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46)
제 888화
211화. 오르갈의 협상(1)
오염된 케이탐의 걸작은 다시 본래 모습을 되찾았다. 그리고 케이탐은 약속대로 무라칸을 위한 춘화집을 만들어 검의 정원으로 보냈다.
“아, 이거 뭔가…… 흠, 신이 직접 그린 춘화집이라는 면에서 희소가치는 더할 나위 없긴 한데, 하나도 야하지가 않아. 젠장, 죄다 헐벗고 있는데도 보고 있으면 마음이 경건해진다고.”
“그러냐.”
“뭐, 그래도 꼬마 네가 요구한 보상으로 보내준 그 녀석들 초상화는 마음에 든다. 제대로 그렸구만.”
드라낙스, 비올로, 프레이, 실더레이, 다이애나, 사라, 파들러, 베일.
진은 케이탐에게 그림을 복원한 보상으로 십대기사들의 초상화를 요구했다. 케이탐은 진과 무라칸이 그림을 빠져나오자마자 그들의 얼굴을 선명히 떠올릴 수 있었다. 이번 일로 또 한 번 지플의 역사 조작이 약해진 것이다.
진은 파들러를 제외한 모든 초상화를 검의 정원 안채에 걸어두었다. 기수 의식에 사용되는 회랑이나 일반적으로 자주 갈 일이 없는 영묘가 아니라 일부러 눈에 잘 띄는 곳을 골랐다.
이제 가문의 일원 모두가 그들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비 기수, 기수 때처럼 자신만 알고 감춰야 할 이유가 없었다. 맹약도 깨뜨린 마당에 지플의 눈치를 볼 이유 또한 없었다. 진은 돌아오자마자 케이탐의 그림에서 겪은 모든 일들을 가문의 일원들에게 공유해주었다.
“테마르, 초대 가주의 초상화는 일부러 맡기지 않았다. 우리가 전쟁을 끝내고 가문의 모든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는 날, 그분의 초상화를 검의 정원에 걸겠다.”
지금까지 진은 테마르의 무덤 중 일곱 곳을 찾았다.
흐리고 아득하기만 했던 천 년 전의 역사는 가장 큰 줄기가 확인되었고, 남은 무덤은 아마 몇 되지 않을 터였다.
“아마 아직 한 번도 지난 무덤들에 등장하지 않은 마지막 십대기사, 루시라는 분과 관련이 있는 무덤일 겁니다.”
-살아남은 녀석들은…… 너와…… 또 누가 있어.
-생사 확인이 어려운 상태다. 그나마 가능성이 높은 건 루시로군.
그림 속 무라칸과 로키아가 나눈 대화.
정황상 루시는 천 년 전 전쟁이 끝난 다음에도 로키아와 더불어 가장 마지막까지 생존한 십대기사일 터였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소가주. 루시…… 루시라. 여성이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떠오르는 게 없습니다. 이전에 제가 다른 동료들을 잊고 있었을 땐, 기억이 안 나도 왠지 그립고 가슴이 아파왔는데. 그녀에 대해선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요.]“나도 마찬가지다, 르엣. 그 루시라는 녀석은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만큼 지플을 가장 위협했겠지. 그래서 특히 강력한 역사 조작에 걸렸을 거고.”
[그때의 지플은 결국 테마르와의 마지막 싸움에서 엘로나를 잃었으니, 루시가 사라만큼 강했거나 특별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현재 여덟 번째 무덤이나 루시에 대한 단서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음 무덤이나 루시라는 십대기사의 자취를 찾으려면, 발레리아를 통해 집사장님이 기억을 온전히 찾아야겠군요. 그림 속 역사에 의하면 집사장께선 그 시절 솔더렛과 함께 테마르의 무덤을 만드셨다고 했으니.”
바리사다가 어딘가로 이르는 열쇠다, 라는 정보의 확인도 르엣의 기억에 달려 있었다. 단지 오염으로 인해 생긴 가짜 정보라고만 하기엔 다소 찝찝했다.
