내어준 사람들을 해치고 짓밟는 것보다 더 큰 보상은 없겠죠.”
프레이는 태어난 이래 세상에 수많은 자비와 사랑을 베풀어왔다. 그러나 그중 이성으로서 타인을 사랑한 건 단 한 번, 무라칸뿐이었다.
그녀는 앞서 죽은 드라낙스와 비올로보다도 무라칸에게 훨씬 더 처절하게 대항했다.
한 번의 전투로 끝내지 않고, 위기에 몰릴 때마다 어떻게든 도망쳐서 다음을 기약한 것이다. 어떤 날은 전사하기 직전 깨달음을 얻어 살아남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리 오래 이어지지는 못했다. 결국 프레이는 무라칸의 흑쇄에 죽음을 맞이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건…… 다…… 당신은…… 지플의 조작…… 그렇다고, 말해요…….”
무라칸은 인간으로 변한 채 주저앉아 쉰 목소리로 울음을 토했다. 천 년 전의 무라칸도, 지금의 무라칸도 울고 괴로워하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어느새 테마르는 자신과 무라칸 사이에 놓인 검은 연기를 거의 다 베어버린 채였다. 이제 몇 걸음만 더 다가가면 무라칸의 심장을 벨 수 있을 터였다.
진과 십대기사들은 마치 관찰자가 아니라 그들의 바로 옆에 실제로 서 있는 듯 숨을 죽였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보면 무라칸은 명백히 배신자이며, 십대기사들을 살해한 게 사실이었다. 죄 없는 사람들을 몰살한 것도, 휴페스터 전체를 두려움에 떨게 만든 것도 모두 무라칸이 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과 십대기사들은, 왜인지 천 년 전의 무라칸을 속으로 응원하고 있었다. 그가 이대로 쓰러지지 않기를 바랐고, 그가 이대로 테마르에게 찔려 예정된 긴 잠에 빠지지 않기를 바랐다.
무라칸에게 무언가 사정이 있으리라 확신하기 때문이었다. 테마르의 말처럼 정당화될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무라칸이 이유 없이 저런 짓들을 감행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
아공간을 형성하던 영기가 모두 영혼 베기에 집중되고 있었다.
어둠이 걷히며 드러난 풍경은, 회색 사막처럼 보이는 어느 드넓고 황량한 땅 위였다. 단 한 줌의 생기도 찾아볼 수 없는.
“무라칸, 내게도 검을 타고 네놈의 기억들이 전해지더군. 드라낙스, 비올로, 프레이. 내가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허망하게 보낸 동료, 나의 친구들. 네놈을 천 번, 만 번을 베어도 그들을 잃은 고통은 사라지지 않을 거다. 그들이 겪은 아픔은 지워지지 않을 거다.”
푹……!
바리사다가 무라칸의 가슴팍을 파고들었다. 변신 때문에 약해진 심장이 관통되었다. 하나 본모습일 때의 가장 단단한 심장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무라칸은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는 듯 미동이 없었다.
“그래, 그럴 테지…….”
“내가 검을 비틀면 넌 소멸한다. 네놈에게 더 고통을 주지 못하고, 이대로 끝내야 한다는 게 억울해.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겠다…… 왜 그랬냐?”
검을 쥔 테마르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말라붙은 피눈물 자국 위에 있는 눈동자가 텅 비어 있었다.
“그 어쩔 수 없는 사정이란 게 대체 무엇이냔 말이다. 천 년 후의 미래를 위해 이런 짓들을 벌였다고? 이 끔찍한 배신, 학살과 그게 대체 무슨 상관이 있지?”
“난 천 년 후의 미래 같은 것…… 몰라. 네가 마녀를 통해 알게 되었다는 세상의 진실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다.”
“그럼 대체 왜?”
“왜냐고……?”
무라칸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테마르를 올려다보았다.
“테마르, 지금 여기가…… 어디인지는 아냐?”
“네가 죽을 땅이지.”
“테마르…… 여긴, 여기는. 재밖에 남지 않은 죽음의 땅처럼 보이지만…… 한때 이달이라 불리던 땅이다. 파들러가 다스리던, 그가 목숨보다도 더 사랑하던. 그의 고국 이달 왕국이란 말이다…….”
그리고 테마르, 네가 바로 이달을 이렇게 만들었다.
무라칸은 그렇게 뒷말을 이으며 양손으로 바리사다의 칼날을 붙잡았다.
“그렇기에 난 지금 죽을 수가 없어…… 죽고 싶어 미치겠는데도. 테마르. 미안하다, 네가 더 끔찍한 짓들을 저지르기 전에, 네가 더 망가지기 전에, 적들이 너를 더 이용하기 전에. 내가 멈춰야 해. 나는, 네 수호룡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