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47)
제 888화
211화. 오르갈의 협상(2)
제피린은 그 말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았다.
“머리 중 하나라…… 그건 큰 뱀이 가진 그 몸을 누구의 것으로 보는가에 따라 다르겠지요. 애초에 머리는 아홉이었으니.”
“야, 악마룡. 그런 경우는 간단해. 지금 그 몸을 소유한 머리가 임자인 거지. 넌 아메리스 양반보다 약해서 포도송이처럼 톡 떨어져 나간 거 아니야.”
“뭐, 지금 당장은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요. 어쨌거나, 또 이렇게 예의도 없이 찾아오는군요. 지난번에 제 주인께서 진 경에게 충분히 경고를 했을 텐데.”
“내가 비슈켈과 거래를 하고 벌써 시간이 꽤 흘렀어. 대가 지불이 늦은 너희 잘못이니 또 나랑 결판을 내겠다는 둥 헛소리는 하지 않으면 좋겠군.”
“만날 때마다 느끼지만 진 경은 참 밉상이에요. 기껏해야 적명족 떨거지들 두어 번 막아준 걸로 이미 충분히 많은 보상을 뜯어냈으면서 말이죠.”
“약속은 약속이니까.”
“우리가 마족을 어떻게 인세로 데려오고 있느냐, 그걸 알려주면 되는 거죠? 큰 뱀이 지키고 있는 봉마벽을 우회해서.”
의외로 제피린은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그녀는 아메리스로 인해 의식을 잃은 동안 고대의 기억을 일부 되찾은 상태였다.
“오, 시원시원하군. 설마 봉마벽에 대한 이야기까지 먼저 꺼낼 줄은 몰랐는데.”
“이제는 그리 대단한 비밀이 아니니까요. 이미 지하세계에 대한 정보가 일반인들에게 모두 공개되었으니, 봉마벽과 그 아래에 사는 이들의 정체가 밝혀지는 것도 시간문제일 겁니다.”
상대가 먼저 술술 정보를 푸는 경우는 보통 하나다.
그 또한 원하는 바가 있을 때. 거래의 대가라고는 하나, 제피린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소극적으로 대화에 임할 수 있었다.
“봉마벽은 이미 일부 파괴된 상태입니다, 진 경. 아메리스는 아마 이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을 테죠. 그러니 당신더러 우리가 대체 마족을 어떻게 부리는 건지 알아보라고 했을 거고.”
“이미 일부가 파괴됐다고?”
“고대 명왕족, 청명족과 적명족이 파괴했죠. 당시 아메리스는 급히 봉마벽을 보수했으나…… 그때 이미 지하에 살던 마족들 일부가 중간세계로 빠져나왔습니다. 지상과 지하의 중간으로 말이죠.”
“그럼 지금 킨젤로가 부리는 마족들은 완전한 지하 출신이 아니라, 중간에서 살던 마족들이다?”
“네, 그러니 아메리스가 모를 수밖에 없던 거죠. 애초에 봉마벽 아래에 있는 이들을 데려온 게 아니니까. 적명족도 마찬가지예요. 그들도 봉마벽 아래에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던 거죠.”
중간세계.
제피린은 지상과 지하의 사이를 그렇게 표현했다.
“성국수호전 때는?”
“그때는 중간세계과 봉마벽의 마족들이 혼재된 상태였습니다. 우리 주인과 달리, 마녀 헬루람은 봉마벽 아래에 있는 마족들도 직접 소환할 수 있는 인물이니…….”
들을수록 지하와 마족에 대한 의문이 더욱 증폭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궁금한 건 제피린이 이토록 협조적으로 정보를 푸는 이유였다. 단지 기억이 돌아온 걸 자랑하고 싶은 마음일 리는 없으니 말이다.
제피린의 의중을 알아내는 법은 간단했다.
“그렇군. 좋아, 우린 이만 일어나도록 하지.”