[예. 혹은 로키아의 행방을 찾는 것도 방법이 될 겁니다.]일곱 번째 무덤에서 로키아가 보여준 모습은, 파들러의 말처럼 배신자라고 하기엔 애매한 감이 있었다. 다만 현재 로키아의 행보와 맞물리는 점도 있었다.
-다이애나, 넌 이 세상이 온당하다고 생각해?
-뭐?
-그렇잖아. 이 세상에서 굳이 따지자면 정의와 해방을 추구하는 쪽은 우리인데, 세상의 지배자가 되겠다고 온갖 역사 조작과 패악을 일삼는 지플보다 우리가 더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게. 과연 온당한 일인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가문을 버리시겠다고요……?
-이제 내 이상향은 이 가문에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아. 이봐 킨, 우린 룬칸델을 위해 싸우다가 많은 것을 잃었어. 그런데도 더 싸우라고 말할 것이냐? 네까짓 게 무슨 권리로?
그림 속에서 로키아가 다이애나, 킨과 나눈 대화들.
진이 보기에 로키아는 ‘온당한’ 세상을 추구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그건, 태양신의 부활을 외치는 이들이 원하는 바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태양신교들은 태양신이 돌아오면 세상이 완전해진다고 믿는 이들이니 말이다.
[그나저나 그림을 오염시킨 건 로키아, 혹은 마녀의 짓으로 추정되는데…… 이유를 모르겠군요. 그림을 오염시킨 이유가 무엇이었든 결국 소가주께선 오염으로 인해 생긴 가짜 역사를 지우고, 진실을 마주했으니 목적은 실패로 돌아갔을 테지만 말이죠.]“이유야 뭐, 뻔한 것 아니겠냐? 르엣. 그림을 오염시킨 놈이 노린 건 나다. 가짜 역사를 통해 내 정신을 붕괴시켜 폭주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었겠지. 힘을 되찾고 돌아온 내가 부담스럽기 때문일 거고.”
[오, 그런 일리 있는 말도 할 줄 아는군요, 무라칸.]“그리고 내가 부담스럽다면, 그건 마녀가 아니라 로키아일 가능성이 높다. 내가 대단한 건 사실이지만, 마녀는 무서운 게 없으니 말이야.”
이후 한동안 무라칸과 르엣은 옛 동료들에 대한 추억에 잠겨 대화를 이어갔다.
무라칸은 그림 안에서 다시는 울지 않아도 될 만큼 많은 눈물을 흘렸고, 아직도 그 슬픔이 가슴속에 남아 있으나.
그들을 위해서라도 딛고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진과 새로운 동료들은, 결코 그렇게 보낼 생각이 없었다.
진은 자리에서 물러나 보고서들을 살폈다.
지플과 적명족의 전쟁은 달라진 바가 많지 않았다. 그림 속에서 지낸 시간은 겨우 사흘 남짓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엘로나가 더해졌어도 전체적인 양상은 박빙인가. 만일 엘로나가 없었다면 적명족이 초반부터 꽤 분위기를 잡았겠군.’
아직 지플이 적명족의 본거지를 찾은 것 같다는 보고는 없었다.
‘놈들의 본거지가 지하 어딘가에 있다는 건 지플도 인지하고 있을 거다. 그런데 엘로나를 앞세워 세상을 마구잡이로 파괴하지는 않는 점은 다행이군. 그런 짓을 하기엔 우리 연합이 부담스럽기도 할 테지만.’
마찬가지로 적명족도 자신들이 한 선전포고를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 일반인 피해는 절대적으로 배제한 채 전쟁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진은 그 사실에서 약간의 자부심을 느꼈다.
만일 지금 자신과 바멀 연합이 없었다면, 세상은 놈들의 전쟁으로 인해 지옥으로 변했을 터였다.
우우우웅.
별안간 집무실에 놓인 통신 장치가 묵직한 공명음을 냈다. 티칸으로부터 온 통신 요청이었다.
{진 공자.}
“말씀하십시오, 국왕님.”
