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38)
제 888화
209화. 테마르의 일곱 번째 무덤 – 케이탐의 그림(12)
천 년 전의 테마르, 그리고 무라칸.
그들이 서 있는 곳은 폭풍성이었다. 방금 가짜와의 전투에서 완전히 파괴된 그림 속 폭풍성이 아니라, 현재도 무라칸 산 정상에 우뚝 솟아 있는 천 년 전의 폭풍성.
진과 십대기사들은 눈을 크게 뜬 채 새로운 풍경을 살펴봤고, 무라칸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시선을 돌렸다.
“아니야…… 이건 아니야. 그래, 내가 그런 짓을 했을 리가 없다. 이 무라칸이 기사들을, 테마르를, 너희를 죽이려 했을 리 없어.”
진은 무라칸의 정신이 붕괴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그는 방금 자신이 했던 말을 연신 반복했다.
‘언제든지 갑자기 폭주할 수 있는 느낌이다. 무라칸의 영기가 아까보다 더 불안정해지고 있어.’
이내 무라칸의 등 뒤에 영기로 창이 형성되었다. 창은 곧장 천 년 전의 풍경으로 쏘아졌으나, 풍경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지금 일행은 관찰자로서 천 년 전의 풍경을 관찰할 수만 있을 뿐, 그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다.
방금 들린 ‘전부 네놈이 저지른 짓이다’라는 말도, 진짜 무라칸이 아니라 풍경 속 무라칸에게 한 것이었다.
풍경 속 무라칸은 테마르에게 대답하지 않은 채 이를 악물고 있었다.
“무라칸, 그만둬.”
드라낙스였다. 그는 진중한 눈빛을 한 채 무라칸과 천 년 전의 무라칸, 테마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우린 수호자에 불과하다지만, 영혼만큼은 천 년 전의 진짜 우리와 똑같을 거다. 그러니까 우리 세 사람에겐 자격이 있어. 그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 자격이 있단 말이다. 어차피 풍경을 부술 수도 없는 것 같으니 좀 진정하고 가만히 있어라.”
“그래, 무라칸. 우린 곧 소멸하겠지만, 그전에 한 번은 꼭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리의 역사를.”
프레이도 고통을 이겨내며 풍경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십대기사들은, 진실을 모두 확인하기 전엔 어떻게든 소멸을 거부하려는 각오를 품었다.
“이건…… 다 계략이야. 마녀, 아니면 다른 누군가…… 그래, 로키아. 로키아가 우리를 배신했다고 했어. 그놈들의 계략이란 말이다, 나를 모함하려는! 내가 어떻게 너흴 죽일 수가 있냔 말이야? 테마르를 해하려 하고, 죄 없는 사람들을 그렇게 학살할 수 있겠냐고?”
괴로운 기억은, 얼마든지 사람을 미치게 만들 수 있다.
무라칸은 거부할 수 없이 밀려드는 옛 기억들에 잠식되고 있었다.
그러나 진은 무라칸에게 더 말을 보태지 않기로 했다. 그에게 해야 할 말은 아까 다 했기 때문이었다.
진실이 무엇이든 자신과 함께, 동료들과 함께 감당하자고.
진과 십대기사들은 웅크린 무라칸을 뒤로한 채 풍경에 시선을 고정했다.
“처음에 네놈이 동료들을 죽이려 한다는 이야길 들었을 땐, 믿지 않았다. 심지어 그 말을 한 건 로키아였고, 너도 알다시피 난 로키아를 의심하고 있었지.”
“테마르.”
“그러나 로키아는 배신하지 않았어. 녀석은 그저 내 마성화를 해결할 방법을 찾으려고 마녀와 계속 접촉하고 있던 것뿐이었지. 그런데 설마 네놈이 이렇게 우리 등에 칼을 꽂을 줄이야…… 네놈과 솔더렛이.”
“그만해라, 테마르. 나는 천 년의 계약자나, 솔더렛을 위해 너흴 죽인 게 아니야. 정말 모르는 것이냐?”