대뜸 진이 돌아갈 듯이 일어서자 제피린은 눈동자를 끔뻑였다.
“들어야 할 이야기가 더 있지 않나요?”
“아, 더 있어? 쓸데없이 말 흐리면서 뜸을 들이길래 다 끝난 줄 알았지. 너희 킨젤로가 마족을 어떻게 데려오는지는 충분한 설명이 되기도 했고. 어쨌거나 봉마벽 아래에 있는 마족들과는 네놈들도 별다른 교류가 없다는 거잖아. 보아하니 지금은 오르갈도 여기 없는 것 같군.”
제피린은 짜증을 억누르며 잠시 진과 무라칸을 노려보았다.
“뭘 쳐다봐, 한판 붙자고?”
무라칸이 인상을 쓰자 제피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지긋지긋하군요, 정말.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죠? 언제부터 우리 킨젤로가 당신들한테 이리저리 휘둘리는 꼴이 된 걸까요? 왜 매번 이런 식인 거지?”
“갑자기 뭔 소리야, 어디 아프냐?”
“됐습니다, 다시 앉도록 하세요. 지하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 대부분을 공유해줄 테니.”
진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진작부터 이렇게 말하지 그랬어, 제피린. 네 태도를 보아하니 우리한테 아쉬운 소리를 또 해야 하는 입장인 것 같군.”
“그런 셈이죠. 하지만 우리만 아쉬운 상황은 아닐 겁니다, 진 경. 최근, 봉마벽이 무너지고 있거든요.”
“봉마벽이? 아메리스 님에게 그런 말은 들은 적이 없는데.”
“큰 뱀의 머리는 본래 아홉. 그러나 지금은 아메리스 하나만이 그 몸을 소유하고 있죠. 잠들기 전의 아메리스와 지금의 아메리스의 능력은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봉마벽은 세상의 지상과 지하 전체를 나누는 경계선이다. 제피린은 지금의 아메리스가 그 전역을 완벽하게 감지할 수는 없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봉마벽이 무너지고 있다는 근거는 뭐지?”
“마왕 지토. 그가 힘을 되찾고 있습니다.”
“지토?”
제피린이 눈짓하자 비앙카가 한 철제 상자를 가져왔다. 그 안에는 거대한 반지가 들어 있었다.
“이게 뭐지?”
“반지, 마왕 지토의 인장입니다.”
“몸집이 상당히 큰 모양이군. 사람이라면 허리띠로 써도 되겠어.”
“여기, 인장이 각인된 부분을 보세요. 옅은 보라색 빛이 감돌죠?”
그 말대로 복잡한 인장 문양에 보랏빛이 감돌고 있었다.
“이 인장의 빛은 지토가 마계 전역에 명령을 내릴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껏 이 인장을 보관하는 동안, 이런 일이 벌어진 건 처음이죠.”
“지하세계의 마족들에게 지토가 무언가 명령을 하달하는 중이다? 그렇다면 그가 이미 깨어났다는 말이 되는데.”
“성국이 그의 가장 중요한 육신을 보관하는 중이니, 깨어나긴 했어도 힘을 제대로 되찾은 건 아닙니다. 인장에 형성된 빛 또한 그래서 아주 옅은 거죠. 우린 그가 이제 막 의식을 되찾은 정도가 아닐까 예상하는 중입니다.”
-[한 가지 확실하게 알려줄 수 있는 건, 지토의 육신에 생긴 문제는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통제가 가능하다 해도 안 할 것 같은데.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믿기 어렵겠지만, 나로서도 지금 그가 깨어나는 건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킨젤로와 임시 동맹이던 때 오르갈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그때 오르갈은 지토가 ‘마족의 치부지만, 자신에겐 스승 같은 인물’이라는 말도 했었다.
“그래서 지금 오르갈이 여기 없고, 대신 네가 나온 건가?”
“네, 주인께선 의식을 되찾으시자마자 봉마벽 아래의 마족들과 협상을 하러 가셨습니다.”