{방금 아메리스 님이 말씀하시길, 아무래도 제피린이 의식불명에서 깨어난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아메리스는 제피린을 자신의 머리 중 하나였던 존재로 추정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메리스가 깨어나자마자 제피린과 오르갈이 함께 의식을 잃었다고 말이다. 실제로 시기적으로 그들이 정신을 잃은 순간과 아메리스가 깨어난 건 완벽하게 일치했다.
“그렇다면 어서 놈들에게 지난번에 한 거래의 정당한 대가를 받으러 가야겠군요.”
얼마 전 킨젤로는 진에게 당분간 적명족으로부터 보호를 해달라는 요청을 했었다. 진은 요청을 수락하는 대신 대량의 강철과 킨젤로가 봉마벽을 우회해서 마족을 데려오는 방법을 받기로 했고 말이다.
강철은 계속 받는 중이지만 아직 마족에 대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마족을 킨젤로로 데려오는 주체인 오르갈과 제피린의 의식이 없었으니까.
{지금 바로 가실 겁니까?}
“예, 복귀는 검의 정원이 아니라 티칸으로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공자.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 * *
킨젤로 신본부.
이번에도 부바르와 아이나스는 정문 앞에 앉아 개미를 지켜보며 놀다가 붉은부엉이가 등장하는 걸 보고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저, 저! 저 미친놈들이 또 이렇게 남의 집 앞마당을 막 침입하고!”
“진 룬칸델이 또 쳐들어왔다!”
진은 그들을 무시하고 지나쳤으나, 무라칸은 아니었다.
[왁!]굳이 인간 모습에서 얼굴만 본모습으로 바꿔 그들을 겁준 것이다.
“으어어!”
“때, 때리면 언니한테 이른다!”
[큭큭, 꺼져라.]부바르와 아이나스는 혼비백산하며 정문으로 사라졌다. 진과 무라칸도 천천히 그들을 따라 정문으로 향했다.
“너희 단장에게 받을 게 있어서 왔으니 비켜라.”
“……잠시만 상부에 보고를.”
진은 잠시 문지기 수인들을 기다려주었다. 문지기들까지 무시하고 들어가면 오르갈이 또 저번처럼 극단적인 반응을 보일지도 몰랐다.
물론 지금은 무라칸이 함께 있으니 오르갈의 기분이 아무리 나빠도 그럴 수 없을 테지만 말이다.
“……들어가라.”
“이야, 너 용기 있다? 이 무라칸 님한테 찍찍 반말을 다 하고.”
문지기는 차마 무라칸을 쳐다보지도 못한 채 벌벌 몸을 떨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지난번과 똑같이 마족들의 적대적인 시선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때처럼 어설프게 덤비려는 마족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두렵기 때문에 괜히 이빨을 드러내는 짐승들처럼 보일 뿐이었다.
‘저것들을 대체 어떻게 데려오는 건지, 오늘 답을 들을 수 있는 건가.’
물론 화장실은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르기 마련이다.
킨젤로가 이미 지난번 거래에 충분한 대가를 치렀다고 발뺌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오르갈과 제피린에게 생각이 있다면 지금은 나와 협조를 해야 할 때라는 걸 모르지 않을 테지. 적명족이 계속 지플하고만 싸우라는 법은 없으니.’
킨젤로는 적명족과 여러모로 상극이었다. 수인들은 아예 저항조차 할 수 없고, 현재까지 진이 확인한 마족들의 전투력은 적명족의 핵심 인물들과 기술력을 감당할 수 없었다.
“진 룬칸델…… 아직 우린 지난번 거래의 대가를 줄 준비가 되었다고 말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귀신같이 저와 주인님이 깨어난 걸 알고 찾아온 거죠?”
“제피린, 오랜만이군.”
“제가 한번 맞춰볼까요? 큰 뱀, 아메리스가 당신들과 함께 있는 모양이군요.”
진은 대뜸 아메리스의 이름을 말하는 제피린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럼 넌, 역시 아메리스 님의 머리 중 하나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