“아, 그렇다면 아직도 내가 미쳐 있다고 말하려는 것인가? 네가 내 동생과 파들러를 데리고 흑해의 탑으로 날 죽이러 온 날처럼. 난 그날 이후 완전히 정신을 되찾았다. 미쳐 있는 동안 마녀를 통해 보았던 여러 진실들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지. 솔더렛이 나를 처리하려는 이유도 그것일 테지만.”
“……더 긴말은 필요치 않을 것 같군. 테마르,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나로서는, 이게 최선일 뿐이다.”
“천 년. 솔더렛이 골랐다는 천 년 후의 미래를 위해 우린 그저 소모품처럼 사용되다 버려질 운명이었겠지. 그때 계약자가 될 녀석은 이 어두운 진실을 전혀 알 수 없을 거고. 오늘로 너와 네 신의 추악한 만행은 끝이다. 내가, 멈춰주마. 네가 멈출 수 없다면.”
후우우웅……!
테마르가 검을 뽑자 별안간 두 사람을 에워싼 폭풍성 내부가 검게 물들었다. 그가 발산한 영기가 끝도 없이 거대한 아공간을 형성하고 있었다.
테마르의 일검에 인간 모습의 무라칸이 세로로 나뉘며 영기로 흩어졌다. 이내 영기는 한참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날아가 새로이 무라칸의 본모습을 형성했다.
이어진 이격엔 잠시 아공간이 갈라지며 바깥 풍경이 드러났다. 폭풍성에서 한참 떨어진, 무라칸 산맥의 한 지점이었다. 갈라진 공간은 순식간에 다시 영기로 채워졌다.
‘가짜의 암흑도래와 유사한 검이다. 테마르와 무라칸이 이런 식으로 아공간에서 계속 전투를 하다가…… 무라칸 산맥이 다 사라졌던 건가.’
방금까지 가짜와 싸웠던 건 저들의 전투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테마르와 무라칸, 두 사람 다 모든 일격에 명백한 창성의 힘이 실려 있었다.
한 번의 검격에 산맥이 한 뭉텅이씩 잘려나갔고, 한 번의 숨결에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빈 도시가 사라졌다. 한 인간과 용이 아니라, 세상을 뜻대로 주무를 수 있는 두 신이 대립하고 있는 듯 보였다.
무라칸은 여전히 웅크린 채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십대기사들은 풍경 속 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에 착잡해지는 마음을 겨우 억눌렀다. 지금 그들이 보고 있는 풍경은, 가짜 무라칸이 테마르를 공격했을 때와 하나도 다를 게 없었다.
“저런 대화를 나눴었군. 정말 무라칸이 가주를 공격하기는 했던 모양이지. 우리가 여기서 알고 있던 것처럼…….”
“난 끝까지 보기 전엔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을 거다. 진과 무라칸은, 우릴 찾아와서 도왔어. 우리가 진짜라 믿었던 가짜 무라칸을 제거하고 진실을 볼 수 있게 해줬다.”
“맞아요.”
“끝까지 보고도 프레이가 과연 저기 구겨진 놈에게 못다 한 고백을 전할지 궁금하군. 사랑 고백이 저주와 악담으로 변하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또 헛소리를 하는군요…… 비올로. 몸이 멀쩡했다면, 한 대 꼭 때려줬을 텐데…….”
“프레이, 피가 계속 흐른다. 우리가 아무리 소멸 직전이라지만 마지막은 조금이라도 편해야지. 말을 아껴. 비올로 놈 헛소리는 무시하고.”
당연하게도, 진은 이 전투의 승자를 이미 알고 있었다.
무라칸은 테마르에게 결국 패배하고, 천 년 동안 긴 잠에 빠질 터였다.
벌써 풍경 속 테마르와 무라칸은 백 회가 넘는 공방을 주고받았다. 아공간이 찢어질 때마다 드러나는 바깥은 온통 파괴된 산맥과 도시들, 그리고 기이하게 찢어진 먹구름과 폭풍우가 전부였다.