“이미 봉마벽 아래에 있는 마족들이 바깥으로 나올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는 뜻으로 들리는군.”
“지금으로서는 특별한 마족들만이 겨우 중간세계에 잠시 머무를 수 있는 정도죠. 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곧 중간세계를 넘어 지상까지 올라올 수 있게 될 겁니다. 어쩌면, 모든 마족이…….”
제피린의 얼굴에 그늘이 번졌다.
연기를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애초에 킨젤로가 지토와 마냥 우호적인 관계였다면, 성국에 있는 그의 눈을 계속 노렸어야 할 터였다. 오르갈은 성국에 지토의 눈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지토는 자신이 새로운 질서가 되길 바라는 불멸자였다. 고통을 통해 세상을 다스리려 하였던가……. 어지간하면 엮이면 안 될 미친놈이라 할 수 있겠구나. 그는 머리가 아홉이던 시절의 이 몸조차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괴물이었다. 어떻게 죽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군.]
또한 아메리스에 의하면 지토는 ‘태양신의 부활’과는 거리가 먼 존재였다. 태양신의 부활을 원하는 오르갈과는 대척점에 위치할 수밖에 없었다.
“오르갈이 지하의 마족들과 하려는 협상은 무엇이지?”
* * *
중간세계, 무너진 봉마벽 근처.
오르갈은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봉마벽의 균열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지하의 마왕들 중, 가장 먼저 중간세계로 나온 인물이 누구냐에 따라 킨젤로의 미래가 달라질 터였다.
반드시, 지토에게 대항하는 인물이 먼저 나타나야 했다. 지토가 이제 겨우 눈을 떴는데도 그를 따르는 세력이 더 크다면, 킨젤로의 대업은 또 한 번 요원해질 가능성이 높았다.
[오르갈…… 자네인가.] [파엘리토, 오랜만이군.]파엘리토, 그는 오르갈의 기억 속에서 지토에게 가장 치열하게 대항한 마족이었다. 오르갈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파엘리토가 오르갈의 손을 맞잡았다.
[자네는 중간세계로 빠진 마족들을 오랜 시간 통치해 왔다지.] [그렇게 되었다. 한데 그 사실을 누구에게 들었나?] [자네의 연인이었던 마녀 헬루람. 큰 뱀이 잠든 이래 진마계로 자네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또 누가 있었겠나.] [하긴, 부끄럽군. 봉마벽 아래는 상황이 어떠한가?] [우리야 늘 똑같지. 그토록 긴 세월이 지났음에도 다들 여전히 지상을 꿈꾸며 살고 있다. 이제 봉마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했으니, 그 오랜 꿈이 실현될 때가 된 것이겠지…….]파엘리토가 길게 호흡을 들이켰다. 지하세계와 다를 바 없으나, 그럼에도 지상과 더 가까운 공기라는 사실이 그에게 만족감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오르갈 자네가 듣고 싶은 대답은 이게 아닐 테지. 진마계가 현재 누구의 통치를 받고 있는지가 궁금할 거다.] [나는 자네일 거라고 생각했다만. 가장 먼저 봉마벽의 균열을 뚫고 나왔으니, 현재 마계에서 가장 강한 건 자네가 아닌가?] [진마계라고 정확히 표현해주게. 현재 지상이 마계라 칭하는 중간세계는 자네처럼 도태된 마족들이 지내는 지역 아닌가.]오르갈은 대답하지 않고 다시 한번 찬찬히 파엘리토를 살폈다.
그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에서, 은은한 보랏빛이 감돌고 있었다. 지토의 인장에서 흐르는 빛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그건 곧, 파엘리토가 지토의 명령을 따르고 있다는 뜻이었다.
[과거에도, 지금도. 진마계를 통치하는 유일한 왕은 오로지 지토 님뿐이라네, 오르갈. 난 자네 또한 지토 님의 부름을 받아 균열을 찾아온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