주로 테마르가 공격을 시도하고, 무라칸이 방어에 집중하는 양상이었다. 무라칸은 전투가 길어지면 반드시 자신이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테마르는 언젠가는 결국 지칠 수밖에 없는 반면, 무라칸은 결코 지치지 않기 때문이었다. 심장이 손상되지 않는 한 그의 힘은 무한히 처음과 똑같이 유지되는 것이다.
“자꾸 전장을 산맥 바깥으로 옮기려고 하는군……. 네놈은 사람들이 우리 싸움에 휘말려 다 죽어도 상관이 없을 테지.”
“……내 산맥 근처엔 이제 사람이 살지 않는다.”
“휴페스터 전체를 관통하는 산맥 근처에, 사람이 아무도 없다…… 자랑스럽나? 널 숭배하던 이들을 그토록 무참히 짓밟은 게. 그들의 터전을 재로 만든 건 괜찮고, 네놈 집이 부서지는 건 싫은 것이냐?”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현실의 무라칸과 달리, 테마르의 악독한 말들에도 천 년 전의 무라칸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듯 보였다.
무라칸은 오로지 테마르를 죽이기 위해 모든 감각을 곤두세울 뿐이었다. 가짜 무라칸처럼 각성에 돌입해 한 쌍의 날개를 형성했고, 거대해진 뿔로 쉴 새 없이 영기를 발산했다.
미텔 중상부로 이어지는 무라칸 산맥은 이제 흔적만 남기고 완전히 사라졌다. 미텔 전체로 산사태와 지진이 퍼져갔고, 파괴는 멈출 기미가 없었다.
마치 무너진 그들의 관계처럼 돌이킬 수 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싸움이 이어지는 동안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관찰자들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때때로 시점이 바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바뀔 때마다 나타나는 건 오로지 테마르가 펼친 영검의 아공간 속에서 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이 전부였다.
관찰자들은 테마르의 몸에 없던 상처가 보이고, 아공간이 찢어질 때 조금씩 드러나는 바깥 풍경이 달라지는 것으로 시점이 바뀌는 걸 인지할 수 있을 뿐이었다.
무라칸에게선 다치거나 지친 기색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더 이상의 싸움은 무의미하다, 테마르. 지금 싸움에 부서지고 있는 것들은 모두, 우리가 지키려던 것이지. 룬칸델의 땅이며, 룬칸델의 보호를 받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그 더러운 입에 우리가 지키려던 것을 감히, 담아도 된다고 생각하나.”
[미래를 위해 이 땅을,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더 남겨야 한다는 말이 하고 싶을 뿐이다. 네 안에, 아직 가문과 이 땅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 있다면. 그만 멈추고 죽음을 받아들여라.]“미래……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이미 네놈과 솔더렛 덕분에 우린 현재를 잃었거든. 그리고 네놈과 솔더렛이 존재하는 한 룬칸델은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다. 영원히 이용당하겠지, 솔더렛에게.”
[우리의 적은 지플이지, 솔더렛이 아니야…….]“그랬었지, 그가 본색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이제는 지플보다 네놈들이 더 역겹고 혐오스럽다. 네놈들에게 모든 것을 내어줬던, 나와 동료들이 우스워서 미칠 지경이란 말이다.”
무의미한 싸움을 멈추고 죽음을 받아들이라는 무라칸의 의견엔 동의하지 않으나.
어차피 테마르의 입장에서도 싸움을 더 길게 끌 이유는 없었다. 체력이 더 떨어지기 전에 승부를 봐야 했다.
그리고 테마르는 결착을 지을 때를 위해 계속 한 가지 검을 준비하고 있었다.
적이 자신보다 더 강하다 할지라도, 의지만 있다면 격차를 극복하고 상대를 베어버릴 수 있는 영검을.
영검 1식, 영혼 베기.
검게 물든 테마르의 검, 바리사다가 무라칸에게 겨눠졌다.
“죗값을 받을 때다, 무라칸. 괴로워해라. 네가 죽인 이들을 기억하며…….”
테마르가 악독한 미소를 지으며 검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